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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노동자'의 꿈과 한숨
저는 2018년도부터 요양보호사 일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 몇 가지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습니다. 저를 “아줌마”라고 부르거나, 같이 사는 다 큰 아들방 청소에 온 가족이 쓰는 넓은 화장실 청소까지 다 해야했고, 김장철에는 어르신 집이 사랑방이어서 동네분들이 파, 배추, 무 등을 배달을 시켜 일을 같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너무 힘든 와중에 어르신이 병원에 장기입원을 하셔서 센터를 바꿨는데 거기서는 명절을 앞두고 만두를 300개씩 빚고 ‘4층 빌라의 베란다 바깥 유리창을 닦아달라’고 요구하는 등 파출부인지 요양보호사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 저희는 센터에 하소연을 하지만 센터는 어르신이 센터를 옮길까 봐 어르신 편에서만 얘기하고, 요양보호사의 업무태도를 문제 삼아 하루아침에 해고를 통보해오기 일쑤입니다. 코로나19 확산 초장기였던 때에는 확진자의 동선을 다 공개했습니다. 이때, 저는 동선을 보니 시간대는 딱 겹치진 않았지만 마트에 갔던 것이 염려가 되어 ‘예방차원에서 하루 쉬겠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러자 아예 관두라고 하면서 ‘왜 지침을 어기고 그렇게 돌아다니냐’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저를 범죄자처럼 몰아갔습니다. 너무 어이가 없었습니다. 요양보호사라고 이렇게 막말을 하고 막 대해도 되는 건지. 태어나서 처음 당해보는 수모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일한 어르신 댁은 몇 달 일한 후에 반지하에서 2층 빌라로 이사를 했는데, 이사 간 집의 화장실이 2개였습니다. 가족이 사용하는 화장실은 제가 청소를 못하겠다고 하니 어르신이 마음에 안 들어하면서 그만뒀으면 하여 그 댁에서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문제는 재가센터입니다. 센터장은 저에게 한 번도 문자나 전화를 하지 않았고, 다른 곳을 연계해달라고 해도 복지사는 어쩔 수 없다는 곤란한 얘기만 반복했습니다.
노인장기요양제도는 올해로 15년째 국가주도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크게는 시설과 재가로 나뉘는데 그 중 재가요양이 거의 7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장기요양은 국가재정을 가지고 운영함에도 99% 민간이 운영하기 때문에 돈벌이로 전락이 된 것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나 재가요양은 센터마다 시급이 다르고, 요양보호사에 대한 처우도 각기 다릅니다. 재가 방문요양의 가장 큰 어려움은 고용이 불안정하다는 것입니다. 센터와 근로계약을 맺고 임금을 받는 노동자임에도 어르신 또는 그 가족의 사정으로 일이 중단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어르신이 병원에 단기 또는 장기입원을 한다거나, 요양원에 갑자기 입소한다거나, 돌아가신다거나 심지어 요양보호사와 안 맞다고 교체를 요구하시거나 (생각보다 이런 사유가 더 많습니다) 등등 요양보호사 당사자의 사정이 아닌 일로 출근길에 일을 가지 말라는 문자통보를 받거나 ‘내일부터 어르신 댁에 안 나와도 된다’고 통보를 받는 등 하루 아침에 해고 또는 일이 중단되는 경우가 아주 흔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 근로기준법에 있는 휴업수당 70% 지급은 방문요양보호사들에게는 꿈같은 일이고, 월 60시간을 채우지 못해 그 달은 4대보험이며, 퇴직금과 장기근속장려금을 못 받는 불이익이 발생합니다. 특히, 코로나 확진시 시설의 장기요양종사자들은 모두 유급처리가 되는 반면 재가요양은 전혀 그런 혜택을 받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일이 끊기고 무급처리가 되는 황당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르신이 확진되거나 그 가족이 확진되어 출근을 못한 경우가 다반사였는데요. 길게는 한 달 반을 못나가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의 답변은 ‘코로나로 인해 출근을 못한 경우는 천재지변이기 때문에 휴업수당을 받을 수 없다’였습니다. 이런 경우 우리는 어디서 보상을 받을 수 있단 말입니까?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단에서 부여하는 만3년 근속자에게 주는 장기근속장려금을 받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공단에서는 요양보호사들이 센터를 자주 옮겨 안정적인 케어를 위해 해당 수당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복지부와 공단에 묻고 싶습니다. 우리가 센터를 자주 옮기고 싶어 옮기나요? 퇴직금을 받을 즈음 10개월, 11개월이 되면 어떤 이유를 대서라도 잘리게 만들고, 어르신의 사정으로 일이 중단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과연 한 센터에서 3년을 채우기가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장기근속장려금을 3년으로 유지하려거든 센터를 옮겨도 근속을 인정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근속수당의 기준을 만 1년으로 낮춰야 합니다.
또한 월60시간 이하로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법적으로 규제해야 합니다. 현재도 59시간 또는 59.5시간으로 근로계약을 맺는 센터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되면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4대 보험 적용도, 퇴직금도 장기근속장려금도 자격이 되지 않습니다.
관공서 유급휴일의 문제는 더욱 심각합니다. 근로계약상 근로를 하는 요일임에도 빨간날이 끼면 센터에서는 일을 빼버립니다. 그럴 경우 시급처리를 해달라고 해도 센터에서는 ‘근무하지 않았기 때문에 줄 의무가 없다’고 하고, ‘운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휴일수당을 주지 않고 있는 현실입니다. 관공서 유급휴일은 급여의 손실 없이 쉼을 보장받자는 게 도입취지인데 방문요양은 오히려 임금이 줄고 근속수당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데다 나아가 어르신 입장에서는 돌봄을 받을 권리도 빼앗는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최저시급으로 돌봄노동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두, 세 번째 어르신 댁으로 근무지를 이동하는 교통비도 모두 자부담이고, 점심값이 아까워 싼 커피로 떼우기도 합니다. 최저시급이 아니라 돌봄노동에 맞는 임금이 책정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국가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는 전문케어 인력입니다. 특히 재가요양은 1:1케어를 하면서 여러 돌발상황에 대비해야 하며,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을 케어하기 때문에 신체적, 정신적 긴장감도 항상 가지고 있는 직업입니다.
앞서 얘기한 불안정한 고용을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재가요양의 시급은 대폭 인상되어야 합니다.
최근 통합돌봄케어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누구든 나이가 들어도 내가 살던 집에서 케어를 받고 생을 마감하길 바랄 것입니다. 이것이 실현가능하기 위해서라도 재가요양보호사들의 고용을 안정적으로 보장하고, 전문성을 더욱 키워 더 이상 ‘허드렛일 하는 사람, 호칭을 아무렇게나 불러도 되는 사람, 아무도 보지않기 때문에 성희롱을 막 해도 되는 사람’으로 취급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모두 함께 이런 내용을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1)돌봄은 필수적인 요소임에도 돌봄을 왜 노동으로 인식하지 않을까요?
2)왜 돌봄노동자들을 학력이 짧다고 생각하고 무시하는 경향을 보일까요?
3)돌봄노동의 인식이 변화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4)장기요양보험료를 납부하는 당사자인 국민들은 왜 이 문제에 관심이 없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