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게시물은 <연구원정 부트캠프>에 참여 중인 대원님의 연구과정을 정리한 글 입니다.
🚀 지난 글 [연구원정] 기록되지 않은 여학생,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 운동의 역사를 찾습니다 에서 이어집니다.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운동에 대한 선행연구는 2가지 정도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운동사 연구는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운동 학술동향 중 한 축을 차지하고 있고 이미 그 자체로 양이 아주 방대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 운동사를 2가지 분류로 나눠 살펴봅니다. 대중들이 문제해결운동에 개입하는 여러 방식에 주목하는 연구가 첫번째, 한국 안팎 지역과 경계를 넘어선 초국적 운동으로 분석하는 것이 두번째입니다. 나눈 기준은요, 제 문제의식에 기초해 자의적으로 나눈 것이니 읽을 때 참고해주세요. 물론 이 중에선 서로 겹치는 것들도 있고 관점이 상당히 다양하기도 합니다. 운동 과정을 어떤 형태로 볼 지 연구자마다 관점이 달랐거든요. 이번 글에서는 간단히 선행연구들의 요점과 의의를 살펴보면서 운동사가 축적되어 온 모양새를 더듬어보려해요. 제가 읽고 분석한 것이기 때문에 부정확한 것이 많을 수 있고, 독자 여러분의 관점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운동사 연구를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한 톨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글을 써봅니다.
🎧 듣고자, 기억하고자 하는 대중이 계속 생겨요
일본군성노예제문제 해결운동을 이야기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대중의 참여입니다. 일본군'위안부'문제라는 이름으로 대중들이 더 많이 인식하고 있는데요. 여러 영화, 소설, 드라마에서 이 문제를 다룰 뿐 아니라 한국의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도 일본군성노예제문제를 다루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참여한 각계각층 중에서도 일반 시민이 운동에 참여하게 된 원인과 과정에 주목한 연구도 있었습니다.
이나영(2017)은 공적 청중(audience)이라는 개념을 경유해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운동을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수요시위, 평화의 소녀상(약칭 평화비),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나비기금 등 여러 매개가 운동을 잇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본 것이지요. 운동의 당사자성이 확대되어 역사적 책임을 계승하고 유기적인 연대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공감적 청중'이 생긴 것입니다. 또 다른 연구자인 김명희(2018)는 운동의 확장되는 매개로 교과서와 평화비를 주목합니다.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운동이 쌓아온 시간은 사회적인 기억을 형성하는 과정이었고, 차곡차곡 쌓인 기억들이 정치적인 대안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시합니다. 피해생존자를 직접 만나지 못한 세대가, 이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여기고 해결을 위해 앞장서는 이유를 여러 학자들이 탐색했던 것입니다. Hana Jun(2020)은 고등학생들에 주목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언 100년이 넘는 시간을 지나, 역사적 공감과 국가적 정체성을 토대로 이 문제를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학생들을 인터뷰한 것입니다. '우리'가 아주 편협하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일본군성노예제 문제를 알아갈수록 점점 넓어져 학생들이 '우리'에 대한 역사적인 경계를 확장시키는 과정을 촘촘하게 추적합니다.
그러나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운동의 확산에 대한 비판도 있습니다. 현시원(2017)은 평화비에 시민들이 목도리를 두르거나 꽃을 두고 가는 등 여러 참여의 형태를 비판적으로 분석합니다. 평화비를 보살핀다는 생각이 “마치 애완동물과 자신보다 작은 아이들을 ‘귀엽다’고 바라보는 인식의 틀과 궤를 같이 한다”고 본 것이죠(190). 허윤(2021)은 평화비가 기억의 대상에 대한 고민이 부재하고 피해생존자를 단순하게 "보호와 부조의 대상으로 사유"하게 한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406). ‘작은 소녀상’이라는 이름으로 일상화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도 일본군‘위안부’의 섹슈얼리티, 고통 등 대중이 불편하게 여기는 요소들을 제거한 “친근감”(381)이 있는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근거를 들고요.
하지만 저는 이런 비판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입니다. 비판의 비판이죠. 사실 평화비를 감각하는 개인의 경험은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평화비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억, 인상, 경험은 다 다르고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했어요. 자세한 논의는 장소정(2023)을 참고해주시면 더욱 좋습니다. 학술지에 실린 글 중에서는 이나영(2022)의 논의가 비슷한데요. 이나영(2022)은 젊은 여성들이 평화비를 통해 개인의 성폭력 경험을 환기하는가 하면 피해생존자를 무력한 대상이 아니라 고발의 주체로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고 보기도 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연구는 계속 차곡차곡 쌓여나가는 중입니다. 저의 관심사도 이런 부분에 있어요. 운동을 계속 이어온 사람들의 시간과 경험을 잇다보면 새로운 연구와 비판이 축적되겠지요. 기대가 됩니다.
🌐 해결을 위해 지역, 경계 넘어 모이기도 했죠
한국 안에서도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운동은 여러 지역에서 일어났습니다. 심지어 북한에서도요. 이 과정을 주목한 연구도 있습니다. 문소정(2021)은 정신대문제대책부산협의회(이하 부산 정대협) 활동이 등장한 지역적 맥락과 정체성을 토대로 지역성, 차이성, 혼종이 어떻게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과의 사이성을 구성했는지 고찰합니다. 문경희(2022)는 경남지역 활동가들의 기억과 구술증언을 듣고 피해생존자와 활동가 간의 새로운 공동체적 관계성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 살펴보죠. 이경희(2022)는 경남지역에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운동에 참여하는 활동가이자 연구자로서 한국정부가 이 문제해결 운동을 지원할 때 서울중심으로 편협하게 바라봤다는 것을 비판합니다. 지역에서의 문제해결운동은 지역사회의 시민사회단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있음을 보여주기도 했죠.
2000년 법정 그 자체가 보여준 초국적성에 주목한 연구도 있습니다. 2000년 법정은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해 아시아 10개국이 참여한 시민법정입니다. 양현아(2021)는 2000년 일본군성노예전범국제법정이 보여준 초국적 운동에 주목합니다. 국경의 경계를 넘어 여성 활동가와 연구자가 연대한 "여성시민법정"이었고(7), 남북한 공동기소를 이뤄내 통일운동의 실마리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8). 안연선(2015) 역시 2000년 법정에서 제시된 의제들을 중심으로 한국과 일본의 시민사회단체가 상호작용한 경험을 주목하기도 했지요. 일본 시민사회단체의 역할에 대한 연구도 상당히 많습니다. 일본군성노예제 문제는 피해국 숫자가 상당했고 그만큼 지원단체 역시 다양한 나라에서 여러 시도들이 있었거든요. 일본의 시민사회단체의 역할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나후사 도시오(2022)는 관부재판이라는 사건에 주목해, 일본의 시민사회단체가 법적 투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던 시간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평화비 설립운동에 대한 연구는 최근 더욱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문경희(2018)는 2016년 호주 시드니에 평화비가 건립된 것을 보고 코스모폴리탄 기억 정치라는 개념을 이용해 과정을 분석합니다. 이 평화비 설립에 참여한 이민자 집단에 주목하고 민족국가의 트라우마적 기억을 초국적으로 전환한다고 보았습니다. Elizabeth Son(2018)은 다양한 지역에서 설립된 평화비가 어떻게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촘촘하게 따라가는 분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마치며
여기까지 살펴봤을 때에도 '아 연구가 정말 많구나!' 싶으실 수도 있는데요. 사실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 운동은 계속되고 있어서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 많습니다. 매일매일 새로 생기죠. 운동을 연구하는 선배 연구자들에게 들은 말 중에 기억에 오래 남는 말이 있어요. 운동을 보고, 글을 쓰는 사람들은 '한 발을 연구에, 한 발을 운동에 담그고 있어야 한다'고요. 활동가이자 연구자로서 위치성을 계속 고민하고 있는 저에게는 여전히 유효한 문장입니다. 지금 이뤄지고 있는 운동도 참 넓고, 지나간 운동은 얼마나 긴지. 공부하는 게 지난한 작업이기도 하지만, 알아가는 과정이 참 재미있습니다. 여러 전공의 연구자들이 운동에 대한 분석을 내놓고 있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죠. 시간은 계속 흐르니까, 제가 썼던 글도 언젠가는 '너무 옛날 얘기잖아!' '이건 관점이 너무 편협해!' 혹은 '이 사람은 아직 운동 역사를 잘 모르는구만' 하면서 지적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빠르게 오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제 자리에서 계속 연구와 활동을 이어갈게요.
참고문헌
김명희. 2018. “일본군‘위안부’운동과 시인(recognition)의 정치 : 한국의 사회적 기억 공간을 중심으로” 『한국여성학』 34(3): 113-146.
문경희. 2018. “호주 한인들의 ‘소녀상’ 건립과 일본군 ‘위안부’운동” 『페미니즘 연구』 18(1): 47-92.
문소정. 2021. “부산의 일본군 ‘위안부’ 운동의 사이성에 관한 연구 - 부산정대협을 중심으로” 『항도부산』 41: 471-499.
안연선. 2015. “따로 또 같이: 한국과 일본의 위안부운동을 둘러싼 초국가주의여성운동” 『비교한국학』 Comparative Korean Studies23, no.1 39-62
양현아. 2021. “식민주의의 견지에서 본 2000년 여성국제법정: 일본군성노예제라는 ‘전시 성폭력’” 『2000년 여성국제법정: 전쟁의 아시아를 여성과 식민주의의 시각에서 불러내다』 양현아·김수아 편. 일본군‘위안부’연구회 기획. 경인문화사.
이나영. 2017. “일본군 ‘위안부’ 운동 다시 보기 - 문화적 트라우마 극복과 공감된 청중의 확산” 『사회와역사』 115: 65-103.
이나영. 2022. “한국 여성운동의 ‘새로운 물결’과 ‘혐오’의 백래시: 우리는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향해 가야 하는가?” 『문화다양성과 아시아, 그리고 접점의 현상과 갈등』 변유경 엮음. 중앙대학교 다문화콘텐츠연구소 기획. 글로벌콘텐츠.
장소정. 2023. "일본군'위안부'운동을 둘러싼 기억과 정동의 배치: 평화나비 활동가 경험을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중앙대학교
허윤. 2021. “‘우리 할머니’들의 이야기와 기억의 물화” 『구보학보』 27(1): 375-408
현시원. 2017. “‘위안부’소녀상과 ‘국민 프로듀스’의 조우: 이상한 이상화” 『소녀들: K-pop스크린 광장』 조혜영 엮음. 도서출판 여이연.
Elizabeth Son. 2018. Embodied Reckongings: “Comfort Women,” Performance, and Transpacific Redress.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Hana Jun. 2020. ““I think the comfort women are us”: National identity and affective historical empathy in students’ understanding of “comfort women” in South Korea“ The Journal of Social Studies Research. 44(1): 7-19
* 이 글은 장소정의 석사논문 "일본군'위안부'운동을 둘러싼 기억과 정동의 배치" 제2장 3절을 일부 재구성했습니다.
코멘트
6쏘제님의 글을 통해 주제에 대한 진심과 하시는 활동에 대한 열정이 함께 느껴졌습니다. 많이 들어왔지만 또 잘 모르고 있던 주제에 대해 울림 있게 글을 써주셔서 관심을 갖게되었습니다. 쏘제님의 연구 여정을 통해 배우며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화이팅!!
평화나비 활동과 수요집회 참여를 통해 일본군성노예제 문제를 처음 접하던 때가 기억나네요. 활동으로 변화를 만들어가는 각 개인이라는 관점에서 더 나아가, 이들이 어떻게 그리고 왜 이 사회문제를 접하게 되었는지 등에 대한 운동사를 구체화하는 쏘제님의 연구가 정말 기대되고 기다려집니다 🥰
문제를 다룰 때 무엇이, 왜 문제이고 어떠한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방향성을 바르고 흔들리지 않게 나아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쏘제님의 발제를 볼 때면, 성노예제 문제에 대해 또렷한 시각으로 다루고 계신다는 생각을 합니다. 선행연구 하나하나가 글의 나열이 아니라, @쏘제님에게 체화되어 나오는 것 같아요. 오랜시간 진심으로 고민한 과정이 글에 녹아 있어서 항상 많이 배웁니다.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멋져요 쏘제님... 지난번 글을 들으면서도 저는 굉장히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연구의 방향에 대해 저도 참고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하나의 글을 쓰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들어감을 공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ps. 참고문헌... 저도 작성해야 하는데 > <
'공적 청중', '공감적 청중'이라는 개념이 매우 흥미롭네요. 시간을 지나 자신의 일로 느끼며 연대하면서 대중운동이 확산되는 것은 곱씹을 부분이 많습니다. 전세사기 문제도 이런 방식으로 기억되고, 주거불안의 이슈가 사람들에게 여러 갈래로 확대 재생산되는 것을 그려봅니다.
이런 운동이 시간을 지나면서 지역적으로, 초국가적으로 확산되는 것들은 누군가 기록하고, 운동을 이어온 사람들의 수고가 있을건데요. 그런 연구, 운동을 해온 분들과 그들을 조명하는 쏘제 님의 연구를 리스펙합니다!
저희가 항상 하는 비유 중에 '펄펄 끓는 얼음'이라는 표현이 있어요. 사회문제의 뜨거움과 연구적 엄밀성의 차가움이 섞여서 그저 이도저도 아닌 미지근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두가지 영역이 양쪽 다 끌어 안아지면서 펄펄 끓는 얼음이 될 때에 비로소 의미있는 '사회문제지식'이 될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소정님의 연구 속에 그러한 펄펄 끓는 얼음을 보게 되는 거 같아요. 특히 현장과 활동의 경험과 이를 연구화해서 엄밀하게 가져가시려는 노력들이 한편으로는 다른 이들보다 훨씬 어려운 작업이지만, 그 어느 영역보다 의미있는 연구가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그런 선배연구자들이 있으셨음을 발견하셨을 거 같고, 또 그런 연구의 어깨 위에 소정님의 연구가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계속해서 화이팅입니다! 응원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