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시민36입니다. 오늘은 보이지 않는 노동, ‘미세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어디 가서 ‘아는 척’하기 좋은 (제 기준으로) 꽤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랍니다. (영어, 전문용어가 다소 등장하지만 내용을 이해하기엔 어렵지 않습니다!)
현대 노동 방식은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플랫폼 노동, 디자인 노동, 연구 노동, 돌봄 노동 등. 과거에는 규정되지 않은 다양한 형태의 노동들이 우리의 일상의 기반이 됩니다. 변화하는 노동 환경에 가장 큰 영향력은 ‘기계화’와 ‘자동화’입니다. 실제로 카페와 음식점에서 키오스크가 주문을 대신 받고 무인로봇이 서빙을 하는 풍경을 심심찮게 마주합니다. 또한 AI와 같은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빅데이터를 처리하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거대 플랫폼 기업은 성장을 멈출 줄 모릅니다.
기계화와 온라인 플랫폼은 우리 일상에 많은 편의를 가져다줍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모든 편의는 누군가의 노동에 기반한 것입니다. 인공지능이 가져다주는 편의 또한 마찬가지지요.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노동을 흔히 플랫폼 노동이라고 부릅니다. 플랫폼 노동에는 두 가지 노동으로 이루어집니다. 데이터를 처리하는 크라우드 워크와 플랫폼 서비스 노동입니다. 플랫폼 서비스 노동 중 대표적인 노동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배달의민족이 있습니다. 플랫폼을 통해 노동 현장에 투입되고, 대변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식이지요. 배달의민족은 가게와 라이더를 연결해 주는 플랫폼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반면, 크라우드워크는 조금 생소합니다. 말 그대로 ‘많은 인원이 매달려서 하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공장에서 대량생산을 위해 공장 라인별로 노동자들이 달려들어 누군가는 눈을 꿰매고 누군가는 솜을 끼우는 일을 하지요. 이제는 온라인 기반에서 이러한 노동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수행해야 하는 노동을 쪼개고 쪼개 ‘미세 노동’이라는 용어가 나옵니다.
미세 노동은 대표적으로 아마존에서 제공하는 ‘미케니컬 터크 (Mechanical Turk - MKturk)’ 서비스가 있습니다. 미케니컬 터크란, 1769년에 만든 체스 대전 로봇의 이름입니다. 1700년대에 체스 로봇이 인간을 상대하면서 무패의 기록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미케니컬 터크 로봇 속에는 ‘체스 명인’이 숨어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기계와 대적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기계 속에 숨어있는 사람과 체스 게임을 둔 것이었습니다.
미케니컬 터크 기계 모습
아마존은 이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빅데이터를 처리하는 아웃소싱 플랫폼을 창안합니다. 자동화와 AI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수행하는 노동의 결과물인 것입니다.
아마존의 미케니컬 터크 페이지에서 기업이 업무를 고시하면 불특정 다수의 노동자가 참여합니다. 아무런 국적도 배경도 없는 다수의 노동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작업을 수행합니다. 주로 대량의 데이터를 정교한 노동으로 처리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IT업체가 인공지능 학습을 위한 테스크를 아웃소싱합니다. 인공지능이 고양이를 알아보도록 훈련시키기 위해 수백만 장의 고양이 사진을 컴퓨터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이때 수백만 장의 사진을 보며 어느 사진에 고양이가 있고 어느 사진에 고양이가 없는지 라벨을 붙이는 작업이 미케니컬 터크에서 아웃소싱하는 테스크입니다.
아래 사진은 인간 언어를 이해,학습하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만드는 연구소의 소개 페이지와 해당 기업에서 아마존 미케니컬 터크에 고시한 업무 내용입니다. 컴퓨터가 인간언어를 학습할 수 있도록 노동자가 무수한 인간언어를 정교하게 다듬는 작업을 하는 일입니다.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듯, 보수는 건별 25센트, 한화로 약 250원 정도입니다. 약 400개의 문장을 완성하면 한국 돈으로 1만 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왼쪽은 자동화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의 홈페이지, 오른쪽은 아마존 메케니컬 터크에 고시된 업무 내용)
기업 입장에서는 노동자와 계약 관계로 맺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험, 연금과 같은 지출비용을 처리할 의무가 없습니다. 이에 따라 노동자는 노동을 수행하더라도 임금 외에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미세 노동에서 주어지는 업무는 평균적으로 시간당 2,000원도 안 될 정도로 저조합니다. 노동의 질은 낮아지지만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플랫폼으로 맺어진 노동관계는 계약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극단적인 저임금, 낮은 질의 노동을 수행하지만 시간당 2,000원의 임금을 얻기도 힘듭니다. 분명히 노동을 수행하지만, 이들은 노동자 지위를 획득할 수 없습니다.
(아마존 미케니컬 터크 페이지에 고시된 업무 목록들)
미세 노동과 같은 노동의 세분화는 노동의 질 하락을 야기합니다. 단순노동을 반복하고 제대로 된 노동환경을 보장받지 못하는데 이러한 노동을 생계로 삼는 이들은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현상입니다. 플랫폼 자본주의가 확대되면서 플랫폼 시장의 규모 또한 확대되는데 우리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는 노동환경을 뒷받침할 수 있을 복지가 실현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자동화 시스템과 기술을 발전은 사실 저임금 노동자들의 노동력의 착취로 만들어진 결과입니다. 한 번 실현된 기술은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더 빠르고 더 자동화된 시스템을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노동권을 보장해줄 제도도 준비가 되어있는지는 고민해 봐야 할 일입니다.
코멘트
8글을 통해 미세노동에 대해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시대가 바뀌고 있는 만큼 정책도 빠르게 바뀌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저도 지속적인 관심을 두고 바라보겠습니다.
중요한 정보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크라우드워크 개념과 문제의식에 대해 처음 접하게 되었어요. 저도 한 두 번 그저 재미로만 생각해서 해본 적이 있었는데, 얕은 접근이었네요. 다양한 노동의 형태와 이에 수반되는 문제들이 사회에서 더 많이 알려지고 논의되면 좋겠습니다!
크라우드워크라고 하는군요. 제가 몇번 해봤습니다. 처음엔 재미로, 나이 더 든 후 잡으로서의 가능성도 볼겸 며칠간 미친듯이 했죠. 사진에서 자동차 찾기, 깃발 찾기, 기둥 찾기, 책표지에서 제목 체크하기, 관광지 건물 하나에 사진 100장씩 촬영해서 올리기... 정말 인형눈알, 봉투붙이기 수준의 단순반복 작업이었지요. 조금이라도 단가/레벨을 높이려고 새로운 미세노동거리를 찾아낸 게 설계도면에서 창문찾기, 문찾기 등 70 몇 건을 했으나 그나마 검수할 인원이 없었는지 다음단계 넘겨주질 않더군요. 검수인원은 대면근무자로 뽑던데 마땅한 인력이 와주질 않았나보더라고요. 눈꼽만치의 현금이 입금되었으나 그것 인출하려면 일정 금액이 넘어야하는데 그걸 못 채우고 그만두었네요. 그런 일을 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너무 아까웠습니다. 우리 청년들이 그런 일에 시간과 열정과 체력을 바치고도 자괴감에 빠지지 않도록 새로운 법제 등 대책이 세워져야할 것 같습니다.
인형 눈알 붙이기 같은 작업이 조금 현대화 된 것으로 보이는데요. 여기에 '혁신'이라는 키워드도 같이 붙어서 노동 관련 논의가 속도를 얻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양질의 일자리는 누구나 바라는 일일텐데요. 이런 인간의 본성도 소거하여 목적 달성만 이루려는 형태의 노동이 더 줄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세노동에 관해 처음 알았습니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새로운 사회가 나타나면서 노동의 형태가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에 플랫폼 노동자라는 표현과 이에 맞는 대안과 대책도 함께 고려되어야 하구요. 개인적으로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을 읽으면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지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요, 미세 노동과 연관지어서 다른 분들도 읽어보면 어떨까 싶어요. 추천합니다?
미세노동이라는 말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고, 법과 제도에서 말하는 노동의 기준에 대해서도 우리 사회 전체가 재고해봐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미세노동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플랫폼 노동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더 복잡한 문제이네요. 변화되는 사회적 조건들 속에서 노동 또한 변화하고 있는데,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한 제도적인 대응은 한없이 미진하고 느린 것 같습니다. 변화되는 조건에 적합한 노동의 권리를 만들어가기 위해 더 많은 논의를 해나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