여러분은 ‘농협’에 대해서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대다수는 하나로마트와 ‘놈으옙흐’란 밈으로 더욱 유명해진 농협은행을 떠올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대부분의 일상이 도시에서 이뤄지는 오늘날, 농촌과 농업을 간접적으로나마 겪을 수 있는 조직으로 여길 수도 있겠습니다.
농촌에 내려가면 상황은 조금 달라집니다. 하나로마트와 농협은행이 지역민의 주된 이용처임은 물론이고, 농작물의 생산/가공/유통/판매와 농업에 연관된 전후방 산업(농약, 농기계, 비료, 주유소 등) 모든 곳을 농협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농민 복지, 농업 연구, 영농 교육, 언론 등 다양한 방면에도 진출해 있습니다. 정식 명칭이 ‘농업협동조합’인 만큼 200만 명 이상의 농민을 조합원으로 하여, 농업 및 농촌 사회문화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지요.
농협은 2021년 기준 농·축협 경제사업 규모만 56조 7,711억원에 달할 정도로 사업 범위가 넓고 조직규모가 매우 거대합니다. (농협중앙회, 2021) 그런데 농협이 계속 커져만 갈수록, 농업계 내부에서는 근심이 늘어가고 있는데요. 조직 내부의 온갖 부정과 비리, 비민주적 절차 등으로 인한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고, 권력의 고착화로 인해 이에 대한 문제제기 역시 쉽지 않은 상황이 이어졌기 때문이죠. 그런데 최근 또 하나의 새로운 논쟁이 등장했는데요. 바로 농협중앙회장의 연임을 허용하는 내용이 담긴 ‘농협법 개정안’ 이슈입니다. 이 글에서는 농협의 다양한 문제들을 잠시 접어두고, 잘 알려지지 않은 농협의 역사를 살펴 최근의 농협법 개정 흐름을 이해해보고자 합니다.
농협 지배구조 변천과 단임제의 시작
농협은 1961년 8월 15일 정부에서 제정한 특별법인 ‘농업협동조합법’에 따라 기존의 농업협동조합과 농업은행이 통합되면서, 종합농협으로 재편성된 특수법인입니다. 그 조직구조는 중앙회와 농·축협 2단계로 나뉜 조직으로 편성되어 운영되는데요. 중앙회가 2개의 지주회사와 34개의 계열사를 운영해 농협은행, 하나로마트 등을 관리하고, 농·축협은 지역농협과 품목농협으로 구성되어 총 4,876개소의 사업장을 운영 중입니다. (본점+지점 계산, 2023년 기준)
종합농협은 처음부터 정부의 농촌조직 육성정책을 통해 설립되었는데요. 이에 따라 1989년 농협법 개정을 통해 ‘선거제’로 바뀌기 전까지는 정부에서 중앙회장을 임명하고, 중앙회장이 농림부장관의 승인을 받아 지역 조합장을 임명하는 ‘임명제’를 유지했습니다. 자주적 협동조합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농촌을 대표하는 관변단체의 성격이 강했던 것이지요. 직선제로 선거 방식이 개정된 이후엔 농·축협 조합장 등의 임원은 직선제를 통해 선출되고, 중앙회장 역시 농민 조합원이 뽑은 조합장에 의한 직선제로 뽑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989년부터 유지된 직선제는 2009년 이명박 정부 당시, 농협법 개정을 통해 중앙회장 4년 단임제 및 대의원 간선제로 바뀌게 됩니다. 이는 1990~2007년 사이 세 명의 조합장 모두 연임에 성공한 동시에, 임기 중 부정과 비리를 저질러 처벌받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한국농정, 2023) 계속되는 중앙회장의 부정으로 공익성과 민주성이 심각하게 훼손된다고 판단한 18대 국회의 판단이었습니다.
11선에 도전하는 조합장, 연임을 원하는 현 중앙회장
농협법 개정을 통해 단임제로 바뀌었으나, 당시 21~22대 중앙회장은 개정법이 현직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원칙에 의해 연임을 허용받습니다. 그리고 현재 24대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은 시행되었음에도 명확히 적용되지 않은 단임제를 연임제로 바꾸려 하고 있는데요. 이에 2022년 12월 4명의 국회의원(윤재갑·김승남·김선교·이만희 의원)이 연임 내용을 담은 농협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이후 법안은 법안심사소위와 농해수위 전체 회의를 신속하게 통과하여 2023년 현재는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계류 중입니다. (경인일보, 2023)
이번 농협법 개정안은 가장 크게 현 회장의 연임을 허용한다는 점에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정보와 인사를 장악한 현직 회장이 다음 선거에서 유리하다는 반대의견과 다른 협동조합(신협, 산림조합)은 단임제가 강제되지 않는다는 찬성의견이 대립 중인데요. 농협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과 각 측의 찬반주장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농업협동조합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
- 지역 조합에 내부통제기준을 정하도록 의무를 부과
- 비상임 조합장(자산이 2500억원을 넘어서는 지역농협의 조합장)의 경우에도 상임 조합장과 동일하게 연임을 두 차례로 제한
- 중앙회장의 연임을 한 차례 허용
<현재 발의된 농협법 개정안 찬성의견>
- 회장의 연임을 강제하는 협동조합은 농협뿐이다.
- 중앙회장의 업무수행 연속성과 책임성을 보장해야 한다.
- 농협중앙회 및 지역조합의 내부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 농협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법안 개정이 필요하다.
<현재 발의된 농협법 개정안 반대의견>
- 중앙회장 단임제가 제정되었으나, 성과가 드러나기엔 짧은 시간이 흘렀다. 규정이 적용된 회장 역시 1명뿐이다.
- 현 회장의 연임을 보장하려는 전략이다.
- 지역 조합 통제를 위한 조항은 필요하나, 회장의 연임은 불필요하다.
- 연임에 치중할 것이 아닌 조직 내부의 민주성과 공정성을 더욱 키울 필요가 있다.
이번 농협법 개정안은 회장의 연임을 보장하는 것과 동시에, 기존에 제한 없는 연임이 가능하던 일부 지역 조합장의 임기를 두 번의 연임으로 제한한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중앙회장의 권력을 강화하는 대신, 지역농협을 통제한다는 복잡한 전략이기에 논란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앙회장과 지역 조합장은 거대한 농협 조직 속에서 핵심 사업들을 관리하는 주체로, 그 영향력 역시 막강합니다. 중앙회장은 거대한 조직의 수장이니 말할 것 없지만, 지역 조합장은 특히 지역에서 큰 권력을 가집니다. 농촌지역에서 농업에 연관된 경제사업 대부분을 4년간 주관할 수 있어, 명백한 지역유지로 자리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다 억대 연봉을 받고, 정치적 발판의 요인이 될 수도 있는 자리입니다. 더불어 비상임 조합장의 경우 횟수 제한이 없는 연임의 가능성 역시 존재해 10선, 즉 40년 가까이 연속 당선되어 큰 이익을 본 조합장 역시 존재합니다. (매일경제, 2023)
이처럼 지역 농협의 감시체계를 확대할 필요성은 있으나, 그것이 회장의 연임과 함께 진행된다는 점에서 현 농협법 개정안 심사는 여당/야당, 농업·농촌단체들을 분열시키고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그 과정이 적절한 숙의 없이 속전속결로 처리되고 있다는 점, 농협의 찬성단체 포섭 정황 의심, 언론 통제 등이 이뤄지는 점에서도 많은 논란이 양산되고 있습니다.(한국농정, 2023)
연임이 과연 핵심일까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는 “농업 문제라 쓰고 농협 문제라 읽는다”라는 말로, 오늘날 농협의 다양한 농업농촌의 문제들이 농업계의 가장 큰 조직인 농협의 문제에서 비롯되었을 정도라고 논했습니다. (경향신문, 2022) 농협은 오늘날 한국의 농업과 농촌을 이끌어가는 가장 큰 조직으로서, 농업농촌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농업농촌과 농협은 문제의 책임소재를 떠나서 함께 나아갈 수밖에 없음을 시사합니다.
현재의 농협법 개정안 논란은 ‘연임’이란 단어가 주는 거부감이 크기에 더욱 격화되고 있습니다. 농협은 농업농촌의 역사와 함께 성장하며 그 발전에 많은 도움을 줬고, 편리성을 줬습니다. 하지만, 협동조합 답지 않은 조직 내부의 비민주성, 조직장들의 부정과 비리는 그만큼 많은 실망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실상 그러한 전례가 없었다면, 연임이든 단임이든 조합원과 각 단체는 두 팔 벌려 환영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앞으로의 경과를 좀 더 살펴봐야겠지만, 연임에 치중하기보단 내부의 구조적 개혁을 통해 ‘농업농촌을 위하는 조직’이란 본연의 의미를 세우는 모습이 더욱 필요한 듯 보입니다.
하나로마트와 농협은행의 뒤에서는 농업농촌의 방향성을 결정짓는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과정을 주도하는 농협은 좀 더 투명하고 공정한 모습을 보이며 협동조합 다워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내부의 자성과 동시에, 외부의 관심 역시 지속되어야 합니다. 농민과 도시민에게 “너무 예쁘다(‘놈으옙흐’)”는 소리를 듣는 농협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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