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을 기억하는 캠페이너들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렇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노란리본을 줍는게 고작이구나"
4월 16일이 또다시 찾아온다. 계절은 언제나 돌아오니 좋지만, 세월호는 그렇지 않다. 개인적으로 매년 돌아오는 이 날과 그 날의 기억은 별로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김없이 돌아오는 4월 16일은 몇 가지 감정과 장면을 떠올리게한다.
처음 감정은 분노였다. “뭐 저런 선장이 있나, 뭐 저런 언론이 있나, 뭐 이런 정부가 있나”. 그런 감정은 점점 수그러들었고, 이윽고는 무기력함으로 이어졌다. 끊임없이 방송되는 뉴스는 갇힌 사람들이 돌아오지 못한다는 말을 끝내 입밖으로 내뱉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그 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모든 관계 없는 장면에서 세월호가 보였다. 과거 정글의 법칙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배우 봉태규가 추위에 떠는 장면이 나왔다. 물에 들어갔다 나왔는데, 그 물이 너무 차가워 벌벌 떠는 장면이었다. 본 방송이었는지, 재방송이었는지 명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재방송이었을 것이다. 연관도 없는 그 장면을 보고 “아 애들도 저렇게 추웠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추웠겠지, 떨었겠지, 무서워겠지. 물이 다리로 허리로 얼굴로 계속 차올랐을텐데, 물을 좋아하던 애도 있었을텐데 그 물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죽음이 다가오는 게 그렇게 눈으로 보였겠지, 밖으로 나간다면 누구한테 가장 먼저 가고 싶었을까, 뭐가 가장 먹고 싶었을까, 밖으로 나갔을 때 뭐가 혹은 누가 있기를 바랐을까, 얼마나 나가고 싶었을까.”
그런 생각들은 “나라면 저기서 뭘 할 수 있었을까?” 로 이어졌고, “네가 뭘 할 수 있는데.”로 끝났다. 실제 그 당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 자신이 참 초라했다. 그 당시 읽은 어느 글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쓰여 있었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노란리본 나눔 부스에서 리본 나눔 봉사활동을 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서명 부탁한다는 요청에 내 이름과 싸인을 남겼다.
노란리본 나눔 봉사를 할 때다. 한 분이 내 리본을 받고,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그 분 손에는 내가 준 노란리본과 1회용 플라스틱 컵이 들려있었다. 그 분은 쓰레기통에 1회용 플라스틱 컵을 버렸다. 그리고 내가 준 노란리본도 함께 버렸다. 원해서 버렸는지, 모르고 버렸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개인적으론 모르고 버렸다고 생각한다. 버릴려고 했으면, 애초에 받지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당시 노란리본은 지하철 역 앞에서 나눠주는 전단지 마냥 받고 버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실수로 버린 걸 안 뒤로 다시 돌아와 “실수로 버렸어요. 다시 주세요.”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나는 쓰레기통을 뒤져 노란리본을 찾고 내 주머니에 넣었다. 일부러 버렸든, 모르고 버렸든 노란리본이 쓰레기통에 들어가 있는 모습이 싫었다. 봉사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확인해보니 노란리본은 끊어져 있었다. 끊어진 걸 버릴까 하다가, 접착제를 가져와 붙였다. 그 리본은 내 방 서랍에 꽤 오랜 기간 보관되어 있다.
누군가는 봉사활동을 하고, 싸인 한 걸 보고 그것마저도 잘한 것이다 말할지도 모른다. 당시 누군가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겨우 이런 거구나 싶었다. 노란리본을 주고, 버려진 걸 줍고, 끊어진 걸 억지로 붙여서 보관하는 게 전부구나 싶었다. 이 생각에 나 자신이 참 초라했다.
이처럼 내게 세월호 참사는 분노로 시작해 무기력함과 초라함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데, 내 기억도 조금 변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출처 : 4・16 재단 홈페이지
어떻게 기억되어야 할까요
기억(記憶)의 한자는 ‘記:기록할 기'에 ‘憶:생각할 억' 이다. 즉, 기억이란 기록하고 생각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세월호를 [함께 기억]하며 무엇을 기록하고,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이 질문의 힌트를 세월호 유족의 말에서 얻었다.
“2016년 4월 세월호 생존학생과 참사로 세상을 떠난 학생들의 형제자매가 증언을 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그때 참사로 오빠를 잃은 한 여학생이 소극장에서 관객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지 않아서 저희 오빠가 죽은 거잖아요. 여러분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으면 꼭 용기를 내주세요."”*
세월호 참사로 오빠를 잃은 여학생의 말처럼, 세월호 참사 10주기에는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기록하면서 기억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선명한 기억보다 흐릿한 잉크가 낫다. 세월이 지나면 기억은 흐려지지만, 남아 있는 기록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계속 상기시켜 줄 것이다.
물론 기록이 행동을 담보하지 않는다. 항상 옳은 행동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의 옳음이 누군가에겐 그름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 것과 모르는 건 다르다. 무엇이 옳은지 안다면, 그것이 최소 내 행동의 잣대가 될 것이다. 그 잣대에 맞는 행동이 쌓인다면,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나에게 있어 옳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세월호 참사 유족의 바람대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 무엇인지는 알게될 것이다.
옳은 일의 표현 방식에는 맞고, 틀리고가 없다. 나는 쓰기를 선택했다. 쓰는 것 자체를 힘들어 하는 사람이 주변에 많다. 어쩌면 내 가치관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니까 더욱 그런 것 같다. 내 생각과 가치관을 표현하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한 사회가 됐다.
그렇다면, 나는 이번 기회에 용기를 내보자고 말하고 싶다. 써보자. 잘 쓸 필요 없다. 짧아도 된다. 글의 길고 짧음이 생각의 길고 짧음을 말할 수 없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가, 생각의 좋음과 나쁨을 말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걸 하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를 함께 기억하며, 자신들을 돌아보면 좋겠다. 그리고 기록으로 남겨보면 좋겠다.
그렇게 세월호 참사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고, 기록하고, 행동으로 옮겨보자고 다짐하는 계기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출처 : 4・16 재단 홈페이지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김승섭/ 난다/ 2022) p.13
코멘트
4'선명한 기억보다 흐릿한 잉크가 낫다.'
울컥 포인트.. 엄청 공감하면서 읽었어요.
각자의 경험에 따라 기억은 달라지겠지만 사회적 참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추모할 것인지 한국 사회가 인식하게 된 계기로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911 참사가 일어났던 자리에는 "그라운드 제로, 911메모리얼"라는 이름의 기념관이 있습니다. 고층 건물인 세계 무역 센터가 있던 사고 장소에 세워져있습니다. 기념관 안에는 분단위, 초단위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록되어있습니다. 희생자들이 가족들과 주고받았던 메세지나 통화음성도 들을 수 있도록 재연되어있습니다. 너무나 가슴 아픈 기억이지만 우리가 잊지 않도록 소상하게 남겨놓는 것은 다시는 이런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한 밑바탕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한 공간을 만들되, 공원처럼 일상 속에 녹아드는 장소로 만들어야할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