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서로를 구하기 위한 공동행동

2023.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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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반란, 기후위기 앞에 선 창작자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기후 책>에서 미국의 과학자 마이클 오펜하이머는 뼈아프게 한탄한다.

“그때 전 세계가, 특히 북반부 국가들이 조직적인 대응 조치를 시행했다면, 지금쯤 우리는 기후위기를 완화하는 데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을 것이고, 지금처럼 무수한 재해에 시달리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1)

그때란 1986년과 1988년을 가리킨다. 오펜하이머는 1986년 미국 상원의 어느 위원회에서 생물다양성과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이 이미 위기에 처해 있음을 전했다. 2년 뒤 폭염이 미국 동부를 강타했을 때 그는 다시금 강조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현재 대비 60퍼센트 수준으로 감축하지 않으면 앞으로 더 극심한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같은 해 유엔은 전 세계 수천 명의 과학자들을 조직해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를 창립했다. 그러나 이 협의체의 협의는 단지 협의에 그쳤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1988년 이후에도 탄소배출량 그래프는 줄곧 가파르게 치솟기만 했으니까.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 추이 그래프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 추이 그래프, 출처 : 「Global Carbon Budget 2021」, Global Carbon Project

이는 미국과 세계 전반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오펜하이머의 한탄은 지금 여기의 것이라 해도 그리 이상할 게 없다. 지금 여기라고 하면,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어렵지 않게 떠올릴 것이다. 불과 며칠 전인 지난 17일, 충북 오송에서 14명이 집중호우 참사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경북에서도 19명의 사망자와 8명의 실종자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여름에 일어났던 일이 지역만 바뀌어 되풀이해 일어났다고 해도 과하지 않다. 지난해에도 포항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물에 잠겨 7명이 목숨을 잃었고, 서울 신림동에 사는 세 여성이 물이 밀려든 자신들의 반지하 방을 빠져나오지 못해 사망했다.

내가 뚜렷이 아는 연이은 이 두 번의 여름 폭우는, 떠내려가며 울부짖던 너무 많은 동물들의 목숨으로 기억되는 여름이기도 할 것이다. 애써 감정을 누르고 말해본다. 이들 희생은 모두 기후재난으로 인한 희생이다. 책임의 부재와 재난 대비 시스템의 구조적 결여와 기후위기에 대한 정책 입안자들의 감각의 해이로 인한 희생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같은 희생이 어김없이 되풀이될 뿐만 아니라 더 잦아지고 또 더 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지금 여기에서도 오펜하이머와 마찬가지로 되묻고 한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때, 20년 전, 아니 10년 전에라도 이 나라가 조직적인 대응 조치를 시행했더라면 기후재난과 그 재난으로 인한 희생을 막는 데 훨씬 나은 상황이지 않았을까.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지난 16일 119구조대원들이 실종자 수색을 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지난 16일 119구조대원들이 실종자 수색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성동훈 기자)

한국의 경우 2008년 7월, 일본에서 열린 <온실가스 감축 및 에너지 위기 공동대처를 위한 G8확대정상회의>에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바 있다. 이를 계기로 한국은 국가 차원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제시하겠다고 선언했다. 2005년을 기준으로 한국은 전 세계 국가 중 온실가스 배출량이 9위였고, 1990~2004년 사이 온실가스 배출 증가율은 OECD 국가 중 1위를 기록했다. 정부는 2009년에 기후변화 대책 워크숍을 열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세우기도 했지만, 그것은 기후변화의 근본적인 원인을 짚지도, 근본 대책을 구상하지도 않은 채 그럴 의지도 없이 세워진 목표였다. 단지 보기에 좋은 숫자를 기입하고 전시해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이 당시의 정부가 말하는 선언이자 쇄신이었다.(2)

그렇게 시간만 흘려보내다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제사회의 압력이 거세지자 이에 떠밀린 문재인 정부는 탄소중립위원회를 통해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내놓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시나리오의 세 개 안 중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안은 한 개에 지나지 않았다. 그 또한 기업과 자본에 대한 책임과 감축의무는 명시하지 않은 채였다. 대신 현실성 없는 미래기술 개발 계획과 재생에너지 시장 활성화 대책이 그 자리를 메웠다. 위원회를 꾸리는 과정과 위원 구성 또한 비민주적이었는데, 탄소중립위원회의 주체가 되어야 할 기후위기 당사자는 77명의 위원 중 단 한 명뿐이었다.(3)

시간은 다시 흘렀다. 체감상으로는 손가락 사이로 무수한 모래알이 속수무책으로 흘러내리듯 시간이 빠져나갔다고 해야겠다. 2023년 3월 21일, 정부는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이 기본계획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향후 20년간의 기장 핵심적인 국가 계획이었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산업부문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기존 14.5%에서 11.4%로 줄이고, 부족한 감축분은 원자력 발전, 국외감축, 이산화탄소 포집·저장·활용 기술(CCUS)로 보충한다는 내용을 이 기본계획의 뼈대로 삼았다. 이미 빠져나간 시간을 구둣발로 한 번 더 짓이기는 행보에 다름 아니었다.(4)


10일 기본계획 재수립 촉구 기자회견에서 구호 외치는 참가자들 (사진 환경운동연합)/뉴스펭귄
지난 4월 10일,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 재수립 촉구 기자회견에서 구호 외치는 참가자들 (환경운동연합 / 뉴스펭귄)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가 한 나라의 노력만으로 확실하게 억제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 앞에서 어떤 나라도 노력에 예외일 순 없다. 사실 이 노력은 국경이라는 인위적 경계를 뛰어넘는 영역이라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여기의 한국 정부가 기후위기 대응에 역행하는 행보는 그 보폭과 모양조차 문제적이므로 거듭 꼬집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나열한 온실가스 감축·탄소중립 등에 관한 형편없는 수준의 수치적 계획은 물론이거니와 이를 넘어서는 무참한 행보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열대우림보다도 몇십 배 뛰어난 탄소흡수원인 갯벌을 파괴하고 뭇 생명들의 삶을 황폐화시키면서까지 끝내 짓고야 말겠다는 새만금신공항, 가덕도신공항, 제주 제2공항 건설을 포함한 10개에 달하는 신공항 건설 계획, 고작 30년을 쓰겠다고 십수년 동안이나 동해 바다를 죽음의 바다로 만들어가며 공사를 강행하고 있는 삼척석탄화력발전소 건설,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좋은 수단인 대중교통을 활성화하기는커녕 교통요금을 대폭 인상함으로써 공공성 와해시키기, 끊이지 않는 도로확장 및 대규모 토건사업, 대형 쇼핑몰 건설사업, 도심 재개발 등이 그 행보에 해당한다.


지난 6월 2일, 새만금신공항 기본계획 취소소송 2차 재판 기자회견에서 결의를 다지는 시민들 (전북녹색연합)

이 밖에도 나열하자면 끝이 없지만 지면이 모자라 멈추는 것이다. 더 나열하다 터져나오는 탄식에 삼켜지고 말까 봐 멈추는 것이다. 다시 처음의 인용 문장을 불러오고 싶다. 그때 그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한탄하던 문장. 한국이 그때, 20년 전, 10년 전에 바로잡지 않았기에 그때의 미래가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 해야 할 것을 하지 않는다면, 지금 바로 바꾸지 않는다면, 머잖아 똑같은 말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그때 그랬더라면... 이제라도 우리, 미래를 훔쳐 쓰는 일을 그만 멈춰야 하지 않을까. 멈추라고 더 크게 말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 아는 것과 믿는 것을 목소리로 만들고, 그 목소리를 더 큰 덩어리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20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뜻 있는 이들은, 몇몇 단체와 곳곳의 활동가들은 목이 쉬도록 외쳤다는 것을 소문으로, 기록으로 만나 알고 있다. 2019년 9월의 대규모 기후정의행진, 2022년 924 기후정의행진, 2023년 414 기후정의파업에서도 수천, 수만의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 나와 ‘이대로 살 수 없다’고 외쳤다. 각자의 하루를 멈추고, 서로를 구하고 너머의 생명들을 구하기 위한 몸짓에 집중했다.


확대이미지

지난해 924 기후정의행진에서 3만 5천 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와 한목소리로 기후정의를 외치는 모습. (924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한국 정부와 대부분의 지자체는 쉼 없이 미래 훔치기를 자행하고 있다. 그럴수록 시민들의 몸짓과 목소리는 더욱 커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공동행동이냐 집단 자살이냐는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라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말처럼, 더 많은 이들의 공동행동만이 위정자와 부자, 기업가들의 관성을 흔들 수 있을 것이다.

손에 쥔 모래를 씨앗으로 바꾸는 마법이 더 많은 이들의 공동행동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지금의 개발과 채굴과 발전과 자본주의의 쳇바퀴를 당장 멈추라고 요구하고 명하는 공동행동이다. 공동행동에는 스스로에게 하는 요구도 포함된다. 생산 및 처리 과정이 말끔히 사라진, 표백된 소비와 폐기의 쳇바퀴라는 생활양식에서 벗어나자는 요구. 착취와 경쟁과 성과의 시간이 아닌 돌봄의 시간을 삶의 중심에 들여놓자는 요구. 이제, 할 수 있는 안팎의 모든 것들을 스스로와 서로에게 다 해보자고 말해야 한다. 모든 것을 구하기에는 너무 늦었더라도 나머지를 포기하기에는 언제나 너무 이르니까.(5) 적어도 우리가 우리의 이웃과 함께 여기에 남아 있고, 먼 곳의 존재들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이 남아 있는 동안에는 말이다.




(1) <기후 책> 49쪽 문단 직접 인용, 그레타 툰베리 외, 이순희 옮김, 기후변화행동연구소 감수, 김영사
(2) <기후위기에 맞선 새로운 사회운동> 참조, 구준모, 플랫폼C.
(3) 시민사회·노동계 “탄소중립위 해체하고 공대위 꾸리자”
(4) 탄소중립 기본계획 최종 확정...환경단체 “전면 재수립해야”
(5) <우리가 구할 수 있는 모든 것> 27쪽 문장 간접 인용, 아야나 엘리자베스 존슨, 캐서린 K. 윌킨슨 엮음, 김현우 외 옮김, 나름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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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목숨을 잃어도 경제논리의 벽은 높다고 느껴지네요. 설득력이 부족했을까, 힘이 부족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여의도와 용산까지 물에 잠겨야 기후위기 대응이 가능한걸까요?

기후위기의 재난은 눈앞에 와있는데, 왜 나라의 중요한 결정을 하는 사람들은 이걸 못본 체 할까 하는 답답함이 있습니다. 재난 앞에서도 평등하지 않기에 그런가봅니다. 이 위기가 피부로 와닿지 않는가봐요. 그러니 그전에 어떻게든 더 이익을 챙기려고 공항을 짓고 하는 거겠죠? 참 암담합니다. 많은 시민들이 이렇게 서로를 구하고, 행동하고 있는데, 압도하는 무력함에 지지 않도록 응원하고 싶습니다.

어느 순간 기후위기가 점점 더 큰 문제로 커지면서 나의 일이 아닌 것같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는데요, 계속해서 스스로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뉴스를 주의깊게 바라보며 문제를 명확히 봐야겠다 싶네요.
인류는 지구에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각자의 실천이 사회의 전환으로 이어진다고 믿는 우리의 공동행동을 지지합니다.
읽으면서 지금 바로 잡지 않는다면 우리도 언젠가 오펜하이머처럼 후회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한국을 비롯해 국제 사회가 기후 위기 대응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일상으로 들어온 기후위기"라는 도란님의 말씀이 인상적이네요. 정말 이제 우리는 지금 누구나의 삶의 위기가 되어버린 기후생태위기 앞에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요. 모두가 활동가가 되어야 하는 때가 아닌가 싶어요.

기후, 생태, 환경에 전혀 관심 없던 친구들도 연일 이어지는 뉴스로 인해 이제는 기후위기를 실감하는 것 같습니다. 모이는 공감이 더 큰 힘이 되리라는 게 이 막막한 기후위기 시대에서 저에게 그나마 남은 희망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 우리 일상으로 들어온 기후위기를 직시하고 해결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