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줍는 노인과 자원재생활동가 사이에서
길을 걷다 보면 자주 만나는 우리 동네 리어카.  2021년 국립생태원은 공모를 통해 ‘폐지 줍는 어르신'이 아닌 ‘자원재생활동가’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습니다. 우리의 관심 만큼 인식도 달라질거라는 바람입니다. 스쳐 지나가기만 했던 우리 동네 리어카에 일상관찰가는 작은 관심을 내어 그 길을 함께 걸었습니다. 춘천시 효자동 일대 7명의 자원재생활동가와 동행하며 우리가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점들을 바탕으로 ‘일상관찰가와 함께하는 리어카 공론장 - 우리 동네 리어카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를 준비했습니다.  이 공론장에서 나눌 일상관찰가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소중한 당신의 이야기도 댓글로 보태주세요. 1. 폐지줍는 노인 존재는 그것을 부르는 이름으로 규정되곤 합니다. 마치 내 이름이 나를 규정하듯이 말입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불리는 이름이, 명칭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도심에서는 보이는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폐지 줍는 노인분들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폐지”, “줍다”, “노인”이란 단어가 그분들의 인생을 규정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무겁습니다. 가난, 격차, 늙음 이란 단어가 가진 부정적인 의미를 지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21년 국립생태원이 폐지 줍는 노인들을 지칭하는 새로운 이름을 공모했는데요, 많은 이름 중 선택된 것이 바로 ‘자원재생활동가’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뭔가 굉장히 달라 보입니다. 이름만 달라졌을 뿐인데 이분들이 하시는 일도 왠지 달라보이는 건 기분 탓 일까요?   ‘우리 동네 리어카 프로젝트’에 참가한 일상관찰가들은 자원재생활동가들과 함께 걸었습니다. 7명의 자원재생활동가와 동행하며 춘천시 효자동 일대를 부지런히 돌아다녔습니다. 저는 이번 프로젝트 ‘일상관찰가와 함께하는 리어카 공론장 - 우리 동네 리어카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의 과정과 그속에서 느꼈던 점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2. 재활용품 수집 노동의 열악한 환경 자원재생활동가들의 노동 강도는 중노동에 가깝지만 수익은 형편없는 정도라 생계를 위해서 쉴 틈 없이 일해야 합니다. 고정적인 수입처가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없다면 더 많이 더 오래 돌아다녀야 합니다. 법정 노동시간은 자원재생활동가들에겐 없는 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참고로 운반 수단인 리어카의 무게는 보통 50~70kg 입니다. 여기에 300~400kg 내외 정도의 폐지를 담습니다. 한시간 정도를 리어카를 밀고 걸어 다니면 어깨와 다리, 허리에 통증이 밀려옵니다. 우리가 만났던 자원재생활동가들의 대부분은 건강이 염려되는 상태였지만 건강을 돌볼 만 한 시간적, 경제적 여유나 지원은 없거나 있어도 무용지물에 가까운 것들이었습니다. 체력적인 소모가 많은 노동강도에 비해 비용은 턱없이 낮은 상태고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찾는 것도 어렵지만 끊는 건 더 어려워 보입니다.   기사폐지 줍는 노인 건강 ‘적신호’...손상 유병률 일반인구의 10배 :  https://www.yna.co.kr/view/AKR... 또다른 문제는 자원재생활동가가 활동하는 환경입니다. 활동가들은 재활용품이 많이 나오는 저녁 시간에 주로 활동하는데 작은 골목에서 차를 만날 경우 크고 작은 교통사고가 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심야 시간에는 ‘묻지마폭행’과 ‘음주 상태에서의 폭행' 등으로 피해를 보는 노인들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원재생활동가의 안전을 지켜주는 건 고작 야광 조끼 한 벌입니다. 그것도 모두가 가질 수 없습니다. 지자체의 관심과 형편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 차에 피해를 줄 경우 보상금도 만만치 않지만 피해자가 될 경우도 걱정 뿐 입니다. 다친다는 건 일을 못한다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폐지줍던 노인 묻지마 폭행 40대 구속…출동 경찰도 폭행 : https://mobile.newsis.com/view... 폐지 줍는 할머니 묻지마 폭행 50대 구속…바닥에 내동댕이쳐 : https://www.yna.co.kr/view/AKR...   3. 고령노동과 재활용 수집노동의 관련성 재생활동가분들의 연령층은 원래 이름에도 알 수 있듯이 대부분 노인입니다. 그렇다면 왜 노인들은 이 일을 해야 하는 걸까요?  가장 큰 이유는 일을 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2019년 기준으로 한국 노인층의 상대적 빈곤율은 43.2%로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노인이 가난의 문법을 밟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보다 사회 구조에 기인합니다.  노동의 유연성이란 명분과 효율성을 이유로 은퇴 이후 일자리는 임시직, 비정규직 등을 제외하면 일자리조차 구하기 어렵고, 원치 않는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들은 어쩔 수 없이 가장 힘든 노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가지 더 보태자면 한국의 경우 남자노인보다 상대적으로 학력, 경력이 적은 여자노인이 더 많이 가난에 빠집니다. 가사노동이나 돌봄노동을 전전하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서 재활용수집을 하게 되는 사례가 대부분입니다. 이중적 빈곤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재활용 수집 노동을 외면해서 안되는 이유는  여기에는 빈곤, 저임금, 젠더, 노인문제와 같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집약적으로 내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문헌: 한국의 고령노동시장 무엇이 문제인가?(이철희, 2014) https://s-space.snu.ac.kr/bits...   4. 자원재생활동가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과 대안적 방향 재활용품 수집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중적입니다. 어떠한 사람은 정부의 소극적 대응에 책임을 넘기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개인이  잘못 산 대가라고도 합니다. 둘다 맞을 수도, 둘 다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한쪽의 시선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폐지 줍는 노인은 우리 사회에 분명히 존재하는 구성원입니다. 우리는 사회적 약자인 이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동시에 이들은 긍정적인 노동으로 사회 발전에 기여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충족되려면 무엇보다 이들이 하는 노동은 인정받아야 합니다. 자원재생활동가의 노동은 쓸모가 없는 노동도, 잉여의 노동도 아닙니다. 게다가 공짜 노동은 더더욱 아닙니다. 분명히 가치 있는 노동을 하고 있음에도  다만생산성이 낮다는 이유로, 남이 버린 것을 주워 돈을 번다는 왜곡된 시선과 편견으로 사회의 가장 바깥으로 밀려났을 뿐입니다. 이 세상이 굴러가는 이유는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누군가가 대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돈이 되는 일, 멋진 일은 누구나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듯 힘든 일, 고된 일은 누구나 하기 싫지만 누군가가 묵묵히 하고 있기에 세상은 굴러갈 수 있습니다. 저는 자원재생활동가도 이러한 시선으로 바라보았으면 합니다. 우리가 하지 않는 일을 대신 함으로서 사회의 일원으로 그 역할을 다하시는 분들. 법을 바꾸는 게 가장 쉽고, 그 다음으로 행동을 바꾸는 게 쉽고, 그 다음으로 생각을 바꾸는 게 쉽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생각을 바꾸는 게 가장 어렵다는 뜻이겠죠? 하지만 이들을 폐지 줍는 노인이 아니라 자원재생활동가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순간 우리의 생각과 태도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멀리서 시작하지 말고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바로 '나의 말'에서부터 말이죠. 
노인의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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