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쟁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당신에게
‘안녕하세요’라는 말이 요즘은 많이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요즘은 안부를 묻는다는 것의 의미를 잘 모르겠습니다. 밤새 모니터를 통해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습과 의료시스템 붕괴, 난민 상황들을 모니터링하고, 그 곳의 활동가들과 간신히 연결을 이어나가면서 지내고 있는 동료들에게, “잘 지내요?”라는 인사가 잘 나오지 않더라고요. 아마 이 글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마음일 것 같아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또 다시 수십, 수백, 수천 명의 죽음을 마주해야 하니까요.
저는 2018년부터 병역거부운동과 무기거래반대운동을 하는 평화활동가로 지내오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악플과 비난을 경험했어요. 이를테면 ‘군대도 안갔다온 게 어디서 큰 소리냐’, ‘무기가 있어야 우리를 지키는 거다’, ‘빨갱이다. 쳐서 죽여야 된다’ 이런 말들을 들어왔어요. 근데 저를 정말로 상처입게 만드는 말은 그런 말들이 아니더라고요. 전쟁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거나, 정치적으로 필요악이라는 말, 어차피 내 일은 아니라는 말들을 들으면서 저항 없이 쭈그러드는 제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자포자기와 자조가 섞인 말들이 가져다 주는 절망은 생각보다 큰 것이더군요. 불과 한 달 만에 1만 개의 찬란한 우주가 사라졌는데요 (각주1). 우리 곁에 숨쉬던 그 많은 이웃들을 한꺼번에 잃었는데요. 이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니요. 정말 그럴까요? 가끔은 그 말에 맞서 싸우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말았다
사흘 전 신촌역 부근이었습니다. 약속시간에 늦어서 바쁘게 걸음을 서두르고 있었어요. 어디선가 퍽 퍽 퍽 무언가를 때리는 소리가 나서 고개를 돌려보니 횟집이었습니다. 사람들로 꽉 찬 횟집 앞이었어요. 제 몸통의 반 만한 물살이, 소위 ‘생선’이라고 하죠. 그 물살이가 뜰채에 잡힌 채 아스팔트 위에 마구 내동댕이 쳐지고 있었습니다. 아마 물살이를 회로 뜨기 전에 죽이거나 기절 시키는 과정이었겠지요.
고통에 몸부림치는 팔딱거림이 멈출 때까지 몇 번이고 퍽, 퍽, 퍽, 차갑고 단단한 아스팔트 위로 내동댕이 쳐지고 있었습니다. 제 몸통 반만한 물살이가 피를 흘리면서요.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아버렸어요. 물살이가 고통스럽게 죽임당하고 있었고, 그 장면이 너무 끔찍했지만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가던 길을 서둘렀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순간이 계속 떠올랐어요.
‘왜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말았을까.’
전쟁이 남의 일이고,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은 어쩌면 질끈 눈을 감아버리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믿기지 않는 잔혹한 대량학살을 매일같이 뉴스로 보고 있는데, 그게 너무 끔찍하잖아요. 사상자를 가리키는 어마어마한 숫자들 뒤로, 방금까지 살아 숨쉬던 삶들이 있다는 걸 차라리 믿어버리지 않고 싶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저들의' 죽음과 ‘나의’ 삶을 분리시켜버리는 게 아닐까요?
의도하지도, 원하지도 않았을테지만, 무언가를 목격한 사람에게는 책임이 부여된다고 믿습니다. 길을 걷다 옆 사람이 갑자기 쓰러진다면 누구든 119에 전화를 걸테니까요. 차라리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싶은 그 장면들을 우리는 지난 한달 간 계속해서 목격해왔습니다. 그리고 그 전에, 더 오랜시간 지속되어온 점령과 억압을 애써 외면해왔지요. 저는 그 학살을 목격한 이상, 우리 모두에게 이미 책임이 생겨버리고 말았다고 생각해요. 폭력을 승인하지도, 폭력에 익숙해지지도 않을 책임, 그리고 이 전쟁을 끝내라고 말할 책임 말입니다.
책임을 외면하지 말아야 할 다른 이유
그리고 그 책임을 외면하지 말아야 할 수많은 이유 중의 하나는, 한국이 세계 9위의 무기수출국이라는 것입니다. 지난 10년간 한국의 이스라엘 무기수출액은 3배 가까이 늘어났습니다. 2014년 가자분쟁으로 대다수가 민간인이었던 수천 명 팔레스타인인이 희생된 이후에도 한국 정부는 꾸준히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수출을 허가했고, 한국의 무기기업들은 배를 불려온 것이죠.
바로 지난 달 있었던 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무기박람회 아덱스 (ADEX) (각주 2)에서는 이스라엘관을 운영하며 이스라엘 국방부와 무기 회사들이 비즈니스를 펼쳤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정당화하며 ‘전장에서 증명된’ 이스라엘의 무기들을 홍보하고 있었어요. 그 무기들의 성능을 증명하는 ‘전장’은 그간 이스라엘 점령군으로부터 셀 수 없는 폭격과 전쟁범죄를 겪은 팔레스타인이지요. 이 전쟁으로 방산업계는 또 한 번 절호의 찬스가 왔다며 무기 판매에 불을 붙이고 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면 크게 웃는 정치 카르텔과 부패한 권력자, 그리고 무기상인들을 곁에 둔 이상, 이 전쟁은 남의 일일 수도, 남의 일이어서도 안됩니다. 전쟁은 우리 일상 속에 켜켜이 쌓인 차별과 착취, 암묵적 동의, 승인으로 인해 만들어지고 지속됩니다. 전쟁을 막기 위해 달리할 수 있는 게 없지 않다는 말입니다. 무기 판매 중단을 요구하고, 이스라엘 군대를 지원하는 기업들을 보이콧하고, 서명운동에 참여하고, 현지의 상황과 목소리를 알리는 글과 영상을 공유하고, 시위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이런 행동들이 있을 때에만 전쟁을 멈출 수 있습니다. 무력감에 젖을 이유가 없습니다. 해야 할 일이 이렇게나 많으니까요.
전쟁을 끝내는 힘은 우리에게 있다
어제 (11/17), 서울 보신각 앞에서는 전쟁으로 희생된 모든 이들을 애도하는 신발들의 시위가 하루 종일 진행되었습니다. 이 시위는 시민들의 신발 기부로 이루어졌어요. 신발들의 수신처였던 참여연대 사무실에는 수십개의 택배 박스가 쌓였습니다. 애초에 2천 켤레를 목표로 시작했던 신발 기부는, 3천 켤레의 신발이 도착하며 마감되었습니다. 그 신발들을 하나 하나 옮기며 많은 얼굴들을 떠올렸습니다. 저마다의 사랑과 희망과 꿈, 그리고 절망과 분노 역시 품었을 삶들을 떠올렸어요. 그리고 뉴스로, 인터넷으로 들려오는 가자지구의 소식에 눈물 지으며 신발을 모아 보내준 수많은 시민들의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그 시민들의 마음과 호소가 하루 동안 보신각 앞을 채웠습니다. 그 호소는 전쟁 중단을 요구하는 강력한 메세지가 되어 국내외에 전달되었고요. 전쟁을 끝낼 힘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것을 더더욱 발휘할 때, 우리는 마침내 전쟁을 끝내게 되겠지요.
너무 끔찍해서 때로는 눈을 질끈 감고 싶어지지만, 그래도 끝까지 눈을 부릅뜨고 똑똑히 바라보자고 용기내어 말을 건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장면의 목격자가 된 책임을 함께 지자고요. 그 책임이 때론 버겁고 힘들지 몰라도, 도망가는 것 보다는 덜 버겁지 않을까요. 다음 시위는 11월 26일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인근에서 진행됩니다. 함께해주세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피해주민 긴급구호를 위한 모금에 참여해주세요. (클릭)
(각주 1) 지난 10월 7일 이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약 1만 2천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각주 2) 한국에서는 한 해에도 여러 차례 무기박람회가 열린다. 그 중 가장 큰 규모인 서울 아덱스가 매 홀수년 10월에 개최된다. 올해 서울 아덱스는 10월 17일부터 22일까지, 성남 서울공항에서 진행됐다. 피스모모를 비롯한 국내 평화/인권/기후 단체들이 아덱스에 저항하는 캠페인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