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기억] 추모의 마음만큼은 서로 나눌 수 있는
2022년 10월 29일, 저는 출장으로 유럽에 있었습니다. 자고 일어나 메세지를 확인하는데, 쌓여있는 메세지가 너무 많아 깜짝 놀랐습니다. 메세지 내용을 확인하는 순간 제가 지금 현실에 있는지 꿈 속에 있는지 헷갈렸습니다. 이태원, 할로윈, 압사라는 단어로 가득한 뉴스, 주변 사람들의 걱정이 담긴 메세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모든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용산에 살면서 종종 가곤 했던, 할로윈 때 가봐야지 생각도 해봤었던 이태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니. 저와 제 친구들 또한 그 시간 그 장소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충격이 슬픔으로 바뀌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시차로 인해 한국보다 8시간 더 느리게 생활하고 있었던 저는, 자고 일어날 때마다 희생자 수가 더 늘어났을까봐 조마조마하며 뉴스를 읽었습니다. 한국에 있었다고 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을까 생각하면서도, 이러한 상황에서 다른 나라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 왠지 미안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 미안한 마음을 담아, 2023년 10월 29일 오늘만큼은 한국에서, 그날의 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야겠다 다짐했습니다. 작년 이맘때와 같이 여전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여느 주말보다는 더 일찍 일어나 이 글을 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보고 있습니다. 참사로 인해 목숨을 잃은 분들을, 고통과 슬픔 속에서 일상을 찾기 어려울 희생자의 유족 및 친구들을, 자책과 미안함을 가지고 계신 상인들을 포함해 구조에 애쓰신 분들을,  그날 그 장소에서 함께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을 시민들을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겠다 다짐하고 있습니다.   2014년 4월, 서울시청 앞 광장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서 국화꽃을 내려 놓으며, 이 참사를 잊지 말아야지라는 마음으로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닌지 올해 9년이 되었습니다. 또 다른 리본을 달 일은 없겠지 했는데, 결국 노란 리본 옆에 보라 리본을 달았습니다. 절대 세번째 리본을 다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럴려면 무엇이 바뀌어야할까, 생각하면서요.  그러다 문득, 올해 초 경험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 중이었습니다. 제 가방에 달린 노란 리본을 보시고는, 어떤 분이 말을 거셨습니다. 말투는 나긋하셨는데,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미 9년이나 지난 일인데 아직까지도 가방에 리본을 달고 다니는 이유가 무엇이냐, 이제 그만 잊고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냐, 지금까지도 리본을 달고 있는 건 정치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죠. 그 말을 들으니 처음에는 화가 나다가, 이내 슬프고 좌절스러워졌고, 한편으로는 무력하고 두려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분명 사회적 참사임에도, 그러한 참사를 막을 수 있는 사회 구조와 정책과 제도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음에도, 그것은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었던 개인의 탓이다, 잊어야 한다 말한다는 것. 사회적 참사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람, 여전히 고통 속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추모의 마음을 정치적 의도로만 해석하고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 사람으로 여긴다는 것. 그런 생각과 말, 행동 앞에서 참사가 '사회적'인 것임을 이야기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참사를 막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변화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다는 게 얼마나 요원한 일인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어떤 제도가 어떻게 개선되어야 한다'는 말보다는(이 역시도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에 앞서 일련의 '참사'를 사회적 문제로 인정하는 것, 참사로 인해 희생되고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추모와 위로의 마음을 가지는 것부터 함께할 수 있었으면, 하고 제 주변 사람들과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 말을 건네보고자 합니다. 추모의 마음만큼은 그 마음 그대로 받아 들여질 수 있는, 나아가 추모하는 마음을 서로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되기를, 10월 29일 오늘 더욱 간절히 바라봅니다.   
재해·위험 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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