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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권의 언론장악 출발점인 이른바 ‘TV조선 조건부 재승인 의혹’ 사건 재판에서 당초 검찰 수사로 이어진 감사원 조사가 답을 정해놓고 진행됐다는 법정 증언이 나왔다. 이 사건은 2020년 방송통신위원회의 종편 재승인 심사에서 TV조선 점수가 조작됐다는 주장으로 시작됐다. 검찰은 한상혁 당시 방통위원장 주도로 방통위 간부, 심사위원 등이 TV조선에 불이익을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점수를 변경했다고 보고 모두 6명을 기소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이 한상혁 위원장을 불구속기소하자 “중대 범죄를 저질렀다”며 임기를 두 달 남긴 그를 면직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방송통신위원회 위원 구성이 여권 우위가 됐고, 공영방송 경영진과 이사진 교체, YTN 민영화 등 ‘언론 장악’을 본격 시작했다.
지난 9월 27일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이른바 ‘TV조선 사건’ 13차 공판이 열렸다. 증인으로 나온 당시 TV조선 재승인 심사위원 2명은 2022년 검찰 수사에 앞서 감사원이 이 사건 감사를 할 때 상황을 증언했다. 이들은 감사원 조사관이 조사 전에 이미 답변 내용이 적힌 문서를 가져왔다고 증언했다. 또 조사 과정에서 수정하기는 했으나 진술서 일부 내용이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작성됐다고 폭로했다. 당시 감사원 감사에선 이날 증인으로 나온 2명을 포함해 TV조선 재승인 심사위원 13명 모두 조사를 받았다. 2022년 7월 이 사건 감사에 착수한 감사원은 ‘TV조선 재승인 심사 점수 조작 정황’을 발견했다며 같은 해 9월 감사자료를 검찰로 이첩했다. 검찰은 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당시 감사원 감사는 윤석열 정권의 ‘언론장악을 위한 방통위 표적 감사’라는 지적을 받았다. 2022년 6월 9일 조선일보가 한상혁 위원장을 겨냥해 ‘문재인 정부 기관장들 버티기’라는 보도를 했고, 16일에는 권성동 등 국민의힘 의원이 한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6월 17일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한 위원장 거취를 언급했다. 그러나 6월 20일 한상혁 위원장이 사퇴를 거부하자 이틀 뒤인 6월 22일 감사원이 감사를 시작했다. 당시 감사원은 “정기감사를 앞당겨 착수한 것이지 위원장 사퇴 압박 위한 감사는 전혀 아니”라는 입장을 내놨다.
‘TV조선’ 재판은 2023년 6월 26일 시작해 지난 9월 27일까지 13차례 공판이 열렸다. 그러나 검찰은 방통위가 재승인 심사를 하면서 TV조선 점수를 의도적으로 하향 조작한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검찰 측이 내놓은 주요 증거는 심사위원들이 수기로 작성한 심사 결과표다. 이 표에 점수를 수정한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상혁 위원장은 2022년 10월 6일 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최종적으로 심사위원회에서 의결하기 전까지 심사위원들은 자유롭게 수정할 수 있다. 그런 사례들은 기존 재허가·재승인에도 많이 있었다”
“과거에 심사위원이 수정을 하겠다고 요구하면 용지를 바꿨다고 한다. 그런데 저희 들어와서 투명하게 수정하는 절차들을 기록지에 남겨두는 게 필요하겠다고 생각해 용지를 바꿔주지 않고 채점한 용지에 수정 과정을 사선을 긋고 사인하는 것으로 남겨두었다”
검찰은 재승인 심사위원회 의결 전인 2020년 3월 20일 열린 5일 차 회의 시작 전 오전 9시~10시 사이에 점수 수정이 이뤄졌다고 본다. 서울북부지검이 발표한 ‘TV조선 재승인 심사 점수 조작 경위’를 보면, 심사 5일 차 오전에 방통위 간부로부터 최종 점수 결과를 들은 한상혁 당시 위원장이 ‘강한 불만’을 표시했고, 이후 방통위 간부가 심사위원장에게 점수 수정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 피고인은 모두 6명이다. 한상혁 전 위원장은 방통위 간부로부터 점수 조작 등을 보고받고도 묵인한 혐의 등(위계공무집행방해 등), 방통위 간부 2명은 점수 집계 결과를 누설해 조작을 꾀했다는 혐의 등을 받았다. 심사위원 3명은 최종 집계 후 점수를 변경해 방송통신위원회 직무집행을 방해한 혐의다. 당초 구속기소된 심사위원장과 방통위 간부 등 3명은 지난해 6월 보석으로 나와 현재는 피고인 6명 모두 불구속기소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감사원, 타이핑 어느 정도 해오셨다”, “사인 안 하겠다고도 말해”
다시 지난 9월 27일 재판으로 돌아가보자. 이날 재판은 검사가 TV조선 등 종합편성채널 재승인 심사위원이던 2명의 증인을 상대로 2022년 감사원 감사 과정의 답변서 내용과 검찰 조사 때 참고인 진술조서 내용 등을 신문하고, 변호인이 반대 신문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증인 신문은 검찰이 최종 점수를 수정한 시점으로 보는 5일 차 오전 상황에 집중됐다. 증인 2명은 모두 검찰 측에서 신청했다.
이날 오전 10시에 나온 증인 노〇〇 씨는 회계 전문가로 2020년 종편 재승인 심사 당시 방송사업자의 경영⋅재정 분야를 담당했다. 노 씨는 법정에서 2022년 감사원 조사관이 조사 과정에서 자신이 하지도 않은 발언이 담긴 답변서를 내밀었다고 했다.
재판장: 감사원이 미리 증인 이야기를 듣기 전에 일정 부분 내용, 질문이 아닌 대답에 해당하는 내용을 다 적어온 다음에 시작했습니까? 아니면 질문만 가지고 와서 증인에게 어떤 이야기를 듣고 들은 얘기를 토대로 그와 같은 서류를 작성을 하고 보여주고 수정하는 그런 절차도 있었습니까?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됐습니까?
증인 노〇〇: 제가 바빠서 제 사무실로 오셨습니다. 노트북으로 질의를 하고, (질의에 대한 답을) 작성하셔서 출력을 해왔는데, 그 부분에 제가 이견이 있어서 그 부분은 빼고, 수정 부분을 제가 확인하고 사인을 했는데, 타이핑은 어느 정도 해오셨습니다.
증인 노〇〇 씨는 당시 진술 내용 작성과 관련해 감사원 조사관에 항의했다고도 진술했다.
한상혁 측 변호인: 감사원이 사전에 확인서 내용을 작성해오고, 그 내용대로, 예를 들면 5일 차에 심사 결과표 수정 사항에 관해 기억이 안 난다고 한 것을 보지 못했다고 기재하는 등 다소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분위기였나요?
증인 노〇〇: (점수를) 고쳤는지 안 고쳤는지, 고쳤으면 고치면 안 되는 거 아닌지 의견을 좀 강요하는 게 있기 때문에 감사관님께 제가 이렇게 주시면 제가 사인 안 하겠다고 했는데, 결국 기억나지 않는 걸로 확인하고 제가 사인을 했습니다.
한 위원장 등은 심사가 모두 끝나고 의결하기 전까지는 점수 수정이 가능하고, 수정 과정에 위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증인 노 씨는 또 감사원의 이 같은 조사 과정을 검찰에서도 설명했는데, 검찰이 자신의 진술 조서에 이 부분을 간단하게만 적었다고 증언했다.
한상혁 측 변호인: 수사 과정에 관한 진술조서에 대해 질문드리겠습니다. 증인의 진술조서를 보면, ‘질문: 한편 진술인은 이와 관련하여 감사원 조사를 받은 사실이 있는가요’라는 질문에 대해 진술인은 ‘네 있습니다. 감사원에서 확인서 샘플 양식을 저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확인서 내용을 읽어보고 서명하고 나왔습니다’라고 적혀있습니다. 이 내용만 보면 확인서에 사인을 받는 경위가 아주 간단한 것처럼 기재가 돼있는데, 증인께서 오늘 말씀해주신 걸 종합해보면 그 과정이 조금 복잡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조사를 받으실 때 그 과정을 말씀하셨는데 그 부분이 빠진 건가요, 그 과정을 말씀 안 하신 건가요?
재판장: 검찰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었느냐 아니냐를 질문하시는 거죠?
한상혁 측 변호인: 네 맞습니다.
증인 노〇〇: 그 부분 설명을 드렸는데, 간단하게 적었습니다.
한상혁 측 변호인: 말씀하셨는데 조서는 간단하게 적혔다
“검찰 출석 불응 이유는 감사원 조사 안 좋은 기억 때문”
같은 날 오후 2시에 재판에 출석한 증인 마〇〇 씨도 2020년 종편 재승인 심사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그는 방송 분야 전문가로 방송의 공적 책임, 공정성 분야 등을 담당했다.
검사는 마 씨에게 2022년 검찰 출석 조사 요청에 불응한 이유를 먼저 물었다. 그러자 마 씨는 “(감사원 조사 때) 굉장히 안 좋은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응하지 않았다고 했다. 앞서 증인 노 씨 진술과 비슷한 내용이다.
검사: 증인은 검찰로부터 조사를 위해 출석 요청을 받은 사실이 있습니까?
증인 마〇〇: 네. 제가 거부했습니다.
검사: 거부한 사유는 무엇인가요?
증인 마〇〇: 감사원, 결과적으로 조사죠, 협조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말씀드렸습니다만. 약간 유도식으로 했고, 문구는 그분들이 쓰신 건데요. 이게 굉장히 안 좋고 불쾌한 기억이 있기 때문에. 제가 어떤 일이든 많이 보태거나 사실이 아닌 것이 뭔가 부가된다거나 그런 것들이 굉장히 조심스럽기 때문에.
검사: 본인의 자유의사에 따라 출석을 거부했고.
증인 마 씨는 감사원이 작성한 답변서에 자신의 발언이 취지와 다르게 기록됐는데도 자신이 진술한 것이라고 확인 서명을 한 이유에 대해 “(서명을) 거부해야 했는데 제가 그런 일이 처음이어서 순간적으로 판단을 잘못한 듯하다”라고 했다. 또 “(감사원 측이 서울에서 떨어진 증인이 있는) 〇〇까지 오셨고, 두 시간 이야기를 했고, 제가 마음이 약해 사인을 했다. 바로 손님이 올 예정이어서 빨리 보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심사위원 모일 만한 곳 흡연 장소 정도”→ “심사위원 흡연실서 대화”로 바뀌어
감사원이 ‘점수 조작을 모의’했다고 보는 장소와 상황을 특정하는 과정에서도 유도 신문을 하고, 이때 답변을 조합해 본래 뜻과 다르게 답변서에 기록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양ⵔⵔ 측 변호인: (감사원) 확인서에 보면, 흡연자인 일부 심사위원이 흡연 장소에 모여서 대화하는 걸 몇 번 목격한 사실 있다고 기재돼 있는데, 증인은 다른 날 말고 심사 5일 차 아침에 심사위원들의 흡연 목격한 일이 있습니까?
증인 마〇〇: 5일 차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저 문구에 대해서는 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 문구는 제가 진술했다기보다는 그쪽에서 유도한 건데요. 제게 뭐라고 질문했냐면 ‘심사위원 중에 몇몇 분이 모여서 이야기한 걸 들은 적이 있냐’고 질문을 했어요. 그래서 저희는 그런 공간이 없었고, 산책을 해도 모두가 함께 가면 보안 요원이 따라가니까 유일하게 몇몇이 모인다면 흡연하는 몇몇 분이 있었을 뿐이라고 한 거예요. 그걸 저렇게 기록하셨어요.
증인 발언의 맥락을 살펴보면, 감사원 조사관은 ‘점수 조작 모의’로 볼 만한 대화가 이뤄진 것을 본 적 있느냐 질문했고, 증인은 ‘점수 조작을 모의’할 만한 공간이 없었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그런데도 감사원 답변서에는 ‘심사위원이 흡연장소에서 대화했다’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집요하게 묻고 그렇게 제가 답한 걸로 문장을 만들었다”
증인 마 씨와 노 씨는 TV조선 사건 재판의 주요 쟁점인 5일 차 오전 상황과 관련해 감사원 조사 과정에서 유도 신문이 있었다고 공통적으로 주장했다.
검사: 감사원에 진술하시기를 ‘어떤 심사위원들이 점수 수정을 요청했으면, 이례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기억이 났을 거다’ 이런 취지로 진술이 확인서에 돼있는데, 감사원에 그렇게 진술하신 게 맞습니까?
증인 마〇〇: 네. 그쪽에서 그렇게 유도했다.
검사: 유도한 거예요?
증인 마〇〇: ‘그런 일(점수 수정을 요청한 일)이 있었습니까?’ 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고, ‘그런 일이 있었다면 이의를 제기하셨을 겁니까’ 그래서 ‘아마도 그랬을 수 있겠죠’라고 했던 것 같아요.
검사: 그건 본인 생각은 아니라는 거예요?
증인 마〇〇: 그쪽에서 유도를 해서 답변이 그렇게 나왔고
증인 노 씨도 감사원 조사관으로부터 특정 답변을 유도하는 질문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그는 “감사관님한테 제가 점수를 고쳤는지 아닌지 팩트도 기억이 안 나는데 가정에 따라서, 만약에 점수를 고쳤다면 이의를 제기했을 거냐고, 거기게 동의한다는 의견을 자꾸 넣으셔서, 그거는 저는 기억이 나지 않는 걸로 (적힌 걸) 확인하고, 최종적으로 확인(본인이 답변한 내용이 맞음을 확인하는 서명)을 하였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재판에 나온 두 증인의 증언을 종합하면, 감사원은 2022년 감사 과정에서 어떤 결론을 내린 뒤에 조사 대상자에게 특정 의견을 강요한 것으로 보인다. “점수를 고쳤다면 이의 제기를 했을 것인지” 등 유도성 질문을 던졌다. 또 감사원은 조사 대상자 진술을 담은 답변서를 조사 전에 이미 만들어왔고, 내용 중 일부는 피조사자의 진술 취지와 다른데도 답변서에 그대로 적었다. 검찰은 검찰 조사 당시 이런 내용을 듣고도 이들의 진술조서에 제대로 기재하지 않았다.
2022년 하반기와 2023년 상반기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언론장악 판을 깔아놓은 이른바 TV조선 재승인 점수 조작 의혹 사건 재판은 이렇게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에 관심을 가지는 언론사는 거의 없다.
취재: 박채린(rin@newswhere.org)
* 이 기사는 뉴스어디 홈페이지에도 게재됐습니다.
코멘트
2감사원이 결론을 내리고, 타이핑도 미리 해둔 뒤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끼워맞춘 정황이 확인되었네요. 큰 일인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조용한지 궁금합니다... 뉴스어디 덕에 알게되었네요. 감사합니다.
윤석열 정부의 중대 과제 중 하나가 '방송통신위원회 장악'으로 보일 정도로 한상혁 위원장 찍어내기식 감사가 이뤄졌다는 비판이 많았었는데요. 그런 비판이 실제 근거가 있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기사네요. 재승인 심사 제도가 방송국의 문을 닫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정책적 오해에서 불러일으켜진 결과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만약 재승인 심사가 TV조선의 문을 닫게 만들 수 있는 장치였고, 한상혁 위원장 입장에서 점수를 조작할 정도의 행위를 저지른다면 재승인 취소가 되도록 점수를 낮췄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조건부 재승인은 사실상 승인과 다를 바 없는데 상식적으로도 감사원과 검찰의 논리가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