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바타> 보셨나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연출한 <아바타>는 2009년 개봉해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생소했던 3D 관람이 인기의 한 몫을 했었죠. 13년이 흘러 2022년엔 속편이 개봉되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학생이었던 2009년 아바타를 보면서 하반신이 마비된 주인공이 특정 장비에 들어가 자유롭게 움직이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영화의 스토리는 다 잊어버렸는데도 그 장면은 기억이 나네요)
공상과학 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 현실이 된다면 여러분은 어떤 기분이 드실 것 같나요? 오늘은 영화 <아바타> 속 장면을 현실로 만들고 있는 기술 BCI(Brain-Computer Interface)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머지않아 현실이 될 수 있는 영화 <아바타>
BCI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영화 <아바타>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해볼까 합니다. <아바타>를 제작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2009년 시리즈를 처음 선보인 이후 다양한 속편 계획을 세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아바타>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은 2022년에서야 개봉했죠. 그 이유는 그동안 움직임을 추적해 기록하는 ‘모션 캡쳐’ 기술이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구상을 구현하지 못했기 때문인데요. 이후 기술의 발전으로 수중 모션 캡쳐 등 다양한 연출이 가능해지면서 영화의 속편이 감독이 만족할 수 있는 완성도를 가지고 제작될 수 있었습니다.
<아바타>의 속편 제작이 미뤄지는 사이 발전된 또 다른 기술이 있습니다. 바로 BCI입니다. BCI 기술의 발전을 보여줄 수 있는 사례가 얼마 전 스위스에서 등장했는데요. 스위스 로잔 공과대학 연구진은 5월 24일 과학저널 네이처지에 ‘디지털 브릿지’를 개발했다고 발표했습니다.(로잔 공과대학 연구진은 뇌-척추 인터페이스라는 의미의 BSI(Brain-Spine Interface)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AI타임스 등이 보도한 ‘디지털 브릿지’ 개발 배경을 살펴보면 실험 연구의 과정과 결과가 흥미로운데요. 로잔 공과대학 실험에 참여한 세르트 얀 오스캄은 영화 <아바타>의 주인공처럼 하반신이 마비됐습니다. 그는 이번 실험을 통해 “12년 만에 다시 일어서고 걷고 계단도 오르고, 복잡한 지형도 통과할 수 있게 됐다”고 합니다.(가디언지의 유튜브 채널에는 그가 실제로 걷고, 계단을 오르는 장면이 올라와 있습니다) 영화 <아바타>에서 주인공이 장비를 통해 다른 행성의 종족과 연결되어 하반신을 움직일 수 있게 됐다면, 현실에선 마비된 하반신을 바로 움직일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는 셈이죠. 그렇다면 어떻게 영화에서 등장한 장면이 현실에서 재현될 수 있었던 걸까요?
뇌와 컴퓨터의 연결은 우리 삶을 바꾸게 될까요?
마비된 하반신을 움직이게 한 과정은 이렇습니다. 먼저 뇌에 BCI를 이식하고, 척수에 센서를 이식합니다. 뇌에 이식한 BCI는 다리 움직임과 관련된 활동을 기록하고 신호를 환자의 보행기 혹은 휴대용 컴퓨터에 전달합니다. 그럼 휴대용 컴퓨터가 신호를 분석하고 척수에 심은 센서에 전달해 다리를 움직이게 합니다. 이렇게 끊어진 신경의 역할을 BCI 장치들이 대체하는 것이죠.
BCI는 신경 대체 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분야는 뇌파를 분석해 이미지를 재현하는 기술인데요. 가령 특정 이미지를 볼 때 발생하는 뇌파를 분석해 어떤 이미지를 보고 있는지 역추적하는 기술입니다. 일부 연구에서는 실제 이미지와 매우 유사한 수준의 재현이 이뤄졌을 정도로 구현되고 있습니다. 이 기술은 스위스, 미국, 일본 등 다양한 곳에서 유사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요. 시각 장애인에게 시각적 감각을 제공하거나 뇌 손상 등의 상황에서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활용될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BCI는 다양한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 중인데요. 뇌 신호를 이용해 생각만으로 로봇이 물건을 잡거나 들 수 있는 기술을 비롯해 전자기기, 가전제품 등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세한 기술 연구 사례들은 AI타임스 기사를 참고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BCI는 우리 삶을 바꾸게 될까요? BCI가 만들 변화는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흐르게 될까요?
BCI 기술 이대로 괜찮을까요?
모든 기술이 그러하듯이 BCI도 장점만 가진 것은 아닙니다. 가장 먼저 지적되는 문제는 개발 과정의 비윤리성인데요. 전기자동차 제조회사 테슬라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는 2016년 뇌신경 과학 벤처기업 뉴럴링크를 설립했습니다. 머스크의 뉴럴링크는 기술 개발 과정에서 동물 학대 의혹이 지속해서 제기됐는데요. 지난해 말에는 동물권 보호단체 ‘책임있는 의학을 위한 의사위원회’가 미국 연방정부에 뉴럴링크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수백 마리의 원숭이와 양, 돼지 등이 뉴럴링크의 실험 과정에서 학대당했다는 문제 제기였습니다.(의혹을 단독 보도한 로이터 통신, 로이터 통신 보도를 전달한 경향신문 등의 보도에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동물 학대 실험뿐만 아니라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발생한 문제도 있습니다. BCI는 뇌 등 신체에 칩을 이식하는 침습형과 이식 없이 외부 장비 등을 이용하는 비침습형으로 나뉘는데요. 침습형의 경우 인체에 장비를 이식하기 때문에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테크레시피에 따르면 앞서 소개한 하바신이 마비된 세르트 얀 오스캄도 두개골에 이식한 장비 중 하나가 감염증을 일으켜 제거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큰 문제의식은 BCI가 비윤리적으로 사용될 우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김성필 울산과학기술원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 교수는 2017년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BCI가 악용될 경우 사회적으로 심각한 윤리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요. 김 교수의 우려는 아래와 같았습니다.
아직 먼 얘기같지만 만약 뇌파를 측정하는 사람이 다른 의도를 품고 피실험자의 통장계좌나 현관문의 비밀번호 등을 알아볼 수 있겠죠. 본인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은 상태에서 원치 않는 정보를 집어넣는 범죄도 일으킬 수 있어요. 이를테면 불법적인 사상과 이념을 주입해 세뇌하는 거죠. 또 만일 뇌 자극을 통해 더 우수한 뇌를 만들 수 있게 됐다고 가정해 보죠. 그런데 수천수억원이 든다. 그러면 부유층만 누리는 특혜산업으로 변질될 우려도 있죠.
김 교수는 인터뷰 마지막에 BCI 기술이 끼칠 영향을 파악하고, 윤리적인 연구가 이뤄질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요. 특히 “인간에게 BCI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등 사회적인 공감대를 이룰 수 있는 법·제도도 구축해야 합니다”라며 제도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김 교수의 인터뷰로부터 6년이 흘러 BCI 기술은 이제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BCI 기술과 관련된 충분한 논의를 하지 못했습니다. 김 교수의 우려를 한국 사회는 잘 해결할 수 있을까요?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기술은 이대로 괜찮을까요? 캠페이너 여러분은 BCI 기술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코멘트
8영화를 보면서도 이런 이야기는 판타지 세상 속에서만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니 깜짝 놀랐습니다. 해당 기술이 윤리적으로 방향을 잘 잡고 나아가 꼭 필요한 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좋겠네요.
BCI 기술은 SF 장르에서 매우 활발하게 다뤄져온 주제이고, 테슬라의 뉴럴 링크를 필두로 본격적으로 연구가 시작된 지도 꽤 되었죠. 그럼에도 글에서 지적해주셨듯이 이 기술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는 지나치게 부족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최근 과학기술학계를 중심으로 '신체성'에 관한 담론이 떠오르고 있긴 하지만, BCI 라는 구체적 사안에 초점을 맞춰 더 세밀한 논의를 진행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흥미로운 문제제기 감사합니다.
굉장히 흥미로운 주제네요. 챗GPT만으로도 혼란스러운데, BCI라니 !
BCI의 대표적인 사례로 하반신 마비 장애인의 사례를 들어주신 점을 현재 장애학과 장애인들의 투쟁과 연결지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분명, 이른바 "다시 걸을 수만 있다면-"으로 대표되는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다시 보행할 수 있는 '그때'는 많은 분들의 꿈일 것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BCI같은 기술을(내가 잘 모르고, 또 위험할 수 있는) 선택'해야만'하는 상황에 놓이는 위험은 오직 "다시 걸을 수만 있다면"의 꿈을 가진 하반신 마비 장애인분들에게만 해당되는 위험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분들이 그런 꿈을 단순히 꾸는 것에서 만족하며 보다 잘 갖추어진 장애인 돌봄 제도와 정책을 누리며 자신의 장애와 더불어 사는 일상생활에 머무를지, 아니면 기술의 속도를 돌봄 제도나 정책의 발전이 따라가지 못해 BCI같은 '불안한' 기술을 선택하도록 내몰릴지는 앞으로의 제도와 정책의 발전에 달려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항경이 캠페이너님(링크)께서 ‘역량’ 개념을 소개해주셨는데, 이 역량 개념을 BCI기술의 대척점에 두어야 할까요 ? 그런 고민도 하게 됩니다.
감사히 읽었습니다 !
BCI 기술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는데, 덕분에 배웠습니다. 기술 혁신에 따라 관련 윤리를 정립하고 제도적 대비를 해야 할 일들이 가득하네요. 우리 사회는 잘 따라가고 있는 걸까요?
BCI 기술이라는 단어를 사실 처음 들어보았는데요, 아바타가 현실이 된다고 생각하니 살짝 무섭기도 하고 그렇네요...
분명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것이고, 저 역시 기술 진보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사람이지만, 가끔은 자동차 발명 이전 단계에서 기술의 진보가 멈췄다면 어땠을까 같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써주신 글을 보면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기술들이 챗지피티 이후로 홍수처럼 쏟아지네요. 기술에 대한 논의가 분명히 필요한데 시간이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 거 같아요. 기본적으로 뇌연결과 같은 기술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많이 갖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한다고 해서 진행되지 않는것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이러한 영역의 발달이 누군가에는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문제될 것이 걱정이 된다면 조 금더 투명하고 윤리적으로 진행 될 수 있도록 공개하고 관련 정책이나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해가면서 진행되는 것을 어떨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