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부목사·전도사·스님은 되고… 신부는 안 되는 ‘이것’[신부가 해고됐다 6화]

2025.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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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고, 퍼트리고, 해결합니다'

회사가 직원 A에게 갑자기 휴직 통보를 했다. 그에게 정신질환이 있다는 이유였다. A와 만난 적도 없고, 누군지 신분도 알려지지 않은 ‘비밀’ 자문단의 판단이 근거다. A는 자신에게 정신질환이 없다는 진단서를 회사에 제출했다. 하지만 회사는 휴직기간 동안 지시에 따라 치료와 상담을 받지 않았다며 그를 해고했다.

과연 정당한 해고라 말할 수 있을까. 비상식적인 처분이 분명하다. 하지만 회사를 ‘천주교 대구대교구’, 직원 A를 심기열 신부(35, 야고보)라고 바꿔보면 면직 과정은 문제되지 않는다.

심기열은 2023년 2월 법원에 ‘해고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결과는 참담했다. 1심, 2심 재판부 모두 소송을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해 내용에 대한 판단 없이 종료되는 것을 말한다. 교단 내부에서 벌어진 일이니 ‘알아서’ 해결하라는 취지였다.

법원은 심기열 신부가 제기한 ‘해고무효 확인 소송’을 각하했다. 종교 내부 문제는 판단하지 않겠다는 결정이었다. ⓒ셜록

“일반 국민으로서의 권리의무나 법률관계를 규율하는 것이 아닌 이상 원칙적으로 실체적인 심리・판단을 하지 아니함으로써 종교단체의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하여야 한다.

법원은 판단을 회피했다. 종교도, 법원도 심기열을 보호해주지 않고 있다. 심지어 인권위원회도 심 신부의 진정을 ‘각하’했다.

“한 사람을 정신질환자로 몰아가고, 면직 처분을 내리는 행위도 제가 성직자니까 당연히 감수해야 할 명령이라는 겁니다. 종교의 자유가 사람보다 먼저라는 판단에 화가 납니다.

종교의 자율성이 인간의 존엄성보다 우선이라는 법원의 판단은 심 신부를 두 번이나 죽인 셈이다. 면직은 사제에게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다. 다시는 성직자로 살아갈 수 없는 형벌. 평범한 직장인과 다르게, 신부는 면직되면 지구상 어디에서도 다시는 신부가 될 수 없다.

“과연 법이 올바르게 작동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교구를 상대로 이기지 못할 것만 같아 불안했습니다. 하지만 기사 댓글 창에 응원해주는 분들이 있어서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심 신부는 마지막 희망을 걸어보기로 결심했다. 지난해 11월 20일 대법원에 상고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지난해 10월 2심 재판부의 각하 판결이 반복되면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면직은 사제에게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다시는 성직자로 돌아갈 수 없는 형벌이다. ⓒ셜록

법원이 성직자의 노동자성을 매번 외면했던 건 아니다. 부목사, 전도사, 스님 등 성직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판례가 존재한다.

2020년 11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전도사와 부목사도 노동자에 해당한다며, 이들에게 퇴직금 등을 지급하지 않은 목사에 대해 벌금 700만 원을 선고했다.

불교재단 소유 사찰에서 근무한 부주지 스님도 노동자로 인정받았다. 지난해 6월 서울행정법원은 부주지 스님도 노동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문자메시지로 해고를 통보한 것은 ‘부당해고’라고 판단했다.

심기열 신부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원심은 교구가 심기열에게 성품성사를 하고 사제직을 부여해 사목활동을 하도록 했기 때문에 근로계약을 체결한 게 아니라고 봤다. 천주교 사제는 돈을 벌기 위해 성당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심기열 측은 상고이유서를 통해 “성직자도 사안에 따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평가해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제가 노동자성을 주제로 싸우는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면 아무런 구제를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심기열 신부는 2022년, 성탄절 바로 다음 날인 12월 26일 면직을 통보받았다. 당시에는 이유도 듣지 못했지만, 이후 소송 과정에서 알게 된 면직 사유는 ‘불순명(不順命)’. 명령에 순응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교구가 심 신부에게 내린 명령은 ‘너는 정신질환이 있으니 치료를 받으라’는 거였다. 정신질환이 없다고 증명한 것 자체가 ‘불순명’이 됐다.(관련기사 : <‘정신질환’ 몰아서 신부 해고… 이것도 신의 뜻입니까>)

하지만 사건의 발단은 따로 있었다. 2021년 12월 심 신부는 같은 성당에서 일하는 주임신부를 업무태만으로 교구청에 고발했다. 주임신부는 잦은 골프 약속으로 미사 일정을 변경했다. 사제관을 벗어나 외박도 하고, 주일(일요일)에도 당구를 치러 본당을 비우기도 했다는 게 고발의 내용이다.

교구는 주임신부를 문책하는 대신 심 신부를 정신질환자로 몰아 ‘휴양 명령’을 내리더니, 심 신부를 면직했다.(관련기사 : <아동성추행 신부도 안 잘렸는데… ‘괘씸죄’가 더 큰가>)

“근로자성이 인정되지 않으면 심 신부가 법적 보호를 받을 장치는 아무것도 없습니다.”(심기열 소송대리인 오정익 변호사)
법원이 심 신부를 노동자라고 인정하지 않으면, 그는 더 이상 억울함을 호소할 곳이 없게 된다. ⓒ셜록

심기열 측은 성직자라는 이유로 사제의 근로자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종교의 자유’를 침해당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종교적 자유를 위해서 헌법상 보장되는 근로의 권리, 법률상 보장되는 근로자의 권리를 사실상 포기하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종교를 선택했다는 이유로 직업 선택의 자유, 근로자의 권리가 침해를 받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근로자의 권리를 침해당할 걸 감수하고 종교를 선택하라는 거니까, 사실상 종교의 자유도 억압하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오정익 변호사)

종교단체 내부의 자율성이 ‘한 사람을 구하는 일’보다 우선 될 수 있을까. 심 신부는 대법원마저 판단을 회피한다면 종교단체 안에서 또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교구는 또 마음에 안 드는 신부를 면직시키고, 그 사람에 정신질환이 있었다고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교구 잘못은 없다고, 당당하게 살 것 아닙니까.”

심 신부가 면직된 지 벌써 만 2년이 넘었다. 2022년 12월부터 입지 못한 사제복은 여전히 짐가방 속에 고이 접어뒀다.

지난해 10월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대구교구의 공식 입장과 사건 관계자들의 입장을 듣기 위해 통화를 시도했다. 총대리주교는 “재판(소송) 중인 사건이라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면서 “성직자국장의 설명을 교구 공식 입장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밝혔다.

성직자국장은 심기열 신부에 대해 “(심 신부는) 한 번도 잘못했다, 죄송하다는 말 자체를 안 했다”고 말했다.

당시 사무처장은 “그 신부(심기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입에 담고 싶지 않다”며, “종교 내부 사안이라서 기자님도 접근을 조심하셔야 한다, 그 사람(심기열) 말은 믿지 말라”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3일 주임신부의 골프 문제에 대해 추가적인 취재를 위해 성직자국장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는 “편파적으로 글 쓰는 걸 보면서 내가 말해봤자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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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도 노동자? 성직자라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니, 종교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사람의 권리도 우선해야죠. 교회 내부에서 벌어진 일이 법적으로 묵살되는 현실, 뭔가 불공평하죠. 신부도 노동자로서 권리를 인정받아야, 종교의 자유도 진짜 자유가 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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