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축소되는 인구, 패러다임을 바꾸다
‘인구’란 말은, 마치 누구나 땅에 발 딛고 살지만 정작 지구란 말을 들었을 때 잘 와 닿지 않는 것처럼 너무 거창하게, 때론 멀게 들립니다. 이 글을 읽는 스피커스 구독자 모두 지구촌 80억명 가운데 한 명, 대한민국 5천만명 가운데 하나이지만 집합적인 인구는 나와는 상관없는 얘기일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느 지역에 어떤 형편으로 살든지 인구는 나의 삶에 소리 없이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면 어떨까요? 비유하면 풍선의 바람 빠지는 소리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 인구는 감소라는 한 방향으로만 움직입니다. 늘거나 줄거나 하지 않고 줄기만 하죠. 풍선이 수축하듯 우린 ‘축소되는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지난해 한겨레가 주최한 열 다섯 번째 아시아미래포럼도 이 주제(‘저출생 축소사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다뤘습니다. ‘축소사회’란 주제어는 도시 공학자인 앨런 말라흐의 책에서 따왔습니다. 미국 커뮤니티 프로그레스 센터 수석연구원인 그가 쓴 책 제목이 다소 깁니다. ‘축소되는 세계: 인구도, 도시도, 경제도, 미래도, 지금 세계는 모든 것이 축소되고 있다’. 그는 포럼에 참석해 언론인 손석희씨와 특별대담을 했습니다.😊 2024년 1월 앨런 말라흐의 책이 번역 소개되기 전, 그는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통상 어디 소속돼 있는지가 어떤 사람의 능력과 권위를 뒷받침할 때가 많은데, 그가 수석연구원으로 있는 미국 커뮤니티 프로그레스 센터(CCP) 또한 낯설긴 마찬가지입니다. 이 단체는 ‘도시 재생’을 돕는 비영리 단체입니다. 쉽게 말해 도시에 버려지거나 노후한 땅과 집, 건축물에 생기를 불어넣어 더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드는 일을 합니다. 공간이 잉태하는 계층적, 인종적 불평등을 축소하는 것도 이 단체의 목표랍니다. 이 단체에서 활동하는 도시계획 전문가 말라흐의 경력이 인구 문제와 다소 동떨어져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음,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사람은 어딘가에서 살고 있습니다. 공간은 늘 그곳에 사는 사람의 문제와 맞닿아 있죠! ‘축소되는 세계’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사람이 없다면 도시가 무엇이겠습니까?” “맞습니다. 사람이 바로 도시입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코리올라누스’에 나오는 호민관 시키니우스와 시민들 간 대화입니다.  말라흐는 고대 로마에서 21세기 대한민국까지, 전 세계 인구 변천사로 책의 첫 장을 시작합니다. 마지막 장에서는 우리가 사는 ‘공간’이 인구가 감소한 세상에서 어떻게 해야 지속할 수 있으면서도 살기 좋은 곳이 될지 고민을 풀어놓습니다. 경제학자들이 경제란 틀로, 여성학자들이 젠더란 프리즘으로 인구 문제를 보듯 말라흐는 도시를 통해 인구 문제를 진단하고 처방합니다. ① 축소되는 세계에 들어서다 말라흐가 대담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말을 했는지 살펴보기 전, 그가 던져준 ‘축소 사회’란 통찰을 먼저 간단히 짚어보면 좋겠습니다. 이 말은 줄어드는 인구가 빚어내는 세상의 온갖 변화를 압축해 표현해줍니다. 인구 문제에 접근하는 틀은 크게 세 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생률 그리고 인구수, 고령화. 셋 다, 아이를 얼마나 낳느냐란 한 줄기에서 나오는 가지들입니다. 적게 나면 인구가 줄고 고령화가 심해집니다. 인구가 늘 때나 줄 때나 우리에게 ‘포비아’(공포)로 다가옵니다. 나이 지긋한 구독자들은 맬서스의 ‘인구론’을 배우면서, 곧 지구가 넘쳐나는 사람으로 망할지 모른다고 걱정했던 때를 기억할 겁니다. 그 파편으로 어릴 적 저 또한 방글라데시 다음으로 높은 인구 밀도에 대한 관심이 지나칠 정도로 컸습니다.  좁은 땅덩어리에 너무 많은 인구를 걱정하던 기억은 이제 잊힌 지 오래입니다. 젊은 구독자들께서는 반대로 요즘은 결혼도 하지 않고 애도 낳지 않는다는 얘기를 귀에 딱지가 붙을 정도로 자주 들었을 겁니다. 어느덧 인구가 줄다가 결국 나라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묵시록을 듣는 시대로 바뀌었습니다.  인구가 많든 적든, ‘문제’로 취급되는 건 매한가지입니다. ② 인구 감소로 세상의 패러다임이 바뀐다 ‘인구가 줄면 어때? 또 늘어도 무슨 상관이야’, 그런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 말라흐는 인구 문제를 그냥 놔둔 채 적응해 살자는 방관자가 아닙니다. 그가 손석희씨와 나눈 대담은 ‘축소되는 인구, 세상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입니다. 인구가 줄면 세상이 바뀝니다. 좋은 점을 먼저 떠올릴 분도 분명 있을 겁니다.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저도 그렇고요. 사람이 줄면 지하철도 쾌적해지는 건 아닐까 기대할 수 있죠. 또 인구가 줄면 기후 위기를 촉발한 오염원도 줄지 않을까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각자 느끼는 일상의 작은 부분부터 공동체가 맞닥뜨린 심각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인구가 줄면 분명 순기능도 있을 겁니다. 사실 인구가 줄면 얻게 될 순기능이란 것도 인구수를 줄여서가 아니라 다른 각도로 접근해 풀 수도 있을 겁니다. 반대로 왜 거의 모든 전문가가 인구 감소를 ‘인구 위기’로 표현할까요? 아이가 적게 태어나면 어떤 일이 빚어질까요? 산부인과, 산후조리원, 소아청소년과, 어린이집, 유치원, 초중고등 학교에 이어 대학도 하나둘씩 줄어들겠죠. 1970년 한 해 태어난 아이가 100만 명인데 지난해 23만 명으로 줄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줄 겁니다. 줄어드는 인구로 소비할 사람이 적어지면 가게와 공장 그리고 일자리도 감소합니다. 빈집은 늘고 마을도 하나둘씩 사라지겠죠. 도미노처럼 말이죠. 줄어드는 인구는 시간의 문제일 뿐, 분명히 세상의 패러다임을 서서히 바꿔나갈 겁니다. ③ 아무리 해도 인구 감소를 되돌릴 순 없다 인구 위기에 맞서, 열심히 그리고 제대로 대응한다면 다시 인구가 늘 수도 있지 않을까요? 말라흐는 이런 ‘희망 고문’을 요새 말로 ‘직격’했습니다.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말씀드릴 순 없겠지만, 어렵습니다.” 예산을 더 투입해 출생률을 끌어올리는 정책이 한계에 봉착한 게 아니냐는 손석희씨의 대담 첫 질문에 대한 그의 답입니다. 나랏돈을 더 퍼붓더라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생률(지난해 기준 0.74)을 확 끌어올릴 순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보탭니다. 출생률이 아주 낮은 한국과 같은 나라가 “어떤 전략을 쓰더라도 ‘대체 출산율’ 이상으로 끌어올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대체 출산율은 합계출산율(15~49살 여성이 가임 기간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평균 출생아 수, TFR, 이하 출생률) 2.1명으로 현재 인구 규모가 유지되는 수준을 일컫습니다. 그는 비관론자처럼 보이지만, 사실 현실주의자에 가깝습니다. 인구 문제를 그냥 놔두자는 게 아니라, 먼저 출생률을 끌어올려서 인구가 늘거나 유지되는 미래는 다시 오기 어렵다는 걸 현실로 인정하자는 겁니다. ④ 100년 뒤 인구는 얼마나 되길래 말라흐의 말을 좀 더 따라가기에 앞서 실제 인구는 앞으로 얼마나 될까요? 지금 우리나라 인구는 5천만명이 조금 넘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출생률은 대체출산율의 3분의 1수준에 불과합니다. 인구는 이미 4년 전부터 줄기 시작했습니다. 100년 뒤면 지금의 대략 3분의 1수준인 2000만명 선 아래로 떨어집니다. 그즈음 이 글을 읽는 독자 중 살아계실 분은 아무도 없을 테니, 비현실적인 얘기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15년 뒤는 어떨까요? 그때 인구는 4천만명대로 내려갑니다. 그리고 40년 뒤쯤 3천만명대, 70년 뒤에는 2천만명대로 확 줄어듭니다. 인구 구조도 크게 변화합니다. 40년쯤 지나면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거의 절반에 이릅니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노인입니다. 어쩌면 그때 ‘노인’의 정의를 바꿔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는 통계청의 예상(중위 추계)인데, 인구감소 속도가 좀 더 빠를 수도(저위 추계) 있고 반대로 늦을 수도(고위 추계)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속도가 크게 달라지거나 방향성을 바꾸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말라흐가 주목하는 것도 변화의 방향이 아닌 “속도”입니다. 그는 인구 구조의 변화가 “너무 드라마틱(가파르다)”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다시 옛날 수준으로 인구를 늘리지 못할 것이다. 문제는 인구 감소를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가져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관리 가능할까요? 달리 말해 어떻게 해야 변화의 속도를 늦출 수 있을까요? ⑤ 변화의 속도를 늦추려면 한국 사회의 시스템을 수리하라 그 ‘답’은 출생률의 급격한 하락으로 대표되는 인구 구조의 변화를 가속한 원인이 뭔지를 알아야 합니다. 사실 저출생은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적 추세입니다. 말라흐는 도시화와 높아진 교육 수준, 여성 권리 확대 등으로 저출생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유독 한국의 낮은 출생률의 원인은 “(한국 사회의 독특한) 시스템 문제”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시스템은 또 뭘까요? 그는 정교하게 정의 내리지 않은 채 이렇게 풀어 말합니다. “많은 사람이 한국 내 사회, 경제, 젠더 현실에 별로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그가 말하는 시스템은 사회 규범(생각이나 가치관)을 포함해 사회, 경제적 현실 전반을 뭉뚱그려 한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건 이러한 시스템의 변화 없이는 변화의 속도를 늦출 수 없다고 합니다. 그는 출생률을 대체출산율 수준으로 높이긴 어렵더라도 열심히 노력한다면 지난해 일본 수준의 출생률(1.2)은 가능할 수 있다면서 “성 격차(Gender gap)와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담당하는 복잡한 역할들이 중요하다. 출생률을 1.2로 늘리기 위해서는 시스템을 손봐 여성들에게 영향을 주는 이슈 그리고 남녀 관계(성평등), 일과 가정의 균형 등 한국 사회의 근원적인 문제를 다루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수술’을 하지 않으면 일본 수준의 출생률도 회복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말라흐는 변화의 필요성을 얘기하면서도 실현 가능성은 굉장히 낮다고 봅니다. “사실 어느 나라든 사회, 경제적인 근본적 변화를 꾀하기 위해서는 2차 세계대전이나 아니면 대공황 같은 커다란 사건이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런 큰 ‘불행’ 없이 우리 사회가 애 낳고 키우기 좋은 사회로 바뀌면 좋겠습니다.  도시 공학자의 시선에서 인구 문제를 바라보는 말라흐를 더욱 특별히 주목하게 만드는 건 그의 메시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인구 감소 시대에 ‘뭐가 중헌디’라고 그에게 묻는다면 그는 주저 없이 인구의 양적 규모나 성장이 아닌 ‘삶의 질’이라고 답할 겁니다. 그는 포럼에 앞서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대담 중 손석희씨의 질문에도 그랬습니다. 그가 말하는 삶의 질이란 또 무엇일까요? 사실 설명하지 않더라도 구독자께서 짐작하실 겁니다. 동일하진 않겠지만 말라흐는 이렇게 표현합니다.“(삶의 질은) 다층적 개념이다. 근본적으로는 사회적, 물리적 환경을 말한다. 모든 연령층이 다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말한다. 아동 친화적이면서도 노인 친화적이어야 한다. ‘기본적인 것’을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어떤 사람들에겐 녹색 환경에 접근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에겐 여가일 수 있다. 또 다른 이들에겐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이 될 수 있다.” 그가 말하는 ‘삶의 질’은 그가 앞서 밝힌 시스템 변화의 결괏값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구 감소를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시스템의 변화에 시간이 필요하듯,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데도 최소한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겠죠. 아시아미래포럼 이틀 전 말라흐는 또 다른 포럼에서 강연했습니다. 고양시가 주최하는 세계도시포럼에서요. 이 포럼에서도 그는 자신이 쓴 책과 지난달 한겨레와 한 인터뷰 그리고 아시아미래포럼에서 밝힌 생각의 궤적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도시포럼에서 그는 인구가 감소하는 저성장 시대에 경쟁은 지속가능한 장기 전략이 아닌 ‘제로섬 게임’(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잃는)이라며, 성장 없이도 도시가 번영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 방법으로 지역 자족 경제 확대, 역내 교육과 의료 서비스의 질 강화, 공공재와 편의시설 확충, 지역 주민의 참여와 관여 확대, 가족 및 어린이 친화적인 환경 조성 등을 예시로 들었죠. 사실 그가 도시의 ‘번영’을 말할 때마다 성장과 인구 증가, 확장의 개념 틀로 번영을 사용해온 우리에게 혼선을 끼칩니다. 그는 성장 없이도, 인구가 감소하더라도 도시는 번영할 수 있다고 계속 강조해왔죠. 그가 말하는 번영하는 도시는 ‘매력적인 도시’, ‘삶의 질이 높은 도시’, ‘지속 가능한 도시’ 등으로 표현됩니다. 손석희씨가 그와 대담을 이어가면서 인구가 감소하지만 번영하는 도시를 성장에 익숙한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느라 진땀을 흘린 것도, 어쩌면 우리의 머릿속에 박힌 번영에 대한 오래된 관념이 지배하고 있어서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한국을 처음 방문한 말라흐는 어떻게 해야 출생률을 끌어올려 인구수를 늘릴 수 있을까가 아니라 결혼해서 애를 낳아 키우기 힘들게 하는 팍팍한 사회를 보다 살기 좋게 만드는 쪽으로 우리의 시선을 돌리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앨런 말라흐는 도시계획 전문가의 관점에서 인구감소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합니다. 그는 한국의 극심한 저출산 현상을 사회 시스템의 문제로 진단하며, 특히 성평등과 일-가정 균형 등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의 핵심 메시지는 인구 규모나 성장보다 ‘삶의 질’ 향상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인데요. 인구감소를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 사회가 그의 제안을 받아들일 준비는 되었을까요?🤔 ※ 이 콘텐츠는 뉴스레터 스피커스에 게재되었습니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불행한 결혼
추상화를 좋아하시는 분은 적지 않겠지만 이론이나 추상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은 거의 없을 겁니다. 스피커스를 쓰는 저도 그렇습니다. 바로 오늘 모실 분이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저출생하면 바로 떠오르는 단어나 정책은 뭐가 있을까요? 경력 단절, 결혼 기피, 고된 육아, 높은 집값, 교육비, 불안정한 일자리, 불공평한 가사 분담…이렇게 열거된 것 중 중요하지 않은 건 하나도 없을 겁니다. 어느 것 하나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더 큰 구조에서 저출생 현상을 바라보면 어떨까요? 좀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는 저출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던 걸까요? 국가 차원에서 출생률이 낮다고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호들갑을 떠는 나라에 살지만 정작 아이를 낳고 키우는 데 나라가 별 보탬을 주는 것 같지도 않는 현실, 이런 간극은 왜 존재하는 걸까요? 이번 스피커스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추상’, ‘이론’하면 어렵다거나 따분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편지는 쓰기 전부터 재미를 포기했습니다.😅 그렇다고 ‘유익함’마저 포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재미 없는 이론과 사상, 관념이 막상 현실을 바꿔온 역사는 숱합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한 말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어떤 지적 영향력으로부터도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실무가들조차도 대개는 죽은 경제학자들의 노예에 불과하다.” 노예란 말이 좀 불편하게 들리긴 하지만, 우린 앞선 어느 사상가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인구 문제에 맞서 숱한 아이디어를 내고 처방전을 쓰고 있지만, 어쩌면 우리도 의식하지 못한 채 오늘 소개할 낸시 폴브레와 같은 경제 사상가의 영향을 받고 있거나 앞으로 받을지 모릅니다. 낸시 폴브레. 그녀를 가장 잘 수식하는 말은 ‘페미니스트 경제학자’입니다. 그녀는 지난해 노동시장에서 성별 격차의 원인을 규명한 공로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클라우디아 골딘을 떠올리게 합니다. 둘 다 공통으로 여성주의 시각에서 경제학에 접근했지만 골딘이 ‘시장’에, 폴브레는 제도로서 시장에 편입되거나 인정받지 못한 ‘돌봄’에 더 주목했다고 봅니다. 그녀는 인류 역사 내내 거의 여성이 수행해 온 무급 돌봄 노동, 시장 밖(비시장) 노동, 재생산 등의 연구에 헌신해왔습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폴브레 앞에 ‘돌봄 경제학 분야 선구자’란 호칭이 따라붙습니다. 그녀는 명예교수로 있는 매사추세츠대 정치경제학연구소에서 운영하는 ‘젠더와 돌봄 노동 프로그램’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우리말로 번역 소개된 책 ‘돌봄과 연대의 경제학’은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 돌봄 노동, 재생산, 젠더 불평등 문제를 역사적 맥락과 주요 경제 이론을 폭넓게 활용해 교차 분석했습니다. 그녀는 지난 1998년 각 분야에서 탁월한 독창성과 헌신을 보여준 인물에게 주는 맥아더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지난해 아시아미래포럼에 참석한 폴브레 교수는 크게 세 가지 틀로 저출생 문제를 짚어줬습니다.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그리고 돌봄. 이를 페미니스트 경제학자 시각에서 하나로 엮어냅니다. 그녀는 포럼 기조 강연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론적인 부분, 추상적인 부분으로 들릴 수 있다.” 수백명의 청중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말투였습니다. 무슨 얘기를 하려고 자세를 한껏 낮췄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볼까요.😊 ① 자본주의, 개인의 이익 추구만으론 저출생 문제 해결 못해 폴브레 강연 자료에 붙은 제목은 ‘경쟁, 협력, 돌봄’입니다. 경쟁과 협력은 대치되지만 사실 한 묶음입니다. 그가 자본주의의 프리즘으로 저출생을 진단하면서 가져온 개념들입니다. 경쟁은 저출생 현상을 악화했다면 협력의 가치는 그런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대안적 가치로 제시됩니다. 그런데 저출생 문제를 논하는데 왜 딱딱한 자본주의란 말까지 꺼내는 걸까요.🤔 그나마 쉬운 지점에서 한 번 출발해보면 어떨까요. 구독자님께서는 개인의 이익 추구가 더 중요하다고 보세요, 아니면 타인에 대한 배려가 더 중요하다고 보세요?  폴브레 교수는 이 두 가지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현실은 개인의 이익 추구에 치우쳐 경쟁을 부추깁니다. 과도한 경쟁은 공동체와 개인에게 위협마저 되고 있습니다. 진화론, 적자생존, 각자도생, 성장...자본주의 핵심 가치 반열에 오른 개인의 이익 추구를 때론 합리화하고 때론 추동하는 이러한 단어는 보이지 않게 우리 삶의 방식을 규율합니다. 폴브레는 이를 하나하나 각개 격파합니다. 그녀가 돌봄을 얘기하는 지점도 바로 여기입니다. 폴브레는 이러한 ‘위협’에 맞서고 벗어나기 위해서 돌봄의 필요성을 말합니다. 돌봄은 일상에서 어린이나 노약자, 아픈 사람을 돌보는 것으로 인식되는데 그녀는 좀 더 큰 틀에서 “인간의 역량을 생산하고 유지하는 활동”으로 일컫습니다. 오늘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뤄지는 출산과 육아로 한정해 이해하셔도 될 거 같습니다. 그녀는 우리를 향해 “경쟁을 통해서 가족을 만들어 낼 수는 없지 않냐”고 반문합니다. 즉 ‘시장’을 대명사로 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개인의 이익 추구를 통한 성장으로는 돌봄도,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저출생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심지어 그녀는 “각자도생은 멸망의 지름길”이라고 단언합니다. ② 돌봄 가치 인정 않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불행한 결혼’ 폴브레 교수가 쓴 책 ‘돌봄과 연대의 경제학’의 부제는 ‘가부장제 체제의 부상과 쇠락, 이후의 새로운 질서’입니다. 책의 부제는 가부장제를 빼놓고 그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로 호명되는 그녀로서 어쩌면 당연한 접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자본주의에서 ‘물질적 생산’과 ‘사회적 재생산’의 연결 고리의 한 형태로 가부장제를 주목합니다. 물질적 생산은 경제활동으로 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녀는 사회적 재생산을 ‘사회가 재생산되는 과정’으로 재정의 하지만 여전히 어려워, 이번 편지에서는 출생과 돌봄을 묶어 이해하셔도 좋을 거 같습니다. 그녀가 가부장제를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습니다. 인구 문제에 한정해서만 얘기하자면, 가부장제는 가족 돌봄을 할 수 있게 보장했답니다. 그 결과로 인구 증가도 이뤘죠. 여성도 혜택을 보긴 했지만 남성의 권위가 강화됐고 더 큰 혜택을 봤다고 말합니다. 이 가부장제 위에 효율성을 중시하면서 기술 변화를 통해 성장을 도모하는 자본주의가 결합하게 됩니다. 폴브레는 둘의 ‘불행한 결혼’이 사회의 재생산 과정을 위협한다고 봅니다. 포럼에서 한 그의 말을 압축해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가부장제를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에서 여성은 종속적 존재가 되었다. 주로 여성이 맡은 가족 돌봄이 경제적 산출에 직접적인 기여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혜택을 거의 받지 못했다. 더 나아가 생산의 단위로서 가족의 중요성은 간과됐다. 또 자녀의 양육 비용을 증가시키면서 결국에는 출산율 감소로 이어졌다.’ 인구 구조의 변화를 역사적 관점에서 조망한 그의 통찰은 사실 한 문장에 응축돼 있습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가족 돌봄의 가치를 고려하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정작 노동력을 생산하는 가족에 보상하지 않은 채 노동력을 이용하고 있다고 폴브레는 말하죠. 이는 가족 돌봄을 떠맡는 여성에 대한 배제와 차별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또 출산은 경제적 기여보다는 개인의 선택으로 치부될 뿐이랍니다.  폴브레 교수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결합이 남성은 유급 노동, 여성은 무급 돌봄노동이란 성별 역할 분담을 고착해왔다고 지적합니다. 저출생은 이러한 구조가 이제 임계점에 이르렀다는 ‘적색 신호등’입니다. 누군가 이런 상상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가부장제의 귀환을 통한 인구 문제의 해결도 가능하지 않을까?’ 포럼에 앞서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폴브레는 이런 식의 접근에 불쾌감을 내비쳤습니다. “정확히 어떻게 작동할까요? 노예제처럼요?! 피임과 낙태를 불법화하자는 걸까요? 아니면 수갑과 감옥? 정확히 누가 가부장적 강압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지, 그들이 또한 인권이라는 개념에 대해 어떤 신념을 가지고 있는 궁금합니다. 돌봄을 제공하도록 강요당한 여성이 다음 세대의 노동자와 시민, 부모를 잘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③ 미래세대와 돌봄…공공재로 접근해 투자하고 관리해야 폴브레의 가장 독창적인 부분은 인구 문제를 돌봄의 틀로 본다는 데 있습니다. 돌봄은 사회의 재생산을 위해 꼭 필요하고, 누군가는 맡아야 하죠. 하지만 시장에서 가치가 제대로 매겨지지 않습니다. 마땅히 평가받지 못하지만 사실 돌봄은 미래세대를 키워내는 데 투입되는 한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노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돌봄과 미래세대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공공재와 비슷합니다. 공공재는 누구나 공짜로 이용할 수 있지만 없어서는 안 될 공기, 물, 숲이라고 교과서에서 배우신 분이 있을 겁니다. 폴브레는 인구 그 자체도 공공재로 접근해 사회의 재생산 과정을 공공재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접근할 것을 주문합니다. 폴브레가 ‘불공정한 복지국가’를 말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과 닿아 있습니다. 조금은 익숙한 연금 고갈을 둘러싼 세대 간 형평성 논쟁과는 조금 결이 다른데요. 폴브레는 인구 구조의 변화와 맞물려 복지 혜택의 ‘외부성’(외부효과)에 주목합니다. 부모가 사적 비용으로 키워낸 자녀가 미래 자녀를 두지 않은 노인의 복지까지도 책임지게 된다는 주장입니다. 자녀 없는 노인의 ‘무임승차’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겠죠. 자칫 오해할 수 있는데 자녀 없는 부부나 노인을 ’하차’시키자는 게 초점이 아닙니다. 그녀가 하려는 이야기의 요점은 인구 특히 ‘미래 세대’를 공공재로 보고 공동체가 지속할 수 있도록 여기에 ‘투자’해야 한다는 겁니다. 단순히 경제적 지원 확대를 뜻하지 않습니다. 폴브레는 이 투자를 ‘사회적 지원’이라고도 표현합니다. 어쩌면 세계 최저 출생률은 우리나라가 사회적 재생산 과정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빈약하게 해온 나라라는 걸 보여주는 거울 아닐까요. 지금까지 살펴본 폴브레의 주장을 다소 거칠게 묶어 이렇게 정리할 수도 있을 겁니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결혼 생활이 결국 저출생이란 불행을 낳았고, 이는 공공재인 미래 세대를 재생산하는 과정을 개인 특히 여성에게 내맡기면서 파국을 초래했다.’ 그렇다면 그의 청진기로 한국 사회를 진단하면 어떨까요? 그녀는 ‘한국통’은 아닙니다. ‘삼포 세대’로 청년이 처한 경쟁 압박과 불안을 설명하면서도 한국 상황을 잘 모른다고 전제한 뒤 몇 가지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폴브레는 “진보를 재정의하고 사회 제도를 재설계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그녀의 포럼 강연 뒤 열린 원탁회의에서 윤자영 충남대 교수(경제학)는 좀 더 풀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성장과 진보를 다르게 정의 내리지 않는다면 돌봄에 대한 지원과 투자도 결국 어떻게 하면 경제(GDP, 국내총생산)를 성장시킬 것인가, 어떻게 일자리를 확장할 것인가에 매몰되는 데 그칠 것이다.” 실제 저출생 문제를 주로 경제 성장과 그 동력의 약화로 보고 접근하는 국내 전문가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폴브레는 “성공의 척도로 GDP에 의존하는 것을 자제”하라면서 이런 접근을 경계합니다. 성장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버리라는 한국 사회를 향한 외침이 정책 설계자들에게도 들리면 좋겠습니다. 폴브레는 이와 맞물려 ‘(문화적 규범을 포함한) 사회 제도의 변화’, ‘보다 포괄적인 접근의 필요성’ 등의 표현으로 기존의 단편적, 대증적 처방을 넘어서는 저출생 해법을 모색하라고 조언합니다. 특히 지난 20년 한국 정부가 펼쳐온 저출생 대책의 ‘실패’ 원인을 “생산(물질적 생산)과 출산(사회적 재생산)을 연계하는 기본 제도의 전체적인 틀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개별 정책이 성공하지 못했다”면서 패러다임의 전환을 주문합니다. 구체적으로 그녀는 한국 사회의 낮은 유급 돌봄 서비스 질, 저조한 유급 가족휴가(육아휴직) 사용률, 부모가 되기까지 걸림돌로 작용하는 불평등과 불안을 문제가 있는 현실로 언급합니다. 이는 공통으로 한국 사회의 과도한 경쟁이 낳은 산물이죠. 그녀는 “너무 심한 경쟁은 불충분한 경쟁만큼이나 좋지 않다”고 합니다. 어느 나라보다 경쟁을 중시하는 문화를 ‘연대’와 ‘협력’을 더 중시하는 사회로 바꿔나갈 수 있을까요? 어쩌면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사회를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바꿔내는 게 눈에 보이는 정책의 백화점식 나열보다 더 중요할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불행한 결혼’(이하 불행한 결혼)을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이 글을 쓰는 저 또한 최근에서야 처음 들어봤습니다. 물론 몰라도 이번 스피커스를 읽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겠지만, 아는 분은 틀림없이 더 쉽게 폴브레의 주장을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 있었을 거 같습니다. 폴브레는 기조 발제자로 나선 이번 포럼에서도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엮어 저출생 현상의 구조적 원인을 설명했습니다. 포럼이 열리기 한 달 전쯤 그녀가 참석한다는 소식을 접한 지인이 저에게 이런 글을 보내왔습니다. “낸시 폴브레는 이른바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 반대편에 있는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로 분류되는 급진 지성입니다. 엥겔스는 가부장제와 가족, 성차별은 자본주의 발달 과정에서 소멸할 거라고 했는데, 폴브레는 그게 틀렸다고 봤죠. 가부장제와 자본이 공모하고 동맹을 맺는, 성차별이 더욱 강화하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불행한 결혼’이라는 유명한 주장을 했습니다”. ‘불행한 결혼’은 폴브레가 43년 전 페미니즘 이론가인 앤 퍼거슨(매사추세츠대 철학과 명예교수)과 함께 쓴 글의 제목입니다. 그녀의 사상은 명쾌한 듯하면서도 어떤 분들에겐 확 와 닿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녀의 생각을 보다 자세히 탐구하고 싶다면 ‘돌봄과 연대의 경제학’이나 ‘보이지 않는 가슴’을 읽길 권합니다. 이 책들 또한 쉬운 책은 아닙니다. 두 책 모두 폴브레 기조강연 뒤 토론자로 함께 한 윤자영 교수가 번역했습니다. 윤 교수는 폴브레 제자로 매사추세츠대에서 여성주의 가족경제학과 돌봄 노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폴브레 사상의 해설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폴브레 교수의 저출생 진단은 익숙한 듯 새롭습니다. 개별 정책이나 수치에 매몰되지 않고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라는 구조적 문제를 짚어냅니다. 그가 해법으로 제시하는 ‘돌봄’은 단순한 복지 확대가 아닌, 우리 사회의 작동 방식 자체를 바꾸자는 제안입니다. “너무 심한 경쟁은 불충분한 경쟁만큼이나 좋지 않다”는 그녀의 말처럼, 경쟁 일변도의 한국 사회가 ‘연대’와 ‘협력’의 가치를 어떻게 키워나갈지 깊이 고민해볼 때입니다. ※ 이 콘텐츠는 뉴스레터 스피커스에 게재되었습니다. 
라테파파의 나라에서 찾은 교훈
아빠 4명, 엄마 15명. 지난해 9월19일 스웨덴 스톡홀름 시내에 도착하자마자 유아차를 끄는 부모의 숫자를 셌습니다. ‘저출생 축소사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주제로 열린 제15회 아시아미래포럼 앞두고, 저출생 대응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스웨덴을 취재차 방문했을 때 일입니다. 스웨덴은 ‘라테파파’로 유명한 나라입니다. ‘라테파파(Latte Papa)’란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론 유아차를 끄는 아빠를 표현하는 말로, 육아에 적극적인 아빠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라테파파란 단어가 생길 정도로 남성의 육아 기여도가 높다는데, 과연 어느 정도일까?’란 궁금증에 스톡홀름 공항에 내려 시내에 짐을 맡긴 오전 10시부터 첫 인터뷰가 시작되는 오후 4시 전까지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라테파파의 숫자를 세봤습니다. 사실 6시간 동안 목격한 라테파파가 4명뿐이란 점은 기대에 못 미쳤습니다.😅 엄마 홀로 아이를 데리고 나온 경우가 15명이었으니 4분의1 정도입니다. ‘스웨덴은 이렇게 많은 아빠가 엄마만큼 육아에 참여한다’는 내용을 유아차를 끄는 엄마와 아빠의 숫자를 비교해 보여주려던 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그래도 평일인 목요일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평일 낮에 아이와 함께 외출한 아빠가 한국과 비교해 많은 편이었네요. 서울에선 평일에 유아차를 끄는 아빠를 본 적이 없거든요. 이번 스피커스에서는 ‘육아 천국’으로 알려진 북유럽의 실상을 들여다봅니다. 특히, 스웨덴과 덴마크의 현장을 통해 이들 국가가 직면한 저출생 문제와 그에 대한 대응 방식은 어떨까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북유럽의 모습은 실제와 얼마나 일치할까요. 현장을 살펴보며, 저출생 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안해보려 합니다. 북유럽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① 모법 답안도 완벽하진 않다 ‘복지 천국’이라 불리는 북유럽도 한국 저출생 문제의 ‘정답’은 아닙니다. 스웨덴 스톡홀름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만난 사람들은 입을 모아 “우리도 아이를 점점 안 낳는다”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제가 묵었던 에어비앤비 숙소의 60대 여성 호스트도 “내 딸도 그렇지만, 요즘 애들은 아이를 안 낳으려 한다”며 혀를 찼습니다. 실제로 스웨덴과 덴마크의 합계출산율도 낮아지고 있죠. 리비아 올라 스톡홀름대 교수(인구학)는 “북유럽도 젊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 옛날엔 ‘평생직장’ 개념이 있었는데 지금은 제한된 기간에만 고용하는 형태가 많아져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졌다”면서 “미국의 ‘집중적 양육(intensive parenting)’처럼 일정 기간에 자녀에게 모든 것을 올인하는 개념이 스웨덴에도 확산하고 있는데, 젊은 사람들은 이런 환경을 숨막혀한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상황과 꽤나 비슷하죠. ‘오답’ 없는 완벽한 나라는 없습니다. 북유럽 국가들도 전 세계적인 저출생 흐름을 따라가고 있죠. 가끔 한국의 공무원과 전문가들에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봐라, 북유럽도 출산율 떨어지고 있는데 그들의 복지정책도 소용이 없다”라고요. 스웨덴이라고 해서 유아차를 끄는 아빠와 엄마가 ‘반반’은 아닙니다. 그러나 서울에선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평일 낮 홀로 유아차를 끄는 아빠가 4명이나 눈에 띄었죠. 우리는 북유럽을 ‘정답’으로 삼을 필욘 없습니다. 그들도 완벽하지 않으니까요. 그들에게 본받을 점을 찾아 한국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면 될 일입니다. ② ‘정책’을 넘어 ‘문화’를 보다 “한국에서 온 기자님들은 대부분 덴마크가 무슨 정책을 펼치는지 위주로 취재하고 가세요. 그런데 제가 봤을 때 더 중요한 건 이 나라 사람들의 문화 같아요.” 덴마크에서 통역을 도와준 한국인 사장님은 처음 만났을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정책과 문화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북유럽의 정책들은 오랜 시간 사회적 합의를 거쳐 만들어졌고, 이는 다시 그 나라의 문화와 인식에 영향을 줍니다. 그렇게 국민의 문화와 인식 토대 속에 정책이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육아휴직이 몇 개월이고, 급여는 얼마를 주는지보단 북유럽 사람들은 출산과 육아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한국의 문화·인식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들여다보려 했습니다. 그들의 문화와 인식의 저편엔 어떤 배경이 있는지도 살펴봤습니다. ③ 삶과 일의 균형, 시간의 문제 북유럽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가 느껴진 부분은 노동시간입니다. 출산·육아를 얘기하다 왜 갑자기 노동시간이냐구요? 일하는 부모가 아이를 키우기 위해선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덴마크와 스웨덴의 법정 노동시간은 주 37시간입니다. 한국(주 52시간)과 최대 15시간이 차이 납니다. 미취학 자녀가 있는 직원은 일반적으로 오후 2시30분∼3시쯤 회사를 나와 아이를 데리러 갑니다. 한국 근무 시간으로 보면 3시간 일찍 퇴근하는 것 같지만, 북유럽 근무 시간으론 30분 정도 일찍 나가는 수준입니다. 북유럽의 하루 근무 일과는 보통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3시∼3시30분이면 끝나기 때문이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가 정규 근무 시간은 한국으로 치면 5시30분쯤 퇴근하는 셈이네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30분 정도 직원이 육아를 위해 일찍 회사를 나선다고 하니 회사도, 동료 직원들도 이해합니다. 기업 문화 역시 한결 유연합니다. 오후 6시 ‘칼퇴’조차 눈치를 봐야 하는 한국의 회사 분위기와는 다르죠. 스웨덴에서 만난 워킹맘은 육아휴직을 시간 단위로 쪼개 썼습니다. 덴마크에서 만난 워킹맘들도 육아휴직을 여러 번 나눠서 사용했고, 아이를 데려가기 위해 30분 일찍 퇴근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육아휴직을 무조건 길게 쓰는 것은 선호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일하는 감이 떨어지기 때문”이죠. 아이를 키우며 근무 시간을 유연하고 자유롭게 조정하고, 회사와 동료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문화가 핵심인 셈입니다. 그럼에도 소득은 크게 줄어들지 않습니다. 기존 급여의 80∼100%까지 보전됩니다. 급여는 국가재정과 기업이 모은 기금 등에서 지급됩니다. 반면, 한국은 ‘장시간 노동’이 미덕인 나라입니다. 칼퇴도, 연차도, 휴직도 눈치 보지 않고 쓰기 어려운 회사가 많죠. 최근에는 반도체 등 특정 업계를 중심으로 더 긴 노동시간을 허용해야 한단 논의마저 나옵니다. 송다영 인천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이번 포럼에서 “가부장적 기업 문화의 근간은 장시간 노동”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송 교수는 “오래 일하는 사람들이 회사에 충성도가 높다고 여기는 문화에서 벗어나, 충분한 사랑과 애정으로 아이를 기를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가부장제 기업 문화에서 벗어나 돌봄이 기반이 되는 사회로 가는 것의 근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짚었습니다. 윤자영 충남대 교수(경제학)도 “근로 시간을 좀 더 유연하게 하는, 근로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의무를 기업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덴마크에서 만난 한 워킹맘은 이전에 한국 회사에서 일했던 경험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이미 한 차례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나머지 육아휴직을 사용하기 위해 한국인 상사에게 보고를 올렸습니다. 그러자 한국인 상사가 그에게 눈치를 줬습니다. “너는 이미 한 차례 육아휴직을 썼잖아. 왜 또 휴직하려 하느냐”라고요. 워킹맘은 “여기는 덴마크고, 육아휴직을 쓸 권리가 있다”고 답한 후 당당하게 육아휴직을 썼다고 전했습니다. 이후 그가 회사로 복귀했을 때 별다른 차별은 없었다고도 했죠. 한국이라면 어땠을까요. 육아휴직을 쓴다고 하니 “그만두라”는 말을 듣거나, 복귀 후 기존 업무와는 전혀 다른 자리로 ‘보복 인사’를 당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정부는 지난해 6월 내놓은 저출생 추세 반등을 위한 종합대책에서 ‘일·가정 양립’을 강조했습니다. 육아휴직 급여를 늘리고, 육아기 근무 시간 단축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는 부모‘만’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은 미완의 정책입니다. 다 함께 노동시간이 줄어야 부모의 부담도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직장 동료가 아이를 데리러 가기 위해 3∼5시간 일찍 퇴근하는 것은 30분 일찍 퇴근하는 것보다 심리적 저항감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과 같은 극도의 경쟁 사회에선 근무 시간을 단축하는 부모 역시 회사에서의 성취는 포기하게 될 가능성이 크죠. 그리고 이는 대부분 여성의 부담이 될 것입니다. 저출생 추세를 획기적으로 반등하고 싶다면, 기존 제도만 일부 손질하고 합계출산율 0.01이 오르냐 마냐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노동시간 감축과 소득 보전 등 사회구조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렇게 일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애인을 만들겠습니까? 가족과 시간을 어떻게 가질 수 있나요? 친구들과의 시간은 어떻게 만들겠습니까? 당신도 잠을 자야 하고, 하루는 24시간밖에 없습니다. 평일은 5일이지만, 주말은 단 2일뿐이죠. 이런 시스템은 누구에게도 행복을 주지 않습니다.” 덴마크의 워킹맘에게 한국의 주52시간 근무제도와 제 노동시간에 대해 이야기하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 답변이 한국 저출생 문제의 핵심을 찌르지 않았나 싶습니다. 라테파파를 찾아 나섰던 스톡홀름의 거리에서, 우리는 예상과는 다른 현실을 마주했습니다. 하지만 그 ‘불완전한’ 모습 속에서도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죠. 완벽한 해답은 없겠지만, 북유럽이 보여주는 중요한 시사점은 노동문화에 있었습니다.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제도를 손보는 것을 넘어, 우리 사회 전반의 일하는 방식과 문화를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 이 콘텐츠는 뉴스레터 스피커스에 게재되었습니다. 
초저출생 극복 지름길=성차별 없는 사회
2023년 기준 ‘합계출산율’(가임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자녀 수) 0.72명. 한국이 직면한 저출생, 인구감소 위기를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통계청은 현 추세라면 인구가 2024년 5175만명에서, 50년 정도 뒤인 2072년에는 3622만명으로 30%(1553만명) 급감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인구감소가 경제 사회적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일종의 상식이죠. <총균쇠>의 저자인 재러드 다이아몬드 같은 일부 학자들은 “AI 시대를 맞아 인구감소 위기는 극복 가능하고, 오히려 축복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대다수 학자는 경제활동인구 감소로 경제성장과 재정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합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선진국클럽인 OECD 회원국 중 최저입니다. OECD 평균인 1.49명(2022년)의 절반에도 못 미치죠. 합계출산율이 1에 못 미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합니다. 한국을 제외하고 합계출산율이 가장 낮은 폴란드도 1.12명(2023년)입니다. 전문가들조차 한국의 0.72이라는 숫자는 “현실성이 없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자연적으로는 존재하기 힘든 현상이라는 의미이죠. 한겨레가 지난해 10월 24일 주최한 <제15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저출생 축소사회’를 주제로 잡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시아미래포럼 개최에 앞서 지난해 9월초 일본의 저출생 상황과 정책 대응을 취재했습니다. 일본 저출생 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어린이가정청을 인터뷰하고, 지방자치단체의 대응을 알아보기 위해 도쿄 북쪽 군마현의 전원마을인 가와바촌을 방문했습니다. 인구와 경제 문제에 관심이 많은 박상준 일본 와세다대 교수도 만났죠. 한국과 일본은 서구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유사한 사회·경제·문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일본의 저출생 대응 경험은 한국에 유용한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이 정부 차원에서 저출생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1989년의 ‘1.57 쇼크’입니다. 합계출산율이 종전까지 가장 낮았던 1966년의 1.58명보다 더 낮아진 데 대한 충격이 컸다고 합니다. 일본은 1994년 첫 종합대책인 ‘에인절플랜’을 수립했습니다. 한국이 2005년 ‘저출고령사회기본법’을 제정한 것과 비교하면 최소한 10년 이상 빠른 것이죠. 이후 아베와 기시다 정부를 거치면서 저출생 문제 해결을 더는 미뤄서는 안되고, 국가의 최우선 정책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합니다. 최슬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상임위원은 아시아미래포럼에서 “저출생 현상은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종합 결과”라고 표현했습니다. 각국의 저출생 정책이 매우 다양한 이유입니다. 결혼·출산·양육·돌봄 지원은 기본이고, 출산휴가·육아휴직 등 일-가정 양립 지원, 일자리·주거·교육 등 사회구조 개선, 성평등 개선 또는 성차별 해소(윤석열 정부는 양성평등으로 표현) 등 사회와 기업의 환경 개선, 장시간노동 개선과 잔업 폐지 등 노동시장 개선을 망라합니다. 각국의 사정이나 조건이 다른 만큼 어느 정책에 우선점을 둬야 할지가 고민입니다. 같은 국가라도 해도 환경 변화에 따라 정책 변화도 필요할 것입니다. 2024년 9월3일 도쿄에서 만난 나카하라 시게히토 일본 어린이가정청 종합정책담당 참사관에게 지난 30년간 일본 저출생 정책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물었습니다. “처음에는 맞벌이 부부들을 위한 보육시설 확대가 핵심 키워드였다. 이후 남성의 육아 참여 필요성이 대두됐다. 2010년 이후에는 결혼 장려 정책이 중요시되고 있다.” 일본 저출생 정책의 강조점이 보육시설 확대→남성의 육아 참여→결혼 장려로 변천했다는 답변입니다. 일본에서 돌아온 뒤에도 일본 경험과 한국 현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우리는 저출생 극복을 위해 어디에 우선점을 둬야 하는지가 계속 화두로 남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아시아미래포럼에서 일본 저출생 정책 흐름과 맥이 닿는 흥미로운 분석이 다뤄져 소개합니다. ① 낮은 성평등이 낳은 동아시아의 저출생 위기 캐런 에글스턴 미국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센터 실장은 기조연설에서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공통적인 저출생 현상에 주목하고 그 원인을 규명했습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한국(0.72명) 뿐만 아니라 일본(1.2명), 중국(1.0명), 대만(0.87명) 등 모두 낮은 합계출산율로 고전하고 있습니다. 인구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마지노선인 합계출산율 2.1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에글스턴 실장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성평등이 서구에 비해 낮은 것에 착안했습니다. 성차별이 출생률을 낮추는 주요 요인이고, 출생률을 높이려면 성평등 개선이 긴요하다는 주장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에글스턴 실장은 성평등과 출생률 간의 상관관계를 과학적 실증분석을 보여줘 주목을 끌었습니다. 에글스턴 실장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공통으로 낮은 합계출산율로 인구감소 위기에 직면한 것과 관련 “남성의 가사와 육아분담 비율과 출생률이 양의 상관관계를 보인다”면서 실증분석 결과를 소개했습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 남성의 가사·육아 분담비율은 2012년 기준 17~18%에 그치고, 일본은 한국보다 더 낮은 16%에 불과합니다. 이는 출생률이 높은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의 분담비율이 30% 이상인 것과 큰 차이를 보입니다.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의 합계출산율은 1.8~2.0명으로 한국의 2~3배에 이릅니다. 그는 또 “한국은 전체 가사노동 시간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1990년 89.2%에서 2019년 77.6%로 낮아졌지만, 여전히 (서구에 비하면)높은 수준”이라면서 “한국의 세계경제포럼 성격차지수가 2024년 기준 세계 146개국 중 94위에 그쳤고, 중국은 106위, 일본 118위로, 동아시아 국가 모두 세계 최하위권에 그쳤다”고 강조했습니다. ② 일본의 저출생 대책, 남성의 육아휴직 85%가 목표 일본이 2023년 12월 기시다 전 총리의 지시로 수립한 ‘어린이 미래전략’의 4가지 포인트 중 하나인 ‘일하는 방식의 개혁’은 남녀 모두 보육에 좀 더 충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이를 통해 공공기관과 민간기업 모두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률을 현재의 30%에서 2030년 85%까지 끌어올릴 계획이죠. 최근에는 종업원 100명 이상 기업은 잔업시간과 육아휴직 사용률 공표를 의무화하는 법안도 통과시켰습니다. 시게히토 참사관은 지난 30년간 일본 저출생 정책의 종합평가를 요청하자 “엔젤대책을 수립할 당시 어린이들이 보육원에 못들어가고 대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그 문제가 해결된 것이 성과라고 생각한다”면서 “하지만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육아를 맡기는 문화가 바뀌지 않아. 여성이 결혼하면 커리어를 살리기 어렵고, 여성이 결혼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점점 줄어드는 것은 과제”라고 말했습니다.  아직도 많은 일본 남성들, 특히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성들은 육아와 가사는 여성이 할 일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신은 출세를 위해 회사에 뼈를 갈아 넣으려면 시간과 여유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죠. 이런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저출생 위기 극복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박상준 일본 와세다대 교수는 일본의 ‘일하는 방식의 개혁’에 대해 “여성에게 육아휴직을 주고, 일-가정이 양립하도록 혜택을 줘도, 남성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여유가 없으면 육아에 참여할 수 없다”면서 “현대 여성들은 육아와 가사를 남성과 함께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일하는 방식의 개혁을 통해 노동시간 단축, 잔업 폐지, 남성들의 육아휴직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③ 성차별 지표로 본 한국의 현실, 12년째 OECD 꼴찌 그럼 한국의 성차별, 성평등 상황은 어떨까요?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우리나라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6.8%입니다. 2021년의 4.1%에 비하면 큰 폭(2.7%)으로 상승한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의 30%에 비하면 아직 4분의 1에도 못미치는 낮은 수준입니다. 아직도 상당수 직장에서는 남성이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쓰기 어려운 분위기입니다. 한겨레가 지난 10월6일 여론조사업체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19살~44살 전국 성인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9월10~13일) 결과도 흥미롭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부부가 가사 분담이 공평하냐”는 질문에 ‘그렇다’(69.3%)는 답변이 ‘아니다’(30.7%)의 두배를 넘습니다. 또 “부부간 양육분담이 공평하냐”는 질문에도 그렇다(61.9%)는 답변이 ‘아니다’(38.1%)보다 많았습니다. 젊은 세대의 성평등이 부모세대보다는 진일보됐지만, 아직도 충분치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에글스턴 실장의 발표에서도 나타났지만 한국의 극심한 성차별은 글로벌 사회에서도 악명이 높습니다. 아시아미래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한 김현미 연세대 교수는 한국의 ‘유리천장지수’가 OECD 29개 회원국 중 최하위라고 강조했습니다. 유리천장지수는 남녀 고등교육 격차, 소득격차, 여성의 노동 참여율, 고위직 여성 비율, 남녀육아휴직 등 세부지표를 종합해 산출합니다. 한국은 조사가 시작된 2013년 이후 12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하는 불명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OECD 회원국의 남녀별 평균 임금격차는 지난해 12%입니다. 반면 한국의 임금격차는 31.1%로 두배를 넘습니다. 1996년 OECD 가입 이후 27년간 부동의 최하위입니다. 저출생, 축소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두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이대로 가다간 공동체가 사라질 수 있다고 보고, 출산율 제고에 방점을 두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출생률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것은 추세적으로 어렵다고 보고, 저출생 조건 하에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민 확대, 이주노동자 확대 등이 주요 정책과제로 제시됩니다. 두가지 의견 모두 옳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모두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차별 해소, 성평등 개선은 출산율 제고나,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데 모두 핵심 요소라는 것이죠. 또 이 문제는 수단적인 성격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목표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닙니다. 윤석열 정부는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면서 정책의 3대 핵심분야로 일·가정 양립, 양육, 주거지원을 제시했습니다. 저출생 위기 극복을 위해 모두 꼭 필요한 정책들입니다. 하지만 성차별 해소, 성평등 개선을 전면적으로 내걸지 않은 것은 아쉽습니다. 물론 정부가 이런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지난 10월30일 제5차 인구비상대책회의를 열고 내년 3월부터는 코스피와 코스닥에 상장한 민간기업 2600여 곳을 대상으로 남녀 직원의 육아 휴직 사용률을 의무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현재는 공공기관만 공개하고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일본은 이미 법으로 강제하는 사항입니다. 저출생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우리사회의 성차별 해소, 성평등 개선에 나설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들어 한국 기업들도 저출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저출생은 궁극적으로 기업경영과 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기 때문에 당연합니다. 부영그룹이 2024년 초 출산 직원에게 자녀 1명당 1억원을 지급하기로 한 게 상징적입니다. 경제단체들도 앞다퉈 저출생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습니다. 일종의 주도권 다툼 양상을 띠기도 하죠. 얼마 전 경제단체의 한 간부가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말해달라고 부탁까지 했습니다. 일본 정부와 기업은 저출생 위기 극복의 핵심 과제로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률 제고를 강조합니다. 이를 위해 노동유연성, 잔업 금지, 노동시간 단축 등과 같은 ‘일하는 방식의 개혁’을 정부와 기업 공동으로 추진합니다. 남성의 육아휴직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당연히 기업들의 협조가 중요합니다. 우리 기업들과 경제단체들도 일본처럼 ‘노동유연성’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그 핵심은 “주52시간 근로제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것입니다. 오로지 자본 이득 극대화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노동유연성입니다. 일본이 남녀 모두 보육에 좀 더 충실할 수 있게끔 환경을 만들려고 노동유연성을 강조하는 것과 딴판이죠. 당연히 일본이 강조하는 잔업 폐지, 근로시간 단축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기업이나 경제단체들이 입으로만 저출생 극복을 말하는 한 진정한 위기 극복은 힘들 것입니다. 기업들은 깜짝쇼보다 기본에 충실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중에 인구 감소, 노동력 부족으로 허둥대지 말고 미리미리 노력해야 합니다. 스탠퍼드대 에글스턴 실장의 연구가 보여주듯, 성평등과 출산율은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입니다. 일본은 '일하는 방식의 개혁'을 통해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률을 2030년까지 85%로 끌어올리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습니다. 반면 한국의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은 6.8%에 그치고, 유리천장지수는 OECD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출생 문제 해결의 핵심은 결국 성평등에 있습니다. 정부와 기업이 선언적 구호를 넘어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요?  ※ 이 콘텐츠는 뉴스레터 스피커스에 게재되었습니다. 
낳지 않을 결심
요즘 어딜 가나 저출생이야기죠. 정치권과 중앙·지방정부, 각계에서 다양한 진단과 정책이 쏟아지고 있어요. 지난해 7월1일엔 정부가 저출생·고령화 등의 문제를 총괄할 전담부처로 ‘인구전략기획부’를 신설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구요.  그런데 관련 발언을 하는 이들 중 여성과 청년, 아동·청소년의 얼굴은 찾아보기 어렵지 않으셨나요? 저출생 관련 공론장이 넘쳐나지만, 스피커스는 이들의 생각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에 안테나를 계속 세워 왔어요. 때마침, 여성계의 목소리가 한 데 어우러지는 자리가 있더라고요!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한국여성연구소, 한국여성학회는 2024년 7월23일 ‘낳지 않을 결심: 젠더 불평등과 저출생’을 주제로 ‘정부의 저출생 대응 담론과 정책 진단’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스피커스는 토론회 내용을 중심으로 젠더불평등과 저출생 이야길 이어 가보려 합니다! 2024년 6월19일 ‘인구 국가비상사태’가 선언됐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정부는 반전을 위한 ‘총력 대응’에 나서겠다고 발표했어요. 하지만 이날 발표한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두고 성평등 관점이 빠졌단 지적이 이어지고 있어요. 성평등 관점이 빠진 일·가정 양립 정책이 되려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겪는 불이익을 확대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고요. 그래서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한국여성연구소, 한국여성학회는 지난해 7월23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정부의 저출생 대응 담론과 정책 진단’ 토론회를 열어 이러한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여성가족부 장관을 맡았던 정현백 성균관대 명예교수(사학과)가 사회를 맡았고, 발표자로는 신경아 한림대 교수(사회학)와 송다영 인천대 교수(사회복지학), 토론자는 조은주 전북대 교수(사회학), 임선희 한국여성단체연합 정책국장, 백경흔 이화여대 강사(여성학)가 참여했습니다. 참, 이날 토론 내용은 영상(유튜브)과 자료집, 한겨레 기사에서 다시 확인하실 수 있어요.😊 성평등 비전 없이 ‘반전’ 가능할까? 지난해 6월19일 발표한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보면, 앞서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가 수립한 1~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 포함됐던 ‘성평등’, ‘양성평등’ 같은 용어는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용어 자체가 사라진 거죠.😑 신경아 교수는 정부의 대책에 대해 “성평등에 대한 비전도 없고, 통합적인 정책체계도 소실된 상태로 젠더 관점(성인지적 관점)이 결여된 정책들을 내세웠다”며, “저출생 대책이 도구화·파편화됐다”고 지적했어요.  전문가들은 이번 정책에서 강조하는 일·가정양립 정책이 오히려 여성의 ‘마미 트랙(Mommy Track, 출산·육아로 유연근무를 하나 승진·승급 등의 기회가 적은 취업형태)’, ‘모성 패널티(motherhood penalty, 유자녀 여성이 일터에서 겪는 불이익)’를 강화할 수 있다고 비판합니다. 특히 성평등 관점이 빠진 단기 육아휴직, 육아기 근무단축 강화(유연근무제), 남성 육아휴직 50% 달성 목표 등에 대한 비판이 나왔어요. 성평등 관점이 빠진 일·가정양립 정책은 결국 여성이 일과 가정을 동시에 챙기도록 유도하고, 남성 중심의 장시간 유급노동 문제는 다루지 않아 정작 일·가정양립을 저해한다는 지적이에요. 송다영 교수는 “성평등과 젠더 관점(성인지적 관점)이 결여된 정책은 오히려 저출생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어요. 이를테면, 여성들이 유연근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마미 트랙’에 사로잡힐 것으로 예상되는 거죠. 그래서 단순히 유연근무만이 아니라, 모든 성별에 대한 평등한 고용기회를 보장한다는 등의 성평등 비전이 필요합니다. 인구정책에서 성평등 비전은 왜 중요한가? 인구정책에서 성평등 비전이 중요한 이유가 뭘까요? 21세기 들어 선진국의 출산율 반등을 분석하는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어요. 출산율과 성평등의 관계를 설명하는 이론으로는 Arpino(2015), Esping-Andersen & Billari(2015), McDonald(2000) 등이 있지요. 연구자들은 성별분업 초기에는 성평등이 확산될수록 출산율이 감소하지만, 전환점을 지나 성평등이 더욱 확산되면 출산율이 높아진다고 이야기합니다. 신경아 교수는 ‘성형평성(gender equity)과 출산율의 변화’를 설명한 Arpino의 연구에 주목했어요. 왼쪽 그래프는 성형평성이 높아질수록 출산율 예측치(Predicted TFR)는 U자형으로 반등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신 교수는 “성평등 인식 수준(성 형평성)과 사회 환경 변화가 출산율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수”라고 말해요. 이어 “초기에는 돌봄, 노동시장 등 사회적 환경이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평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출산율이 감소하지만, 사회 환경 변화에 따라 성평등 의식이 75% 이상에 달하면 출산율이 회복되는 경향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어요.  하지만 성별 태도의 격차(gender gap)가 크면 반등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해요! 오른쪽 그래프는 국가별 성별 태도의 격차와 출산율 간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연구에 따르면, 성별 태도의 격차가 클수록 출산 의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격차가 클수록 남성과 여성이 인식하는 성평등 정도의 차이가 커지는데요, 이는 남성이 여성보다 평등하다고 느끼는 정도가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해요. 빨간색은 격차가 3%로 가장 작은 국가를 나타내고, 파란색은 격차가 중간(8%)인 국가, 초록색은 격차가 15%로 가장 큰 국가를 나타냅니다. 신 교수는 한국의 현재 상태가 초록색에 가깝다고 평가했어요. 격차가 너무 크면 반등이 이뤄지지 않고 하락세가 지속될 수 있어요. 우리의 저출산 정책이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지 보여주는 연구죠. 한국이 어떤 색깔의 그래프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시나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1) 노동시간 재구조화 송다영 교수는 “남성 중심의 장시간 유급노동이 일·가정양립을 저해한다”고 봤어요. 2023년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 남성의 유급 노동시간은 OECD 국가 중 가장 길고(한국 남성 421.9분, OECD 313.8분), 무급 노동시간은 일본 다음으로 가장 짧아요(한국 남성 45분, OECD 135.7분). 여기서 무급 노동시간은 주로 가사·돌봄노동에 참여한 시간을 의미합니다. 한국 여성은 OECD 평균 대비 유급 노동의 129%를 수행하고(한국 여성 273.3분, OECD 211.4분), 무급 노동은 86>#span class="stb-fore-colored"###(한국 여성 227.3, OECD 264.8분) 수준을 보입니다. 한국 여성의 총 노동시간은 유급과 무급을 불문하고 OECD 국가 중 가장 길었어요(한국 여성 500.6분, OECD 476.2분).😱 송 교수는 “국내 맞벌이 여성들이 가족과 일을 병행할 때 겪는 이중부담과 시간갈등의 정도가 상당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설명했어요. 정부의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은 “육아휴직 등 혜택을 확대하고 있지만, 남성의 장시간 노동 문제와 여성의 이중부담 문제엔 눈을 감고 있다”며 “노동시간 재구조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어요.  노동시간을 재구조화하려면 기업의 역할도 중요하겠죠? 송 교수는 이번 대책을 두고 “여전히 기업을 제3자로 전제하는 관점”이라며 “국가 비상사태에 대한 기업의 역할과 기여에 대해 구체적인 요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어요. 우리보다 앞서 저출생 문제를 겪으며 합계출산율 1.2명을 유지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 2003년 저출산사회대책기본법을 제정하면서 ‘사업주의 책무’를 포함했다고 해요. 기업의 노력을 촉진하기 위한 행동계획으로 ‘차세대육성지원대책추진법’을 제정하기도 했구요. 이 법엔 남성을 포함한 일하는 방식에 대한 검토와 사업주의 육아지원 방안이 담겨 있어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2) 성별 임금격차, 불안정 노동자, etc. 한국은 OECD에 가입한 1996년 이후 줄곧 ‘성별 임금격차가 가장 큰 나라’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2022년 기준, 한국의 성별임금격차는 31.2%로 OECD 평균 12.1%를 훌쩍 넘어섰어요.  성별 임금격차는 한국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젠더 불평등의 농축된 결과라고 해요. 남성이 돌봄 노동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성별 임금 격차가 클 땐 그 효과가 반감된다고 합니다. 남성에게 가족 내 돌봄노동에 참여하라는 압박이 줄어들기 때문이죠. 전문가들은 성별 임금격차를 줄이는 것이 성평등한 저출생 정책을 달성하는 데 있어 상징적 지표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해요. 정부 대책에 불안정 노동자의 사각지대 해소 대책이 빠져있단 지적도 나왔어요. 신경아 교수는 “비정규직, 프리랜서, 자영업과 중소영세기업 노동자 등 정책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모든 당사자에게 수혜자를 확대하려는 노력이 없었다”고 비판했어요. 송다영 교수도 “육아휴직·출산휴가 등 기존 대책을 강화해 ’아이를 낳으려는’ 사람들(대기업·공무원 등 정규직 중심)의 부담을 완화하려는 방안은 담겼지만,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또는 ’아이를 낳기 어려운’ 사람(불안정 노동자 등)에겐 큰 영향이 미치지 않을 것”이라 지적했어요.   전문가들은 정부의 저출생 대응 정책이 기존 정책인 단기 육아휴직, 남성 출산휴가, 육아기 유연근무제, 공공주택 공급, 결혼 특별세액공제 도입 등을 확장하고 있지만, 아이 낳기를 포기하거나 꺼리게 만드는 ’구조'는 그대로 두고 있다고 말합니다. ’성평등’ 관점이 빠진 정책, 반전의 지렛대를 만들 수 있을까요?  "여성도 아동도 함께 행복해야"…여성주의 관점의 아동돌봄 백경흔 강사는 덴마크의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의 성평등과 아동돌봄 정책이 어떻게 강화되어야 하는지 설명했어요. 2021년 덴마크의 합계 출산율은 1.72명으로, 같은 시기 한국(0.81명)의 두배가 넘습니다. 백 강사는 “덴마크는 전일제 맞벌이형 성평등 국가”라며, 덴마크 여성들이 일하면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배경으로 주 37시간 근무, 오후 4시 퇴근 정착, 연간 5주 유급휴가 등의 근로조건을 꼽았어요. 덴마크는 고품질의 지불가능한 공적 아동돌봄서비스 공급 확대에 집중했어요. 돌봄에 있어서 탈가족화를 우선적으로 추구하고, 유급휴가와 같은 가족중심 정책은 공적 아동돌봄을 보완하는 정도로만 시행헀죠. 백 강사는 “공적 아동돌봄 공급이 충분히 양질로 제공되기 때문에 관대한 육아휴직이 불필요해졌다”고 설명했어요. 일상에서 가족이나 조부모, 친족 돌봄은 매우 드문 일이라고 해요. 백 강사는 “아동 돌봄을 단순한 보호 서비스가 아닌 새로운 전문성을 가진 교육적 실천으로 제도화”하면서 “아동돌봄을 페다고지(pedagogy)로 개념화하고 페다고그(pedagogue)가 직무를 수행하도록 했다”고 설명했어요. ‘엄마 일’을 원형으로 하는 돌봄과 동일시하지 않고, 높은 숙련 수준을 가진 훈련된 페다고그(3년 반 사회교육 전문 학사-교육학 분야의 이론적·실천적 전문성 중시)가 종사하는 일로 변화시킨 거죠. 페다고그의 임금은 덴마크 근로자 평균보다 높다고 해요. 특히, 덴마크 공적 아동돌봄(‘소셜 페다고지’라고 칭함)은 아동을 시민으로 바라보고 아동의 돌봄권을 보장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어요. 한국에서는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는 부모의 수혜 자격을 따지는데요. 덴마크는 ‘아동’을 중심으로 ‘돌봄권’을 해석하고 있어요. 이때 △충분한 돌봄을 받을 권리 △아동 관점에서 더 좋은 돌봄을 추구할 권리(과도한 돌봄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 △돌봄권리가 잘 보장되는지 결정하는 공적 과정에 참여할 권리까지 폭넓게 보장하고 있죠. 물론, △부모 입장에서 돌보지 않을 권리(전일제 모성, 누군가의 독박돌봄에서 벗어날 권리)도 돌봄권 해석의 중요한 기준이라고 해요.  백 강사는 “정부가 발표한 정책에서 정책 당사자인 아동의 관점은 실종되고, 틈새돌봄 보장이라는 명목으로 시간제 보육, 야간연장보육 등 돌봄을 시간 단위로 쪼개 확장하고, 수요자 선택권 확대라는 명목으로 민간 시장에 의존한 돌봄 확충을 꾀하고 있다”고 꼬집었어요. 정작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안정적인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중요한 조건, 아동 입장에서 일관성과 연속성을 중시하는 공적 시스템 확대 등 아동 안녕의 목표가 실종되어 있다는 거죠.  영화 좋아하시나요?😊  ‘괴물’, ‘브로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어느 가족’, ‘바닷마을 다이어리’...모두 오늘 스피커스가 다룬 주제에 흥미를 가진 분이라면 눈길을 끄는 작품들이 아닐까 싶어요. 바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 말이죠. 그의 작품엔 ‘가족’의 서사가 줄곧 등장합니다. 하지만 평범한 가족이 아니에요. 잔잔한 온기가 있으면서도, 참혹한 상황에 놓인 아이들의 지독한 현실이 복합적으로 그려져요. 그는 “우리가 항상 정해진 대로 가족이라고, 부모·자식이라고 생각하는 걸 흔들고 의문을 던지고 싶은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특히, 그의 첫 한국 영화 연출작인 ‘브로커’는 일본의 아기우편함에 대한 다큐멘터리와 한국의 베이비박스(부득이한 사정으로 아기를 직접 키울 수 없는 부모가 아기를 살리기 위해 만들어진 ‘생명 보호 장치’)에 대한 기사에서 영감을 받아 시나리오 작업이 이뤄졌다고 해요. 영화의 엔딩 시퀀스는 이 아기의 가족이 어디까지 확장되었는지를 보여주며 마무리됩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아이들이 잘 자라기 위해서는 더 큰 차원의 (베이비)박스가 필요하다”며, “아이를 키우는 건 사회 모두 함께 관심을 기울여야 할 문제”라고 말했어요. 양육을 부모만의 책임으로 돌리면 안 된다는 거죠.  인구위기는 출산과 양육 중심의 단편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삶의 질 향상, 가족다양성 존중 등 다차원적인 접근을 필요로 해요. 임선희 한국여성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정부의 인구 대책이 “가부장적이고 전통적인 이성애 중심의 정상가족 범주에 속해 있거나, 4대 보험에 가입된 노동자 중심의 정책”이라고 지적했어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영화를 통해 정상가족의 사각지대를 돌아보며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아요.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이죠. 가족의 테두리를 넘어 “개개인의 자격보단 좀 더 큰 테두리에서 아이를 지켜볼 수 있는 어른들의 존재를 생각해야 한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당부에 귀를 기울여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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