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인권도 배제하지 않는 학교: 학생인권 보장이 교육공동체 회복의 출발점입니다
1. 들어가며: 학생인권이 '과도하다'?
지난 6월, 경남의 한 중학생이 교사로부터 정신적 학대 피해를 당했다고 호소하며 삶을 마감했습니다. 7월에는 악성 민원의 표적이 된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사망했습니다. 다양한 유형의 폭력에 시름하고 있는 대한민국 교육공동체의 현실은 작금의 사건을 통해 그 위기가 더욱 부각되고 있는데요. 그러나 대통령의 '학생인권조례가 교권침해를 조장한다'는 선언 이후 정부와 여당은 학생인권 죽이기가 교권침해의 해결책인양 맹폭하고 있는데, 과연 학생인권은 정말로 '과도하게' 보장되고 있을까요?
조례시행지역인 서울시교육청이 지난 2020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중학생 중 무려 20% 이상이 신체에 대한 폭력 또는 간접체벌을 경험했습니다. 서울특별시는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된지 이미 수 년이 지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렇게나 많은 학생들이 체벌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건 학생인권조례만으로는 학생인권 보호가 상당히 미흡하고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일각에서 조례가 마치 법령 만큼의 강제성과 통일성을 가진 양 호도하는 것과 달리, 조례는 학생인권 침해를 실질적으로 막을 구속력도, 통일성도 없습니다. 처벌조항이 없기도 하거니와, 학생인권옹호관이 내릴 수 있는 조치가 '권고'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또 전국 17개 시도중 6개 시도에서만 제정되어 있고, 그나마 있는 지역에서도 당장 학생인권침해가 발생했을 때 도움을 요청할 구제기구의 존재여부가 지역에 따라 갈립니다. 지역, 학교마다 각양각색인 학생인권의 기준 속에서 어떤 학생들은 박탈감을 느끼고, 똑같은 피해를 당해도 어디에서는 구제받고 어디에서는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는 웃지 못할 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2. 흔한 오해 파헤치기: 학생인권 제대로 알아보자
최근 정부여당과 일부 교원단체가 학생인권과 교사인권을 대립구도로 설정하며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다양한 오해가 파다하게 퍼져있는 실정인데, 대부분 사실이 아니거나 과장되었습니다.
1. '일진회'를 조직할 권리?
지난 8월 8일, 교육부 주최 “학생생활지도고시안 포럼”에서 한국교총 부회장이 발제한 내용이 상당한 화제가 되었는데, 대표적으로 "소위 ‘일진회’를 조직할 권리가 학생인권조례에 보장되어 있다"는 발제 내용이 있었습니다. 당연하게도 이는 사실이 아니며, 학생인권조례에 학생 자치활동권과 자유로운 인간관계를 맺을 권리는 보장되어 있지만 일진회를 조직할 권리 따위는 어디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차별금지 조항을 성관계, 동성애, 임신을 조장한다고 해석하는 것과 이미 있는 책무조항을 없다며 책임 없는 권리라고 주장하는 것만 보아도, 학생인권을 그저 악마화하는 것에 급급해 학생인권조례를 한번이라도 읽어봤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이해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2. 학생인권이 정당한 교육활동을 침해한다? 🤔
학생인권이 마치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장애물인 양 호도하는 주장 역시 파다한데, 이 역시 교육부가 매년 꾸준히 발표하고 있는 교육활동 침해건수 통계와 배치되는 근거없는 주장입니다.
<교원 100명당 교육활동 침해 현황>
(단위 : 건)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5년
조례 유
0.59
0.53
0.61
0.27
0.51
0.50
조례 무
0.61
0.60
0.62
0.29
0.54
0.54
전체
0.60
0.57
0.62
0.28
0.52
0.52
(자료: 정의당 정책위원회)
지난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의 교육부 연간 교육활동 침해건수 수치를 학생인권조례 제정 여부 별로 지역별 통계를 정리한 자료를 보면, 조례 유 지역에서의 교육활동 침해현황이 오히려 조례 무 지역에서의 교육활동 침해현황보다 적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에 더해 2014년에 진행된 '학생의 인권보장 정도와 교권 존중과의 관련성'(구정화) 연구 또한 초·중·고등학생 15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질문지 조사를 통해 인권보장 수준이 높고 인권교육을 많이 받은 학생일수록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교사의 인권과 교육활동 존중에 적극적이라는 결과를 도출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이론적, 실증적 연구 및 통계는 이미 학생인권 보장이 절대 교사의 인권을 침해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거나 그렇게 오인되지 않는다는 결과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현장의 학생들에게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인권 교육임에도,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청소년 성 인권 교육 예산을 전액 삭감한다고 합니다. (관련 기사: 정부가 없앤 예산, 청소년 1명당 고작 468원... 너무한 것 아닌가")
3. 학생인권조례와 학생인권법의 차이 🧐
학생인권조례는 법이 아닙니다. 법령의 구속력도, 전국적 통일성도 없습니다. 전국 17개 시도 중 6개 시도에서만 제정된 자치조례에 불과합니다. 학생인권조례가 상위법(초중등교육법, 헌법)에 배치된다는 주장 역시 학생인권조례의 반대논리로 꾸준히 사용되고 있고 교육부 주최 포럼 등에서도 여러 번 언급되었는데, 역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는 이미 수 차례에 걸쳐 사실이 아니라고 판시했습니다(92헌마264, 2013추97, 2017헌마1356, 2020구합64446).
학생인권법 자체는 꽤 오랜 기간 논의되어왔던 법령입니다. 지난 2021년 박주민 의원이 대표발의한 학생인권법(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의 요지로는 학생인권조례가 우리 헌법과 유엔 아동권리협약이 보장하는 인권의 영역을 더 상세히 재확인하는 것, 즉 학생의 인권사항 명시, 학교운영에 학생 참여 보장이 있고, 법령 제정을 통해 장기적으로는 지방자치사무였던 학생의 인권과 그 구제와 관련된 업무를 기존 지방자치사무에서 벗어나 국가사무로 돌리는 효과가 예상됩니다.
이미 교원의 지위는 교원지위법을 통해 국가사무로 관할하게 되어 있고 일관성 있는 기준이 적용되고 있는 것과 달리, 학생인권은 지역별로 조례의 내용이 다를 뿐 아니라 그 여부 마저도 갈리게 되며 상당히 큰 편차를 보이고 있습니다(국가인권위원회, 2016). 따라서 학생인권법(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의 제정을 통해 전국적으로 다른 기준이 난무했던 학생인권에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생기는 효과를 기대해볼 수 있습니다.
4. 학생인권 제도화, 상생 교육공동체의 출발점이다
최근의 상황들이 마치 학생인권 탓인 양 프레임을 씌우고 공격하는 세력은 이론도, 실제 통계도 부정한, 가히 괴담정치를 주도하고 있다고 할 만 합니다. 교사 대 학생이라는 대립구도를 앞세운 채 애꿎은 학생인권 탓을 탓하고 학생인권조례를 이념논쟁으로 몰아넣으면서도 학교 현장에서의 고질적 병폐들에 대한 해결책은 내놓지 않는 정부여당은 그저 책임을 면피하고 가장 취약한 학생 계층에 책임전가를 하기에 급급해보이기도 합니다.
현재 교육부와 각 시도교육청의 정책방향은 학생의 의무를 규정하고 인권을 제한하며 교사의 권한을 더 보장해 마치 균형을 맞춘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존중받지 못한 학생은 당연하게도 다른 학생과 교사를 존중할 수 없기에, 교육의 기준은 인권이여야만 합니다. 지금의 상황 역시 각양각색인 학생인권의 기준으로 인해 개별 교사들에 대한 공격이 증가한 점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시범적으로 가치중심 교육을 실험한 호주의 사례에서도 인권수준의 향상을 통해 징계에 해당하는 행위의 감소, 출석률 증가, 관계의 긍정적 변화가 이미 보고되었습니다(ESA, 2020).
우리가 지향해나가야 할 교육 역시 이러한 인권중심 상생교육이어야 할 것이고, 교육부와 각 시도교육청도 이에 맞추어 정책방향을 전환해야 합니다. 그 출발 역시 교사와 학생이 각자의 신분에 가려저 부당하게 빼앗긴 노동자와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되찾아오는 것이기도 합니다. 미시적인 일부 법령 개정 논의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결국 모든 교육구성원들을 보호하고 인권친화적인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보다 큰 사회적, 법적, 학교 내 다양한 단위의 층위들을 모두 고려한 논의로 전환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교육부와 정치권은 비극을 정쟁과 학생인권 퇴보에 이용하는 반인권적 역행 시도를 멈추고, 학교 내 교육환경 개선과 학생인권법 제정을 비롯한 학생인권의 온전한 보장을 위한 법령 개정 및 학교시스템의 대대적 변혁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학생인권법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 전국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