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대한민국 재난 타임라인 ~우리는 얼마나 바뀌었을까~

2022.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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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철학 연구자. 일어/중국어 교육 및 번역. => 돈 되는 일은 다 함

이 기획은 한국전쟁 발발 이후부터 한국의 재난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한 것입니다. 사망자가 10명 이상 발생한 사건사고를 중심으로 서술하되, 사망자가 10명 미만이어도 기록할 만한 것, 범죄에 의한 것이지만 재난으로 기록될 만한 것을 포함하여 정리하였습니다.


화재/폭발

1953년 11월 25일 부산역전 대화재 사상 29명. 부산 중구 피난민 판자촌에서 시작된 불이 부산역, 부산일보, KBS부산방송총국 등을 전소시킨 사건.

1955년 3월 2일 부산역 열차 화재 사망 42명, 부상 14명.

1960년 3월 2일 부산 국제고무공장 화재 사망 52명, 부상 39명. 부산 동구 범일동 국제고무공업주식회사에서 직공 이필선이 성냥으로 장난을 치다 벌어진 사고. 통로가 좁아 대피가 어려웠던 것이 인명피해를 키웠다.

1971년 12월 25일 대연각호텔 화재 사망 191명. 부상 63명. 서울 중구 명동 소재 대연각호텔에서 일어난 화재. 화재 원인은 1층 커피숍에 있는 LP 가스 폭발. 9.11 테러 이전까지는 세계 최대의 건물 화재 참사로 꼽히는 화재였다. 다음해에 일어난 서울시민회관 화재, 대왕코너 화재와 함께 서울시 3대 화재라 불리기도 하였다.

1972년 12월 2일 서울시민회관 화재 사망 51명, 부상 76명.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있었던 서울시민회관에서 일어난 화재. 원인은 전기합선. 화재 당일 문화방송 개국 11주년 10대 가수 청백전 공연이 있었으므로 공연 관람객들이 피해를 입었다. 건물은 전소되었고, 6년 후 세종문화회관이 지어졌다.

1974년 10월 17일 뉴남산관광호텔 화재 사망 19명, 부상 45명. 호텔의 전기 취급 부주의로 인해 일어난 사고.

1974년 11월 3일 대왕코너 화재사고 사망 88명, 부상 35명.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에 있던 복합상가 대왕 코너에서 발생한 화재. 희생자 대다수는 6층 나이트클럽에 있던 젊은 손님들로 종업원들이 돈을 내지 않으면 내보낼 수 없다며 밖에서 문을 잠그는 바람에 인명 피해가 증가했다. 지금은 롯데백화점이 들어서 있다.

1977년 9월 14일 남대문 시장 화재 사망 1명, 부상 3명. 원인불명의 화재. 인명 피해는 적었으나 이 사건을 계기로 소방 시설 확충 되었고 남대문시장 현대화가 이루어졌다. 

1977년 11월 11일 이리역 폭발 사망 59명, 부상 1,343명. 전북 이리(현 익산)에서 발생한 열차 폭발사고. 광주로 가던 한국화약(현 한화) 소속 화물열차가 이리역을 정차 없이 통과하려고 하자 이리역 공무원들이 열차를 막고 급행료라는 돈을 요구. 돈이 없었던 한국화약 직원 신무일이 결국 정차하여 술을 마시고 열차 안에서 추위를 이기기 위해 촛불을 켜다가 벌어진 사고. 신무일은 징역 10년, 신무일을 막은 이리역 역무원 2명은 징역 10개월의 처벌을 받았다.

1977년 11월 16일 장성탄광 화재 사망 12명, 부상 220명. 강원도 삼척 장성탄광에서 변압기 누전으로 일어난 사고.

1979년 4월 14일 함백탄광 폭발 사망 26명, 부상 38명. 강원도 정선 함백탄광에서 다이너마이트가 폭발.

1979년 10월 27일 은성탄광 화재 사망 44명. 경북 문경 은성 탄광에서 일어난 화재. 10.26 사건 다음날 발생하여 크게 보도되지 않았다.

1984년 1월 14일 대아호텔 화재 사망 38명, 부상 38명. 원인은 종업원의 석유 취급 부주의.

1991년 10월 17일 거성관 나이트클럽 방화 사망 16명, 부상 13명. 대구 서구 비산동의 나이트클럽 거성관의 발생한 화재. 범인 김정수는 옷차림이 누추하다는 이유로 입장을 거부당하자 이에 원한을 품고 방화.

1992년 10월 4일 원주 왕국회관 방화 사망 15명, 부상 36명. 강원도 원주에 위치한 여호와의증인 왕국 회관에서 발생한 방화. 범인 원언식이 부인의 종교활동에 불만을 품고 방화.

1993년 4월 19일 논산 정신병원 화재 사망 34명, 부상 2명. 병동 관리인이 여성 환자에게 담뱃불을 붙여 주었다가 일어난 화재로 추정. 이 사건 이후 수용할 수 있는 인원보다 많은 인원을 수용했다는 점이 드러나 원장이 구속되었다. 

1993년 6월 10일 연천 예비군 훈련장 폭발 사망 20명. 경기도 연천 예비군훈련 포사격 중 발생한 폭발. 안전교육이 없었고 군사 주특기와 전혀 상관없는 포사격을 실시한 것도 문제로 제기되었다.

1994년 12월 7일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 사망 12명, 부상 101명. 서울 마포구 아현1동 한국가스공사 아현벨스스테이션에서 가스 누출로 인해 일어난 사고.

1995년 4월 28일 대구 상인동 가스 폭발 사망 101명, 부상 202명, 대구 달서구 상인1동 상인역 공사 중 일어난 가스 폭발. 대구백화점 공사업체인 (주)표준개발에서 가스공사에 문의 없이 굴착을 하다가 도시가스관에 구멍을 내어 생긴 사고. 영남중학교 학생들의 피해가 컸다.

1995년 8월 21일 경기여자기술학원 화재 사망 37명, 부상 16명.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경기여자기술학원에서 발생한 화재. 원인은 방화. 경기여자기술학원은 성매매 여성, 가출소녀, 고아 등을 수용하는 시설로 수용자들의 대한 인권유린이 심각하였고 쇠창살로 기숙사를 잠근 것이 인명 피해를 늘린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화재가 발생했던 자리에는 현재 경기도여성능력개발센터가 들어서있다. 

1998년 10월 29일 부산 범창 콜드프라자 화재 사망 27명, 부상 16명. 부산 서구 암남동 냉동창고 내벽에서 발생한 화재. 화재의 원인은 전기합선으로 인한 불꽃이 유증기와 만나 일어난 것으로 추정. 유독가스에 질식으로 숨진 사람이 특히 많았다.

1999년 6월 30일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사망 23명, 부상 6명. 직접적인 원인은 누전. 52개의 컨테이너를 얹어 만든 임시 건물에 불에 잘 타는 소재로 가공을 하였고 화재경보기도 불량품이었다. 또 화재가 발생했을 때 유치원 어린이들을 남겨두고 교사들만 먼저 도망간 것도 문제로 지적되었다. 참사 현장 바로 옆에는 당시 씨랜드 소유주이자 시설 운영자가 야영장을 조성해 영업하고 있다. 

1999년 10월 30일 인현동 화재 사망 57명, 부상 79명. 인천 중구 인현동 상가건물 지하 1층 노래방에서 화재가 시작. 문제업소로 경찰에 적발되어 업소 폐쇄명령을 받은 호프집에서 미성년자들에게 술을 파는 등 불법 영향을 계속하였고, 화재 예방에도 소홀하였으며 손님을 많이 받기 위해 통로를 막고 장사한 것도 문제로 지적되었다. 또 학생들이 화재로 대피하려하자 돈을 내라고 소리치며 학생들을 막고 자기만 비상구를 통해 탈출한 호프집 매니저도 큰 비난을 받았다. 

2001년 3월 4일 홍제동 주택 화재 사망 6명, 부상 3명. 서울 서대문구 홍제 1동 다세대주택에서 방화로 인해 발생한 화재. 집주인의 아들이 방화를 저지르고 도망갔는데 집주인이 자기 아들이 집 안에 있다고 구조를 요청하면서 소방관들이 순직한 사고. 또 도로의 불법주차로 소방 차량이 진입하기 힘들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었다. 이 이후 의무소방 데가 설치되었으며 소방관들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늘어났다. 

2001년 5월 16일 예지학원 화재 사망 10명, 부상 22명. 경기도 광주 송정동 5층짜리 예지 학원 건물에서 수업 도중 담뱃불로 인해 발생한 사고. 

2003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 화재 사망 192명, 부상 151명, 실종 21명.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에서 김대한의 방화로 일어난 사고. 1995년 아제르바이잔 바쿠 지하철 화재, 대구 상인동 가스폭발과 함께 세계 3대 최악의 지하철 사고로 꼽힌다. 이 사건을 계기로 도시철도 입선용 전기동차의 안전체계 의무화가 실시되었고 철도차량 방염기준이 상향되었다. 철도안전법이 제정된 것도 이 때의 일이다. 

2003년 12월 17일 청도 대흥농산 화재 사망 12명, 부상 5명. 경북 청도 흑석리에 있던 팽이버섯 농장에서 일어난 화재. 원인은 용접 작업 중 불씨.

2005년 1월 8일 칠곡 시온 글러브 화재 사망 4명, 부상 7명. 경북 칠곡 학산리에 있던 면장갑 제조공장에서 누전으로 인해 발생한 화재. 이 사건을 계기로 장애인 노동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고, 장애인단체 상해보험이 처음으로 생겼다. 

2007년 2월 11일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 사망 10명, 부상 18명. 전남 여수 화장동 여수 출입국 관리소 외국인 보호시설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원인은 수용자 김모 씨가 탈출을 위해 일으킨 방화. 근무일지와 다르게 보호소 직원 없이 용역경비원만 근무하고 있었고, 수용자들의 도주를 우려하면서 시설 개방을 지체한 것이 인명사고를 늘린 이유였다. 

2008년 1월 7일 이천냉동창고화재 사망 40명, 부상 9명.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 냉동 물류창고에서 발생한 화재. 직접적인 원인은 용접 불꽃. 관청의 허술한 행정과 안전 교육 미실시, 공사기간을 맞추기 위한 조급한 공사강행도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같은 해 이천에서는 물류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해 8명이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

2008년 2월 10일 숭례문 방화 방화범은 채종기. 화재진압이 늦었다는 논란, 문화재를 개방 했음에도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있었다. 

2009년 1월 20일 용산 4구역 철거현장 화재/용산참사 사망 6명, 부상 23명.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 2가 철거현장에서 벌어진 화재. 사고당시의 과잉진압 여부, 안전대책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당시 이명박 정부에서 같은 시기 발생했던 강호순의 연쇄살인을 이용해 이 사건을 덮으라고 지시한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2009년 11월 14일 부산 실내사격장 화재 사망 11명, 부상 6명. 부산 중구 신창동 국제시장에 있는 실탄사격장에서 일어난 원인 불명의 화재. 

2010년 11월 12일 포항 요양원 화재 사망 10명, 부상 17명. 경북 포항 인덕동에 위치한 여성전용요양원에서 일어난 화재. 원인은 전기합선.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많아 인명 피해가 컸다. 노인요양시설의 화재 안전 대비와 시설 점검이 대규모로 이루어진 사건이 되었다. 

2014년 5월 28일 장성 요양병원 화재 사망 21명, 부상 8명. 전남 장성군 삼계면 요양병원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 환자들을 결박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요양병원의 노인학대에 대한 이야기가 제기되었고, 지방 소방 인력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었다. 

2017년 12월 21일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충북 제천 하소동에 있는 스포츠센터 사우나에서 일어난 화재. 1층 주차장의 배관에 열선을 설치하다가 불이 붙은 것으로 판명. 소방관들의 초기 대응 문제가 제기되었고, 건물 구조의 문제, 불법 증축, 소방력 부족 등 다양한 문제가 제기되면서 언론에서 대거 보도하였다.

2018년 1월 26일 밀양 세종병원 화재 사망 47명, 부상 112명. 원인은 전기합선으로 추정. 화재 직후 정전이 되었는데 비상용 발전기가 가동되지 않은 점,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점 등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2019년 4월 17일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사망 5명, 부상 17명. 조현병을 앓고 있던 안인득이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고 계단으로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두른 사건. 이 일을 계기로 조현병 환자에 대한 관심과 정신질환자의 강제 입원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2020년 4월 29일 이천물류센터 공사장 화재 사망 38명, 부상 10명. 경기도 이천 소고리 한익스프레스 냉동 냉장 물류창고 공사장에서 발생한 화재.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공사업체 측이 제출한 계획서를 심사 확인해 화재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 수차례의 개선을 요구하고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물류창고 측에서 공사를 강행한 것이 드러났다.


교통사고/도로 사고

1954년 1월 31일 오산 건널목 군용트럭 충돌 사망 56명, 부상 100여 명. 육군보병학교 이명구 이등중사가 군용 트럭을 몰고 무리하게 건널목을 통과하려고 하다가 열차와 충돌한 사고. 언론에서 끊임없이 안전사고 위험을 제기한 끝에 1982년 이 지역에 육교가 설치되었다.

1967년 10월 16일 금릉버스추락 사망 42명, 부상 12명. 음주운전과 브레이크 불량이 원인이었다.

1970년 8월 21일 추풍령 고속버스 추락 사망 25명, 부상 22명. 경북 금릉군 추풍령휴게소 부근에서 고속버스 운전기사의 운전 부주의로 버스가 벼랑에서 추락. 고속도로 건설 이후 첫 교통사고 참사, 첫 버스 사고. 운전자가 헤드라이트를 끄고 실내등만 켜고 운전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됨.

1970년 10월 14일 모산 수학여행 참사 사망 46명, 중상 26명. 서울 경서중학교 수학여행 버스가 통일호와 충돌한 사고. 철도건널목의 안전시설 부재, 안전을 무시한 교육자들이 원인으로 지목.

1971년 5월 10일 청평호 버스 추락 사망 80명. 경기 가평 청평저수지에 시외버스가 추락. 정원 53명의 버스에 94명이 타고 있었던 것이 인명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

1973년 8월 18일 광진교 버스 추락 사망 17명, 부상 28명. 운전기사의 과속, 정비 불량, 교통 여건 악화가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이 사건의 여파로 교통량 분산을 위해 천호대교가 건설되었다.

1976년 2월 28일 춘천호 버스 추락 사망 32명. 춘천에서 화천으로 가던 강원운수 소속 직행버스가 춘천호에 추락, 탑승자 전원 사망.

1976년 5월 18일 양산군 고속버스 추락 사망 23명, 부상 25명. 경남 양산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에서 고속버스가 추월운전을 시도하다 낭떠러지에 추락.

1981년 11월 22일 부산 금정산성 버스 추락 33명 사망. 부산 동래구 금정산성 고갯길 급경사에서 승객 70명을 태운 시내버스가 브레이크 파열로 추락.

1984년 12월 27일 나주 완행버스 추돌 사망 15명, 부상 15명. 전남 자주 학산리에서 완행버스가 정지 신호를 무시하고 운행하다가 통일호 열차와 충돌. 운전자의 운전 미숙과 주의 태만이 원인.

1988년 4월 1일 천호대교 버스 추락 사망 19명, 부상 35명. 서울 강동구 천호대교에서 승객 54명을 태운 572번 시내버스가 한강으로 추락. 경비 절감을 이유로 낡은 재생 타이어를 쓴 버스 회사, 배차시간을 맞추기 위한 난폭운전, 천호대교의 결함이 겹쳐진 사고. 이 사건 이후 버스 앞바퀴에 재생 타이어 사용이 금지되었다.

1989년 9월 17일 완주 버스 추락 사망 26명, 부상 60명. 전북 완주 모래재 고개 국도에서 전북여객 소속 시외버스가 브레이크 파열로 내리막길에서 추락. 버스의 정원 초과 운행, 점검 미실시, 운전기사의 과로가 겹쳐서 탄생한 사고.

1989년 10월 27일 논산 버스 추돌 사망 16명, 부상 11명. 충남 논산 연무읍에서 한진고속버스가 무리하게 추월을 시도하며 난폭운전을 하다 차선 도색 작업 트럭을 들이받아 일어난 사고.

1990년 9월 1일 섬강교 버스 추락 사망 25명. 경기 여주 섬강교상에서 승객 28명을 태운 시외버스가 추락. 빗길 과속운전이 원인으로 지목되었는데, 승객 대부분이 안전띠를 착용하지 않은 것이 인명피해를 키운 것으로 지목되었다.

1990년 11월 4일 소양호 버스 추락 사망 21명, 부상 21명. 강원도 인제 소양호에서 관광버스가 화물차와 충돌 후 추락. 직접적인 원인은 버스 운전기사의 추월 운전. 버스 회사는 유령회사였고, 버스 운전자는 교통 관련 전과가 여섯 번이나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행정당국의 운수업 관리가 허술했음이 지적되었다.

1991년 11월 3일 인제 버스 추락 사망 22명, 부상 21명. 강원도 인제 옥녀2교에서 결혼식 하객 43명을 태운 관광버스가 내리막길에서 추락. 정비 소홀에 따른 브레이크 고장이 원인.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 사망 32명, 부상 17명. 부실공사와 점검 부실 상태에서 과적 차량을 비롯한 교통량의 폭증이 원인.

1995년 4월 11일 화순 버스 추돌 사망 14명, 부상 19명. 전남 화순군에서 군내버스가 비둘기호 열차에 충돌. 버스 운전기사의 신호원인과 건널목 시설 관리 부실이 원인으로 지목.

1995년 10월 8일 천안 화물차 추돌 사망 13명, 부상 9명. 11톤 화물차가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 직행버스와 충돌. 트럭 운전사의 졸음운전이 원인.

1997년 3월 24일 남원 버스 추돌 사망 16명, 부상 16명. 전북 남원 사매면 철도건널목에서 남원여객 소속 시내버스가 무궁화호 열차와 충돌 후 끌려가다가 논바닥으로 추락. 안내원도 없고 차단기도 없는 철도 건널목에서 버스 운전기사가 신호를 무시하고 운전한 것이 원인.

2000년 7월 14일 추풍령 연쇄추돌 사망 18명, 부상 97명. 부일외고 수학여행 버스가 빗길 과속으로 미끄러져 다른 트럭과 충돌한 사고. 경부고속도로 개통 이후 2시간 이상 차량 전면 통제를 한 최초의 사고.

2000년 10월 27일 장수 88올림픽 고속도로 추돌 사망 21명, 부상 7명. 전북 장수 88올림픽 고속도로에서 대형 트럭이 추월 운전을 하다가 버스, 승용차와 충돌한 사고.

2001년 7월 24일 진주 관광버스 추락 사망 20명, 부상 20명. 경남 진주 서진주나들목 부근에서 관광버스가 언덕 아래로 추락. 운전기사의 과속 및 난폭운전이 원인이었고, 주행 중인 버스 안에서 승객들이 음주가무를 즐긴 것이 인명피해 증가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2002년 2월 10일 천안 트레일러 추돌 사망 15명, 부상 18명. 음주운전 상태인 트레일러 운전자가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 고속버스와 충돌한 사고.

2002년 6월 15일 옥천 경부고속도로 5중 추돌 사망 14명, 부상 18명. 충북 옥천군 경부고속도로에서 탱크로리 운전자가 과속을 하다가 가드레일과 추돌하고 차선을 넘어가는 바람에 일어난 추돌사고.

2003년 10월 21일 봉화 관광버스 추락 사망 19명, 부상 12명. 경북 봉화군 청량산 매표소 부근에서 관광버스가 40m 아래 개울에 추락한 사고. 브레이크 고장이 직접적인 원인이고, 안전벨트 미착용이 인명사고를 확대한 것으로 지적되었다.

2004년 10월 20일 평창 관광버스 추락 사망 15명, 부상 18명. 강원도 평창 신약수 인근 8번 국도에서 관광버스가 계곡으로 추락. 브레이크 고장이 직접적인 원인이고, 안전벨트 미착용이 인명사고를 확대한 것으로 지적되었다.

2006년 10월 3일 서해대교 연쇄추돌 사망 12명, 부상 50명. 짙은 안개로 인해 29중 연쇄 추돌 사고 발생. 피해액 약 40억 원으로, 한국 자동차보험 역사상 가장 큰 사고.

2007년 1월 13일 경부고속도로 5중 추돌 사망 10명, 부상 21명. 경기 성남시 경부고속도로 서울요금소 부근에서 고속버스가 앞서가던 다른 차와 충돌한 사고. 고속버스 운전자의 졸음운전이 원인.

2009년 12월 16일 경주 관광버스 추락 사망 18명, 부상 13명. 경북 경주시 남사재 주변 925번 지방도로에서 관광버스가 30m 아래로 추락. 사고 원인은 운전자의 운전미숙. 무자격 운전자와 교통안전 시설물의 규결 미달, 안전벨트 미착용 등이 지적되었다.

2010년 7월 3일 인천대교 버스 추락 사망 14명. 부상 10명. 안개로 시야가 제한된 상황에서 사고 차량을 피하려던 시외버스가 다리 난간을 뚫고 추락한 사고.

2010년 8월 9일 행당동 버스 폭발 부상 18명. 서울 성동구 행당역 인근에서 대기 중이던 241B번 버스의 연료 탱크가 폭발. 원인은 차량의 노후화.

2014년 9월 3일 레이디스코드 교통사고 2명 사망, 4명 부상. 걸그룹 레이디스코드 멤버 2명 사망. 악천후 속에서 매니저가 과속운전을 하여 차 바퀴가 빠진 것이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2015년 1월 16일 중앙고속도로 연쇄 추돌 부상 19명. 빙판길로 인한 43중 연쇄 추돌사고.

2015년 2월 11일 영종대교 연쇄 추돌 사망 3명. 부상 65명. 해무로 인해 차량 106대가 추돌.

2015년 7월 1일 지안 버스 추락 사고 사망 11명. 중국 지안시에서 일어난 버스 운전사고. 원인은 악천후 속에서의 과속. 한국인 10명과 중국인 1명이 사망.

2016년 2월 16일 중앙고속도로 35중 추돌사고 17명 부상. 강원도 원주 중앙고속도로 학산교에서 눈길에 차량이 미끄러져 발생.

2016년 10월 13일 경부고속도로 관광버스 사고 사망 10명, 부상 10명. 울산 울주군 언양분기점에서 관광버스가 과속을 하다가 방호벽과 충돌, 화재가 발생했다.

2017년 5월 9일 웨이하이터널 버스 화재 사고 사망 13명. 중국 산동성 웨이하이시 타오쟈쾅 터널에서 일어난 유치원 통학버스 화재 사고. 사고 원인은 고의적 방화.


철도 사고

1962년 1월 30일 수려선 동차 전복 3명 사망, 42명 부상. 내리막에서 과속을 하다 탈선해 전복.

1969년 1월 31일 천안 열차 추돌 사망 41명, 부상 102명. 경부선 천안역 부근에서 정차중인 남원행 서울행 완행열차를 부산발 서울행 청룡호가 추돌. 처음에는 부산발 서울행 열차의 과속으로 원인을 지목하였으나, 폭설로 교통이 마비된 상황에서 정상운행을 지시한 철도청의 문제가 더 큰 것으로 밝혀졌다.

1971년 10월 13일 남원역 열차 추돌 사망 20명, 부상 36명. 남원에서 군산으로 가던 보통열차가 유조화물열차를 들이받은 사건. 사망자 중 15명은 국민학생, 3명은 고등학생이어서 국민들이 분노하였다. 사고의 원인은 기관차의 기관 고장.

1973년 8월 12일 영동역 유조열차 폭발 사망 32명, 부상 9명. 충북 영동군 영동역에서 벙커C유와 설탕을 싣고 가던 화물열차의 기관사가 졸음운전으로 인해 과속, 이로 인해 탈선하여 화재가 발생하였다.

1981년 5월 14일 경산 열차 추돌 사망 55, 부상 254명. 경북 경산군 매호건널목에서 부산발 서울행 특급열차가 부산발 동대구행 보통급행열차에 받힌 사고. 건널목 위에 정지해 있던 오토바이가 사고의 1차 원인으로 지목되었고, 이를 보고도 사실을 알리지 않은 특급열차 승무원, 전방 주시를 제대로 하지 않은 보통급행열차 승무원들의 과실과 열악한 철도 근로환경이 문제로 제기되었다.

1993년 3월 28일 구포역 무궁화호 열차 전복 78명 사망, 198명 부상. 부산 북구 구포역 부근에서 선로의 지반이 무너지는 모습을 본 기관사가 급제동을 하다가 탈선. 노선 바로 아래에서 삼성종합건설이 허가 없이 발파작업을 한 것이 원인이었다.

1995년 8월 25일 괴산 무궁화호 열차 전복 사망 1명, 부상 190명. 집중호우로 철교가 붕괴된 것이 원인이었다.


항공 사고

1967년 4월 8일 서울 청구동 C-46 추락사고 사망 80명(탑승자 24명, 지상주민 56명). 원인은 기체 결함과 관제센터 과실.

1980년 11월 19일 대한항공 015편 착륙 사고 사망 10명. 원인은 조종사 과실.

1982년 2월 5일 공군 제주 C-123 추락 탑승자 53명 전원 사망. 원인은 기체결함, 기상악화. 전두환의 제주 방문으로 인해 경호를 위해 제주도로 가던 육군 제707특수임무대대 수송기가 기상악화로 추락한 사건인데, 당시 전두환 정부는 이 사건을 축소/은폐하였다.

1983년 9월 1일 대한항공 007편 격추 탑승자 269명 전원 사망. 소련의 요격기에 격추됨.

1987년 11월 29일 대한항공 858편 폭파 탑승자 115명 전원 사망. 북한 공작원 김승일, 김현희에 의한 테러. 이 사건은 신상옥 감독의 영화 <마유미>로도 만들어졌다.

1989년 7월 27일 대한항공 803편 추락 사망 79명. 대한항공 여객기가 트리폴리 공항에 접근 중 추락. 원인은 악천후 속에서 무리하게 착륙을 시도한 조종사 과실.

1989년 7월 27일 울릉도 관광헬기 추락 사망 14명. 원인은 악천후에서의 조종사 과실, 정비불량.

1993년 7월 26일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 사망 68명. 김포공항에서 목포공항으로 가던 아시아나항공 여객기가 전남 해남군 야산에 추락. 원인은 악천후와 공항 시설 부족, 조종사의 무리한 착륙 시도.

1993년 해군 링스헬기 성주 추락 사망 10명. 원인은 기상 악화.

1997년 8월 6일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망 228명. 원인은 조종사 과실. 김포공항에서 괌으로 가던 대한항공 비행기가 공항 접근 중 추락. 조종사 사이의 권위주의적 문화도 문제로 지적되었다.

2002년 4월 15일 중국국제항공 129편 추락 사망 129명. 중국국제항공 여객기가 경남 김해 돗대산 기슭에 추락한 사고. 원인은 조종사 과실.

해양 사고

1951년 6월 15일 제13호 침몰 사망 30여 명. 침몰 장소는 전남 목포 부근. 원인은 정원 초과, 적재량 초과.

1951년 7월 11일 제5편리호 침몰 사망 94명. 침몰 장소는 부산 충무동 다대포항. 원인은 정원 초과, 적재량 초과.

1951년 11월 18일 삼해남호 침몰 사망 55명. 침몰 장소는 진도 부근. 원인은 정원 초과, 운전자 과실.

1953년 1월 9일 창경호 침몰 사망 300명 이상. 침몰 장소는 부산 다대포 앞바다. 원인은 강풍으로 인한 침몰, 선박의 노후.

1953년 1월 25일 행운호 침몰 사망/실종 100여 명. 침몰 장소는 충남 서천 앞바다. 원인은 정원 초과, 적재량 초과.

1954년 6월 3일 태양호 침몰 실종 23명. 침몰 장소는 전남 돌산 부근. 원인은 풍랑.

1954년 8월 16일 강화도 범선 침몰 사망 14명. 원인은 조류와 파도.

1955년 4월 23일 삼영호 침몰 실종 12명. 침몰 장소는 경남 하동 앞바다. 원인은 암초 충돌.

1956년 1월 12일 태신호 침몰 사망 66명. 침몰 장소는 전남 흑산도 부근. 원인은 화재.

1956년 2월 1일 비안도 목선 침몰 실종 18명. 침몰 장소는 전북 비안도 부근. 원인은 풍랑.

1956년 9월 22일 위도 어선 침몰 실종 11명. 침몰 장소는 전남 위도면 부근. 원인은 풍랑.

1956년 12월 4일 당진 어선 침몰 사망 1명, 실종 22명. 침몰 장소는 충남 당진 부근. 원인은 풍랑

1957년 4월 14일 강남호 침몰 사망 3명, 실종 31명. 침몰 장소는 인천 월미도 서쪽. 풍랑과 퇴조 속에서 화물선과 충돌해 침몰.

1957년 8월 29일 화성 목선 침몰 사망 1명, 실종 31명. 침몰 장소는 화성군 서쪽. 원인은 과적.

1958년 1월 15일 제87대양호 침몰 실종 11명. 침몰 장소는 전남 흑산도 부근. 원인은 풍랑.

1958년 2월 12일 거진 기범선 침몰 실종 11명. 침몰 장소는 강원 거진항 부근. 원인은 풍랑.

1959년 4월 22일 통도호 침몰 사망 7명, 실종 25명. 침몰 장소는 전북 고창 부근. 원인은 풍랑.

1959년 9월 17일 완도 어선 침몰 사망 41명. 침몰 장소는 전남 완도 앞바다. 원인은 태풍 사라.

1960년 1월 16일 직영호 침몰 실종 12명. 침몰 장소는 강원도 판교리 부근. 원인은 안개와 풍랑.

1960년 5월 13일 연평도 어선 침몰 사망 1명, 실종 13명. 침몰 장소는 연평도 부근. 사고 원인은 풍랑. 

1960년 5월 31일 백구호 침몰 실종 13명. 제주 성산포와 부산을 오가던 선박으로 침몰 원인은 풍랑.

1961년 11월 10일 광복호 침몰 실종 12명. 침몰 장소는 경남 통영 부근.

1963년 1월 18일 연호 침몰 사망 120명 이상. 과적과 정원 초과 상태에서 돌풍을 만남. 침몰이 5분 내에 완료되어 구조가 어려웠음.

1963년 11월 8일 속초 어선 침몰 실종 13명. 침몰 장소는 강원도 속초 앞바다. 원인은 돌풍.

1964년 4월 16일 보승2호 침몰 실종 11명. 침몰 장소는 소연평도 부근. 납북 후 풀려나 귀환하는 도중 안개 속에서 암초에 충돌해 침몰함.

1964년 7월 29일 서해 어선단 침몰 사망 32명, 부상 62명. 침몰 장소는 연평도 부근. 219명은 북한에 표류했다가 북한측의 인도로 귀환함. 2명은 북한에 억류.

1964년 8월 2일 신성호 침몰 사망 3명, 실종 15명. 침몰 장소는 전남 완도 부근. 원인은 풍랑.

1964년 11월 24일 충남 서산 나룻배 침몰 사망 11명, 실종 13명. 원인은 과적.

1964년 12월 4일 대성호 침몰 실종 13명. 침몰 장소는 충남 서산 부근. 돌풍이 부는 상태에서 기관 고장이 겹침.

1965년 12월 30일 제3영생호 침몰 사망 14명. 침몰 장소는 강원도 삼척 앞바다. 풍랑으로 암초에 충돌

1965년 12월 31일 편리호 침몰 사망 2명, 실종 21명. 침몰 장소는 묵호 앞바다. 침몰 원인은 파도와 폭설. 

1966년 1월 13일 전마선 침몰 사망 15명, 실종 10명. 침몰 장소는 충남 삼길포 부근. 원인은 높은 파도.

1967년 1월 14일 한일호 침몰 사망 66명, 실종 27명. 침몰 장소는 경남 가덕도 해상. 해군 소속 구축함인 충남함과 충돌해 침몰. 사건 직후 군의 은폐 시도가 있었다.

1967년 1월 19일 당포함 침몰 사망 11명, 실종 28명. 침몰 장소는 동해 어로저지선 부근. 어선단을 보호하던 해군 당포함이 북한의 포격으로 침몰.

1968년 1월 3일 제5삼양호 침몰 실종 12명. 침몰 장소는 추자도 남쪽. 암초에 충돌.

1968년 5월 17일 천지호 침몰 사망 3명, 실종 13명. 침몰 장소는 전남 목포 부근. 기름 유출로 해양 오염 피해가 있었다고 기록된 첫 사례.

1968년 5월 24일 서조호 침몰 사망 16명 실종 5명. 침몰 장소는 충남 장항 부근. 노후 선박에 과적과 무허가 운항이 겹쳐져 만들어진 사고.

1969년 3월 27일 제주 어선 침몰 실종 21명, 침몰 장소는 제주 근해. 원인은 돌풍.

1970년 1월 31일 명주 어선침몰 사망 18명. 침몰 장소는 강원도 명주 부근. 원인은 풍랑.

1970년 5월 4일 명신호 침몰 사망 5명, 실종 11명. 침몰 장소는 부산 동남쪽. 원인은 풍랑.

1970년 12월 15일 남영호 침몰 사망 326명 이상. 침몰 장소는 거문도 근처. 원인은 과적.

1971년 1월 4일 흑산도 어선침몰 실종 12명. 원인은 풍랑.

1971년 1월 7일 질자호 침몰 사망 30명, 실종 2명. 침몰 장소는 전남 여수 부근. 화물선이 충돌하여 침몰.

1973년 1월 25일 한성호 침몰 사망 19명 실종, 42명 침몰. 장소는 진도 육지 부근. 원인은 과적.

1974년 2월 22일 YTL30정 침몰 사망 158명, 실종 1명. 침몰 장소는 충무 앞바다. 원인은 정원 초과와 운항 부주의.

1974년 4월 19일 칠성호 침몰 실종 12명. 침몰 장소는 경남 거제 해안가. 폭우로 저인망 어선이 정박중 폭우로 인해 침몰.

1974년 2월 28일 경비정 863호 침몰 사망 8명, 실종 20명. 침몰 장소는 동해 분계선 부근. 북한 경비정들과의 교전 중 침몰.

1974년 8월 29일 소흑산도 어선 침몰 실종 47명. 원인은 풍랑.

1974년 11월 12일 광진호 침몰 사망 13명, 실종 28명. 침몰 장소는 전남 완도 앞바다. 과적 상태에서 풍랑을 만나 암초에 충돌.

1976년 1월 17일 만덕호 침몰 사망 12명, 실종 26명. 침몰 장소는 울릉도 천부항 부근. 오징어잡이 목선이 풍랑을 만나 침몰. 

1976년 10월 28일 동해 어선 조난사고 사망 34명, 실종 293명. 사고 원인은 풍랑. 침몰 장소는 동해 대화퇴 해상. 대한민국 어선 해난사고 중 최대 인명 피해를 낸 사고.

1976년 12월 8일 610광덕호 침몰 사망 1명, 실종 10명. 침몰 장소는 제주도 근해. 침몰 원인은 풍랑.

1977년 12월 2일 제11강원호 침몰 실종 26명. 침몰 장소는 울릉도 서쪽 해상. 강풍으로 인한 파도로 침몰. 생존자 5인이 65시간 동안 표류한 것으로 화제.

1978년 2월 17일 동해안 어선침몰 사망 29명. 침몰 원인은 강풍과 눈보라로 추정되며 정확한 침몰 장소는 모름

1978년 11월 29일 무안 어선침몰 실종 23명. 사고 장소는 전남 무안 부근. 침몰 원인은 풍랑.

1979년 10월 29일 소흑산도 어선침몰 실종 20명. 원인은 풍랑.

1979년 2월 17일 제1선북호 침몰 실종 13명. 침몰 장소는 울산 방어진 부근. 침몰 원인은 풍랑.

1979년 10월 5일 제2병묵호 침몰 실종 12명. 침몰 장소는 전남 홍도 부근. 실종 원인은 풍랑.

1979년 11월 18일 제2영풍호 침몰 실종 10명. 침몰 장소는 제주 남쪽 해상. 원인은 풍랑.

1980년 8월 31일 제5성남호 침몰 실종 14명. 침몰 장소는 전남 거문도 부근. 화물선이 충돌하여 침몰.

1980년 10월 31일 제5종봉호 침몰 실종 35명. 침몰 장소는 동해 대화퇴 부근.

1981년 9월 6일 제1명신호 침몰 실종 18명. 침몰 장소는 통영 앞바다. 화물선이 충돌하여 침몰.

1981년 11월 24일 제36한일호 침몰 실종 11명. 침몰 장소는 전남 보길도 부근.

1982년 10월 24일 제2동해호 침몰 실종 36명. 침몰 장소는 울릉도 부근. 원인은 풍랑.

1983년 10월 7일 거성호 침몰 실종 11명. 침몰 장소는 제주 화도 서쪽. 원인은 풍랑.

1984년 1월 12일 제7삼성호 침몰 사망 1명, 실종 12명. 침몰 장소는 제주 우도 부근. 침몰 원인은 풍랑.

1984년 4월 18일 동남점보페리호 조난 사망 12명. 침몰 장소는 거문도 부근. 기관고장 상태에서 풍랑을 만나 선박이 표류된 사고.

1984년 7월 5일 제7동아호 침몰 실종 17명. 침몰 장소는 전남 신안 부근. 암초에 충돌하여 침몰.

1985년 1월 29일 화평에이스호 침몰 사망 3명, 실종 14명. 제주 남동쪽 해상에서 화물선이 갑자기 기울어진 사고.

1985년 2월 1일 제일크리스탈호 침몰 사망 2명, 실종 10명. 대마도 근해에서 한일 정기 화물선이 침몰.

1985년 3월 15일 세진호 침몰 실종 27명. 제주 우도 부근에서 선어 운반선이 풍랑으로 전복.

1985년 4월 11일 제77신성호 침몰 실종 11명. 제주 동쪽 해상에서 장어잡이 통발 어선이 풍랑으로 침몰.

1985년 4월 18일 제11원근해호 침몰 실종 12명. 소흑산도 서남쪽에서 중국 상선과 충돌하여 침몰.

1985년 7월 27일 신안2호 침몰 실종 18명. 신안 홍도리 부근에서 유람선이 엔진 고장으로 표류하다가 암초와 충돌.

1985년 8월 14일 광일호 침몰 실종 12명. 전남 영광 부근에서 태풍을 만나 22시간만에 2명이 구조됨.

1986년 3월 16일 604상진호 충돌 실종 10명. 전남 진도 부근에서 불상의 선박과 충돌해 침몰.

1986년 11월 25일 카페리2호 침몰 사망 13명, 실종 14명. 강화 석포리 부근에서 급류를 만났는데 균형을 잃고 전복.

1987년 1월 13일 제224경인호 침몰 실종 10명. 격렬비열도 부근에서 저인망 어선이 풍랑으로 침몰

1987년 2월 12일 제88지영호 침몰 사망 10명. 대마도 동북쪽에서 장어통발어선이 풍랑으로 침몰.

1987년 2월 말 영지호 침몰 실종 35명. 제주도 남쪽에서 오징어채낚기 어선이 침몰. 풍랑 때문으로 추정.

1987년 6월 16일 극동호 침몰 사망 29명, 실종 7명. 충무 앞바다에서 나무로 만든 유람선이 엔진 고장 화제로 20분만에 침몰.

1987년 7월 16일 신안 어선 침몰 실종 53명. 어선 12척이 태풍 셀마로 침몰.

1987년 8월 31일 동익호 침몰 사망 1명, 실종 24명. 울릉도 부근에서 태풍 다이너를 만나 침몰.

1987년 10월 7일. 제31진영호 피격 실종 11명. 백령도 서쪽에서 피격 후 북한 군함에 충돌해 침몰. 추석 연휴였다.

1987년 12월 1일 제11복성호 침몰 실종 13명. 제주항 부근에서 채낚기 어선이 강풍을 만나 침몰.

1987년 12월 6일 제2장영호 침몰 실종 10명. 오륙도 동쪽에서 화물선이 폭풍으로 침몰.

1987년 12월 30일 제101영성호 침몰 사망 4명, 실종 7명. 오징어채낚기 어선이 홍도 남서쪽에서 폭풍으로 침몰.

1987년 12월 30일 제391동영호 침몰 사망 10명. 마라도 서쪽에서 침수로 침몰.

1988년 4월 17일 신안 거룻배 침몰 사망 12명, 실종 2명. 바지락 채취선이 정원초과 상태에서 파도를 만나 침몰.

1989년 1월 5일 원경호 침몰 실종 21명. 어징어채낚기 어선이 대마도 부근에서 침몰.

1989년 1월 14일 제7창명호 침몰 실종 12명. 저인망어선이 전남 여천 부근에서 다른 배와 충돌하여 침몰.

1989년 2월 26일 제3세일호 침몰 실종 12명. 마라도 남쪽에서 장어통발어선이 파도를 만나 침몰.

1989년 6월 5일 신안 어선 침몰 실종 17명. 어선 4척이 신안 재원도 부근에서 풍랑을 만나 침몰.

1989년 10월 31일 82근성호 침몰 사망 6명, 실종 6명. 동해안 대화퇴 부근에서 풍랑으로 침몰.

1989년 11월 1일 제26현진호 침몰 사망 10명, 실종 12명. 울릉도 부근에서 풍랑으로 침몰.

1989년 11월 4일 제12일성호 화재 사망 4명, 실종 6명. 동해안 대화퇴 부근에서 실종 선박 수색 중 화재가 발생.

1990년 1월 13일 화영55호 침몰 실종 12명. 서귀포 남쪽에서 화물선과 충돌해 침몰.

1990년 4월 12일 88대성호 침몰 실종 11명. 울릉도 부근에서 침몰.

1991년 1월 21일 88대운호 침몰 실종 12명. 울산 부근에서 풍랑으로 침몰.

1991년 2월 21일 퍼시픽프렌드호 침몰 실종 14명. 원목 운반선이 태안 의항리 부근에서 침수로 침몰.

1991년 6월 5일 제21성진호 침몰 실종 10명. 저인망어선이 제주 서쪽에서 중국 상선과 충돌.

1991년 6월 21일 제102거경호 침몰 실종 10명. 오징어채낚기 어선이 오륙도 남쪽에서 일본 운반선과 충돌.

1991년 6월 28일 옹진 화물선 침몰 실종 32명. JE스카이에이스호와 치아웨이호가 옹진군 울도 부근에서 충돌.

1992년 10월 13일 제3준양호 침몰 실종 18명. 오징어채낚기 어선이 영일군 용한리 부근에서 풍랑을 만나 침몰.

1992년 12월 6일 제52덕성호 침몰 실종 11명. 트롤어선이 양산 대변리 부근에서 침몰.

1993년 10월 10일 서해훼리호 침몰 사망 292명. 부안 위도 부근에서 여객선이 악천후 속에서 무리하게 출항하였고, 과적과 초과 탑승이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배가 흔들렸을 때 승객들을 가만히 안에 있으라고 한 것이 인명피해를 키웠다.

1994년 3월 29일 제5영덕호 화재 실종 11명. 장어잡이 어선에 전남 여천 부근에서 화재 발생.

1994년 11월 12일 92춘동호 침몰 실종 10명. 저인망어선이 대흑산도 부근에서 대형 상선과 충돌해 침몰.

1995년 6월 22일 미네랄뎀피어호 침몰 실종 25명. 마라도 남쪽에서 대형화물선이 서로 충돌.

1995년 7월 23일 씨프린스호 사고 실종 1명. 원유와 벙커C유를 실은 유조선이 여수 앞바다에서 좌초되어 기름 5천여 톤이 바다에 유출.

1995년 11월 17일 호남 사파이어호 사고 유조선이 여수 앞바다에서 부두와 충돌, 원유 173톤이 바다에 유출.

1996년 2월 2일 제7경신호 침몰 실종 11명. 대형 기선저인망 어선이 마라도 남서쪽에서 침몰.

1996년 6월 15일 안나스피라토 침몰 실종 26명. 두 화물선이 충돌, 벙커C유가 바다로 유출.

1997년 1월 7일 261남해호 침몰 실종 23명. 채낚기 어선이 제주 마라도 부근에서 침몰.

1997년 4월 3일 제3오성호 침몰 통영 매몰도 부근에서 유조선이 좌초, 벙커C유 186톤 가량이 바다에 유출.

1997년 9월 13일 98원양호 침몰 사망 1명, 실종 9명. 저인망어선이 충돌로 침몰.

1998년 1월 15일 뉴바론호 침몰 사망 2명, 실종 15명. 울산 울주군에서 좌초. 벙커C유 345톤, 시멘트 5천 톤이 바다로 유출.

1998년 9월 23일 제3대영호 침몰 사망 1명, 실종 10명. 유자망 어선이 인천 울도 부근에서 침몰.

2000년 2월 17일 제5대성호 침몰 실종 10명. 어선이 강원 고성군 부근에서 침몰.

2000년 9월 23일 주원호 침몰 사망 5명, 실종 6명. 소흑산도 남쪽에서 침몰. 원인은 충돌로 추정.

2001년 1월 15일 프로하모니호 폭발 사망 3명, 실종 6명. 유조선이 거제 남여도 부근에서 선내 폭발, 기름 200여 톤이 바다로 유출.

2005년 3월 8일 썬크로스호 침몰 실종 14명. 가거도 서쪽 해상에서 23,000톤급 컨테이너 운반선과 충돌.

2005년 4월 2일 부영호 침몰 실종 10명. 격렬비열도 부근에서 꽃게잡이 통발어선이 침몰.

2005년 12월 1일 한동호 침몰 실종 13명. 전남 병풍도 남서쪽에서 89,000톤 선박과 충돌.

2006년 3월 20일 신하이7호 침몰 사망 3명, 실종 9명. 인천 무의도 남쪽에서 위험물 운반선과 충돌.

2007년 12월 7일 삼성1호-허베이스피릿호 원유 유출 충남 태안 해상에서 홍통 유조선 허베이스피릿호와 삼성중공업 소속 삼성1호가 충돌하면서 12,547킬로리터의 원유가 바다로 유출된 사건.

2007년 12월 25일 이스턴브라이트 침몰 사망 7명, 실종 7명. 화학약품 운반선이 여수 백도 동북쪽 해상에서 과적으로 침몰.

2008년 1월 30일 102소양호 침몰 실종 10명. 쌍끌이 저인망 어선이 제주 마라도 남서쪽 해상에서 침몰. 악천후 때문으로 추정.

2010년 1월 27일 삼봉11, 12호 침몰 사망 1명, 실종 9명. 모래운반선이 통영시 국도 남동쪽에서 침몰.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침몰 사망 40명, 실종 6명. 한국 초계함이 백령도 서쪽에서 침몰. 어뢰에 의한 피격으로 추정.

2011년 2월 9일 알렉산드라호 침몰 사망 4명, 실종 7명. 액체화물 운반선이 울산 동구 앞바다에서 침몰.

2011년 12월 26일 739건아호 침몰 사망 1명, 실종 10명. 트롤어선이 울산 간절곶 동쪽에서 침몰. 복원력 상실로 추정.

2012년 1월 15일 두라3호 폭발 사망 5명, 실종 6명. 유류 운반선이 인천 자월도 북쪽 해상에서 내부 폭발.

2013년 10월 15일 쳉루15호 침몰 사망 9명, 실종 2명. 영일만 동북쪽에서 화물선이 파도와 강풍으로 방파제와 충돌.

2014년 4월 4일 그랜드포춘1호 침몰 사망 2명, 실종 11명. 거문도 남쪽 공해상에서 강풍을 만나 침몰. 전원 북한 선원.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망 295명. 실종 9명.

2015년 1월 23일 기임어00791호 침몰 실종 10명. 제주 차귀도 남서쪽 공해상에서 미확인 상선과 충돌.

2015년 9월 5일 돌고래호 침몰 사망 14명, 실종 4명. 낚시배가 추자도 인근에서 엔진 이상을 일으킴.

2017년 12월 3일 선창1호 침몰 사망 15명. 인천 영흥대교 인근에서 낚시배가 급유선과 충돌.

2019년 11월 19일 대성호 화재 사망 1명, 실종 11명. 제주 차귀도 인근에서 어선 화재 발생.

해양 사고는 10년 단위로 끊어서 보면 사고의 유형이 점점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 보입니다. 1950년대까지는 강에서 일어나는 사고가 꽤 많았는데 점점 사라지고, 1990년대부터는 기름 유출 사고가 본격적으로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과적과 초과 탑승 문제는 한국 전쟁 이후 지금까지 나아지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유독 실종이 많은 것도 특징이었습니다. 


붕괴 사고

1970년 4월 8일 와우아파트 붕괴 사망 34명, 부상 40명. 서울 마포구 창전동 와우지구 시민아파트 5층짜리 한 동이 무너진 사고. 무면허 건설업자들이 뇌물을 주어 진행한 공사였고, 이로 인해 심각한 수준의 부실공사가 강행되어 벌어진 사고였다. 

1982년 4월 9일 서울 3호선 지하철 붕괴 사망 11명, 부상 40여 명. 서울 서대문구 무악재 부근 3호선 공사 현장이 붕괴, 시내버스가 추락한 사고.

1993년 1월 7일 우암상가아파트 붕괴 사망 28명, 부상 48명, 이재민 370여 명. 기초구조 변경 없는 무리한 증축과 설계 변경, 부실 공사가 원인이었다.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 사망 32명, 부상 17명. 서울시 성동구 성수대교의 상부 트러스가 붕괴. 점검 부실과 노후된 교량. 과적차량의 통과가 빚어낸 사고.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 사망 502명, 부상 937명.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풍백화점의 붕괴. 부실공사와 불법 구조변경이 원인이었고, 위험 신호가 있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영업을 계속한 백화점 측의 이기심도 매우 큰 비난을 받았다. 삼풍백화점 자리에는 주상복합 아파트 아크로비스타가 서있다.

2014년 2월 17일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망 10명, 부상 124명. 경북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가 폭설로 붕괴된 사고. 

2014년 10월 17일 판교 환풍구 붕괴 사고 사망 16명, 부상 11명. 경기도 성남 판교테크노벨리의 야외 공연장 인근 지하주차장 환풍구 덮개가 무너진 사고. 

2021년 6월 9일 광주 학산빌딩 붕괴 사망 9명, 부상 8명. 

2022년 광주 화정 아이파크 외벽 붕괴 

2022년 봉화 광산 매몰 


과밀집 사고

1959년 7월 17일 부산 공설운동장 압사 사망 67명, 부상 150명. 부산 서구 서대신동 부산공설운동장(현 구덕운동장)에서 행사 도중 소나기를 피하려다가 참사 발생. 경찰이 군중을 통제하려고 공포탄 20여 발을 발사하여 혼란을 악화시켰다.

1960년 1월 26일 서울역 압사 사망 31명. 서울역 호남선 승강장에서 인파가 몰려 발생한 사고. 추위로 역사 안이 미끄러운 상황에서 정원보다 많은 표를 팔았고 원래는 발차 35분 전에 하던 개찰을 발차 5분전에 갑자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몰려 발생하였다.

1965년 10월 5일 전국체육대회 압사 사망 14명. 광주에서 열린 제46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쇠문이 부서지면서 연쇄적으로 넘어져 압사 발생.

1974년 9월 28일 용산역 압사 사망 4명. 귀성길에 사람들이 넘어지면서 발생.

1980년 2월 11일 부산 용호국민학교 압사 사망 5명, 부상 21명. 개학 첫날 아침 조회에 참석하기 위해 운동장에 뛰어나가던 학생들이 연쇄적으로 넘어지면서 발생. 과밀학급과 비좁은 계단으로 사고 위험이 높은 상황에서 인솔 교사가 없었던 점이 지적되었다.

1985년 1월 17일 안동 신한민주당 지구당 창당대회 압사 사망 5명, 부상 18명. 경북 안동 문화회관 강당에서 열린 신한민주당 창당대회에서 인파가 몰려 발생. 

2005년 10월 3일 상주 콘서트 압사 사망 11명. 경북 상주 계산동 상주시민회관 콘서트에서 발생한 사고. 리허설을 이유로 출입구를 폐쇄하고 세 개의 문만 개방했으며 경찰 인력도 부족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사망 158명, 부상 196명

(원래는 노동사고/산업재해, 범죄, 군사충돌도 넣고 싶었습니다만, 시간과 체력 여건상 싣지 못하여 참으로 아쉽습니다.)


비참하지 않은 일이 어디 있으랴

참사(慘事)는 비참한 일이라는 뜻입니다. 사건 하나하나를 찾아보면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 개개인의 사연도 볼 수 있었고, 그것을 보면서 이 모든 사고가 다 참사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참사라고 부를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만, 굳이 기준을 정해보자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사고를 못 막아서 일어난 경우가 참사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있는 사고 중에는 정말 어쩔 수 없이, 인간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사건사고도 많았지마는, 우리가 제도를 잘 정비했다면, 시설을 잘 점검했다면, 욕망을 조금이라도 줄였더라면 일어나지 않았겠구나 싶은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얼마나 변했는지에 대한 회의감도 들었습니다. 물론 점진적으로 꾸준히 제도를 개선하고 법을 만들어 가는 것이 보이긴 했지만, 미리미리 만들었다면, 미리 점검했다면 이라는 안타까움을 지울 길은 없었습니다. 위에 소개된 비극 중 반 이상은 인간의 과도한 욕망과 책임을 지닌 자들의 무책임한 태도가 문제인 경우들이었습니다. 제도 개선은 당연히 필요한 것이지만, 제도만 개선하면 끝인가라는 생각과 동시에, 제도라도 제대로 만들어놓고 개인을 탓해야 하지 않는가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마음이 참으로 복잡합니다.

이런 기준에 비추어보면 10월 29일 이태원에서 일어난 사고는 분명 참사였습니다. 예년처럼 안전인력을 배치했다면 과연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10.29참사와 이태원참사 중 무엇이 더 나은가, 혹은 더 옳은가 라는 고민을 했을 때, 아직까지 대규모 참사에서 날짜를 기준으로 명명한 전례는 없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날짜를 중심으로 명명하는 경우에는 그 날짜를 기점으로 우리 사회가 어떻게 얼마나 변화했는가, 혹은 그 날짜를 특별히 기억해야할 이유가 있는가를 고민해봐야 할 것이고, 장소를 중심으로 명명하는 경우에는 그 일이 일어난 장소의 이름을 지울 경우 그 일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의 잘못이 흐려지거나 사라질 가능성이 있는지, 혹은 그 장소를 언급하지 않았을 때 그 일을 떠올리거나 추모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는 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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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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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참 먹먹하네요 ㅠ 사고가 일어난 뒤라도 제대로 빠르게 조치가 이뤄졌다면..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인재도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사고를 막지 못했다는 말이 참 마음이 아프네요.

정말 많은 참사, 사고가 있었네요. 정리해주신 내용들을 읽으며 저와 제 가족, 지인들이 자주 다니는 지역이면 더 흠칫하기도 했는데요. 그것은 피해자들의 잘못이 아닌, 그저 사고 발생 시점에 그 장소, 그 공간에 있었다는 우연과 불운으로 일어난 일이기에. 그래서 제가 살아있다는 게 다행이고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러한 비통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모든 참사에 분명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대책이 확고히 마련되기를 바랍니다.

참 슬프지만 '안전(수칙)은 피로 쓰여진다'는 말이 있더라구요. 하지만 선우님이 나열해주신 목록을 보았을 때 우리는 이런 비참한 경험을 가지고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었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너무나 유사한 이유와 비슷한 공간에서 계속 참변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선우님이 마지막에 언급하신 '욕망을 조금이라도 줄였더라면' 이라는 말이 계속 기억에 남네요. 

이런 참사 중 알지 못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네요. 스스로를 반성하게 됩니다...

와! 끝이 없는 참사의 기록 스크롤에 압도되고 말았습니다.ㄷㄷ 고생하셨습니다.

'막을 수 있었던 사회적 참사'라는 표현이 더 필요 없을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가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