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동안 인간이 가장 많이 먹는 동물 순위가 있다. 1위부터 10위까지 동물 중 익숙한 동물도 그렇지 않은 동물도 있다. 간략한 순위는 이렇다.
▲1위 닭 5백억 마리, ▲2위 오리 26억 마리, ▲3위 돼지 13억 마리, ▲4위 토끼 11억 마리, ▲5위 칠면조 6억 4천만 마리, ▲6위 양 5억 2천만 마리, ▲7위 염소 4억 마리, ▲8위 소 2억 9천만 마리, ▲9위 물소 2천 4백만 마리, ▲10위 낙타 170만 마리.
‘닭, 오리, 돼지, 소’ 처럼 익숙한 동물도 있고, 토끼, 염소, 물소, 낙타처럼 익숙하지 않은 동물도 있다. 익숙하든 익숙하지 않든, 인간이 수 많은 육류를 소비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실제 1인당 육류 소비량도 상당하다.
1인당 돼지고기 소비량 출처 : OECD Data
1인당 가금류(닭, 오리 등) 소비량 출처 : OECD Data
OECD가 발표한 2021-2022년 1인당 육류 소비량에 따르면, 2021년 우리나라의 1인 당 돼지고기 소비량은 약 32kg이었다. OECD 평균은 22kg이었다. 닭, 오리 등 가금류의 대한민국은 1인당 18kg을 소비했고, OECD 평균은 31kg이었다.
수치가 정확한지는 모르겠으나, 1인당 닭고기 소비량으로 계산하면 우리나라는 약 900,000,000kg의 닭을 1년 동안 먹는다는 말이 된다. (단순 계산을 위해 우리나라 국민을 5천만 명이라고 했다) 이 수치만 보더라도, 1년에 500억 마리의 닭이 먹힌다는 수치가 이해가 된다.
1년에 500억 마리, 상식적으로 멸종하지 않는 게 이상한 수치다. 인간이 그렇게 열심히 먹고, 먹고, 또 먹어도 멸종하지 않는 건 닭을 기르는 사육 시스템에 있다. 닭은 먹히기 위해서만 닭장 속에서 길러지고, 자연적인 성장속도보다 더 빨리 길러지고, 알을 낳고, 태어나고, 죽는다.
고기로 태어나서. 어느 작가의 도축장 노동 이야기
몇 년 전 읽은 책을 꺼냈다. 읽고난 뒤, 내가 먹는 고기가 어떻게 내 식탁에 올라오게 되는지 어설프게 나마 알게 된 책이다. 책의 몇 구절이다.
“동정심도 그저 호감을 표현하는 방식 중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닭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대신 이것들을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짓밟은 다음 저 산 너머로 차버리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만약 내가 이 닭들에 대해서 책으로 읽었다면, 누군가에게서 전해 들었다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은 바로 내 눈앞에 있었고 너무나도 역겨워 보였기 때문에 혐오하고 두려워하는 것 말고는 다른 태도를 취할 수가 없었다. 케이지란 도구는 갇힌 쪽이나 가둔 쪽 모두에게서 최악의 자질을 이끌어 내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무감각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10동에서부터 차례대로 작업했는데 얼마나 많은 닭을 죽였는지 모르겠다. 수백 마리는 될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정말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손에 ‘투두둑’ 하고 닭의 명줄이 끊어지는 느낌이 전해져도 정말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나무젓가락을 부러뜨릴 때만큼의 감정도 소모하지 않고 닭의 목을 비틀었다. 내 발 주위는 무도병에 걸린 것처럼 사지를 흔들어대는 닭으로 가득했다. 잠깐, 정말 찰나의 100분의 1 정도의 순간 동안 예전의 일기에 적어놓은 그런 감정들, 미안함, 불편함, 찝찝함 같은 것들이 느껴질 것 같았지만 금세 짜증과 피로에 묻혔다. 이런 식이면 사람도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저자는 전국 도축장을 돌아다니며 일했고, 글을 썼다. 그가 돌아다닌 도축장에선 닭, 돼지, 개를 길렀다. 식용이었다. 현실은 처참했다. 돼지들은 냄새와 육질을 위해 거세 당했고, 닭들은 알을 낳기 위해 길러졌고, 너무 빨리 태어나는 바람에 눈이 없거나, 다리를 저는 등 온전하지 못한 병아리로 태어났다. 그렇게 된 병아리들은 폐사됐다. 온전히 태어났다고 해도, 식용으로 빨리 길러지다 밥상으로 올라갔다.
도축장 어디에도 동물을 동정하는 마음은 없었다. 앞선 글에서 알 수 있듯, 그 곳의 동물이란 빨리 처리해야 하는 일감이었고, 냄새나고 역겨운 것일 뿐이었다. 닭과 돼지 뿐만이 아니라, 개도 마찬가지였다. 식용으로 길러진 개의 뒷다리가 30cm 찢어지든, 눈이 당구공만큼 붓든 상관 없었다. “그저 따끔하고 말아"라고 말하는 정도였다.*
책을 읽으면서 동물들의 삶과 이유라는 게 뭘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도축장에서 태어난 닭, 돼지, 개는 그곳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식용으로 길러졌다. 태어난 목적이 먹히기 위함이었다. 동물의 의사는 없었다. 애초 인간과 동물은 언어적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강형욱처럼 수년 간의 공부와 수련으로 동물 행동과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전문가라면 모를까, 비전문가가 쉽게 동물 행동 의미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기는 어렵다.
동물의 식용 사육 환경을 알고난 누군가는 육식을 끊고, 채식으로 넘어갈지도 모른다. 실제, 채식을 말하는 사람들 중에서 도축장 환경을 말하기도 한다. 또한, 애초 육식이 없다면 동물 도축 환경을 말할 이유도 없다.
동물 보호를 위한 채식
채식은 육식과 비교해 장점이 있다. 일단, 앞서 가볍게 살펴본 도축 환경이 없다. 기형아로 태어나는 병아리가 없고, 폐사되지 않는다. 억지로 사료를 먹는 환경도, 한 마리가 있어야 할 케이지 안에 10마리 씩 낑겨서 서로가 서로를 밟는 환경이 없다. 도축 되지 않으니, 돼지와 개의 울부짖는 소리가 없다.
출처 : 픽사베이
출처 : EAT
또한, 채식은 육식에 비해 환경적 부담도 덜하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LEAP(Livestock, Environment and People ) 프로젝트 팀 연구에 따르면, 비건 채식은 하루에 100g 이상 육퓨 포함 식단보다 탄소배출, 수질 오염 및 토지 사용이 75%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생물다양성 파괴 66%, 물 사용량은 54%까지 줄일 수 있다고 발표했다. 노르웨이 비영리 단체 ‘EAT’가 2020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현재 육식 상황을 유지하려면 지구 2.3개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을 보면, 채식이 정답인 듯 보인다. 실제 국내 채식 시장 규모도 커지고 있다. 국내에 정확한 채식자 규모는 파악할 수 없지만, 실제로 커지고 있고 국내 기업들도 이러한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 각종 채식 관련 상품과 서비스를 출시하고 있다.
물론 시장의 변화가 무작정 동물을 위하기 때문이라고 믿어선 안 된다. 시장은 수익에 민감하기 때문에, 향후 수익 시장이 될 곳에 미리 진입해 선점한다는 쪽으로 보는 게 더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한편으로는 육식에서 채식으로 넘어가는 과정의 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채식이 무조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채식, 정답일까?
리어 키스(Lierre Keith)는 20년 동안 비건 생활을 하다가 채식에 대한 믿음이 잘못된 지식에 근거했다는 걸 깨닫고 책, <채식의 배신>(원제 The Vegetarin Myth)을 썼다. 그는 책을 통해 채식의 잘못된 점을 도덕적, 정치적, 영향학적으로 반박한다.
채식주의가 지속가능한 사회, 생명 존중 등 좋은 의미를 갖고 있지만, 무지와 오해로 인해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지적에 따르면, 채식은 영향학적으로 인간에게 이롭지 않다. 육류를 줄이고, 곡물식, 채식을 하게 될 경우 인슐린 과다 분비와 고혈당에 시달린다고 말한다. 이어 비건 식단은 우울증, 면역학적 질환, 저혈당, 식이장애 등을 초래한다고 말한다. 최근에는 극단적인 비건 식단을 하던, 비건 인플루언서가 사망하는 안타까운 소식도 있었다.
또한, 농업에서도 곡물 수학기에 수 많은 토끼와 쥐 들이 추수기계에 죽는다고 말한다. 채식하는 사람들이 직접 죽이지 않았지, 실은 동물이 죽는 환경에서 먹는 건 동일하다고 말한다. 이어 농업 역시 환경을 파괴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이며, 환경을 이롭게 한다는 게 잘못됐다고 말한다.
알고 먹자
채식을 하면 동물과 지구를 보호할 수 있다는 주장도, 동물을 생각하지 않는 환경에서 길러저 식탁에 온 고기를 먹어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도 선뜻 대답을 할 수가 없다. 개인적으론 정답 없는 논쟁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개인의 생각과 신념에 따라 본인에게 맞다고 생각하는 걸 추구하는 것이다.
채식이 내 몸에 맞는지, 육식이 내 몸에 맞는지, 내가 먹는 곡물과 식물이 자란 환경은 어떤지, 내가 먹는 고기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나서 내게 왔고 내가 먹는 것인지 알고 먹고, 알고자 한다면 그게 개인에게 가장 맞고 이로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고기로 태어나서>를 쓴 한승태 작가는 본인의 책을 통해 채식이 옳다, 채식을 하자라고 말하지 않았다. 또한, 그가 본 도축 환경이 결코 좋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먹는 고기가 어떻게 내 밥상에 왔는지 알고 먹자라고 말했다.
내게 맞는 게 뭔지 알고자 하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면 육식이든, 채식이든 괜찮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론 육식과 채식 그 어느쪽도 동물권을 보호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깊이 파고들다 보면 어느 지점에서 동물에게 상처를 입히고, 그들의 의사와는 상관없는 피해를 입힌다고 생각한다. 이때 중요한 건 내가 하는 식단이 어떤 과정과 환경을 거쳐 내게 왔는지 고민하는 게 아닐까 싶다. 또 그 고민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다. 부디, 사람들의 밥상머리가 조금 더 무겁고 고민되길 감히 바래본다. 또한,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듣고 싶다.
*<고기로 태어나서> (한승태/ 시대의 창/ 2018) p.19, 154, 414
코멘트
101월 한 달 간 비건지향이 되어보는 '비거뉴어리'를 통해 비건 지향인이 되었습니다. 함께 했던 친구와 프로젝트를 통해 무얼 얻고 싶은지 적어보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그때 이렇게 적었습니다. "되는대로가 아닌, 선택하고 책임지는 삶을 살고 싶어요. 채식이 하나의 대안이 되어줄 것 같아요."라고요. 말씀 주신 것처럼 내가 먹고 살아가는 것에 있어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와 별개로 대체육류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니 극단적인 섭취 양상도 점차 자연스레 줄지 않을까 싶고요.
우리의 식탁에 올라오는 육류가 고기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에 공감합니다. 축산과정의 폭력성을 인지하더라도 변화를 이끌수 없을수도 있지만, 알고 먹는 것과 모르고 먹는 것은 천지차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