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가 뭐길래
“저건 가짜뉴스다”  트럼프 시대로 회귀한 느낌이다. 최근 언론과 정부를 달구고 있는 마법의 언어, ‘가짜뉴스’ 때문이다.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눌 수 있는 마법의 단어다. “가짜뉴스” 한 마디면 합리적인 토론은 사라지고, 공론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가짜뉴스 유행을 일으킨 트럼프가 백악관에 있는 동안 사회적으로 수많은 갈등이 불거졌고, 현재까지도 봉합되지 않았다. 그 네 글자가 자유민주주의의 최전선에 있는 미국에 주는 악영향은 강력했다. 갈등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정치 속성 상 가짜뉴스는 매력적인 단어였을 것이다. 지지층을 결합하고, 위기를 타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위기 국면 때마다 ‘가짜뉴스 프레임’을 잡는 것도 정치공학적 측면에서 보면 타당한 결정이다. 문제는 정부마저 가짜뉴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대통령에게 당적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국민의 대표다. 여야가 의석수를 두고 무한 갈등을 벌일 때 대통령은 그 이상을 바라봐야 한다. 여야의 싸움은 지지층 간의 갈등이지만, 대통령이 중심이 된다면 국민이 분열될 수 있다. 귀걸이도 코걸이도 되는 ‘가짜뉴스’ 우선 가짜뉴스가 정확히 뭔지 알아야 한다. 가짜뉴스라는 단어의 뜻을 알고 사용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단언컨대, 없다. 정확한 뜻이 없기 때문.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된다. 우선 서울서부지방법원은 한겨레와 극우성향 기독교단체 간 소송에서 가짜뉴스를 “핵심적인 요소는 내용의 진실성 여부와 의도성”이라고 했다. 악의적인 목적으로 만든 허위정보라는 거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가짜뉴스를 “정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언론 보도의 형식을 하고 유포된 거짓 정보”라고 했다. 언론재단 기준대로라면 법적인 의미의 언론사 보도는 ‘가짜뉴스’가 될 수 없다. 언론사 보도는 ‘언론 보도 형식’이 아니라 보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결국 ‘의도성’이 핵심이지만, 당사자가 아닌 이상 의도성을 확신하기 어렵다. 의도가 있을 거라고 추정할 뿐이다. 결국 가짜뉴스는 특정 정보를 ‘의도성 있는 정보’로 매도하는 무기로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최근 정부가 가짜뉴스를 주요 정책 의제로 삼는 것에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언론 보도에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단정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 자신을 향한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메시지로 읽힐 여지도 있다. 되돌아보면, 시작은 지난해 9월 있었던 ‘MBC 바이든-날리면’ 사건이었다. 진실은 대통령밖에 모른다. 다만 정말 억울했다면, MBC가 오보를 낸 것이라면, 조금 더 세련되게 대응하는 방법도 있었을 거다. 설명을 통해서 말이다. 그러나 정부는 ‘가짜뉴스’라는 말로 사건을 단순화했다. 외교적·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의문이 많았지만, 가짜뉴스라는 말이 나온 순간 모든 것이 갈등이 됐다. MBC는 악의적 보도를 한 언론사로 규정됐다. 정의도 안 된 가짜뉴스로 정책 만드는 정부 가짜뉴스가 특정 언론을 비판하는 용도로만 사용됐다면 그나마 괜찮았을 수 있다. 문제는 정부가 ‘가짜뉴스’를 제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은 지난 4·19 추도사에서 특정 세력이 허위 선동과 가짜뉴스로 민주적 의사결정 시스템을 왜곡·위협하고 있다고 했다. 다음날 문체부는 가짜뉴스 퇴치를 위한 TF를 꾸리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언론재단에 가짜뉴스 신고·상담센터를 설치하고, AI를 통한 가짜뉴스 감지시스템을 개발 지원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언론진흥을 위해 만들어진 언론재단에 규제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센터를 만드는 것도 모순적인 일인데, 가짜뉴스 감지시스템은 실체도 모호했다. 더구나 그 시스템을 만들겠다던 ‘서울대 저널리즘스쿨·싱크탱크 준비위원회’는 정식 단체도 아니었다. 이후 문체부는 후쿠시마 오염수 논란을 TF의 ‘첫 작품’으로 꼽았다. 오염수 안전에 대한 우려를 가짜뉴스로 보고 대응에 나섰다. 문체부는 수억 원을 들여 유튜브 광고를 하고, 4천만 원으로 KTX에 ‘오염수는 안전하다’는 내용의 책자를 비치할 뿐이었다. “오염수에 대한 우려가 악의적 의도를 가진 허위 사실인가. 오염수는 완전무결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설득시키지 못했다. 또 언론재단은 민간단체 지원사업을 통해 자유언론국민연합에 3천만 원을 지원했는데, 이들 단체는 이 돈으로 ‘가짜뉴스 시상식&기념토론회’를 개최했다. ‘나쁜 가짜뉴스’를 선정해 언론을 바로잡겠다는 명분으로 치러진 이 행사에선 KBS·MBC 등 공영방송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가짜뉴스 후보들은 대부분 현 정권에 비판적이거나, 관련 의혹을 제기한 보도였다. MBC 바이든-날리면 보도, 후쿠시마 오염수 의혹도 10대 가짜뉴스에 꼽혔다. 가짜뉴스 행사에 세금이 투입된 것이다.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보도 논란이 제기되자 정부의 가짜뉴스 드라이브는 한층 더 강화됐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원 스트라이크 아웃’을 거론한 것에 이어, 18일에는 ‘가짜뉴스 근절 종합대책’이 발표됐다. 내용은 충격적이다. ‘원 스트라이크 아웃’으로 폐간 조치된 언론사 사업자가 다른 매체에서 활동하는 것을 법으로 막겠다는 것이다. 직업선택의 자유와 언론자유라는 대원칙을 무시하는 조치다. 또한 정부는 인터넷 분야에서 가짜뉴스 심의를 하겠다고 밝혔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인터넷 언론 보도를 심의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방통심의위가 인터넷 언론 보도를 심의할 법적 근거는 빈약하다. 무엇보다 방통심의위는 표면적으로 민간기구이지만, 헌법재판소는 ‘국가행정기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규정했다. 이런 성격을 가진 방통심의위가 가짜뉴스가 무엇인지 판별하고 언론 보도를 심의한다면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이 모든 조치의 중심에는 ‘가짜뉴스’가 있다. 가짜뉴스가 무엇인지 정하지도 않은 채 정책부터 내놓은 것은 성급한 결정이다. 실제 18일 정부 브리핑에서 한 기자는 “정의나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가짜뉴스를 어떻게 근절하시겠다는 건지 그 부분이 의아하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도 나선 가짜뉴스 규제, 반복하는 윤석열 정부 정부는 ‘문재인 정부 때도 가짜뉴스를 규제하려 했다’며 억울함을 표할지 모르겠다. 맞는 말이다. 문재인 정부 역시 각종 가짜뉴스 규제론을 들고나왔다. 이효성 전 방통위원장이 사의 표명을 했을 당시 ‘가짜뉴스 대응을 못해 직을 내려놓은 것’이라는 추측이 언론계를 뒤덮기도 했다. 다만 당시 언론계는 정부가 가짜뉴스 대응에 나선 것을 강하게 비판했고, 결국 현실화되지 못했다. 과거 잘못을 답습할 게 아니라 반복하지 않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 잘못된 정책과 선택을 반복할 이유는 없다. 이렇듯, 우린 ‘가짜뉴스’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정부가 앞장서서 가짜뉴스 노래를 부르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정책 비판은 수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며, 거대 의석을 가지고 있는 야당 역시 미덥지 않다. 결국 스스로 정신을 차려야 한다. ‘가짜뉴스’라는 말을 반복하는 이가 있다면 의심해야 한다. 가짜뉴스라는 이름으로 편을 가르고 있는 건 아닌지, 가짜뉴스라는 딱지 아래 숨겨진 진의는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진 않지만, 가짜뉴스라는 흐름에 휩쓸리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때다.
언론 공공성
·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