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복지법 추진 경과 및 주객관적 조건
1. 연구안전망’ 구축과 연구자 상호부조의 가능성 모색 2018년 12월 21일 민교협 주최로 <새로운 학술운동과 연구자의 집>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여기서 “‘연구안전망’ 구축과 연구자 상호부조의 가능성”이라는 주제발표가 있었다. 이 발표는 2017년 무렵부터 제기된 ‘연구안전망’이라는 개념을 적극 받아들여서 소개하고 그것의 실현 방법을 소박하게 상상해보는 것이었다. 이 토론회의 참석자들은 이 제안을 자기나름대로 상상하면서 다채롭게 논의를 확장시켰다. 기존의 지식인운동이나 학술운동과는 다른 형태의 ‘연구자 운동’이 필요하고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인식이 넓어진 것이다. 이 새로운 ‘연구자 운동’은 당사자 운동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불안정한 처지에 있던 소위 ‘불안정연구자’들의 어려움을 조사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는 여러 연구들이 있었다. 이 연구들은 기본적으로 현황조사 및 대안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현황조사는 대체로 이들 불안정연구자들의 어려움을 잘 드러냈다고 평가를 받는다. 반면, 대안의 경우, ‘연구진흥’ 혹은 ‘학술발전’의 틀을 기본으로 하여 제안되었다. 또 이런 대안들이 실제로 정책화되어서 실시되기도 했다. 그런데, 연구가 진흥되고 학술이 발전된다고 해서 그것이 불안정연구자의 생활 및 연구활동의 안정과 바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연구가 아닌 연구자를 중심에 두는 어떤 정책적 대안이 필요하지는 않는가 하는 것이었다.   2. 연구자 권리 선언과 그 의의 이 문제의식이 연구자들에게 확산된 중요한 계기가 2020년 11월 16일 발표된 ‘연구자 권리 선언’이었다. 14개 연구자단체(경남민주교수연대, 대학원생 노조, 만인만색 연구자 네트워크,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 사회대개혁 지식인네트워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자의집, 인문학협동조합, 전국교수노동조합, 지식공유연대, 포럼 대학의 미래, 학술단체협의회,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이하 가나다 순)로 구성된 “연구자 권리증진과 차별철폐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주도해서 발표한 이 권리선언에 1,700여 명의 연구자가 서명하였다. ‘연구자 권리 선언’은 연구 및 연구자와 관련해서 두 개의 위기, 즉 ‘연구의 공공성 위기’와 ‘연구자의 생존 위기’가 존재하며, 이것이 야기한 우리 사회 전체의 지적, 정신적, 도덕적 퇴보가 매우 심각한 수준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연구자 스스로의 정당한 노력에 더해 법적·제도적 장치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많은 연구자들은 양극화된 노동시장, 신분제적 위계 구조 속에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무엇보다 대학 붕괴가 현실화하면서 연구자로서의 삶이 지속 불가능하다는 공포 속에서 절망하고 있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이와 같은 현실은 단지 연구자라는 특정 직종의 위기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그 자체로 우리 사회의 미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 많은 연구자들이 동의하였다. 우리 나라 헌법 제22조의 ①항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와 ②항 “저작자·발명가·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에는 ‘연구자’라는 범주가 존재하지 않는다. 헌법의 이 조항에 의해 ‘예술가복지법’ 제정이 의문의 여지없이 정당성을 얻었다. 반면, ‘연구자’라는 사회적 범주와 이들의 사회적 의미 및 가치에 대해 인정하고 국가가 이들을 지원해야 할 어떤 헌법적 가치 등이 별도로 필요한데, ‘연구자 권리 선언’은 연구자 권리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명시해서 그것의 헌법적 가치를 인정받는 첫걸음으로서 의의가 있다.   3. 연속된 ‘연구자복지법’ 토론회와 몇몇 쟁점 ‘연구자 권리 선언’ 발표 이후 연속된 ‘연구자복지법’ 토론회가 있었다. 가장 먼저 토론 주제가 된 것은 ‘예술가복지법’ 제정에 참여한 분들의 경험을 듣고 쟁점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 이야기된 것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우선, 우리나라 법체계에서 ‘복지법’은 임금노동 관계를 기본으로 하는 것인데, ‘예술가복지법’은 이 체계를 벗어난 것이어서 여러 논란이 있었다. 소위 ‘노동-복지’ 패러다임이 지배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예술가복지법의 구체적 실현 방안도 어떤 일을 주고 그것에 대한 댓가를 받는 형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둘째, 예술가를 정의하는 방식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는데, 외부 기관을 신설하여 예술활동 증명서를 발급해서 그 증명서를 갖는 사람을 예술가로 정의하기로 했다. ‘연구자복지법’ 관련해서도 누가 연구자인가를 둘러싼 논란이 반드시 발생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연구자 권리 선언’에서도 연구자에 대한 정의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었다. 셋째, 예술가복지법 제정 이후 그것의 실행기관으로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설립되고 여기에 1년 예산이 배정되어 그 예산으로 ‘복지사업’을 실시하게 되었는데, 현재 문제가 매우 많다고 하였다. 예산 소진 이후에는 사업을 할 수 없다는 점, 예술가를 이 재단에서 ‘선별’한다는 점, 즉 예술가의 자율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점, 신규 혜택을 받을 예술가들의 진입이 어렵다는 점, 예술가들의 연대가 확장될 수 없는 구조라는 점 등이 언급되었다. 이후 토론회에서는 여성, 대학원생, 비정규교수 등 불안정연구자 내의 여러 범주들과 함께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2023년에는 ‘연구자의 집’이 경인사연의 과제를 받아 마련한 ‘연구자 공제회법안’을 마련하였고, 2023년 12월에는 관련 교수, 연구자단체 합동 송년호에서 이 내용이 소개되었다. ‘연구자복지법’이라는 기본법의 형태에서 ‘연구자공제회법’이라는 다른 형태의 법안이 제안된 배경은 앞에서 이야기한 ‘예술가복지법’의 한계와 문제점 등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의 토론이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정두호 대학원생노조 지부장의 발표에서 다루어질 것이니 생략하겠다.   4. ‘연구자공제회’에 대한 주객관적 조건 사회적으로 다양한 직종에서 ‘공제회’ 관련한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아직 공제회법이 제정되지 않지만 협동조합의 형태로 공제활동을 하고 있는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이나 ‘풀빵’ 등에서 여러 논의를 주도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공익적 사회활동가, 방송작가, 구두장인 등 다양한 직공에서 이미 공제회를 조직하고 있다. 이들과 함께 할지 단독으로 연구자 공제회를 구성할지 등 논의할 내용은 많지만, 공제회라는 구상 자체가 일종의 보편성을 얻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다. 또, ‘연구자의 생존 위기’에 대한 특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광범위한 동의가 연구자들 내부에서 형성되고 있다. 다만, 이런 논의가 교수연구자 단체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이들 단체 외부에 있는 연구자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연대를 형성해 갈지가 관건이다.
·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