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한테 그걸 왜 해주냐"
최근 대전의 유명 빵집인 성심당에서 임산부 프리패스 서비스를 내놨다. 임산부의 경우 기다릴 필요 없이 빵을 고를 수 있고, 빵 가격도 5%를 할인해 준다는 내용이었다. 행사를 알리는 성심당 안내판에는 “배려하는 마음으로 예비맘들을 응원해요.” 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해당 사례가 알려지자 두 가지 부류가 나타났다. 첫째는 “임산부가 벼슬이냐며 프리패스는 역차별"이라는 부류, 둘째는 “임산부 뱃지 삽니다"라는 부류였다. 이에 대한 갑론을박이 늘어나고 이슈가 되자, 성심당은 “임산부 뱃지만으론 불가능하며, 산모 수첩 또는 임신 확인증을 지참하고, 출산예정일 확인 후 신분증과 대조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빵집 서비스가 역차별이고 불공정하다고? 가소롭다
성심당의 임산부 프리패스에 대해 역차별을 주장하는 누리꾼들의 말을 인용한 기사들을 보던 중, 이런 문구를 봤다. “성심당이 사기업인데, 역차별이다. 모든 고객에게 공정한 대우를 해야 한다.”.
가소롭다. 성심당은 그냥 빵집이다. 손님이 많고, 지역에서 유명할 뿐이다. 그런 빵집에서 임산부가 줄 없이 들어가도록 해주고, 고작 5% 할인해 준 걸 차별이고 공정하지 못한다고 하면 세상에 저런 혜택을 누가 줄 수 있겠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5% 할인도 만 원 짜리 500원 할인해 준 것 뿐이다. 껌 한 통이 1,200원이고 자판기 커피가 500원인 요즘에, 고작 그 500원이 그렇게 아니꼽게 보였을까.
저 글을 쓴 이의 생각대로라면, 가장 공정하게 빵을 팔기 위해 성심당은 손님들에게 제비를 나눠주고 당첨된 사람에게만 빵을 팔겠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이 마저도 손에 장애가 있는 사람에 대한 역차별이다라고 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임산부 뱃지 삽니다? 가엽다
임산부 뱃지를 산다는 사람도 살펴보자. 정부가 주는 임산부 혜택은 뱃지가 있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실제 임산부로 등록이 되어야지만 받을 수 있다. 임산부가 아니면서 임산부 뱃지를 산다는 사람들은, 세심히 확인하지 않는 혜택을 받으려는 사람들일 것이다. 성심당 혜택처럼 말이다. 전형적인 체리피커다.
체리피커는 상품 구입은 하지 않고 부가 서비스 혜택만을 취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 스스로는 자신들이야말로 가장 효율적인 소비생활을 영위한다고 말한다.” 좋게 말하면 머리가 좋은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꼼수를 잘 부리는 사람들이다. 드러나는 그 작은 임산부 혜택을 누리려고 뱃지를 산다는 사람들을 보면, 개인적으로 마음이 아플 정도로 안 되고 처연하다. 가엽다는 의미다.
가장 피해를 보는 건 임산부들일 것
임산부 뱃지 구매의 악순환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임산부 당사자들일 것이다. 임산부 뱃지만으로 누릴 수 있는 혜택을 위해 뱃지를 구매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배가 부르지 않은 이상 누가 임산부이고 아닌지 구분할 수 없게 된다. 특히 초기 임산부들은 이런 위험이 더 많다.
실제 임산부 뱃지는 당장 배가 부르지 않은 초기 임산부들을 위해 마련된 것이다. 그들이 마땅히 임산부임을 알리고, 배려와 양보, 혜택을 조금 더 누릴 수 있도록 마련된 것이다. 일상 곳곳엔 이런 임산부들을 위한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다.
일례로 지하철의 안내 방송에서는 “지하철에는 아직 배가 부르지 않은 초기 임산부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들께서는 초기 임산부들을 위해 임산부석을 비워주시고, 임산부 뱃지가 있는 분들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라고 방송을 한다. 물론 이런 안내 방송을 한다고 해서 그들이 실제 앉아서 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임산부석, 민원만 7,000건, 임산부 54% 일상에서 배려 받지 못했다
“여성전용석이다, 남성이 앉았다” 개랑 원숭이 같은 한심한 웹상 싸움
현재 서울시에서 운행 중인 1~9호선에는 칸 마다 두 개의 임산부 배력석이 설치되어 있다. 1~8호선은 7,226개, 9호선 636개, 우이신설선 72개, 신림선 전동차는 96개다. 하지만 실상 임산부가 이 자리를 제대로 앉아 갈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아니오"이다.
2023년 지하철 1~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에 접수된 임산부 배려석 관련 민원은 총 7,086건이었다. 민원 대부분은 임산부석을 이용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이를 두고 임산부석이 아니라 여성전용석이라느니, 남성이 앉아 있었다느니 갈라치기해서 싸우기 바쁘다.
한심하다. 웹상에서 상대방이 누군지도 모른채 키보드로 개랑 원숭이처럼 싸우는 싸움으로 임산부 당사자들이 받는 배려가 도대체 뭔가 싶다. 저렇게 웹상에서 싸운다고 하여 임산부 당사자들에게 배려나 자리가 생기는 게 아니다.
지난 2020년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임산부 1,500을 대상으로 조사한 임산부배려 인식 및 실천수준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임산부 54.1%가 배려를 받지 못 했다. 또한, 2021년 조사에서도 51,9%가 배려받지 못했다고 답변했다.
배려를 받지 못한 이유로 “임신 초기라 배가 나오지 않아서"가 2020년 54.3%, 2021년 49.4%였다. 2021년 조사에서는 가장 부정적인 배려받지 못한 경험으로 44.1%가 대중교통 임산부 배려석 이용 불편을 꼽았다.
임산부가 배려받지 못했다는 수치는, 우리 사회가 임산부애 대한 배려와 존중의 점수다. 한편, 일상에서 배려와 존중을 받지 못하는 건 임산부만이 아니다.
배려를 못받는 건 임산부만이 아니다, 소방관, 경찰관, 군인도 마찬가지
흔히 우스갯말로 경찰관을 짭새라고 부르고, 군인을 군바리라고 부른다. 어떤 민원인은 “지하철에서 군인이 앉아서 간다"며 민원을 넣었다. 민원 내용을 보면 “군인들이 왜 자리에 앉아 있나요? 방송 요망"이라고 보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2016년에는 스타벅스에서 군인에게 무료 커피를 나눠준 것을 두고 “성차별"이라고 했다. 이게 칭찬할 일이지, 어떻게 이게 성차별이 될 수 있을가. 어떻게 이렇게 배배꼬였을까. 이런 상황에서 2023년 군인들의 직업 만족도는 44%로 조사됐다. 2020년대비 27% 하락한 수치다. 사회적 평가는 12.9%였다.
소방관은 어떤가, 헬기로 출동했더니 “김밥에 모래 들어간다" 라며 민원을 넣고, 소방차 사이린이 시끄럽다며 민원을 넣고 있다. 점심 도시락을 사기 위해 나온 소방관에게 “공무원이 12시 전에 왜 나오냐"며 민원을 넣고, 소방관에 불법 주차한 외제차 차주가 소방관에게 적반하장으로 소리를 지른다. 심지어는 “구급대원 향한 폭언과 폭행을 멈춰달라"고 소방관들이 직접 말하고 있다.
경찰은 말해 뭐하나. 공무집행 방해를 받는 대상 93%가 경찰이다. 현장에서 경찰들은 “조폭시켜 죽이겠다"고 말하지 않나 “나 조폭 알아 감당하겠냐"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 조폭을 잡는 게 경찰인데, 저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여성단체에서 시작됐네, 남성단체에서 시작됐네 따지는 인간들도 똑같다
개인적으로 여성・남성 커뮤니티에서 노닥거리는 인간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키보드로 노닥거리며 비하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 말들을 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림돌림 하는 걸로 희열을 느끼는 인간이라고 밖에는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 저런 사례를 들어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은 각종 여성・남성 커뮤니티에서 조리돌림을 하고 있다. 여성들이 어쩌고, 남성들이 어쩌고. 언론들도 그런 반응들을 각종 커뮤니티에서 퍼다 나르고 있다. 그걸 통해서 경찰, 군인, 소방관에게 돌아가는 이점이 하나라도 있을까?
배려 없는 사회에서는 공동체 참여와 활동도 없다
UCLA Social Relations Lab에서 발표한 한 보고서에 따르면, 그룹 구성원으로부터 존중받고 있다는 인식은 공동체 활동 참여 의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또한, 개인이 존중받고 있다고 느낄 때 공동체에 겪고 있는 사회적 딜레마에 협력하고 연대하려는 의식이 강화된다. 반면, 존중이 부족하면 무관심과 폭력, 적대감 같은 부정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Understanding the Relationship between Urban Public Space and Social Cohesion: A Systematic Review (도시 공공 공간과 사회적 응집력의 관계 이해 : 체계적인 리뷰)라는 보고서는, 시민들 모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공간(Open Space)의 중요성을 말하며, “사회적 양극화와 경제적 불균형을 겪는 사회에서 공동체 결속력이 약화되는 경향이 있고, 이는 소외감과 존중 부족 증가로 이어져 공동체 유대와 집단 행동을 약화시킨다”고 말한다.
임산부, 경찰관, 소방관, 군인에 대한 우리 사회 배려의 모습은. 공적인 공간이든 사적인 공간이든 상관없이 그저 우리 사회가 타인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으며, 존중 하려는 마음과 태도 조차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심당 같은 사적인 곳과 지하철 같은 공적인 곳에서 몸이 아파서, 몸이 무거워서, 공적(소방과 치안 등)인 일을 하다가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좀 앉고, 먹고, 가게 하자는 것조차 “이건 공정하지 않아. 역차별이야"라고 말하며 비판하는 것 자체를 우리 사회가 강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적인 곳에서는 그럴 수 있다. 모든 시민을 위해서 하는 것이니까. 그런데 성심당 같은 지극히 사적인 사업장에서 하는 것까지 “좋다, 모범적이다"라고 하는 게 아니라 “역차별이야" 이렇게 말하는 것에는 더욱 더 말이다.
임산부석에 대한 개인적 생각
배려라는 말 자체가 잘못 됐다. 임산부는 배려 대상이 아니라, 권리를 누려야 하는 사람
나 역시도 지하철에서 임산부가 아닌 사람이 임산부석에 앉아 있는 걸 좋게 보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안 좋게 본다. 그런 걸 볼 때면, “저렇게 앉아 있으면 임산부가 퍽이나 와서 자리 좀 비켜주세요라고 하겠다."라고 생각한다. 그럴 때마다 배려라는 단어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
배려는 해도 되지만 안해도 된다. 안 한다고 해서 뭐라 그럴 수 없다. 주변 사람들의 선의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때문에 개인적으로 배려라는 말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배려는 배려가 아니다. 장애인을 위한 공간을 건물 10층에 만들어놓고, 엘리베이터 없이 올라오라고 하면 그게 과연 배려일까? 공간을 만들었으니 배려 했다고 할 수 있는 걸까? 그가 올라올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를 충분히 설치 해 놓거나, 애초 올라올 필요 없이 턱이 없는 1층에 만들어 놓는 게 배려일 것이다. 그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다.
임산부 석을 보면서 “저건 임산부 배려석이 아니라, 임산부 권리석 이라고 해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배려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지만, 권리는 침해 해선 안 된다. 내 권리를 누리기 위해 조금만 비켜주시겠어요, 라는 말 조차 안할 수 있도록 임산부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석이라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단 임산부 만이 아니라, 소방관, 경찰, 군인 등 내 이익이 아닌, 타인을 위해서 일하는 모두 그런 존중받을 권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그런 권리를 지켜주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코멘트
17군인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조롱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에대한 것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써주실지 의문이군요
여자들이 주로 댓글올린다든데
속이 시원하네요. 글 잘읽었습니다.
임산부가 혼잡한 저런곳에 가는것이 정상인가?
한국식 공정 담론이 얼마나 왜소하고 허약한지를 보여주는 일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언어를 다루는 사람이라 명명과 단어 선택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는데요. 예전에 일본 여행 갔을 때 노약자석을 '우선석'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고 머릿속에 전구가 켜진 적이 있어요. 💡 배려가 아니라 권리라는 생각에 완전히 동의합니다. 🙌
저런 사람들은 가족중에 임산부가 없었어서 그런가. 부인이나 누나나 언니 동생이 임신해봐라.. 한심타...
배려는 하지 않고 배려만 받으려는 사람들이 꼭 저런 아니꼬운 말들을 하죠. 공공에서 부족하니 사기업에서라도 이런 일들을 하면 칭찬과 격려는 못해줄 망정.... ㅉㅉ
림산부들 때문에 임산부들이 피해입는거
네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불쾌하기까지합니다.
아니꼬운게 아니다. 오히려 존경스럽다.
근데 노키즈 존은 왜? 질타를 받아야 할까? 각 사업장별 개인의 성향에 따른것들은 그 나름대로 존중받아야 함.
세상사람들의 말을 다 들을 필요가 없다
꼭 필요하고 합리적이고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는 말을 선별하면 커다란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저 임신준비중인데 이런 이슈 생길때마다 임신을한뒤에도 별탈없이 잘 지낼수있을까 하는 생각때문에 마음이 복잡해져요. 내가 배려받아야 할 상황이면 배려받고 또 상황이 뒤집어 져서 내가 배려해야하는 상황이 생기면 배려하고. 그랬으면 좋겠네요ㅜ.ㅜ
겁나 인간성들 바닥이다 진짜...ㅉㅉㅉ
임산부를 배려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다만 조금일찌기 빵을 사려고 임산부 배지를 빌려서 빵을 사려 하는 얌체족 때문에 문제지. 그렇게 빵을 일찌기 먹고 싶으면 임신을 하던가ㅡㅡㅡ
글만 읽어도 어질어질한데 이런사회에서 누가출산을 하고싶겠어
가뜩이나 저출산 때문에 힘든 상황인데, 이런 식의 태도로는 절대 해결 못합니다.
좀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건데 너무 우리 사회가 딱딱해지는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