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0_0
186
22주기 효순미선 추모제 : 2002년 뜨거웠던 여름을 기억하나요?
효순미선 사건에 대한 간단한 설명 2002년은 월드컵으로 한창 대한민국이 뜨겁게 달아있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불평등한 한미관계로 중학생들이 압사되었던 사건이 있었던 해이기도 하다. 2002년 6월 13일, 당시 조양중학교 2학년이던 효순이와 미선이는 친구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신나는 마음으로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서 커다란 미군 장갑차가 효순이 미선이 쪽으로 다가왔다. 효순이와 미선이가 걷고 있던 길은 폭이 아주 좁아 장갑차가 지나가기에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갑차는 그 길을 지나갔고, 그대로 두 학생은 현장에서 순식간에 장갑차에 의해 압사되었다. 놀랍게도 가해미군은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고 미국으로 안전하게 돌아갔다. 국민들은 누구도 이 무죄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어, 자발적으로 촛불을 들고 밖으로 나와 행진했다. 당시 사람들은 탱크라도 구속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수 십만명의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함께 행진을 한 2002년이었다. 이 사건이 왜 불평등한 한미관계까지 연결되는 걸까?  SOFA에 따르면, 미군은 전속적 관할권을 가지고 있다. 미군과 관련된 범죄가 일어날 경우, 미국 법률에 의해서 처벌할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효순미선사건도 마찬가지로, 미 군사법정에서 군사재판이 열렸다. 또한 군사재판은 모두 미국인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정한 판결을 내리기 어려운 구조이다. 결국 재판은 과실사고로 무죄판결로 끝났다. 분명 미군의 잘못임에도 사과와 진상규명이 되지 않았던 이유는 미국과 한국간의 불평등한 SOFA이고, 더 나아가 불평등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22년이 지난 지금은 어떠한가? 슬프게도 달라진 건 없다. 2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사과와 진상 규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우리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져 가고 있다. 매 주기마다 효순미선 추모제를 효순미선평화공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효순미선을 기억하고 추모함으로써 불평등한 관계를 생명중심의 관계로 변하는데 힘을 쓰고 있다. 또한 평화공원 옆에 기록관을 건립할 예정이라고 한다.  22주기 효순미선 추모제 추모제에는 각 시민단체를 비롯한 종교계와 청소년이 참석하여 150여명이 함께 추모를 하는 자리를 가졌다.  추모제에서는 평화공원사업위 권정호 변호사님의 추모 발언으로 시작되었다. 그를 이어서 미국 평화재향군인회 회원 두 분의 심정과 생각을 나누었다. 엘리 애덤스는 베트남전쟁 당시 파병되었던 군인으로써, 전쟁의 참혹함을 목격했고  그 이후로 평화운동을 시작하셨다. 또 앨런 바필드는 1980년에 평택 캠프 험프스에서 복무하며, 광주항쟁 당시 주한미군에 대한 증언을 하셨다. 각자의 스토리를 이야기해주셨고, 더 이상의 희생이 없기를 바라며, 효순이와 미선이를 기억하겠다고 하셨다. 발언뿐만 아니라 마음을 울리는 공연들도 있었다. 밴드 두번째 달과 가수 하림의 공연이 있었다. 가수 하림은 5.18 피해자의 유족으로 이 자리에 함께 오게 되었다고 한다. 두번째 달은 아름다운 선율을 담은 '서쪽하늘에'를 연주했고, 가수 하림은 '위로'라는 곡을 불렀다.  마지막 순서로는 청소년의 발언과 합창이 있었다. 숲나학교 학생 진영인과 산마을학교 학생 박현의 발언이 있었다. 두 학교 모두 기록관 건립을 위해 반딧불이로 활동하고 있다. 숲나학교 학생들의 합창으로 이번 22주기 효순미선추모제를 마무리했다. 담쟁이라는 곡으로, 담을 넘자라는 문장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곡의 문장처럼, 어렵고 힘든 이 여정을 함께 기억하고 행동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란다.  관련 뉴스를 참고하시면 더 많은 정보들을 알 수 있습니다. 효순·미선 22주기 추모제…“한반도 평화 실현, 촛불정신 완성하는 길” (naver.com) 22년 전 효순∙미선 기억하십니까…기록관 건립 추진 [만리재사진첩] (naver.com)
한미관계
·
4
·
‘워싱턴 선언’의 여파, 여러분은 어떻게 보시나요?
윤석열 대통령의 5박 7일간의 국빈 방미 일정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정부가 밝힌 한미정상회담의 성과는 경제안보, 사이버 우주 분야, 에너지 등 다양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4월 26일 한미정상이 발표한 ‘워싱턴 선언’은 단연 화제였습니다. 워싱턴 선언은 확장억제 강화를 중심으로 <한미 핵협의그룹 창설, 핵 전략무기 운영 계획 정보 공유, 공동작전 기획 및 실행방안 정기 협의, 지속적이고 정기적인 미 전략자산 전개> 등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2023.4.27 윤석열 대통령 한미 정상회담, '워싱턴 선언' 발표, 대한민국 정부 블로그).진일보적인 성과였다는 평이 있는 반면, 갈등을 강화시키는 촉매제가 되었다는 평가도 있는 등 다양한 평가가 있었는데요. 주미대사를 지낸 안호영 경남대 석좌교수는 3가지 포인트로 워싱턴 선언을 잘된 선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1) 미국이 민감한 핵 정보를 공유하겠다고 한 것 (2) 북한에 대한 대응을 `조인트 플래닝`(joint planning·공동 기획)하겠다고 한 점 (3) 확장억제에 대한 공동이행으로 우리 군의 역할이 늘어날 가능성을 꼽았습니다(2023.5.2. "`워싱턴 선언` 3가지 포인트 눈여겨봐야…매우 잘된 선언", 출처 이데일리). ‘투키디데스의 함정’으로 유명한 국제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 케네디스쿨 석좌교수 역시 워싱턴 선언에 대해 "미국 확장억제 강화를 통해 한국의 핵무장을 막았다는 측면에서 오랜 미 국가안보전략의 성취"라며 핵 확산 방지에 미국이 큰 역할을 했다고 긍정적으로 평했습니다(2023.4.30. '투키디데스의 함정' 앨리슨 교수, 워싱턴선언 극찬한 이유, 출처 중앙일보) 반면 한반도 전문가인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아사히신문 외교전문기자는 "미국은 한국에서 나오는 독자적 핵무장론을 무마시키려고 많이 애썼지만 한국이 원하는 핵 공유나 운영에 관한 공동 계획 등을 지원했는지를 살펴보면 변화는 없었다고 생각한다"고 실효성 부분에서 낮은 평가를 하기도 하였습니다(2023.4.28. 日전문가, 핵협의그룹 창설에도 "미, 한국과 핵 운용 정보공유 어려울것", 출처 뉴시스). 또 중국 내 미중관계 전문가 리칭쓰 인민대 교수는 이번 워싱턴 선언이 북한에 핵과 미사일을 더욱 부추길 동기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과 중국이 정치도 차갑고 경제도 냉랭한 ‘정랭경랭’ 국면에 접어들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하였습니다(2023. 5.1 "정랭경열→정랭경랭…한·중관계, 더 차가워질 것", 출처 중앙일보). 실제로 ‘워싱턴 선언’ 이후 중국은 워싱턴 선언이 한국의 비핵화 내용에 맞지 않는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북한도 나흘 연속 강렬한 비판을 지속해나가고 있습니다.  ‘워싱턴 선언’에 대한 한미간의 입장차도 있었습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워싱턴 선언에 대해 "미국과 핵을 공유하며 지내는 것처럼 느끼게 될 것“이라고 표현했지만, 현지시간 27일 에드 케이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오세아니아 담당 선임국장은 워싱턴DC 국무부에서 한국 특파원들에게 "그냥 직설적으로 말하겠다. 우리가 이 선언을 사실상 핵공유라고 보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강화된 약속일 뿐이라며 명확하게 선을 그었습니다(2023.4.28. 미 백악관 관계자 "워싱턴 선언, 핵공유는 아니다"...한국 정부와 입장차, 출처 JTBC 뉴스). 논란이 일자 대통령실은 ”실제 핵공유한다고 한 적 없다“며 미국과의 입장차를 부인하기도 하였습니다(2023.4.29. 대통령실 "실제 핵공유한다 한적 없어…미국과 입장차 아냐", 출처 연합뉴스). 워싱턴 선언의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여러분은 어떻게 보셨나요?
한미관계
·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