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 동물은 안전할까요?
제목엔 가장 대중적 미디어인 TV를 넣었지만, 요즘은 TV보다 넷플릭스 같은 OTT나 유튜브, 틱톡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훨씬 더 많이 봅니다. 스마트폰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보고 싶은 영상을 쉽게 볼 수 있죠. 여러분은 어떤 영상을 자주 보시나요? 저는 직업이 직업이다보니 동물 관련 영상을 많이 봐요. 가끔 반려동물의 일상을 찍은 영상도 보는데, 그럴 땐 거의 인간 초전도체가 되어 저항 0의 상태로 귀여운 동물들의 모습에 빠져들곤 합니다. ?
그런데 말입니다. 여러분은 동물 영상을 보실 때 동물의 안위가 걱정됐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 장면은 동물에게 너무 위험해 보이는데’, ‘동물이 스트레스 받지 않았을까?’ 따위의 걱정들이요. 인터넷, SNS, 동영상 플랫폼 등 미디어가 확장되며 미디어를 생산할 수 있는 주체들도 확장됐고, 동물의 출연도 크게 늘어났는데요. 귀엽고 사랑스런 동물을 보여주는 영상도 많지만, 동물에게 위협이 되고 스트레스를 주는 영상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최근의 뉴미디어들이 동물을 대중들에게 어떤 식으로 보여주고 있는지, 문제점은 무엇인지 함께 보실까요.
1. 동물을 생명이 아닌 소품·음식으로만 대합니다.
‘하늘 던지기 챌린지’를 아시나요? 귀여운 동물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떠 있는 사랑스런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챌린지에 참여했는데요. 동물도 고소공포증이 있기에 하늘로 높이 던지는 행위는 스트레스를 줄 수 있고요. 실제 동물을 던졌다 잘 받지 못해 동물이 다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즐거움을 위해 동물을 소품처럼 사용한 챌린지였어요. 반려동물이 아닌 식용으로 구분되는 동물들은 상황이 더욱 참담합니다. 닭, 돼지 같은 동물은 살아있는 장면에서도 치킨이나 삼겹살로 표현되기 일쑤고요. ‘생태계 교란종’으로 불리는 늑대거북, 뉴트리아 등은 혐오스럽고 우리에게 필요 없다는 편견 때문에 유튜버들이 잡아서 요리해 먹는 영상을 자주 볼 수 있어요. 생태계 교란종 자체가 인간중심적 용어인 데다, 생명을 함부로 해도 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2. 동물을 희화화합니다.
고양이에게 살아있는 물고기를 주는 것은 반려동물 일상을 찍는 유튜버들이 즐겨 찾는 레퍼토리입니다. 물 밖을 벗어난 물고기가 고통스럽게 펄떡이는 모습에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자막을 달고, 그것을 바라보는 고양이를 한층 더 귀엽거나 호기심 어린 것처럼 표현하기도 합니다. 어떤 유튜브 채널에서는 사고로 장애를 입은 진돗개에게 ‘뒷다리 파업’이라는 자막을 달아 많은 사람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어요. 동물이 고통스럽거나 긴장한 모습을 인간 입장에서 우스꽝스럽게 표현하는 것은 전혀 재미있지도, 즐겁지도 않습니다.
3. 동물 구매를 조장합니다.
귀여운 동물이 미디어에 자주 보일수록 사람들은 동물을 반려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돼요. 실제 한 예능에 장모치와와가 출연하고 나서 펫숍에서 장모치와와를 구매하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1년 뒤엔 유기동물 보호소에 버려진 장모치와와가 많아졌다는 기사가 났고요. 미디어에 출연하는 품종 동물들은 대부분 반려동물 공장이라 불리는 펫숍에서 생산·판매됩니다. 많은 동물들이 강제적으로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다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는 곳입니다. 생명을 물건화하는 가장 대표적인 공간이라 할 수 있어요. 한 해에 버려지는 동물이 10만 마리가 넘지만 미디어는 여전히 사람들의 동물 구매를 부추깁니다.
4. 동물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거나 의인화하여 편견을 생산합니다.
올해 가장 핫했던 동물을 꼽는다면 얼룩말 세로를 빼놓을 수 없겠죠. 아프리카 초원에서 볼 법한 얼룩말이 도심 주택가에 나타나 모두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미디어에서는 세로를 두고 ‘부모님을 잃고 반항심에 캥거루랑 싸운 뒤 동물원을 탈출했’고, ‘외로운 세로에게 여자친구를 만들어주었다’며 해피엔딩이라는 식으로 보도했는데요. 사실 세로는 울타리를 부순 게 아니라, 이미 부서져 있는 울타리를 나간 것이었고요. 무리생활을 하는 얼룩말에게 암수 둘이서만 지내도록 하는 건 적절한 해결책도 아닙니다. 세로에게 필요한 건 ‘여자친구’가 아니라 얼룩말에게 적합한 환경과 훈련이었습니다. 동물원의 총체적인 관리와 훈련의 부실을 미디어는 마치 세로의 문제인 양 잘못된 정보로 포장하고 불필요한 의인화로 호도하여 동물에 대한 그릇된 편견을 생산한 사례였습니다.
카라는 실제 동물이 출연하는 영상을 촬영하는 미디어 종사자들에게도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동물이 촬영현장에서 스트레스 받았는지’에 대해 59%의 종사자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변했고요. 13%의 동물은 촬영 중 죽거나 다쳤으며, 촬영을 위해 고의로 동물에게 해를 가한 경우도 8%나 되었습니다. 64%는 현장에 동물 촬영 가이드라인이 없었고, 35%는 동물 전문 스태프가 없었다고 답변했습니다. 동물을 촬영할 때 동물의 습성과 안전이 고려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020년 카라는 미디어 속 동물의 안전과 권리를 위한 <동물 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 어떠한 동물도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를 제작해 배포했습니다. 국내 최초의 가이드라인으로, 감독, 프로듀서, 작가, 1인 미디어 제작자에게 동물을 학대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촬영 가이드라인을 제시합니다. 더불어 미디어를 소비하는 시청자에게도 동물 학대 영상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데 도움을 주며, 학대 영상을 신고하는 방법까지 알차게 담고 있습니다. 참고로 미디어 가이드라인 책자는 카라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으실 수 있어요.
가이드라인을 살펴보면 동물의 안전을 위해 지켜야 하는 것들이 정말 많고 까다롭기도 합니다. 이걸 다 어떻게 지키냐고요? 지키기 힘들다면 실제 동물을 출연시키지 않고 CG나 만들어진 소품을 활용하시면 됩니다! 카라는 실제 동물 출연 대신 CG 처리나 소품 활용을 미디어 종사자들에게 최우선으로 권유하고 있습니다. 좋은 예로 가수 미노이 씨의 ‘잠수이별’ 뮤직비디오에는 실제 금붕어가 아닌 로봇 금붕어가 나온답니다.
촬영에 동원되는 동물들의 안전과 복지를 위해 시청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카라는 올해 초 ‘동물 출연 미디어 모니터링 본부’(이하 동모본) 홈페이지를 열었습니다. 미디어에 나오는 동물의 안전이 걱정되는 사람 누구나 동모본 홈페이지에 접속해 제보하실 수 있고요. 동모본에 올라온 제보를 카라가 모니터링해 제작사에게 동물이 안전한 환경에서 촬영했는지 질의하여 답변을 받기도 합니다. 이런 활동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미디어의 역할과 책임을 환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동물들이 출연하는 영상을 보고 즐기기만 한다면 미디어의 동물 학대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미디어에 출연한 동물의 안위가 걱정됐던 경험을 공유해주세요. 혹시 내가 본 이 영상이 동물학대는 아니었을까 고민했던 경험도 좋아요. 우리의 불편한 마음, 걱정하는 마음이 쌓이는 과정이 모든 생명의 안전과 권리를 존중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이 순간부터 프로 불편러, 프로 걱정러가 되신 여러분, 환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