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GPT 시대의 노동 4.0
2023년 3월 말경 골드만삭스는 전세계 일자리 약 3억개가 ChatGPT와 같은 생성인공지능으로 대체 가능하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미국 직업을 기준으로 했을 때, 직업 군에서 수행하는 작업의 평균 25%가 생성인공지능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25%를 상회하는 직업 군 14개를 분류하면 그 중 13개 직업 군이 3차와 4차산업(quaternary activities)에 속한다. 4차산업은 연구개발, 교육, 콘텐츠, 컨설팅, IT 산업 등 지식산업을 뜻한다. 1차산업과 2차산업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와중에 3차산업과 4차산업 일자리 다수가 ChatGPT와 같은 인공지능으로 대체가능하다고 하니 두려움이 앞선다.
기술로 노동효율성이 높아짐에 따라 일자리가 줄어드는 기술실업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쟁이 존재한다. 특히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의 발달로 인한 기술실업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장이 존재한다.
인공지능에 의한 기술실업?
인공지능과 인공지능을 탑재한 스마트 로봇이 기존 일자리에 변화를 가져올 것임은 틀림없다. 예를 들어 완전한 자율주행자동차 기술이 등장한다면 우리나라에서만 관련 일자리 100만 여개가 영향을 받는다. 버스, 트럭, 택시 운전사의 일자리 다수가 사라질 것이다. 줄어든 일자리 100만여 개는 전기 자율주행자동차 제조•정비와 관련된 일자리 감소는 산입하지 않은 숫자다.
ChatGPT와 같은 거대언어모델은 사무와 행정, 콜센터 분야 등에서만 일자리를 줄이지 않는다. 법무와 연구개발, 번역 등의 일자리도 줄일 것으로 보인다. 오픈에이아이(OpenAI)와 펜실베니아 연구원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미국을 기준으로 19% 일자리가 수행하는 작업 50% 이상이 ChatGPT에 의해 자동화 가능할 것으로 분석했다. 나머지 80%의 일자리의 경우 10% 이상의 작업이 자동화 가능하다. 이들의 분석에 따르면 전 산업분야의 일자리가 골고루 자동화 가능한데, 임금이 높은 분야 일자리의 업무 자동화 가능성이 다소 높았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골드만삭스의 연구결과와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 따른 기술실업에 대한 경고는 2013년 옥스포드 마틴스쿨의 프레이와 오스본의 ‘노동의 미래’ 논문에서도 나타난다. 그들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을 기준으로 47%의 일자리가 인공지능과 스마트로봇에 의해 대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참고로 미국을 기준으로 인공지능 등에 의해 일자리 대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는 이유는, 미국이 산업별 직업에서 수행해야 하는 작업을 상세하게 분류했기 때문이다. 하나의 직업은 다수의 작업을 수행한다. 해당 작업을 인공지능이 수행할 수 있느냐의 여부를 판단할 수 있고, 이를 기준으로 해당 직업의 자동화 위험을 분석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골드만삭스 등의 연구도 이러한 기반에서 수행되었다.
인공지능으로 대체가능한 작업의 비율이 낮다면 그 일자리의 업무 효율성이 높아지고, 높아진 효율성으로 창의적인 작업의 비율을 높이는데 그칠 것이다. 대체가능 작업비율이 높다면 창의적 작업의 비율을 높일 뿐만 아니라, 일자리 자체도 자동화할 것이다.
노동자 1만 명당 로봇의 대수를 의미하는 로봇밀도가 한국사회의 경우 2021년 기준 1,000대를 달성하여 전세계 1위였다. 경쟁국인 독일과 일본은 각 3위와 4위로 우리의 대략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이에 비추어보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면 4차산업 일자리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3차산업의 일자리는 빠른 속도로 자동화될 가능성이 크다.
기술혁신 = 더 많은 일자리?
앞에서 언급한 프레이 등의 연구는 전세계적으로 유행을 탔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연구가 진행되었는데, 그 결과는 미국보다 심각했다. 그런데 프레이 등의 연구가 발표되고 10년이 지났으나, 기술실업의 징후는 나타나지 않았다. 일부 일자리는 사라졌으나, IT 분야 등에서의 일자리도 늘었다. 산업혁명 이후 기술혁신은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었다. 기존 일자리는 사라지고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은 이러한 역사적 경험에 바탕을 둔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공지능의 지지부진한 발달도 있었다.
골드만삭스의 보고서 이후, 이코노미스트는 ‘일자리는 인공지능에 의해 쉽게 대체되지 않을 듯(Your job is probably safe from artificial intelligence)’라는 긴 제목의 글을 게재하여 우리를 안심시킨다. IT 기술은 명목 경제성장에 눈에 띄는 기여를 하지 않았다. 노동조합을 포함한 이해관계자의 사실적 힘에 의해 일자리가 사라지는 속도가 늦춰졌으며, 역사적으로 보아도 일자리가 사라지는 속도가 빠르지 않았다.
실제 이코노미스트가 인용한 OECD 자료에 따르면 선진국의 경우 과거 10년 동안 평균 실업률이 절반으로 줄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우리나라 실업률은 2.9%로 10년 전인 2013년의 3.1%보다 줄었다. 참고로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실업률은 3.7%로 OECD 국가 중 5번째로 낮다. 실업률만 본다면 한국사회에서는 기술실업의 징후가 보이지 않는다.
전환의 시대
ChatGPT와 같은 언어 인공지능에 주목하는 이유는 빅뱅 파괴(Big Bang Disruption)의 기술 채택 곡선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과거 기술 채택이 장기간에 걸쳐 정규분포의 형태를 보이는 데 반해, 최근 빅뱅 파괴 기술은 상어 지느러미 형태를 보인다. 상어 지느러미 패턴이란 단기간 내에 특정 기술이나 상품을 채택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을 때 나타난다. 전화기 보급대수가 1억대를 넘기는 데 75년이 걸렸다. ChatGPT의 경우 사용자 1억명에 도달하는 데 단 2개월만 걸려, 상어 지느러미 형태의 패턴을 보인다. ChatGPT는 빅뱅 파괴 기술이다.
ChatGPT가 빅뱅 파괴를 보일 수 있는 이유는 언어를 처리하고 생산하는 인공지능으로서 꽤 쓸만한 성능을 보였기 때문이다. ChatGPT와 같은 언어 인공지능을 거대언어모델이라 한다. 규모가 매우 큰 언어 분야의 인공지능이란 뜻이다. 그런데 거대언어모델에 ChatGPT만 있는 게 아니다. 도표와 소리를 해석하는 거대언어모델, 의료나 금융 등 분야에 특화된 언어 거대언어모델, 오픈소스 거대언어모델 등이 등장하고 있다. 특히 오픈소스 거대언어모델은 다양한 활용과 개발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거대언어모델과 로봇을 연결하는 시도도 활발하다. 로봇이 사람의 말을 이해하고 사람의 지시에 따라 작동할 것이다. 인간의 노동과 활동의 다수가 언어를 기반으로 하며, 지적 활동과 결과의 다수도 언어다. ChatGPT가 역사시대 이후 가장 빠른 확산속도를 보인 것과, 다수의 거대언어모델이 백가쟁명 식으로 경쟁하는 이유다.
급격한 기술의 발달과 빅뱅 파괴의 기술 채택은 노동환경에 영향을 미친다. 노동자도 그렇지만 기업도 이에 적응할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는다. 이코노미스트의 기사는 심리적 위안을 주지만, ChatGPT와 같은 빅뱅 파괴 기술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지금 우리 인류는 산업사회 이후를 기점으로 한번도 경험하지 않은 역사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진단이나 전망이 처음은 아니다. 제레미 리프킨은 1995년 ‘노동의 종말’에서 급진적 주장을 폈고, 2013년 프레이 등의 주장은 그 연장선상에 있으며, 2016년 WEF가 4차산업혁명으로 인해 전세계에 수백만개의 일자리 감소할 것이라 내세운 주장은 그 바톤을 이어 받은 것이다.
언어 인공지능을 포함한 인공지능의 급격한 발달과 디지털 전환으로 인한 기술실업의 가능성은 높으나, 여전히 불확실성은 존재한다. 이코노미스트의 조심스런 진단에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기후변화의 가속화와 이로 인해 에너지 사용을 절제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기후변화로 제품을 생산할 수 없어서 생산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생산하면 안 되기 때문에 생산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인류의 제품 생산과 서비스 공급은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은 지 오래다. 지구 생태계가 지속가능하려면, 인류의 전통적인 일자리는 지속가능해서는 안된다.
노동 4.0에 비추어 본 전환적 개혁
노동 4.0(Arbeit 4.0)은 독일의 4차산업혁명에 대응한 노동정책이다. 독일은 사회적시장경제를 택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의 자유시장경제와는 대조적인 민주국가 경제 시스템의 하나로, 사회복지와 일자리 안정화 등 사회 공동체의 가치에 상대적 비중을 둔다.
독일은 디지털전환 시대에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4차산업혁명을 기획했다. 제조업 분야의 디지털 전환인 4차산업혁명은 일자리와 국가 복지 시스템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독일은 노동 4.0, 직업교육 및 훈련 4.0, 복지국가 4.0 등의 정책 시리즈를 내놓았다. 디지털 전환이 가져올 미래변화에 대응한 독일의 호들갑은 시의성 있고 현명했다.
그렇다면 우리 한국사회는 노동제도와 관련하여 거대언어모델 등이 가져올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독일의 노동 4.0을 그대로 가져올 수 있을까? 참조는 할 수 있겠으나, 단순 모방은 어렵다. 노동 4.0는 독일의 사회적시장경제와 연결되어 있고, 사회적시장경제는 독일의 “거시경제적 특징과 미시경제적 특징”이 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강조하자면 역사적 맥락과 독일 시민의 내러티브가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단순 모방이 아니라 전환적 재해석이 필요하다.
거대언어모델은 3차산업과 4차산업 일자리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4차산업 일자리는 지식산업으로, 거대언어모델은 지식생산성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 이는 지식반감기를 단축시킬 것이다. 지식반감기란 지식의 반이 더 좋은 지식 등으로 대체되는 데 걸린 시간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대학에서 배운 지식의 반감기는 6년에 불과하다. 앞으로 이는 더욱 단축될 것이다. 지식반감기에 대응하여 한국사회가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주기적으로 집중적인 학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이를 지원해야 하고, 노동 유연성이 실질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노동 유연성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가 독일정도로 줄어야 한다. 정부는 주기적 집중교육을 위한 나노 학위 체계 준비, 학비 지원 등의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거대언어모델은 직장의 업무 수행 풍경을 바꿀 것이다. 단순 암기력과 단순 기획력이 업무능력이 아니라 거대언어모델에 질문할 수 있는 힘, 비판적 사고, 발산적 사고가 업무능력이 될 것이다. 이들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창의성과 게으름, 선량함과 정직함을 갖춘 인력을 중시해야 한다. 조직 내부의 사일로 현상에서 벗어나야 하며, 직장이 곧 공부하는 공간으로 바뀌어야 한다. 인적자원 채용기준이 바뀌어야 하며, 사용자의 통찰력과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 개개인의 내러티브 변화도 필요하다. 이른 나이에 경제적 자유를 추구하는 파이어족의 내러티브를 버려야 한다. 명품소비 1위라는 천박한 빈곤함의 내러티브에서 탈피해야 한다. 앞으로 우리의 일이 공부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평생교육 문화와 태도를 정착해야 한다. 선량함과 정직함에 더 높은 개인적 가치를 두어야 한다.
정부, 기업, 가정과 개인의 전환적 개혁을 위해서는, 높은 곳에 올라 세계와 한국의 정치•경제•사회의 변화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가짜 진영 논리가 만들어 낸 그물을 벗겨낼 수 있어야 한다. 한국사회를 억누른 역사적 트라우마를 극복해야 한다. 시험에서 승자는 괴물이 되고, 패자는 루저가 되는 교육 시스템과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의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그래서 우리 시민사회가 둥근 탁자에 모여 담담하고 긴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 과정이 어렵겠지만 충분히 가능하다. 한국사회가 보인 대동정신과 위기극복의 전통을 바탕으로, 우리는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가능하게 하는 꿈을 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