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파업은 불법이 아닐까?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파업, 화물연대 파업, 노란봉투법 대립. 이 세 가지 이슈의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크게 두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최근 한국 사회의 극단적인 노사갈등이 드러난 이슈라는 점, 다른 하나는 노동자 측 쟁의행위의 불법성 여부가 핵심 쟁점 중 하나였다는 점입니다. 쟁의행위의 불법 여부는 위의 세 가지 이슈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의 노사갈등을 구성하는 거대한 축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노동자 측은 대부분의 파업이 불법이 되는 한국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고, 사용자 측은 불법 파업을 절대 용인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쟁의행위’와 ‘불법’의 관계에 관해 대화해나가는 것이 이미 엉킬 대로 엉켜버린 노사갈등 문제를 풀 열쇠일 것입니다.
여기서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쟁의행위가 왜 ‘합법’인 걸까요? 쟁의행위가 합법이라는 것은 당연한 상식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쟁의행위는 명백한 불법행위처럼 보입니다. 업무를 방해함으로써 상대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합법이 아닌 것이 곧 불법이므로, 특정 쟁의행위가 불법인지 아닌지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쟁의행위가 합법인 이유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쟁의행위가 어떤 원리에 따라 합법적인 행위로 인정받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쟁의행위의 기반이 되는 법리적 배경을 이해한다면 개별 쟁의행위의 불법성을 판단하는 것은 물론, 쟁의행위에 대한 현재의 법리적 해석이 옳은지에 대한 시민 차원의 사회적 대화 역시 가능해질 것입니다.
*쟁의행위란? 노동자 또는 사용자가 주장을 관철할 목적으로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노동자 측의 파업·태업·준법 투쟁 등과 사용자 측의 직장폐쇄·대체고용 등이 쟁의행위에 해당합니다. 본 글에서 사용하는 쟁의행위라는 단어는 노동자 측의 쟁의행위를 의미합니다.
범죄 성립의 요건들
가장 먼저 살펴볼 것은 ‘무엇이 범죄인지’입니다. 물론 무엇이 범죄인지는 상식으로서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형법은 범죄를 훨씬 구체적으로 규정하는데요. 다음의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할 때 범죄가 성립한다고 봅니다.
첫 번째는 구성요건해당성입니다. 구성요건은 법에 적혀 있는 범죄의 유형을 말합니다. 예컨대 살인죄 조항에서 “사람을 살해한 자는”이 살인죄의 구성요건입니다. 누군가의 행위가 바로 이 구성요건에 해당할 때 그 행위는 범죄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특정 행위가 부도덕하더라도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처벌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위법성입니다. 이는 전체 법질서의 입장에서 봤을 때 행위가 불법이라고 볼 수 있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더라도, 법질서와 충돌하지 않는다면 위법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구성요건해당성을 충족하더라도 위법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유들을 위법성 조각 사유라고 하며, 정당방위, 긴급피난, 자구행위, 정당행위 등이 이에 속합니다.
세 번째는 유책성입니다. 이는 행위자에게 법적 비난을 물을 수 있는지, 즉 불법을 행위자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는지를 묻는 요건입니다. 구성요건해당성과 위법성을 충족하더라도 강요받은 행위라거나 행위자의 나이가 어린 경우 등 행위자의 책임으로 돌리기 어렵다면 범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결국 쟁의행위도 위의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지 않기 때문에 범죄 행위로 보지 않는 것인데요. 과연 어떤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 것일까요?
쟁의행위는 정당행위
쟁의행위가 불법이 아닌 이유는 이것이 위법성 조각 사유 중 하나인 정당행위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정당행위는 형법 제20조에 다음과 같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법에 쓰여 있어서 했거나, 업무 때문에 했거나,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정당행위는 전체 법질서의 이념, 또는 그 배후에 있는 사회윤리에 근거하여 정당화됩니다.
정당행위 중에서도 노동자의 쟁의행위는 법령에 의한 행위에 속합니다. 법령에 의한 행위는 법이 규정한 권리 또는 의무를 행사하거나 법을 집행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전체 법체계는 당연히 통일성이 있어야 합니다. 형법이 아닌 다른 법에서 적법하다고 인정한 행위를 형법상 위법하다고 평가한다면 법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겠죠. 쟁의행위 역시 다른 법을 통해 적법하다고 규정되어 있으므로 형법상 허용됩니다. 이 같은 법령에 의한 행위로는 노동자의 쟁의행위 이외에 공무원의 직무집행 행위, 상관의 명령에 대한 복종행위, 일반인의 현행범체포 행위 등이 있습니다.
쟁의행위는 헌법에 의한 기본권인 노동삼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에 따라 정당화됩니다. 노조법 제4조는 “형법 제20조의 규정은 노동조합이 단체교섭∙쟁의행위 기타의 행위로서 제1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한 정당한 행위에 대하여 적용된다. 다만,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이나 파괴행위는 정당한 행위로 해석되어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여 쟁의행위가 정당행위에 속함을 명시하였습니다.
현재까지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보겠습니다. (1) 범죄가 성립하려면 구성요건해당성, 위법성, 유책성을 충족해야 한다. (2) 정당행위는 위법성이 없으므로 범죄가 아니다. (3) 쟁의행위는 정당행위다. (4) 쟁의행위는 범죄가 아니다!
정당한 쟁의행위의 요건들
쟁의행위는 정당행위로서 적법하다고 인정되지만, 현실에서 전개되는 모든 쟁의행위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위의 노조법 제4조를 자세히 보면 “제1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한 정당한 행위”에 대해서만 정당행위로 인정된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제1조는 노동삼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의 조항입니다. 결국 쟁의행위는 헌법상 노동삼권의 보장 취지와 쟁의행위의 목적 및 수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정당하다고 판단되어야만 적법한 것입니다.
쟁의행위가 형법상 정당행위가 되기 위한 요건들은 이미 다수의 대법원 판례를 통해 제시되어 있습니다. 크게 네 가지 요건이 있는데요. 첫째, 쟁의행위의 주체가 단체교섭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노동조합이어야만 합니다. 이는 일반 조합원이 아닌 노동조합 집행부가 쟁의행위를 주도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둘째, 쟁의행위의 목적이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한 노사 간의 교섭을 조정하는 데에 있어야 합니다. 근로조건과 상관이 없는 정치적∙이데올로기적 목적의 쟁의행위 등 애당초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사항을 달성하려는 쟁의행위는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기업이 경쟁력 강화를 위해 실시하는 구조조정, 사업조직 통폐합, 합병 등의 사안에 대해서는 사용자의 경영 관련 사안으로 보아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따라서 이를 목적으로 하는 쟁의행위도 정당행위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셋째,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는 구체적으로 쟁의행위를 하기 이전에 우선 사용자와 단체교섭을 시도해야 하고, 쟁의행위를 개시하기 전 조합원 찬반투표, 노동위원회의 조정절차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함을 의미합니다.
넷째, 쟁의행위의 수단과 방법이 사용자의 재산권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고, 폭력적이어서도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직장 또는 사업장 시설의 일부를 점거하는 것은 정당한 행위이지만, 전면적∙배타적으로 점거하여 조합원 이외의 출입을 막거나 사용자의 관리지배를 방해하는 것과 같은 행위는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한편 노동조합 차원의 쟁의행위와 조합원 개인 차원의 행위는 구별해야 합니다. 쟁의행위에 참가한 일부 소수의 노동자가 위법행위를 하였다고 해서 전체 쟁의행위가 위법하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쟁의행위가 불법이 아닌 이유를 법리적으로 설명해드렸습니다. 그러나 이는 절대 정답이 아닙니다. 법이란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시민들이 끊임없이 토론하며 함께 최선을 찾아가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쟁의행위의 법적 성격, 취지와 이념, 정당성 판단 기준 등은 오늘날의 노사갈등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더더욱 시민들이 활발히 이야기해야만 하는 주제입니다. 의문, 비판, 제안, 단상 무엇이든 좋습니다. 댓글을 통해 여러분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코멘트
8불법파업이라는 말도 안되는 말,, 쓰는 사람 있으면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말 정리가 잘 안됐는데 덕분에 정리가 잘 됐어요!
너무도 노골적으로 노동조합을 찍어누르는 현재의 모습을 생각하며 읽으니 여러 감정이 교차합니다.
한편, “법이란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시민들이 끊임없이 토론하며 함께 최선을 찾아가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쟁의행위의 법적 성격, 취지와 이념, 정당선 판단 기준 등은 오늘날의 노사 갈등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더더욱 시민들이 활발히 이야기해야만 하는 주제입니다.”라는 말씀을, 징징이 캠페이너님의 [Yes/No만 정답인가요?-섹스의 진부화된 의사소통을 페미니즘의 감수성으로 다시 구성하기]에서 논의된 ‘인간 감정의 정동’과 연결지어 법리 바깥에서 노동자와 노동권을 얘기할 필요도 더욱 강하게 와닿는 것 같습니다.
장애인분들의 지하철 시위라던가(파업과 시위는 같은 법리적 원리를 갖는가요?) 노동조합의 파업 등, 어떤 권력 앞에서 단체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들의 울분과 같은 감정이 시민사회에서 어떻게 유통되고 공유되는지 고민해 볼 필요를 느꼈습니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파업은 민주사회에서의 노동자의 합당한 권리입니다. 덕분에 법적 차원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파업이라고 하면 매번 뉴스에서 불법적인 행위를 저지른 것처럼 이야기하는데요, 당연한 권리이자 법으로 보장된 하나의 행동이라는 인식을 다른 사람들도 함께 가지면 좋겠네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법적으로 다시 정리해주시니까 더 명확해지는 기분이네요. 한켠으론 이렇게 다시 정리해야만 하는 사회라는 게 슬프기도 합니다. 언제 우리는 노동자의 쟁의행위의 정당성을 제대로 인정받는 사회에서 살게 될까요?
불법파업이라고 이야기할때 회사의 이익 저해, 가택침입 등으로 노동자들을 고발하는데 합법적 쟁의들을 고소고발로 위협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보기 쉽고 깔끔하게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 사회의 반노동 정서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게 되었습니다.
명쾌한 정리 감사합니다. 파업이란 말에 습관적으로 "불법"이란 수식어가 붙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쟁의행위가 법률로 규정한 기본 권리임을 우리가 유념하는 노력이 필요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