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과 폭력의 사이버 공간 살아가기
사이버 공간,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요?
사이버 공간, 유사어로 온라인 환경, 디지털 공간 즉 인터넷 세계는 현실 세계와 다른 큰 특성들이 있습니다. 익명성이 보장되고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고 데이터화 되지요. 이런 점들로 인해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우리의 삶은 훨씬 편리하고 윤택해졌을 뿐 아니라, 재미있고 쾌락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이버 공간은 모두에게 편안하고 즐겁기만 한 파라다이스는 아닙니다. 누군가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기도 하고, 모욕이나 비난을 받기도 하고요, 성폭력이나 성착취를 겪기도 합니다. 마치 현실 세계처럼요.
각종 인터넷 플랫폼에 성적인 촬영물이 동의없이 유통되는 시장이 존재하고, 성적으로 사진이나 영상을 합성하면서 피해자를 모욕하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정서적 혹은 사회적 위계를 활용해 취약한 사람들을 길들여 폭력을 저지르기도 하고, 그러다가 오프라인에서 만나 물리적인 성폭력까지 이어지기도 합니다.
편리하고 유용한 사이버 공간, 디지털 세계에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놀라운 기술발전의 폐해일까요?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입니까?
스마트폰 보급이 매우 높아졌기 때문일까요?
기술이 발전해 편리해진 사이버 공간의 특성들은 성폭력이나 성착취 또한 편리하게 저지를 수 있는 조건일 뿐입니다. 문제는 여성을 성적 존재로 대상화하며 도구, 상품으로 이용하고 동등한 인격체가 아니라 물화시키는 여성혐오(misogyny)입니다.
여성에게 성적인 촬영물을 유포하겠다는 협박은 실제로 촬영물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가능합니다. 성적인 촬영물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 자체가 위협이 되기 때문입니다. 협박은 피해자의 약점을 빌미로 통제하는 방식으로 일어납니다. 유포 협박이 강력한 효과를 내는 이유는 실제로 여성의 성적 촬영물이 유포되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피해자도, 가해자도, 우리들도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이버 공간에는 성적으로 문란한 여성이라는 허위사실과 함께 합성사진이 유포되기도 합니다. 사진은 가짜일 뿐이고, 그저 섹스를 많이 하고 다닌다는 헛소문일 뿐인데 이게 왜 여성의 평판, 나아가 생존의 위협이 될 수 있을까요? 합성물이 가짜든 진짜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AI로 만들어진 정교한 딥페이크 뿐 아니라, 누가봐도 조악한 합성물이라도 ‘나’가 성적으로 문란하고 음탕한 존재로 여겨질 때의 낙인이 문제입니다. 여려 명의 사람과 섹스를 많이 하는 여성은 흉이 되고 공동체에서 비난받거나 배제되고 심지어 탈락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섹스를 많이 하는 남성은 여성만큼 흉이 되지도 않고 오히려 이를 과시하고 칭송받기도 합니다. 이런 차이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요?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확히는 여성과 남성의 불평등한 권력 문제입니다. 같은 사진, 영상, 소문이라도 남성의 것일 때와 여성의 것일 때 전혀 다른 의미가 됩니다. 성폭력은 본질적으로 이 권력 차이에 의해 발생하며, 여성은 비인격화 되어 ‘야한 몸’으로 소비되면서도 음탕하면 욕먹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규제해야할까?
사이버 공간의 성폭력 문제를 논할 때 일각에선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권’을 근거로 과잉규제에 대한 우려를 내놓기도 합니다. ‘야동 사이트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단하고, 대화 내역을 검열하겠다는 것 아니냐, 과도한 국가 규제다!’ 라는 것이죠.
표현의 자유, 프라이버시권은 매우 중요한 권리입니다. 그런데 지금 사이버 공간에서 이 권리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보장될까요?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10대 시절에 두드러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외모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고 성적인 호기심이 생기며 인정욕구가 커지기도 하지요. 무척 자연스러운 과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10대는 곧 ‘학생’이라는 규범적 위치에 놓입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하고 함부로 이성친구를 사귀거나 섹스를 하거나 자위를 하는 건 불량하다고 평가받죠. 그렇다면 성적 실천을 하고 싶은 10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10대 여성이 자신의 신체변화가 신기하고 예쁘다고 느꼈어요. 자신이 보기에 무척 섹시한 여성의 신체인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 눈에 그렇게 보일지 궁금하고 섹시해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을 확인받을 방법으로 SNS 가계정을 사용하게 되었고, 허위정보로 계정을 만들어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자신의 벗은 신체 사진을 업로드 했습니다. 댓글에는 이 여성의 인정욕구를 마구 채워주는 칭찬들로 가득했고 여성이 더 벗기를 추동하는 말들이 달렸습니다. 그러다 어떤 익명의 사람과 메시지를 주고받게 되었고, 여성이 신상정보를 공유하자 바로 이런 사진을 올렸다는 사실을 학교에 소문내겠다고 협박하며 성착취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남자친구를 사귀고 싶었던 여성이 채팅어플에 글을 올렸습니다. 메시지를 주고받던 어떤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고 사귀게 되었습니다. 매일 영상통화를 하고 가깝게 지내며 폰섹스를 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남성이 너무 집착하는 것이 불편해져 헤어지자고 했고, 이에 남성은 폰섹스할 때 사실 몰래 녹화를 해두었다며 헤어지면 유포할 거라고 협박했습니다.
위 두 개의 사례에서 피해 여성들에게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권이 보장되고 있을까요?
여성들의 성적인 실천은 결국 피해로 도착하며 표현의 자유와 프라버시권은 보장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섹시한 나를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고 연애를 하고 싶었을 뿐인데, 성별 권력에 따라 이 권리들이 편향되어 있을 때 우리는 과연 누구의 표현의 자유를 지켜야 하는 것일까요? 어떤 자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해야합니까?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지?
미래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더 흐릿해질 것입니다. 이미 인터넷 없이 사는 세상을 우리는 상상할 수가 없지요. 어떤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문제가 일어난 사이트의 폐쇄를 논하고 운영자 처벌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실 성별 권력구조가 해체되지 않는 한, 여성혐오를 페쇄시키는 것이 아닌 이상 어차피 또 다른 플랫폼으로 성폭력이 이동할 뿐입니다.
이제는 여성들을 조심시키는 것이 성폭력 문제의 해결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사이버 성폭력 또한 피해를 막기 위해 채팅을 못하게 하고, 사진을 못 올리게 하고, 인터넷에서 사람을 못 사귀게 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인터넷 플랫폼 사업자는 온라인 문화에서 이윤을 창출합니다. 이용자들이 접속을 많이 할수록, 게시물을 많이 올릴수록 더 큰 돈을 벌 수 있지요. 웹하드 카르텔의 양진호, 웰컴투비디오의 손정우, 텔레그램성착취 사건의 조주빈이 그러했듯 성폭력을 유통하며 성착취 산업을 형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현재 국내 법으로 직접 유포 행위를 하는 자는 처벌할 수 있지만, 시장을 구성하는 자들에게 책임을 묻기는 까다롭습니다. 이들에게는 어떻게 책임을 물어야하고, 또 이 시장에 이용된 플랫폼 사업자에게는 어떤 책임이 있을까요?
텔레그램 운영자의 책임, 채팅어플 사업자의 책임, 디시인사이드의 책임, 카카오의 책임, 네이버의 책임, 구글의 책임은 무엇일까요? 이들은 각각 무엇으로 어떻게 돈을 벌 수 있는 것이고 그 수익의 바탕에는 누가 착취되거나 어떤 폭력이 방임되는 것일까요? 책임을 잘 발라내 정교하게 규제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사이버 공간은 해방적이면서도 동시에 폭력적인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폐쇄와 보호주의를 넘어 어떻게 사이버 공간을 살아가야 할까요? 위험하니까 사이버 공간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성적 실천이 피해로 귀결되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현실 세계의 성폭력이 끊이지 않는 한 사이버 공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피해가 발생할 때 그 사이트의 문제, 가해자 개인의 문제, 미련한 피해자의 문제라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취약한 사람에게 어떤 피해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그 배경과 맥락을 살펴야 합니다. 누구에게는 편리하고 자유로운 온라인 환경이 누군가에게는 왜 위험과 폭력이 되는지 이 고민을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함께하기를 제안합니다.
안전한 디지털 공간을 바라는 캠페이너들의 이야기를 모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