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의 마지막 비상구, 기후정치
‘기후선거’, ‘기후정치’라는 말을 들어 보셨나요? 기후운동 진영은 2020년 21대 총선과 2022년 20대 대선에서 각각 ‘기후총선’과 ‘기후대선’을 주창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기후이슈는 선거이슈로 부상하지 못했습니다. 이유야 많겠지만 ‘위성정당’ 논란과 거대 양당의 ‘정권심판’ 프레임 속에서 기후이슈는 장식 취급을 받았습니다. 가끔 언론에 소개되는 다른 나라의 ‘기후투표’ 사례가 부럽기도 하고, 탈출구가 없어 보이는 기후위기 시대와 동떨어진 대한민국의 고착된 정치 질서에 냉소를 보내기도 합니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재난, 올해 22대 총선에서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아니, 녹색전환을 위한 어떤 계기를 만들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해야 한다는 당위를 주장하는 것 못지않게 현실의 정치 지형과 사회운동의 역량 그리고 국민 여론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1월 22일, 방대한 샘플을 통해 발표된 <기후위기 인식 설문조사>(녹색전환연구소, 더가능연구소, 로컬에너지랩 공동 주관, 17개 시도별로 1,000명씩 총 17,000명)를 통해 기후투표의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겠습니다. 전체 응답자 중 ‘기후위기 대응 공약이 마음에 드는 후보나 정당에게 투표를 고려하겠다’는 응답이 60%가 넘게 나왔습니다. 흥미로운 대목은 ‘평소 정치적 견해가 다르더라도, 평소 지지 정당과 다르더라도’, 그런 의견 분포가 확인됐다는 점입니다. 놀랍지 않나요? 그리고 기후정보 인지가 높고 기후위기에 민감하게 느끼면서 기후의제를 중심으로 투표할 의향이 있는 ‘기후유권자’가 33% 이상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조사 결과를 요약하면, 국민 1/3 정도가 기후유권자로 볼 수 있습니다. 공동 주관 기관의 연구자들은 이 숫자가 투표장에 그대로 반영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기는 합니다만, 기후이슈에 적극적으로 반응할 가능성이 있는 유권자들이 상당하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 응답자 중 ‘이번 총선에서 후보 공약 중 가장 큰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를 묻는 다른 질문에 대해서 기후이슈는 경제, 복지, 정치 이슈 등에 비해 응답 비중이 낮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아래 표처럼 기후유권자로 호명되는 집단에서도 비슷한 비중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33%와 60%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바를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연구자들이 강조하듯이, 이번 설문조사는 단순히 기후이슈에 대한 여론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성별, 계층별, 연령별, 지역별, 정치성향별, 가치지향별 등 차이와 특성을 파악하여 기후총선 캠페인 전략을 수립하는 데 활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야겠습니다.  자료: 녹색전환연구소 외, <기후위기 인식 설문조사>(2024.1.22., 프레스센터) 그럼에도 몇 가지 의문이 듭니다. ‘기후투표 → 기후국회 → 기후정치 → 기후대응’이라는 공식이 성립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기후유권자의 사표를 방지할 수 있을까요? 현행 선거제도와 정당체계가 기후선거에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소수 진보정당을 포함해 다양한 정당의 원내 진출이 어려워서 거대 양당체계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설사 제3당이 새롭게 등장하더라도, 21대 국회와 달리 기후국회로 탈바꿈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습니다(너무 비관적인가요?). 기후이슈가 정책공약집에 있다고 해서 총선이슈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둘째, 기후유권자는 누구일까요? 기후의제가 무엇인지에 따라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재생에너지 확대, 대중교통(내연기관차 판매 중단), 자원 재활용 강화 등에 대한 찬성 비중이 전반적으로 높은 것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탄소세 도입에 대해서도 국민들 사이에서 일정한 합의가 형성되고 있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습니다. 그런데 RE100(재생에너지)과 CFE(무탄소에너지)를 가르는 쟁점은 원자력에 대한 입장 차이입니다. 원자력 찬성 비중이 높게 나타난다는 점에서, 그리고 ‘친원전-탈원전’ 논란이 정당 지지(여당-야당)와 어느 정도 연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원자력과 관련해서 기후유권자를 규정하는 판단은 다분히 자의적으로 활용될 우려가 있습니다. 셋째, 누구나 기후위기를 말합니다. 그만큼 보편적인 이슈이지만, 핵심 쟁점은 당파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기후위기의 원인과 책임 논쟁은 주로 선진국과 개도국·빈국 사이에 발생하지만, 계급·계층별로도 다루어야 합니다. 아무래도 자산과 소득 수준에 따라 온실가스의 직·간접적 배출량이 달라집니다. 기후위기의 취약성도 마찬가지이고, 적응 역량에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탄소 불평등 때문에 ‘기후정의’와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원칙과 방향에 대해 관심이 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국가적·지역적·부문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에너지, 산업, 교통, 건물, 농축수산, 폐기물, 흡수원 등 여러 부문의 정책 수단들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절차적 정의와 분배적 정의 등을 적극 반영해야 합니다. 경제, 복지, 노동 등 모든 정책에서 좌·우의 관점이 있는 것처럼, 기후정책에서도 정치적 균열을 인정하고 공론화를 충분하게 하는 태도가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현재 주요 정당 간 선거 경쟁의 모습은 이런 (잠재적) 갈등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습니다. 정당의 리더십이 요구됩니다. 대한민국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최소한 40%(2018년 대비)를 감축해야 합니다. 그리고 2025년에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상향하여 유엔에 제출해야 합니다. 아래 표는 국제적 맥락을 고려해 2030년을 향하는 길목에서 우리가 신경 써야 할 정치 일정입니다. 2023년까지 과거를 되돌아보면, 우리는 초기 시간표에서 많은 것을 놓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본을 지키지 않을 정도로 시간에 쫓겨서는 안 되겠지만,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자료: 이정필, “다가오는 총선, ‘기후선거’ 가능할까”, 프레시안(2024.1.16.) 기후 의제를 단순 명쾌하게 설명하지 않고 복잡하게 꼬아서, 이 글이 여러분을 혼란스럽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기후유권자입니까? 기후유권자는 어떻게 모습을 드러낼까요? 기후유권자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4월 10일이 지난 어느 날,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겠지요. 
기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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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마주한 질문'들']기후위기 시대, 녹색전환의 비전과 전략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실천했던 노회찬 5주기를 맞이해 기후위기, 디지털 전환, 불평등 심화 등 복합위기의 시대에 우리가 마주한 ‘질문’들을 나누며, 한국 사회를 진단하고 진보적인 대안을 고민하는 자리를 준비했습니다. 이번 심포지엄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행사는 노회찬재단 공식유튜브 채널로 생중계됩니다?심포지엄 안내 보러가기 http://hcroh.org/notice/462/ 1. 지속가능성은 가능한가? 복합위기 시대, 지속가능성의 불가능성  ‘지구적 위험 한계’ 논의들, 특히 ‘도넛 경제학’이 유용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도넛의 외부 경계인 ‘생태적 한계’ 내에서, 그리고 내부 경계인 ‘사회적 기초’ 위에서 ‘균형으로 찾아가는 안전하고 정의로운 세계’가 바람직할 뿐 아니라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 경제성장에 대한 맹신을 폐기하고, 대신 재생적·분배적 경제를 설계하는 필수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까지 대부분 나라는 인구의 기본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지구적 한계를 초과하여 지속가능한 자원 사용 수준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 사회에서는 녹색전환의 백래시가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2022년 시행)과 제1차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계획(2023년 수립)을 둘러싼 갈등 국면에서 그런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기후변화, 코로나19, 저성장 및 사회양극화 등 복합위기에 처한 불확실성의 시대에 전환정치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미래지향적인 실험과 학습의 공간을 구상하고 실천해야 한다. 기후 관련 배출격차·생산격차 이외 다양한 수준의 전환격차를 확인하고, 전환과학, 전환운동, 전환정치 사이의 격차를 극복해야 한다.   2. 기후정의운동의 성장, 쟁점과 과제  ‘기후정의포럼’이 제시하는 ‘기후정의선언 2021’의 20가지 테제는 국내 기후정의 운동과 정치를 논의하는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다. 2011년 ‘기후정의연대’ 결성 이후 2019년 ‘기후위기비상행동’과 2022년 ‘체제전환을 위한 기후정의동맹’ 등을 통해 기후정의운동이 조직화·대중화·다양화되고, 직접행동·비폭력 시민불복종이 활성화되고 있다. 국내외 정세 변화에 조응하면서 기후대응이 제도화·보수화되는 가운데 운동의 분화 및 급진화도 동시 진행 중이다. 기후정의운동에서 제기하는 ‘체제전환’은 ‘화석연료 문명에서 벗어나 탈탄소 경제사회로의 전환’, ‘성장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탈성장사회로의 전환’, ‘자본주의 임금노동 관계에서 벗어나 탈자본주의로의 전환’”까지 포괄한다. 그러나 담론과 실제 정책 사이의 간극 극복,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기후 거버넌스 구축, 사회운동의 작동 방식 혁신, 그리고 기후정책 역행과 잘못된 해결책(그린워싱)에 저항, 공공 부문 탈환 및 활용(생태적 공공성), 대중적·급진적 기후정의운동 형성, 탈성장·포스트성장 경제로의 전환 탐색 등이 과제로 남아 있다. 3. 녹색전환론의 과거와 현재  2000년대 초반부터 녹색복지, 녹색국가, 녹색복지국가에 대한 이론적, 실천적 검토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생태진영-복지진영, 국가 중심-지방·공동체 중심, 녹색자본주의-녹색사회주의 등을 둘러싼 쟁점이 있지만, 최근 ‘회복탄력적 복지국가’ 등 생태위기 시대에 복지국가의 전면적 재구성과 녹색전환을 이끄는 녹색복지국가 비전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보편적 기본 정책’에 해당하는 기본소득과 기본서비스에 대한 관심도 지속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녹색 헌법’, ‘자연의 권리’, ‘기후 소송’과 ‘생태학살 범죄’ 등 법률적 접근, 나아가 ‘새로운 생태사회계약’으로 녹색전환의 외연이 확대되고 있다. 2010년대 후반 재점화된 그린뉴딜은 탈성장과 생태사회주의 등의 다양한 사상적 조류와 교차하면서 녹색전환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 특히 생태경제학, 탈성장·포스트성장과 생태사회주의 등 주류적 입장에서 벗어나 있던 대안적 제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생태경제학은 지속가능한 한계선 내에서, 즉 에너지·물질 총량 제한을 전제하거나 목표로 하는 생산, 소비, 분배, 노동, 조세, 재정, 금융 분야에서 대대적인 개혁을 추구한다. 이보다 선명한 탈성장·포스트성장은 불평등을 해소하고 인간 웰빙을 증진하는 방식으로 경제시스템을 생활세계와의 균형을 맞추도록 설계하여 에너지와 자원 사용을 계획적으로 감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탈성장 계획 및 계획적 전환의 목표는 한계선과 우선순위 설정, 민주적 참여 보장, 노동의 재조직화와 노동시장 개편, 생산방식과 경제구조 개편, 사회적·경제적 불안정 관리이며, 이를 통해 사회-생태적 조정이 강조된다. 그리고 체제전환의 대안으로서 생태사회주의나 ‘생태사회주의적 탈성장’도 검토되고 있다. 이렇듯 탈성장론과 생태사회주의가 추구하는 이론과 실천의 연대는 기존의 범주를 단순히 연결하는 것을 넘어서 상호 교차를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창출하는 것을 포함한다.   4. 녹색전환의 비전과 전략 모색, ‘심층 녹색전환 국가’  정의당과 녹색당 등 소수정당의 적극적인 기후변화 정책공약은 현행 선거제도의 한계 속에서 주류정당에 위협적이지 않다. 보수적 성향의 주류정당 간의 선거경쟁에서 기후변화 이슈는 정체된 상태이며, 탈성장은커녕 생태적 현대화나 지속가능한 발전보다 경제성장이 강조되고 있다. 선거제도 개선 등을 통해 기후변화 공약이 다양한 이념 지향의 정당 간 정책경쟁 이슈로 제기될 수 있을 때, 정부의 적극적인 기후위기 대응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 해외 녹색전환의 비전과 전략은 ‘탈성장 지향 그린뉴딜’ 종합구상과 ‘추출경제에서 생성경제로의 전환’, 그리고 ‘정의로운 도시전환’이나 ‘도시 커먼즈 전환’ 등의 개념과 사례를 통해 전환의 다중 스케일 접근을 접할 수 있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인류세 또는 자본세를 살아가는 우리는, 기후 파시즘, 녹색자본주의, 그린뉴딜, 탈성장, 생태사회주의 등 잠정적 미래 선택지와 이념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게 된다. 이 지점에서 ‘이론과 현실의 간극’과 ‘운동과 정치의 격차’를 해결하고 전환동맹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과제에 집중해야 한다. 틈새적 변혁, 공생적 변혁, 단절적 변혁 등 녹색전환의 경로와 전략을 통해 자율적 공간과 대안적 실험, 비개혁주의적 개혁, 대항 헤게모니 형성 등 다층적 기획이 필요하다. ‘심층 녹색전환 국가’라는 새로운 공화국은 복합위기 시대에 능동적으로 적응하는 민주적, 참여적 계획과 정의로운 전환 관리를 지향하는 새로운 사회 질서를 의미한다. 경제성장주의 생산-분배 시스템의 역사적 모델인 전통적 복지국가의 지속불가능성을 인정하고, 동시에 전환적·생태적 공공성과 자율성의 원칙을 갱신해야 한다. 심층 녹색전환 국가는 구조적으로 존재하는 권력관계의 적대와 경합 속에서 전환의 비전과 전략의 다양성을 전제·상정하는 공유비전과 공통지반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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