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정책의 도약을 위해서는 성평등 관점이 필요하다.
연구 제목:
기후변화 정책의 성평등 관점 적용을 위한 정책 흐름 분석
1. 시작하며
기후변화라는 거대하고 복합적이면서도 다층적인 폭풍을 뚫고 들어가보면 그 심연에는 가부장제를 밑거름으로 발전되어 온 자본주의가 버티고 서 있다. 그리고 기후변화는 자본주의 기반의 사회 내에서 다양한 사회적 집단(여성/남성, 장애인/비장애인, 부자/빈자, 젊은이/노인, ...)에게 서로 다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편, 기후변화가 심화됨에 따라 국제사회에서는 관련한 논의가 심도 있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인류가 내뿜고 있는 탄소 배출량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 뿐 아니라 기후변화가 야기하는 수많은 ‘변화’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 전세계 국가들이 머리를 맞대며 정책을 세워나가고 있다. 다양한 논의 속에서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논의 또한 최근 화두가 되고 있다.
나의 연구는 기후위기 속에서 가중되고 재생산되는 사회적 불평등, 그 중에서도 성불평등 문제를 응시하고, 궁극적으로는 젠더적 관점에서 기후변화 정책을 진단함으로써 기후변화 시대의 정책이란 어때야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2. 연구의 배경
(1) ‘사람의 문제’
기후변화는 상대적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극심해지는 폭염, 한파,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는 사회적으로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서로 다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효과적인 기후변화 정책이란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이들의 목소리들에게 응답해야 한다.
그러나 그간의 기후변화 정책은 과학적인 측면에서의 논의에 무게가 실렸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 사회에 이르기 위해서 우리는 얼만큼의 탄소를 감축해야 한다.”, “기온이 1도 상승하면 극한 기상이변의 강도와 빈도가 얼만큼 증가할 것이다”… 매우 중요한 논의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논의에만 국한하여 진행되는 논의는 또다른 중요한 측면을 간과하게 된다. 바로 우리 사회가 기후변화에 따라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어떠한 사회적 변화가 필요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다. 즉, ‘사람의 문제’다.
기후변화 속의 ‘사람의 문제’에는 다양한 사회문제가 포함된다. 장애, 빈곤, 성불평등, 인권, 노동 등, 기후변화가 미칠 파장은 우리 사회의 속속들이 가닿을 것이고, 기존의 문제를 더욱 심화하는 방향으로 우리 사회를 몰고가게 될 것이 자명하다. 따라서 기후변화 대응 정책은 기후변화가 변화시킬 사회를 어떠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응답할 필요가 있다.
(2) 기후변화와 성평등
이와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최근의 국제사회에서는 관련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나는 성평등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기후변화와 성평등을 연결하는 데 가장 핵심은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에 전세계 지역을 막론하고 여성이 더욱 취약한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에 여성의 사망률이나 경제적 피해가 월등히 높은데, 주요 원인으로는 가사나 돌봄 노동과 같은 여성의 사회적 역할, 여성을 통제하는 관습과 규범, 제한된 교육과 기술 접근성, 낮은 사회적/경제적 지위, 사회적 안전망에서의 소외 등이 꼽힌다. 또한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 가족이나 커뮤니티 내에서의 여성의 역할(이를테면 가사와 돌봄 노동의 수행)이나 행동양식(예컨대, 친환경 제품의 소비자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것)과 같은 것들을 고려하고 반영하는 기후위기 대응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연구와 논의가 최근 국제사회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결과, 지난 10년 동안 유엔기후변화협약이나 재해위험경감을 위한 Sendai Framework와 같은 전지구적 약속을 비롯하여 각종 이니셔티브와 국제사회의 협력에 “성평등(gender equality)"이라는 단어가 우후죽순 포함되기 시작했다. 또한, 기후변화가 여성과 남성에게 어떻게 다른 영향을 미치는지를 중심으로 연구가 많이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기후변화-젠더 논의의 흐름을 살펴보면 "기후위기 대응에 젠더를 고려해야 한다."라는 수사적 어구를 넘어선, "실제로 그래서 어떻게 해야 기후위기 대응에 젠더를 고려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실질적 방법론은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물론 이는 아예 단어조차 언급이 잘 되지 않던 불과 얼마 전과 비교한다면 큰 진전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제는 "문제가 있다”, “해야한다"를 넘어서 "그래서 어떻게 해야한다"에 대한 논의로 넘어갈 시점이다.
3. 나의 연구 소개
이 연구는 기후변화 정책에 어떻게 젠더를 고려해야 하는가를 탐구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는, “해야한다”는 있으나 “어떻게”가 부재한 상황에서, 기후변화 정책 담론을 분석하여 “왜 해야한다에서 어떻게로 넘어가지 않는가”를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연구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킹던(Kingdon)의 정책흐름모형을 중심으로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성평등 관련 기후변화 정책을 분석하고자 한다. 킹던의 정책흐름모형은 정책 결정 과정의 비순차성과 비합리성을 강조하는 정책 분석을 위한 이론적 틀로, 정책이 언제 어떻게 정책결정권자에 의해 주목을 받거나, 그렇지 않은지를 이해하도록 돕는다. 이 모형은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문제의 흐름(problem stream), 정치 흐름(politics stream), 정책의 흐름(policy stream)을 정의하고, 이 세 흐름이 모종의 계기에 의해 결합될 때 정책의 창(policy window)이 열림으로써 인식된 문제에 대한 대안이 의제로 선택된다고 본다 (Kingdon, 2010). 즉, 이러한 정책 흐름 분석은 언제, 왜, 어떻게 정책의 변화가 발생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
국가별 NDC(Nationally Distributed Contribution, 자발적 국가 기여)의 성평등 의제 반영 여부에 대해 기후 거버넌스, 정책 수립, 이행 등의 지표를 활용하여 분석한 한 연구에 따르면, 성평등 의제를 기후변화 정책에 가장 활발히 반영한 전세계 상위 10개국 중 노르웨이만이 유일하게 선진국에 속한다 (CARE, 2021). NDC는 파리협정 체제 하에서 각 국가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수립 및 이행하는 모든 행동과 노력을 총체적으로 포함하는 일종의 정책 문서로, 각 국가의 NDC를 보면 해당 국가가 어디에 중점을 두고 기후 행동을 펼치는지 등 기후변화 대응 전략을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성평등 의제를 NDC에 적극적으로 언급 및 반영하였다는 것은 국가의 기후변화 정책 수립과 이행에서 실제로도 성평등 의제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향후에도 그러할 것이라는 알 수 있다.
국가 정책 전반에 성평등 의제를 적극적으로 반영해 온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두 국가인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기후변화 정책 속 성평등 의제를 킹던의 정책흐름모형을 통해 살펴보고 비교분석함으로써 글로벌 차원의 성평등 논의가 각국의 기후변화 정책에 어떻게 번역되어 적용(또는 왜곡)되었는지 탐구하고 두 국가의 기후변화 내 성평등 정책이 어떻게 유사하고 다른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기후변화 정책에 성평등 의제를 효과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영향요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4. 연구의 의의와 향후 계획
결국, 기후변화 문제는 기술적으로만 접근해서는 해결할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와 권력관계, 문화와 관습 등 다양한 요소를 복합적으로 고려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 연구는 성평등과 관련한 기후변화 정책을 비판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그간 글로벌 성평등 의제가 기후변화 정책에 어떻게 번역되어 왔는지, 궁극적으로는 국제사회의 성평등 담론이 왜 국가의 실제 기후변화 정책에 반영되기 어려운지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원인을 파악함으로써 기후변화 정책이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이들의 목소리에 어떻게 응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자는 본 연구를 젠더와 기후변화를 연결하는 국내의 연구 생태계를 구축하는 프로젝트의 첫 단추로 삼고자 한다. 지난 10년 동안 기후변화와 젠더에 대한 연구가 국제적으로 관심을 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2019년까지 발행된 수백개의 연구 문헌 중 단 두 편만이 우리나라에서 발표되었다(송시원 외, 2021). 이 연구를 발판 삼아 젠더와 기후를 연결하는 세미나와 연구회 등을 진행하며 신진 연구자들과 함께 공부하며 후속 연구를 지속함으로써 국제사회의 거대한 담론에 기여할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기후변화 정책에 젠더를 비롯한 사회적 포용성을 향상할 수 있는 논의의 장을 마련하고자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참고문헌[1] 송시원, 최용상, 전혜숙, 강효지, 성창모, 백희영, & 이혜숙. (2021). 젠더 차이를 고려한 기후변화 연구 리뷰. 한국기후변화학회지, 12(2), 121-135.[2] 조효제. (2020). 탄소사회의 종말: 인권의 눈으로 기후위기와 팬데믹을 읽다. 21세기북스.[3] CARE. (2021). Report card: Where is gender equality in national climate plans (NDCs)? https://careclimatechange.org/...[4] Kingdon, J. (2010). Agendas, Alternatives and Public Policy, (2nd ed.). New York: Pear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