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희망 대신 차별 배우는 현장실습”… 교육부장관 고발 [열아홉, 간이 녹았다 5화]
“스태츠칩팩코리아라는 반도체 후공정업체의 청년 노동자는 취업 1년 만에 간이 녹아 없어져서 간 이식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 화학물질 가득한 작업장, 고된 3교대 근무가 가져온 산재입니다.”(‘학습권 침해, 죽음의 현장실습’ 교육부장관을 고발한다! 기자회견문 일부) 11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 20명의 교사와 특성화고 졸업생, 유가족, 시민단체 대표 등이 모였다. 현장실습 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시민들이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이주호 교육부 장관을 고발했다. 이들은 교육부 장관에게 직무유기, 직권남용, 업무상 배임 혐의를 물었다.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호해야 할 책임을 방기했고 ▲참여 의무 없는 현장실습으로 직업계고 학생들의 학습권을 방해하고 ▲결국 학생들에게 학습권, 건강권을 상실하게 했다는 주장이다. 과거 국가인권위원회와 국제노동기구도 현장실습 제도에 우려를 표명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7년 5월 노동부와 교육부에 ‘파견형 현장실습 우선 중단’을 정책권고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지난 2월  ‘현장실습 제도’를 ILO 협약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박은경 직업교육바로세우기현장실습폐지공동행동 공동대표는 현장실습 제도의 실상에 주목했다. 그는 “대중의 관심에 따라 현장실습제 대책을 마련할 뿐, 관심이 사그라들면 다시 현장실습 규제를 풀어 불법과 사고는 반복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2005년 11월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엘리베이터 점검 작업을 하던 현장실습은 안전 장비도 없이 작업하다 4층에서 지하 1층으로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2007년 3월 삼성전자 기흥반도체 공장에 취업했다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故) 황유미 씨 역시 직업계 고등학교 학생이었다. 이후에도 사고는 계속됐다. 2011년 광주 기아자동차 공장 뇌출혈 사고, 2012년 울산 신항만 공사 작업선 전복 사망사고, 2014년 울산 금영ETS 공장 지붕 붕괴 사망사고, CJ제일제당 진천공장 사망사건, 2016년 성남 토다이 사망사건,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2017년 전주 LG유플러스 고객센터 사망사건, 제주 생수업체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5월에는 전주페이퍼 공장에서 일하던 현장실습생이 설비실에서 숨을 거둔 채 발견됐다. 유족들은 ‘황화수소 중독’을 의심했지만, 지금까지도 정확한 사망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관련기사 : <“마이스터고 붐” 밀어붙이는 정부… ‘다음 선우’ 없을까>) 교육부 장관 고발에는 사망한 현장실습생 유가족도 함께했다. 고(故) 김동준 군 어머니 강석경 씨는 기자회견을 위해 대전에서 서울까지 왔다. 강 씨는 “사고 후 회사는 동준이 개인의 잘못과 불우한 가정사에 의한 개인적인 죽음으로 몰아갔다”며, “다행히 (직장 내에서 자행된) 괴롭힘이 밝혀졌고 산업재해 인정도 받았다”고 말했다. 김동준 군은 2014년 CJ제일제당 진천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했다. 그는 괴롭힘과 중노동으로 회사 기숙사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강 씨는 하루아침에 아들을 잃었다. 동준 군은 게임 프로그래머를 꿈꾸며 마이스터고등학교에 진학했다. 3학년 2학기, 꿈과 전혀 관련이 없는 육가공 공장에서 소시지를 포장했다. 열여덟의 나이에 사회에 나간 동준 군에게 선임들은 기합을 주었다. 머리 박기를 시키고, 쓰러지면 발로 머리를 밟았다. 업무 역시 살인적이었다. 잔업으로 밤 12시, 새벽 1시까지 야근을 하기 일쑤였고, 회식에 억지로 끌려다니다가 빠지면 기합을 받는 식이었다. 사망사고가 있기 전 김 군은 이러한 글을 남기기도 했다. “너무 두렵습니다. 내일 난 제정신으로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요?” 이을재 직업교육바로세우기현장실습폐지공동행동 총무기획팀장은 “애완동물과를 전공한 학생이 통신사 전화상담센터에서 일을 하고, 원예과 학생이 선물제조공장에 가서 물건을 나누는 게 현장실습의 현실”이라며, 전공과 무관하게 학생들에 대한 ‘강제노동 착취’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동준이가 경험한 현장실습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적응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 현장에 투입됐습니다. 둘째, 기본적인 노동조건이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셋째, 모두가 꺼리는 일이 최약자인 그들에게 할당됐습니다. 명백히 현장실습은 교육이 아니고 가장 최악의 노동이었습니다.”(김동준 군 어머니 강석경 씨 발언 일부) 경북기계공고 졸업생 이학선 씨 역시 현장실습 나간 공장에서 처음 ‘현실’을 배웠다. 그는 상사의 괴롭힘으로 힘들어하던 동료에게 회사와 한번 이야기 나눠보라고 위로했다. 그때 형은 “회사가 과장이랑 말단 중에 누구 편을 들 것 같냐”고 답했다. 이 씨가 마주한 현실은 그런 곳이었다. “직업계고 자체도 진짜 웃깁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선생님들은 너희 대학 못 간다고 했습니다. 효력도 없는 서약서를 (고등학교) 입학 면접 때 썼다면서요. 심지어는 취업한 친구들이 수험표 받겠다고 수능 원서 접수하려는 것도 막았습니다.” 이 씨는 교사가 학생들을 ‘현장실습장’으로 내모는 경험을 했다. 일단 일터에 “욱여넣는 식”이었다. 그것도 안전이 보장되지도, 꿈과 연결되지도 않은 노동 현장이었다. 그는 “인생을 비정규직으로 시작하고 희망 대신 차별부터 배우는 곳이 현장실습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들에게 희망 대신 체념을 가르치지 말아달라”고 강조했다. 고발에 참여한 고(故) 이민호 군 아버지 이상영 씨도 이날 마이크를 잡았다. 민호 군은 2017년 11월 제주 생수 공장에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적재기 프레스에 눌려 사망했다. 이상영 씨는 직업계 고등학교 학부모를 향해 말했다. 이 씨는 “직업계 고등학교 보내더라도 대학을 보내야 한다. 빚을 져서라도 보내야 자식의 목숨을 지킬 수 있다”고 호소했다. 고발에 동참한 고(故) 홍수연 양 아버지 홍순성 씨도 한마디 덧붙였다. 수연 양은 2017년 1월 전북 전주시에 위치한 저수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실습 나간 콜센터에서 격무에 시달리다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수연 양의 이야기는 영화 <다음 소희>(2023)의 모티브가 됐다. 홍순성 씨는 “현장실습 제도의 문제가 영화화되기도 했지만 그때만 ‘반짝’이고 만다”며, “여전히 불법이 만연한 현장에 ‘수연이’ 같은 아이들이 더 나올 확률이 높다”며 우려를 표했다. 이들은 약 50분 가량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건물로 향했다. 총 583명이 함께 나선 고발장을 접수했다. “도망쳐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 했습니다. 삶에 직면하라는 말입니다. 내 앞의 문제를 피하지 않고 마주하라는 겁니다. 현장실습은 악습입니다. 학생들한테 일자리 문제를 떠넘기고 열악한 노동을 강요하는 나쁜 관행입니다.그걸 참고 받아들이는 게 이제껏 우리한테 주어진 역할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는 게 교육이었습니다. 더 이상 참고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하라는 교육을 거부하겠습니다.”(경북기계공고 졸업생 이학선 씨 발언 일부)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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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스터고 붐” 밀어붙이는 정부… ‘다음 선우’ 없을까 [열아홉, 간이 녹았다 4화]
인천공항에서 차로 약 15분 떨어진 인천국제공항 물류단지. 잿빛 건물 틈으로 대형 화물차들이 바삐 움직였다. 5차로를 사이에 두고도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공장들. 바로 그곳에 스태츠칩팩코리아가 있었다. 오후 2시를 넘기자 공장 정문에 택시 세 대가 멈춰 섰다. 스무 살 남짓한 젊은 노동자들이 여럿 내렸다. 이들은 부리나케 달려가 개찰구를 통과했다. 안쪽에도 사람들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대부분 앳된 얼굴이었다. 김선우(가명, 23) 씨도 평화로워 보이는 이곳에서 근무했다. 그는 2020년 10월 스태츠칩팩코리아에 입사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학교의 ‘1호’ 취업생이었다.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몸에 이상이 생겼다. 간이 녹아내렸다.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이식 수술을 받았다. 당시 그의 나이 만 열아홉이었다.(관련기사 : <반도체 공장 취업한 고교생, 1년 만에 간이 녹았다>) “얘가 그냥 인문계(고등학교)를 갔으면… 대학을 갔으면… 이런 일이 없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계속 드는 거예요.” 엄마 이하영(가명) 씨는 선우 씨가 아픈 게 꼭 엄마인 자기 탓 같았다. 마이스터고등학교에 진학한다던 선우 씨를 말리지 못한 것도, 울산 집에서 멀리 떨어진 인천에서 일한다는 선우 씨를 붙잡지 못한 것도, 안색이 좋지 않았을 때 병원으로 바로 가지 못한 것도. 선우 씨는 2022년 9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신청서’를 제출했다. 산재를 신청한 것. ‘일’을 하다가 아프게 됐단 걸 인정받기 위해서였다.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가 인정되면 앞으로 들 치료비 걱정도 덜 수 있었다. 근로복지공단은 1년 8개월 만에 산재 ‘불승인’ 결정을 통보했다. 그는 지난 8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에서 산재 승인을 다시 다퉈보겠다는 취지였다. “솔직히 알리고 싶기도 한데, 학교에서도 안 들을 것 같아서요. 취업 담당 선생님 말고는 안 알렸어요. (…) 다른 분들은 뭐 없죠. 졸업하면 끝인데.” 선우 씨는 취업 담당 교사 외에는, 아파서 퇴사했다는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그는 “학교가 취업률을 더 신경 쓸 것 같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학교에서는 여전히 후배들을 거기(스태츠칩팩코리아)에 보내는 것 같더라고요.” 선우 씨가 졸업한 고등학교 홈페이지에는 졸업생 취업 현황이 공개돼 있다. 최근 5년간 90% 이상의 취업률을 자랑했다. 10월 집계된 취업 현황에 따르면 올해 스태츠칩팩코리아에 취업한 3학년 학생은 8명이다. 지난해에는 6명이 취업하고, 2명이 현장실습을 나간 것으로 기록돼 있다. 회사는 전국 수많은 직업계 고등학교, 대학교와 산학협력 업무협약을 맺고 있다. 2021년에는 “전국 특성화고등학교 출신 학생 500명 이상 채용”을 홍보했다. 선우 씨는 마이스터고등학교를 다녔다. 정식 명칭은 ‘산업수요 맞춤형 고등학교’로, 직업훈련을 통한 전문기술인 양성을 목표로 했다. 직업계고 학생들은 일반적으로 3학년 2학기가 되면 학교와 협약을 맺은 업체에 ‘현장실습’을 나간다. 선우 씨도 2020년 10월 ‘실습생’으로 스태츠칩팩코리아에 출근했다. 학교에서 교사의 소개로 구한 일자리. 검증된 회사라는 믿음이 있었다. “학교에서는 이제 취업률 올리니까 그냥 아무 곳에 나가서, 선생님들은 이제 일일이 확인하지 않거든요. 근데 저희는 이제 중요하잖아요. 저희는 3년이 걸린 거니까. 그래서 학교에서는 이제 선별해서 갖다줬다고는 하는데 저희가 알아보면 아, 이거는 아닌 거 같은데, 싶은 회사가 많은 거죠.”(면접참여자 H, 김혜진 외 2인, <직업계고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노동환경 및 노동세계 진입 실태> 중) 현장실습생들이 죽거나 다치거나 병을 얻었다는 소식은 흔한 뉴스가 됐다. 올해만 해도, 지난 5월 전주페이퍼 공장에서 일하던 현장실습생이 설비실에서 숨을 거둔 채 발견됐다. 유족들은 ‘황화수소 중독’을 의심했지만, 지금까지도 정확한 사망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삼성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현장실습생 출신 이승환 씨 이야기도 화제가 됐다. 그는 2021년 10월 현장실습생 신분으로 ‘케이엠텍’에서 일했다. 케이엠텍은 삼성의 1차 하청 업체로 갤럭시 휴대전화 등을 조립하는 곳이다. 그는 이듬해 1월 영진전문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정식으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업무를 이어갔다. 그리고 지난해 9월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그의 나이 스물한 살이었다. 승환 씨는 이후 7차례 항암 치료를 받았다. 올해 3월에는 조혈모세포 이식수술도 받았다. 통증으로 잠 못 드는 날이 늘었고, 이식 후 염증반응으로 온몸이 까맣게 변하기도 했다. 그는 올해 4월 산재를 신청했다. 산재보험법상, 업무와 질병간의 인과관계는 피해노동자 측에서 입증해야 한다. 케이엠텍은 회사 내부 자료를 승환 씨에게 주려고 하지 않았다. 선우 씨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그 역시 산재 신청을 하기에 앞서 회사에 작업환경 관련 정보를 요청했다. 스태츠칩팩코리아는 자료를 주지 않고,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내부 자료를 요청하라고 답했다.(관련기사 : <간이 녹아 사라진 ‘반도체 소년’… 회사는 “술 때문에”>) 현장실습생 F : “학교에서 이렇게 제대로 된 교육은 딱히 잘 못 받았던 것 같아요.”현장실습생 D : “얘기해줬을 수도 있는데 기억 안 나요.”현장실습생 C : “딱히 얘기해 준 게 없는 것 같아요.”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등 3단체, <특성화고 학생의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과 노동세계진입연구> 중) 현장실습을 앞둔 학생들을 상대로 한 노동안전 교육은 여전히 미흡하다. 일터에 가서도 마찬가지다. 현장실습생 B : “바닥 미끄러우니 유리 조심하고, 뜨거운 거 조심하고… 그 정도밖에 없어요.”현장실습생 A : “그냥 몸에 안 좋다는 것만. 그래서 토시랑 마스크 끼라고. 그거 할 때는 꼭 마스크 끼라고 하죠.”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등 3단체, <특성화고 학생의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과 노동세계진입연구> 중) 사회는 실습생에게 친절하지 않다. 선우 씨에게 그랬던 것처럼, “위험하니까 조심하세요”라고 경고할 뿐이다. “사회생활이 다 그렇지, 뭐. (…) 아니, 그 새끼들 공장 나갔던 것들이 다 처돌아와. 몇 달 더 버티라니까. 아유, 우리 반이 바닥 찍을 것 같아. 니는 괜찮지? 사고 안 쳤지? 소희야, 버텨야 된다이?”(영화 <다음 소희> 대사 중) 일터에서 부당한 일을 겪어도 퇴사는 쉽지 않다. 직업계고 3학년 학생은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에 거의 의무적으로 참여한다. 법률상 의무는 없지만 관행처럼 굳어졌다. 심지어 현장실습 중 돌아오는 학생에게 징계를 내리는 경우도 있다. “당장 저희 학교만 해도, 업체에서 불합리한 일을 겪은 학생들을 보호해주기는커녕, 반성문을 쓰게 하고 징계를 주었습니다. 심지어 그 학생의 실습 기회는 가장 마지막에 주어졌습니다.”(김종하, 2017 인권논문 수상집 <특성화고 현장실습의 현실과 개선방향> 중) “선생님들은 현장실습 보냈다고 끝이라고 생각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알아서 버티라고만 하고. 무책임해요. (실습 중에 학교로) 돌아오면 욕하고. (…) 선생님들이 안 좋아했어요. 실적이 떨어지니까.(면접참여자 D)”(김혜진 외 2인, <직업계고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노동환경 및 노동세계 진입 실태> 중) 왜 현장실습생들은 안전하지 않은 일터로 나갈 수밖에 없을까. 현장실습제도는 산업체 인력 공급을 목적으로 시작됐다. 박정희 정부는 1973년 직업계고 학생들에 대해 재학 중 현장실습을 의무적으로 이수하도록 강제했다. 이후 여러 정권을 거치며 실습 기간은 2개월에서 1년까지 늘어났다. 실습생의 인권침해 문제와 중대재해 사고가 발생하자, 2006년에 이르러 처음으로 제도에 제약이 생겼다. 수업 일수와 취업 보장이라는 조건을 충족해야 실습을 나갈 수 있게 된 것. 규제는 2년이 지나지 않아 풀렸다. 이명박 정부는 청년 취업난을 해소하기 위해 ‘고졸시대’의 포문을 열고자 했다. 그는 현장 중심 직업교육을 강조하며, 특성화고 취업률 목표를 60%로 잡았다. 취업률은 학교 평가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때부터 학교의 취업률 경쟁은 시작됐다. 감사원은 2015년 고등학교 직업교육 활성화 분야에 관해 이렇게 지적했다. “일부 특성화고등학교에서 취업률을 높이고자 전공과 무관하거나 현장실습이 제한된 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거나 현장실습 협약과 배치되는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등 현장실습 제도 도입 취지에 맞지 않게 운영되고 있었습니다.”(<감사결과보고서-산업인력 양성 교육실책 추진 실태(2015)> 중) 사건·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2011년 광주 기아자동차 공장 뇌출혈 사고 이후, 2012년 울산 금영ETS 공장 지붕 붕괴 사망사고, 2014년 울산 신항만 공사 작업선 전복 사망사고, CJ제일제당 진천공장 사망사건, 2016년 성남 토다이 사망사건,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2017년 전주 LG유플러스 고객센터 사망사건, 제주 생수업체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교육부는 2018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시도교육청 평가 기준에서 ‘직업계고 취업률’을 폐지한다는 대안이었다. 이어 조기취업 형태의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이 폐지되고, 학습 중심의 현장실습만 허용됐다. 취업 시기 역시 3학년 2학기가 종료된 겨울방학부터 가능했다. 다만, ‘현장실습 선도기업’인 경우, 3학년 2학기 수업 중 3분의 2 이상을 이수하면 취업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장실습 선도기업’은 현장실습을 운영하는 기업 중 교육청 심의를 통해 우수한 실습 여건을 갖추었다고 인정받은 기업이다. 이후에도 사건·사고는 이어졌다. 2021년 여수 요트 선착장 실습생 사망사고, 2024년 전주 페이퍼 사망사고로 현장실습생들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선도기업’이라는 꼼수로 여전히 ‘값싼 노동력’이 투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지난 2월 ‘현장실습 제도’를 ILO 협약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한국에서 도제 제도나 직업훈련 참여 최저 연령은 16세인 것으로 보이며 현장실습생은 노동에 진입할 수 있는 최소 연령을 초과하고 있다”며 “실습생에 대한 안전과 훈련 감독 부재의 상황도 우려된다”고 밝혔다. 현장실습에 대한 문제제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8월 중등직업교육 발전 방안을 내놓았다. ‘제2의 마이스터고 붐’을 조성하겠다며, 첨단산업 중심 마이스터고를 육성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첨단산업은 정말 많은 유해화학물질이 집약적으로 사용되는 산업입니다. 새로운 공정과 새로운 물질이 끊임없이 사용되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이윤추구 논리가 안전보다 늘 우선돼 왔습니다. (…) 10대의 몸은 성인의 몸보다 유해물질에 민감합니다. 따라서 10대 후반부터 반도체 공장에서 일을 하는 것을 정부가 적극 육성하는 게 걱정될 수밖에 없죠.”(이종란 노무사, 2024. 10. 23.) 이종란 노무사는 고 황유미 씨 사례를 언급했다. 그는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2007년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근무한 지 2년도 채 되지 않아 발병한 것이다. 유미 씨는 산재를 신청한 지 7년 만에 인정받았다. 이를 계기로 삼성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에 대한 집단역학조사가 실시됐다. 이때 반도체 산업노동자들이 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게 밝혀지기도 했다. 김선우 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반도체 후공정 업체 스태츠칩팩코리아에 입사했다. 그는 입사 1년 2개월 만에 급성 간염을 동반한 독성 간질환으로 간 이식을 받았다. 산재 신청 결과는 불승인. 행정소송에서 이길 수 있을지, 그때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는 알 수 없다.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현장실습생으로 열아홉의 나이에 공장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2014년 CJ 현장실습생 김동준 군 사망사건을 소재로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을 쓴 은유 작가는 책에 이렇게 썼다. “청소년 노동이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환경과 문화에서는 누구의 노동도 안전하지 못하다.” 오늘도 다음 소희, 다음 동준, 다음 선우가 공장으로 출근한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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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 녹아 사라진 ‘반도체 소년’… 회사는 “술 때문에” [열아홉, 간이 녹았다 2화]
지난 5월 김선우(가명, 23) 씨는 한 통의 우편을 받았다. 발신자는 근로복지공단 경인지역본부. 앞서 제출한 ‘요양급여신청서’에 대한 회신이었다. 약 20개월 만에 돌아온 대답은 ‘불승인’이었다. 고등학생 때 반도체 공장에 취업하고, 1년 만에 간이 다 녹아버려 이식 수술을 받은 청년. 선우 씨의 기막힌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남들처럼 대학을 가고 싶지는 않았어요. 차라리 돈을 빨리 벌고 싶었어요.” 선우 씨는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고심했다. 통학 거리, 학업 분위기, 대학 진학률은 등은 고민거리가 아니었다. 그가 염두에 둔 건 오직 하나. ‘취업률’이었다. 빨리 돈을 벌어서 가계에 보탬이 되고 싶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마이스터고등학교였다. 정식 명칭은 ‘산업수요 맞춤형 고등학교’로, 직업훈련을 통한 전문기술인 양성을 목표로 한다. 마이스터(Meister)는 ‘장인’이란 뜻. 학교에서 ‘장인’을 육성해 고졸 채용을 확대하겠다는 취지다.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마이스터고는 높은 취업률을 자랑했다. 선우 씨가 입학하기 직전인 2017년에는 졸업자 119명 중 109명이 취업했다. 취업률 91.6%. 돈을 빨리 벌고 싶었던 선우 씨에게는 매력적인 수치였다. 그는 ‘고졸 장인’의 길을 택했다.그는 바람대로 경제활동을 일찍이 시작했다. 전교생 중 가장 먼저 회사로 출근한 ‘1호 취업생’. 그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해 10월에 반도체 후공정 업체 ‘스태츠칩팩코리아’에 입사했다.임직원만 3038명(잡코리아 2023년 12월 기준)에 달하는 대기업. NICE평가정보가 제공하는 기업신용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기타 반도체소자 제조업’ 분야 매출로 우리나라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큰 회사였다.선우 씨는 1년 계약직으로 들어갔다. 4일간 교육을 받았다. 고가의 장비를 조심히 다뤄야 한다는 주의도 빼놓지 않았다.근무 형태는 새벽, 주간, 야간 4조 3교대. 6일 근무하고 이틀 쉬는 식이었다. 6일 중 하루 이상 연장근무는 필수였다. 그런 날은 작업장에 11시간 30분이나 머물렀다. 식사시간은 50분. 구내식당에서 빠르게 끼니를 때우고 라인으로 돌아오기도 빠듯했다. 이후에는 연장근무 전 30분 휴식을 취하는 게 전부였다.근로시간은 주 51시간 30분.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한도인 ‘주 52시간’를 넘지 않게끔 맞춰진 시간이다. 24시간 가동되는 공장에 사람의 생체리듬을 맞춰 일했다. 연장근무를 하는 날이면 집에 돌아와 씻지도 못하고 뻗기 일쑤였다. 선우 씨가 맡은 건 칩 어태치(Chip Attach) 공정. 반도체칩에 전자기판을 연결하고 부착하는 등의 일이다. 이때 다량의 화학물질을 다루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솔더 페이스트(solder paste)였다. 여기에는 간독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구리, 주석, 은 등이 포함된다. 그 때문에 작업장에는 늘 퀴퀴한 냄새와 타는 냄새, 아세톤 냄새로 가득했다. 선우 씨는 방진복과 얇은 덴탈마스크, 천코팅 장갑, 비닐장갑을 착용했다. 마스크는 입 모양이 다 보일 정도로 얇아 냄새를 막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심지어 방진복이 화학물질로 오염되면 집에 가져가 세탁하는 것도 개인의 몫이었다. “블레이드라는 날카로운 날에 용액을 바르고 세척하는 작업을 해야 되거든요. 그런데 회사에서 주는 게 천장갑, 비닐장갑이니까 비닐 찢기고 (용액에) 손도 젖고 했죠.” 화학물질 가득한 작업장과 불규칙한 노동시간. 선우 씨는 취업한 지 약 1년 2개월 만에 몸이 망가졌다. 간이 완전히 녹아내렸다. 의료진마저 선우 씨가 살 수 있을 거라 장담하지 못했다. 가족들은 선우 씨와 ‘마지막 인사’까지 나눴다. 다행히 선우 씨는 2022년 1월 간 이식 수술을 받았고,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의 나이는 만 열아홉 살이었다. (관련기사: <반도체 공장 취업한 고교생, 1년 만에 간이 녹았다>)당시 병원은 급성간염을 동반한 독성간질환, 상세 불명의 무형성빈혈, 무과립구증을 진단했다. 적출된 간은 광범위한 출혈성 괴사 상태로, “완전히 녹아내려 형체가 없었다”. 손상 원인을 파악할 수조차 없는 수준.생사의 고비를 넘기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선우 씨는 회사 복귀 또는 퇴사라는 극단적인 갈림길 앞에 섰다. 몸이 좋지 않았던 선우 씨는 회사로 돌아갈 수 없었다. 스태츠칩팩코리아는 기자에게 “사직을 권고한 바 없다”고 해명했으나, 선우 씨 아버지가 기억하는 당시 상황은 달랐다.선우 씨가 죽음의 문턱에서 ‘병원 뺑뺑이’를 도는 동안 아버지는 회사에 병가 휴직을 신청했다. 사측으로부터 “6개월간 병가 휴직을 인정해주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기억했다. 덕분에 선우 씨는 2022년 1월 1일부터 병가 상태로 치료를 받았다. 그로부터 약 4개월이 지난 그해 5월, “회사로 복귀하라”는 통보를 들었다.당시 선우 씨는 상처 부위가 제대로 아물지 않아 재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버지는 회사에 의사 소견서 등을 보냈으나, “다른 방법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버지는 “회사가 무단결근 누적을 이유로 퇴사 처리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산재를 신청하면서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무단결근에서 병가로 기록을 정정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완치라는 건 없고, 평생 면역억제제 먹으면서 살아야 돼요. 심지어 앞으로 재이식(수술)이 한 번이 될지, 두 번, 세 번이 될지 모르는 상황이니까 계속 걱정이 되죠. 경제활동도 차차 해야 되는데….”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격이었다. 2023년 12월 28일 선우 씨에게 정말 고비가 찾아왔다. 몸이 이식받은 간을 거부하며 공격하고 있다는 것. 선우 씨의 면역체계는, 이식받은 ‘타인의 간’을 외부에서 들어온 위험요소로 인식하고 공격했다. 면역억제제를 사용해 공격 정도를 낮추면 간 수치가 나빠졌다.간 이식 수술을 받은 지 3년도 채 안 된 시점이었다. 재이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위기가 닥칠 거라곤 생각 못했다.선우 씨는 평생 3년마다 간을 새로 이식받으며 살아야 할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혼란스러워했다. 다행히 한 달간 입원 끝에 적절한 약물 배합을 찾아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불안은 늘 곁을 맴돌았다.지난 3년간 든 약값과 치료비만 2억 원.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돈이 들지는 미지수다. 선우 씨가 언제 다시 직장을 구할 수 있을지, 그 또한 불투명하다.선우 씨는 2022년 9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신청서’를 제출했다. 약값 부담이라도 덜자는 심산이었다. 이때 근로계약서, 급여명세서, 출근부 등 기초적인 자료와 작업환경과 유해요인 관련자료 등을 회사에 요청했다. 하지만 사측은 모두 제공을 거부했다. 공단을 통해 받으라는 답변.‘녹아버린 간’도 문제였다. 어떤 요인이 간에 치명적으로 작용했는지 의학적으로 더 따져볼 길이 사라진 셈이었다.선우 씨는 자기 자신이 어떤 화학물질을 다루는지도 잘 알지 못했다. 그가 사업장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정보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발간하는 반도체 작업환경 연구보고서 등과, 자신이 직접 몸으로 겪은 ‘경험’뿐이었다. 유해인자에 노출되는 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특수건강진단’을 받는다. 선우 씨도 2021년 4월 특수건강진단을 받았다.특수건강진단표에 기재된 취급물질로는 간 독성 및 손상을 유발하는 주석, 구리, 이소프로필알콜(IPA) 등 화학물질이 적혀 있었다. 여기에 “급성 간염을 동반한 독성 간 질환은 작업장에서 노출된 미상의 세척 용제에 의한 가능성이 높다”는 주치의 평가 소견서를 덧붙였다. “제가 사용하던 용액에 ‘신체에 접촉하지 마세요’가 적혀 있었어요. 근데 회사는 인체에 무해하다고 주장하니까….” 선우 씨와 주치의는 그의 간 손상 원인이 ‘일 때문’이라 의심했지만, 회사는 다른 것을 의심했다. 바로 ‘술’이었다. 회사는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공식’ 의견서에 이렇게 적었다. “김선우 씨의 음주 습관으로 인한 상병이 아닌지 합리적인 의심이 가능한 상황입니다.” 회사는 선우 씨의 특수건강진단 결과 ‘절주 또는 금주가 필요하다’는 의사 소견이 있었음을 근거로 들었다. 건강했던 20대 청년이 불과 1년 만에 간이 다 녹아버릴 정도가 되려면 술을 얼마나 많이 마셔야 할까. 선우 씨의 특수건강진단표에는 ‘일주일 1잔, 하루 4잔’이라고 적혀 있다. 당시 선우 씨는 빈혈 수치, 간장질환 수치 등은 모두 정상이었다. 발병 이후 초진 기록에도, 선우 씨의 음주 습관은 ‘주 1회 소주 1~2병’이라고 적혀 있다. “제가 산재 (신청) 준비하면서 대학병원에 상담을 받았어요. 교수님이 말씀하시기를 20대 초반이 술을 아무리 들이부어도 간이 이 정도로 상하지 않는다고. 외부 (원인의) 개입이 있는 게 아닌 이상 절대 (이렇게까지) 상하지 않는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니까 회사가 하는 말이 너무 황당한 거예요.” 회사 관계자들은 선우 씨와 엄마 하영 씨 눈앞에서도 ‘술 때문’이란 주장을 입에 올렸다. 지난해 11월 직업환경연구원이 현장조사를 나갔을 때, 그때도 회사 관계자들로부터 “술을 많이 마셔서 아픈 거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 선우 씨 가슴속의 상처를 후비는 말이었다. 그날 선우 씨는 연구원 2명과 회사 관계자들과 함께 작업장에 들어갔다. 하영 씨는 ‘영업상 기밀 보안’을 이유로 공장 내부에 들어갈 수 없었다. 선우 씨는 분위기에 압도됐다. 연구원들은 회사 관계자들에게만 질문할 뿐, 선우 씨에게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선우 씨에게 그날은 마치 “회사의 변명을 듣기 위한 자리”인 것 같았다. “회사 관계자가 ‘용액이 손에 직접 닿을 일이 없다’고 말하면, 연구원이 ‘그렇군요’ 하고 넘어가는 식이에요. 제가 직접 겪은 건데, 저한테는 물어보지도 않고요. 실제로는 비닐장갑이 찢어지면 손에 직접 닿아서 젖고 하거든요. 그때 느꼈어요. (이 조사는) 내 말을 들으려고 온 게 아니고, 그냥 업무 하나를 처리하러 온 거구나.” 선우 씨는 그날 직감했다. ‘산재 승인이 안 되겠구나.’ 선우 씨는 그 뒤에 직업환경연구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현장 조사에서 하지 못한 말들을 적었다.산재 신청 이후 약 1년 8개월의 기다림 끝에 결과가 나왔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5월 ‘불승인’을 통보했다.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우선 “급성 간염을 동반한 독성 간질환은 확인되고, 개인적인 발병요인도 확인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하지만 위원 7인 중 6인은 “독성 간염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물질의 노출이 없어 업무 관련성은 낮다”고 봤고, 1인은 “작업 중 간독성 물질이 일부 있으나, 독성이나 노출량을 고려할 때 상병을 유발할 수준은 아니다”라고 판단해 전원 불승인 결정을 내렸다. “소송으로 (산재 승인을) 다투려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회사가 아니면 다른 원인이 없잖아요.” 선우 씨는 지난 8월 산재 불승인 결과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에 몇 년이 걸릴지, 어떤 판결이 나올지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다. 다만, 소송이 진행되는 그 긴 시간 동안 선우 씨와 가족들이 더 지치고 힘들어질 거란 사실만은 분명하다.하지만 그 불확실한 미래에 한 번 더 희망을 걸었다. 열아홉 나이에 녹아버린 간. 그의 간을 사라지게 한 원인을 찾는 일도, 그의 남은 인생도 아직은 포기할 수 없기에.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스태츠칩팩코리아의 반론을 듣고자 지난달 19일부터 약 30차례 전화 연결을 시도했다. 지난달 30일 기자는 인사팀 관계자, 안전팀 관계자, 임원급 관계자와 번갈아 소통했다. 이들은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 판단에 이견이 없다”, “절차에 따랐고 오히려 선우 씨를 도우려고 했다”고 입장을 밝혔다.덧붙여 “(셜록 보도로 인해) 회사에 피해가 발생하면 법적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그리고 지난 2일 안전팀 관계자는 기자에게 메시지를 보내 “(김선우 씨에게) 사직을 권고한 사실이 없음을 확인했다”며, “회사는 ‘김선우 씨에게 헌혈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사내에 공지해 도움을 줬다”고 강조했다.산재에 관한 사측의 의견은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문건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스태츠칩팩코리아는 보험가입자의견서에 “해당 작업은 회사 창립 후 수십 년간 이어온 공정이며 그동안 동일 상병 혹은 유사 상병이 발생된 적 없다”고 주장했다.이어 “김선우 씨의 음주 습관으로 인한 상병이 아닌지 합리적 의심이 가능한 상황”이며, 작업환경측정결과와 역학조사 결과 기록을 보면 유해인자에 대해 “불검출 또는 검출한계 미만”임이 확인된다고 밝혔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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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 할머니가 공고에 보낸 ‘꼴찌를 위한 장학금’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15화]
공고 기초학력반 국어수업 이야기를 다룬 지난 글 <칠판 글씨 못읽던 명호의 비밀… 학교가 학교다워졌다>공개 이후 메일이 한 통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60대 중반의 할머니입니다. 밥이라도 편히 먹을 수 있도록 명호 학생에게 매달 용돈을 조금씩 보내주면 어떨까 해서 연락드립니다.” 매주 3~5만 원으로 주중 5일을 혼자 지낸다는 명호(17세, 가명)가 돈 걱정하지 않고 밥이라도 잘 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공고생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연락을 받았다. 공고 이야기를 단편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대학생부터, 인터뷰를 요청하는 방송사까지, 그중에는 도움을 가장한 부적절한 접근도 있었다. 학교와 학생들에게 괜한 문제를 야기할 만한 접촉은 피하려 노력해왔다.‘세상에 공짜는 없다. 근데, 진심으로 명호를 응원하는 사람일 수도 있잖아? 아니지… 이상한 사람이면 명호에게 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잖아.’수업을 앞둔 쉬는 시간 10분, 나는 고심 끝에 ‘차단‘을 결심했다. 살면서 여러 번 겪어봤다. 갑자기 찾아온 큰 행운을 덥석 쥔 후, 실은 그것이 불운의 씨앗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일. 게다가 돈과 학생 문제는 더욱 신중해야 했다.수업 시작종과 함께 나는 행운의 메일을 머리에서 지웠다. 마침 명호가 속한 반의 2학기 첫 국어수업이었다.“자자, 활동지 피라(펴라). 오랜만에 만났으니까 오늘은 각자의 방학을 소개하는 수업을 할라 칸다. 먼저 샘 방학부터 소개할 테이까 화면 봐라잉.”올해 여름방학은 2주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 학교는 겨울에 대규모 공사가 예정돼 있어서 여름방학을 줄이고 겨울방학을 늘리기로 했다.나는 ‘선생님의 여름방학‘이라는 제목으로 만든 PPT 자료를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 두 아들과 함께 한 등산, 자전거여행, 바다로 떠난 피서 이야기를 했다. 마지막엔 포항 구룡포 오징어축제에서 맨손으로 잡은 1미터짜리 방어 사진을 보여줬다. “와, 샘~ 대박이네요! 진짜 좋은 아빤데요.” 나는 의기양양하게 학생들을 바라봤다. 이어 학생들에게 활동지를 나눠줬다. <나의 방학을 소개해 봅시다>1. 가장 의미 있던 일2. 아쉬움이 남는 일3. 2학기 각오위의 세 가지 질문 중 한 가지 이상은 반드시 발표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 진짜로 말하기 싫은 사람은 “패스“를 외치면 특별히 한 번 봐드립니다. 아이들은 활동지를 작성했다. 가족과의 해외여행, 친구들과 다녀온 계곡, 학원에서 보낸 하루 등 아이들은 다양한 방학 이야기를 글과 말로 풀어냈다. 명호 차례가 다가왔다. 하지만 명호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나는 이름을 크게 부르며 명호를 깨웠다.“우리 명호! 방학 잘 보냈나? 살이 좀 찐 것 같은디, 어데 여행은 댕기(다녀)왔나?”명호의 활동지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명호도 발표 함 해야 안 되긋나? 왜 아무것도 안 적었노?”명호는 겨울잠에서 덜 깬 곰마냥 눈을 비비며 말했다.“집에만 있었으니까요.”지난 글에서 말한 대로, 명호는 쓰기와 말하기에서 어려움을 겪는 상태로 공고에 입학했다. 그런 탓에 지난 1학기 동안 나에게 국어과목 기초학력 수업을 들었다.이 과정에서 명호의 시력이 칠판에 적힌 글씨를 못 볼 정도로 나쁘다는 것과, 그럼에도 안경을 맞출 수 없었던 형편이 드러났다. 학교는 명호에게 안경을 맞춰줬고, 집중적인 기초학력 수업을 통해 명호의 쓰기와 말하기 능력은 많이 좋아졌다. 그런데 2학기 시작하자마자 아무것도 적지 않은 텅 빈 활동지와 어떤 발표도 하지 않으려는 무기력한 명호를 보니, 맥이 풀리고 말았다.“명호야, 샘이 세 가지를 물었다 아이가. 뭐라도 말해야 하지 않긋나.”“저는 밖에 나가는 거 안 좋아해요. 만날 집에만 있어서 살 쪘어요.”뒤늦게야 내 질문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명호는 마음껏 집밖에 나갈 수 없는 처지였다. 주말에만 집에 온다는 엄마는 명호와 여가를 즐길 형편이 아니었다. 명호에겐 자랑할 만한 아버지가 곁에 없었다.평일을 원룸에서 혼자 보내는 명호에게 방학은 멈춤의 시간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억지로 칠판을 바라보지 않아도 되며, 졸음을 쫓기 위해 허벅지를 꼬집지 않아도 되는 시간 말이다.사정을 알아보니 명호는 늦게까지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다, 새벽에 잠들어, 해가 중천일 때 눈을 떴다. 어른이 없는 집에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했고, 밖에 나가면 돈을 써야 하니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움직이는 시간이 적으니 칼로리는 몸에 쌓였고, 불규칙한 식습관으로 체중은 더욱 불었다. 여름방학 딱 2주, 명호의 일상은 완전히 무너졌다.나는 황급히 다음 순서인 정호(가명)에게 발표를 넘겼다. 정호는 이 지역의 ‘강남’이라 불리는 곳에 사는 학생이다. 비교적 집안 형편도 좋다. 공고에 왔지만 내신 관리를 잘 해서 대학에 가는 게 정호의 목표다.“샘요, 저는 2번이랑 3번 같이 발표할라 카는데요, 2번은 학원 간다고 놀러를 못 가서 아쉽고요, 3번은 2학기에는 수행 평가를 더 열심히 해서 꼭 좋은 대학을 갈라 캐요.”정호의 방학은 학기 중 일과보다 치열했다.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학원가를 돌며 촘촘한 일정을 소화했다.“샘요. 학기 중에는 체육, 미술, 음악 같은 과목이라도 있어서 숨 좀 쉴 수 있는데, 방학 중에는 만날 국영수만 하니까 진짜 죽을 거 같았어요.”나는 정호와 명호를 번갈아 바라봤다. 정호는 공고라는 낙인을 지우거나 혹은 공고의 한계를 넘기 위해 방학을 활용했지만, 명호는 그 시간 동안 자기만의 굴에 갇혀버리고 말했다. 수업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린 후 잠시 명호를 불렀다. “이놈아, 밖에 나가서 좀 뛰지 그랬노? 방학 중에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잠만 잤나?”“자고 일어나서 밥 챙기 먹고 그랬는데요.”사실 명호의 말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았다. 마치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지난 3월 우리가 처음 만난 때로 돌아간 듯, 명호는 다시 중얼거리며 말을 얼버무렸다. 1학기 내내 지도했던 발음 교육은 전혀 쓸모가 없게 되었다.정호와 명호 사이, 방학의 격차. 방학이란 이름으로 아이를 방치한 건 아닌지 마음이 복잡했다. 교무실 자리로 돌아온 나는 다시 메일함을 열었다. 명호의 ‘키다리를 할머니’를 자처한 분은 메일의 끄트머리에 이렇게 적었다. “필요하시면 명호 어머니와도 의논하시고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가만히 있으면 달라지는 것 없이 명호의 삶은 계속 그 자리에 머물 듯했다. 명호 어머니에게 연락해 키다리 할머니의 뜻을 전했다. 명호 어머니는 많이 망설였지만, 아들의 뜻을 따르겠다고 했다. 나는 다시 명호를 찾아갔다.“명호야, 누가 니 장학금 준다 카는데 받을래, 안 받을래?”“누가요?”‘꼴등‘을 해서 공고에 온 자신에게 누가 장학을 주겠느냐는 얼굴이었다.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비록 기초학력반이지만, 1학기 내내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해 국어과목에서 1등을 했으니 장학금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명호에게 자부심을 불어넣었다.“카니까 명호야, 받을라카나 말라카나(받을 거니 말 거니). 어머니는 니 의견에 따르신다 카시던데, 니는 우짤래?”“전 괜찮아요.”“괜찮다는 말은 또 뭔 말이고! 받기 싫다는 말이가? 그라믄 치아뿌든지.”명호는 다른 사람의 호의에 쉽게 긍정의 표시를 못했다. 어떤 제안이든 “나쁘지 않아요”, “괜찮아요”, “그래도 될 걸요”라는 식으로 애매하게 말했다.“줘도 돼요. 샘.” 어법에 맞지 않는 어색한 표현이었지만, 어쨌든 긍정하는 대답이었다. 나는 메일을 보낸 분께 전화를 걸었다. 그분의 설명은 이랬다.“쓰신 글 잘 봤습니다. 아무리 학생이어도 밥값 포함해서 3~5만 원으로 한 주를 사는 건 너무 적은 거 같아서요. 먼저 생활이 돼야 공부를 할 거 아닙니까. 제가 조금이라도 보태고 싶은데, 얼마가 좋을까요?”“제가 어떻게 금액을 제시할 수 있겠습니꺼. 주시는 대로 절대로 허투로 안 쓰겠십니더.”나의 말에 키다리 할머니가 답했다.“5만 원씩 매주 보태주고 싶은데, 어떨까요? 잠깐 말고, 형편 되는 대로 한 1년은 주고 싶어요.”매주 5만 원, 월로 따지면 최소 20만 원이었다. 연으로 환산하면 약 240만 원. 보통 우리 학교는 장학금으로 학생 1인당 30~50만 원을 준다. 전교 1등에게 주는 장학금도 100만 원 넘는 경우는 흔치 않다.“그렇게 큰 돈을 저희가 어떻게 염치없이 받겠습니꺼? 조금만 주셔도 괜찮습니더.”마음속으로는 우리 명호를 위해서 큰 결심을 내려주셔서 감사하고, 은혜를 잊지 않겠다며 냉큼 말해버리고 싶었지만, 생각도 하기 전에 저 말이 먼저 나오고 말았다. 혹시나 금액이 줄어들까 노심초사하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사실, 명호가 졸업할 때까지 한 500만 원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잘 의논해보시고 다시 연락 주세요. 꼭 밥값으로 쓰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선생님들이 제일 잘 아실 테니, 지원 방법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학교 의견에 따르겠습니다.”500만 원이면 명호가 3학년에 취업을 나갈 때까지 매월 20만 원씩 받을 수 있는 금액이다. 나는 전화기를 붙잡고 몇 번이나 고개를 조아리며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전화를 끊고 교감선생님께 달려가 상황을 설명했다.학교는 키다리 할머니의 장학금을 정식으로 받아 잘 관리해, 매월 20만 원씩 명호에게 지급하기로 했다. 돈만 지급하는 게 아니라 명호가 스스로 소비 계획을 세우게 돕고, 학교는 여러 상담으로 학습과 생활이 잘 유지되도록 살필 예정이다. 사회적 자원과 관심이 1등 혹은 명문 학교로만 향하는 세상에서, 공고에 ‘꼴찌를 위한 장학금‘이 탄생하다니. 나와 여러 교사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우리 학교에는 공부 자체를 힘들어 하거나 공부에 집중할 여건이 안 되는 학생이 많다. 그런데도 꼴찌를 위한 관심과 배려가 부족했다는 반성도 나왔다.개학한 뒤 명호는 조금씩 규칙적인 생활을 몸에 익히고 있다. 아무도 없는 집 안에만 머물지 않아도 되고,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만나며 나름의 사회생활도 하고 있다. 무엇보다 학교에선 따뜻한 밥도 먹을 수 있다.살면서 한 번도 장학금을 받아보지 못한, 공고에 와서도 ‘나머지 공부’를 했던 명호는 9월부터 우리 학교의 장학생이 된다. 한 번이 아니라 졸업할 때까지 돌봄과 지원을 받는 장학생 말이다.얼굴 모르는 키다리 할머니 덕분에 명호에겐 학교를 다녀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고, 학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돌아보고 있다. 키다리 할머니가 보낸 메일의 한 대목을 요즘 자주 생각한다. “밥이라도 편히 먹을 수 있도록….” 학교 관련 뉴스에서 기분 좋은 소식을 접한 지가 언젠지 까마득하다. 대한민국 학교가 요 모양 요 꼴이 된 건 저런 돌봄과 연민의 마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한구 교사 longlong19@hanmail.net※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칠판 글씨 못읽던 명호의 비밀… 학교가 학교다워졌다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14화]
방과후 수업 출석부에는 학생 8명 이름이 적혔지만, 교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정규수업과 학교 업무로 나도 많이 지친 탓이었을까. 텅 빈 교실과 주인 없는 책상을 보니 땡땡이 친 학생들에게 서운하고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공업고등학교에서 무슨 방과후 수업이냐 싶겠지만, 우리 학교도 늦은 오후부터 관련 수업을 한다.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일반고에서는 국어 수업은 인기가 높다. 서울권의 명문 대학교에 가기 위해선 고전 읽기, 심화 국어 등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텅 빈 교실이 말해주듯, 내가 일하는 공고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내가 맡은 방과후 국어수업은 기초학력 진단평가를 통과하지 못한 아이들이 꼭 들어야만 하는, 강제로 만들어진 수업이다. 사실 ‘방과후 수업’보다는 ‘기초학력반’이 정확한 표현이다. 상대적으로 학업성취도가 낮아 공고에 왔는데, 여기에서도 속칭 ‘나머지 공부’를 해야 하다니. 일부 짓궂은 학생들은 “띨띨이반”이라 놀리기도 한다. 자존감이 추락한 기초학력반 아이들은 어떻게든 수업을 빠지려 여러 방법을 동원하곤 한다. 7교시 내내 멀쩡하던 배를 움켜잡고 갑자기 병원에 간다거나, 집안에 제사가 있다며 수업을 빼달라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교사들은 벌점을 부과하겠다는 엄포와 학부모 상담을 거론하며 수업 참여를 유도하지만, 기초학력반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기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방과후 수업을 공친 다음 날, 교무실에서 한 선생님이 큰 목소리로 동료교사들을 불러 모았다. “샘들, 이거 저희 반 명호(가명)가 만든 쿠키입니더. 드셔 보이소. 진짜 맛있습니더.” 달콤하고 쌉싸름한 커피향이 더해진 쿠키 냄새가 교무실에 퍼졌다. 쿠키는 맛이 꽤 좋았다. “명호가 요리를 엄청 좋아합니더. 잘 먹었다고 수업시간에 칭찬해주면 좋아할 거라예.” 얼마 뒤 명호가 속한 반에서 수업을 하며 담임선생님의 부탁을 이행했다. 나는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명호 칭찬을 시작했다. “느그 반 담임 쌤이 교무실에서 쿠키를 돌렸는데, 그거 진짜 맛있더라! 어디서 살 수 있냐고 물으니까, 명호한테 물어보라 카시더라. 명호야, 그 쿠키 어디서 살 수 있노?” 이야기의 의도를 알아차린 아이들은 큰 소리로 화답했다. “명호가 직접 만들었어요. 실력 장난 아니지요?”“샘, 명호가 매주 빵이랑 쿠키도 만들어와요. 우리 반 매주 빵 먹어요.” 명호의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명호에게 ‘칭찬 스티커’ 네 개를 붙여줬다. 아이들의 부러운 시선이 이어졌다. 고등학생들이 이런 걸 좋아할까 싶지만, 칭찬을 많이 받아보지 못한 우리 학교 아이들은 ‘칭찬 스티커’를 정말 사랑한다. 스티커 50개를 모으면 교장 선생님이 직접 문화상품권으로 교환을 해준다. “느그들도 빵 값 내야지? 박수!” 명호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일주일 후, 다시 방과후 수업 시간이 다가왔다. ‘오늘도 아무도 없으면 어쩌나.’ 2주 연속 수업을 못하면 담당 부서에서 문책이 나올 게 뻔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교실 불은 모두 꺼져 있었고, 아무도 없었다. 다시 속이 상했다. 교실 문을 닫고 나가려는데 한쪽 구석에서 인기척이 났다. “샘, 오늘 수업 안 해요?”“명… 명호가?! 니 거(거기) 있었나? 불이라도 켜두지. 샘은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고맙데이! 명호야!” 고함에 가까운 감사 표시에 명호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명호 한 명을 앉혀놓고 국어수업 2시간을 진행했다.  그 다음주 방과후 수업, 이번에도 학생은 명호 한 명이었다. 출석부에 적힌 학생 중 절반은 아예 학교에 오지 않았고, 세 명은 조퇴를 했다. 다시 명호 한 명을 상대로 2시간 수업을 진행했다. 중학교 수준 정도의 국어수업, 명호가 잘 따라와서 기분이 좋았다. “명호야, 대화의 원리 배웠제? 그중에서 관용의 격률이 뭔지 기억나나?”“관용의 격률은 내 탓으로 돌리는 거요.”“명호야, 8번의 답은?”“3번요.” 나는 잠시 수업을 멈추고 명호를 바라보았다. 까만 옷에 까만 얼굴, 머리는 며칠을 감지 않았는지 기름기가 흘렀다. 과묵하고 동글동글한 모습이 담임선생님 말대로 푸바오처럼 귀여웠다. ‘학력이 많이 부족하지 않은 것 같은데, 명호는 왜 여기 앉아 있을까? 기초학력이 부족해 이 반에 편성된 아이가 맞긴 한데….’ 어떤 영역의 학습이 부족한지 확인해봤다. 명호는 쓰기가 ‘0점’이었다. 서술형 6문제 중 4문제 이상을 풀어야 하는데, 명호는 한 문제도 풀지 못했다. 평소에 말이 없고 수업시간엔 엎드려 자는 일이 잦았지만, 명호는 읽기와 듣기는 잘 했다. 의도치 않게 1대1 수업이 된 상황, 이왕 이렇게 됐으니 명호에게 딱 맞는 공부를 가르쳐주고 싶었다. “명호야, 니 샘이랑 이야기 좀 할래?” 나는 수업을 멈추고 명호와 마주 앉았다. 명호는 어떤 질문을 해도 단답형으로 대답하거나 침묵으로 일관했다. “명호야, 샘이 다음 시간부터 니만을 위한 국어수업을 할라 카는데, 어떤 수업을 해주꼬?”“….”“그럼 객관식으로 물어보꾸마.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문법, 문학, 맞춤법….”“맞춤법요.”“그래. 알았데이. 그럼 샘만 가지고 있는 맞춤법 문제 100개를 갖고 오께.” 표현을 잘 못하는 명호가 맞춤법을 배우고 싶다고 했으니, 나는 최선을 다해 수업 준비를 했다. 맞춤법 퀴즈도 만들고, 작은 선물도 준비했다. 아이가 원하는 수업을 해서 만족도를 높여주고 싶었다. 대신 문제만 푸는 것이 아니라 명호가 직접 설명할 기회를 줘서, 어떻게든 말을 많이 하게 하는 수업을 구상했다. 느리지만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는 명호와 나는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 “명호야, 근데 오늘 수업 마치고 뭐하노? 샘이랑 밥 무까(먹을까)?”“저 요리학원 가는데요.”“맞다. 니 요리 잘하제? 저번에 쿠키도 진짜 맛있었다. 집에서도 요리 마이(많이) 하나? 엄마가 정말 좋아하시겠다.”“엄마는 집에 5일에 한 번만 오세요. 거의 저 혼자 해무요(해먹어요).” 명호는 어머니와 둘이 원룸에서 살고 있었다. 엄마는 평일에는 서울에서 일하고 주말에만 내려온다고 했다. 엄마는 서울로 떠날 때마다 3만 원 또는 5만 원을 두고 가시는데, 명호는 그 돈으로 5일을 산다고 했다. 아침은 굶고, 점심은 학교 급식, 저녁은 사먹거나 돈이 떨어지면 라면을 먹는다고 했다. 명호의 말에 마음이 무거웠다. “자, 그라믄 다시 수업하자. 명호야, 칠판에 적힌 글자 한번 크게 읽어볼래?”“….”“명호야, 빨리 읽어야지.” 명호는 읽지 않았다. 눈을 찡그려가며 칠판의 글자를 읽기 위해 노력했지만, 읽지 못했다. “자, 그라믄 이 글자 읽어보까?” 나는 글씨를 조금 더 크게 썼다. 명호는 눈을 찡그린 채 칠판의 글씨를 보려 애썼다.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명호야… 언제부터 글자가 잘 안 보였노?”“중학교 2학년부터요.”“안경은… 왜 안 맞췄노?“ 명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듯했다. 아마 명호는 그동안 모든 수업에서 칠판의 글씨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더욱이 TV 화면으로 나오는 PPT 자료에선 글씨가 더 작아서 전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명호는 시력이 많이 나빴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불편했지만, 명호는 몸이 편한 방식으로 생활을 바꿨다. 어차피 잘 안 보이니 읽는 것을 포기하는 식으로 말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찾아온 시력 저하는 명호의 눈을 찌푸리게 만들었고, 곧 학습 포기로 이어졌다. 내 둘째 아들 역시 시력이 안 좋다. 5세 무렵 영유아 검진에서 심각한 난시와 약시가 있다는 걸 알았다. 의사는 “평생 잘 보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다. 수년간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조금 나아졌지만, 나는 좀 더 일찍 발견하지 못한 걸 자책하며 오랫동안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명호에게 안경을 맞춰주고 싶었다. 교감 선생님, 방과후 부장님께 예산 편성을 요청했다. 다행히 학교는 예산을 마련해줬다. “잘생긴 선생님 얼굴이 그동안 흐릿하게 보있겠네! 샘이랑 내일 안경 맞추러 가제이.“ 명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경점에 가서 명호는 꽤 오랜 시간 눈 검사를 받았다. 안경 없이 살면서 눈을 작게 뜨는 습관이 생겼고, 이는 시력을 더 저하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명호는 여러 안경테를 써봤지만, 어떤 것이 좋다고 명확히 표현하진 않았다. 나는 “니가 제일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고르라”고 제안했다. “저는 사실 저게 마음에 드는데요.” 한참을 망설이던 명호가 가리킨 안경테는 15만 원이 넘었다. 사실 명호는 처음부터 그걸로 선택을 마쳤지만, 학교 지원금이 10만 원이라서 내색하지 않았던 거다. “명호야, 개안타(괜찮다)! 샘 돈 많다! 그걸로 해라!“ 나는 한껏 허세를 부렸다. 그럼에도 명호는 다른 안경을 선택했다. 한동안 명호와 나는 실랑이를 벌였다. 괜히 미안해서 그런지 명호는 자꾸 싼 안경테를 고집했다. 결국 안경점 사장님이 나섰다. “자가(쟤가) 처음에 고른 게 아(아이)들한테 인기가 가장 많습니더. 샘이 사주시는 안경이니 공부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특별히 5만 원 할인해드리겠습니더. 마음 바뀌기 전에 얼른 들고 가이소.“ 안경을 맞추고 명호에게 얼만큼 세상이 밝아 보이느냐고 묻지 않았다. 우리는 예전처럼 1대1 방과후 수업을 이어갔다. 명호는 첫 수업을 제외하고 총 20차시에 해당되는 수업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착실히 들었다. 마지막 수업 시간에 밖에서 명호를 기다리던 친구가 교실로 들어왔다. “샘요, 명호가 국어 샘하고 약속했다고 안경 맞추고 완전 달라졌어요. 잠도 안 자고, 수업도 열심히 듣고 성적도 많이 올랐어요!” 나는 말없이 밖에서 명호를 기다려준 친구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세상의 어떤 사람들은 공고를 두고 “꼴등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라고 폄훼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 험한 세상에 꼴등을 위한 학교가 있다는 것이, 그 학교에서 나머지 공부를 묵묵히 완주한 학생이 있다는 것이, 교실 밖에서 기초학력이 부족한 친구를 기다려주는 아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명호는 1학기 마지막 국어과목 기초학력 평가에서 95점을 맞아 해당 학생 중에서 1등을 했다. 여전히 말하기와 쓰기는 어려워하지만, 예전보다 자신감도 생겼고 표정도 많이 밝아졌다. 학교가 비로소 학교다운 역할을 한 기분이다. 지한구 교사 longlong19@hanmail.net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교육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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