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사태에 말 못한 ‘기쁜’ 소식, 드디어 알립니다[셜록 이야기]
지난 6일 ‘이상한 학교의 회장님’ 보도로 호루라기언론상을 받았다. 공익제보자를 지원하는 호루라기재단이 주는 상이다. 시상식 3일 전, 윤석열이 위헌적인 비상계엄을 선포한 ‘내란사태’가 발생하면서, 뒤늦게 수상 소식을 알리게 됐다.
수상 소식을 들은 건 한 달 전이다. 지난달 19일. 수상 소식을 알리는 전화를 받고 처음에는 기뻤다. 하지만 이내 미안한 감정이 밀려왔다. 아직도 학교로 돌아가지 못한 우촌초 공익제보자들. 최은석 전 교장, 교직원 유현주, 박선유 그리고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이양기 전 교감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무도 공익제보자들의 제보 이후 삶에 관심이 없어요.”
우촌초 공익제보자들을 취재하기로 마음 먹은 이유는 이 한 마디였다. 정말 그랬다. 나도 ‘어제의 공익제보자’의 삶을 생각해본 적 없었다. 부끄러웠다. ‘제보자가 폭로하는 현실’에만 관심이 있을 뿐, ‘제보자의 현실’에 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제 40대 인생은 이규태 회장과 싸우면서 의미 없이 없어져버리는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 와서 포기할 수도 없고. 무조건 싸워야 되고, 무조건 직진인데, 정말 살 수 있게, 이기고 싶어요.”
유현주 씨가 한 말이다. 우촌초 제보자들은 2019년 5월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를 서울시교육청에 제보한 이후, 5년간 각자의 자리에서 학교에 맞서 싸우고, 또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었다.
“무릎 꿇고 살려달라고 비는 날이 있을 거다.”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74)은 자신의 처조카이자, 20년간 우촌초 행정실에서 근무한 유현주 씨에게 경고의 말을 남겼다. 이 경고처럼 공익제보자들에게 수많은 시련이 닥쳤다.(관련기사 : <“무릎 꿇고 빌게 될 것” 회장님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학교법인 일광학원은 공익제보자들에게 부당한 징계를 내려 이들을 해고했다. 현재 공익제보자 6명 중 2명만 학교로 돌아간 상태다. 서울시교육청, 교원소청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법원 등 여러 기관이 부당한 징계를 취소하라는 결정을 내렸지만 학교 측은 계속해서 공익제보자들의 복직을 거부해왔다.
학교 측의 ‘버티기’가 길어지자, 서울시교육청이 공익제보자에게 제공하는 구조금 지급 기한(3년)도 끝났다. 최은석 전 교장은 서울에 가족을 두고 광주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했다. 최근에는 계약 만료에 따라 인천으로 직장을 옮겼다.
유현주 씨와 박선유 씨는 징계를 받고 해고돼 다른 사립학교 행정실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그동안 쌓은 경력과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다. 유현주 씨는 최근 식당 두 곳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나간다. 박선유 씨는 물류센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마트 계산원 일을 병행하고 있다.
지난해 복직한 이양기 전 교감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 학교 측은 과학전담교사를 맡은 그에게 교무실 책상 자리 하나 내어주지 않았고, 부당한 징계를 내려 사학수당 지급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의 동향을 파악한 문서도 발견됐다.(관련기사 : <2년 반 만에 복직한 학교… 그 교사의 책상은 없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공익제보자들은 총 20건이 넘는 고소・고발을 당했다. 5년간 수사기관과 법원에 수시로 불려 다니며 일상회복이 어려울 지경이었다.
“이 싸움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상대가 죽거나 내가 죽어야 끝나는 거예요.”(이양기)
우촌초 공익제보자들이 아니었다면, 학교에 숨겨진 비리가 낱낱이 드러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턱없이 부족하다. 공익제보자를 향한 불이익 조치를 막아내지 못하고 있다.
우촌초 공익제보자들은 이 싸움에 인생을 걸었다. 나는 공익제보자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우리 사회가, 과연 그들의 일상회복과 보호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
“저는 끝까지 우촌초에서 제대로 마무리할 거예요. 이양기 선생님도, 행정실 선생님들(유현주, 박선유)도 마찬가지예요.”(최은석)
지난 1월 첫 기사를 냈다. 지금까지 기사 16편을 썼다. 다행히 보도 이후, 조금씩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
지난달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우촌초 공익제보자들의 전원 복직과 학교 정상화에 관한 질의가 나왔다. 마지막 종합감사 날에는 최은석 전 교감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날 우촌초 공익제보자들의 복직과 철저한 학교 감사를 진행하겠다는 서울시교육청의 의지를 확인했다.(관련기사 : <우촌초 회의 참석 이규태 회장… “남의 집 쳐들어온 것”>
이규태 회장 소식도 들려온다. 서울시의회 행감 증인 출석은 거부하더니, 최근 정치인들을 만나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했다고 한다.
이 회장은 정작 셜록이 이 회장과 일광학원 측에 반론 취재를 23차례나 시도했을 때는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론에 응하지 않았으면서 기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셜록에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고소 건은 불송치(혐의없음) 결정으로 끝났다. 정정보도 청구 소송은 내년 1월 선고를 앞두고 있다.
지난 11월 이 회장이 아직도 학교 운영에 개입한다는 제보를 받고, 취재차 전화했을 때는 기자를 “스토킹으로 신고하겠다”고 말했다.(관련기사 : <‘횡령 혐의’ 이규태 전 이사장, 우촌초 운영 개입 의혹>)
검찰은 2021년 12월 이 회장을 스마트스쿨 비리 관련 업무상횡령 등으로 기소했다. 이 회장과 사건에 가담한 학교 관계자 등 12명은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이 회장은 올해도 국세청이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체납액은 약 200억 원. 종합소득세 등 총 9건을 체납했다. 2016년부터 매년 꾸준히 고액체납자 명단에 개근(?)하고 있다.
이상하게도 세금 낼 돈 없는 이규태 회장의 행색은 사치스럽고 화려했다. 이 회장은 서울 성북구 부촌에 있는 약 430평 규모의 고급 단독주택에 산다. 지난 1월 이 회장이 다니는 한 교회 주차장에서 만났을 때부터, 수차례 법원 앞에서 만났을 때도 그는 벤츠-마이바흐 S 클래스 2023년형을 타고 다녔다. 출고가 4억 원에 육박하는 최고급 승용차다.
지난 3일 윤석열의 내란 사태가 발생하면서, ‘광장 민주주의’가 다시 실현되고 있다. 위헌적인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저항의 목소리가 광장을 가득 채웠다. 이런 혼란한 시국에도 지난 6일 ‘2024 올해의 호루라기상 시상식’은 예정대로 개최됐다.
많은 공익제보자들도 시상식에 참석했다. ‘희망씨앗 특별상’으로 ▲해병대 채수근 상병 사고의 불법적인 수사 개입 의혹을 제보한 박정훈 대령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류희림 위원장 청부 민원 사건을 제보한 방심위 직원 김준희, 탁동삼, 지경규 씨가 수상했다.
올해의 호루라기상은 창원 지역 국회의원 보궐선거 공천, 국민의힘 국회의원 선거와 지자체 경선 과정에서 대통령부부가 개입한 의혹과 여론조사 조작을 고발한 강혜경 씨에게 주어졌다.
이번 윤석열 내란 사태도 하루아침에 갑자기 일어난 일은 아닐 것이다. 정부가 꽁꽁 숨기고 싶어하던 부정한 사건들이 하나씩 세상에 알려지면서, 그 나비효과로 윤석열 정권이 몰락을 자초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익제보가 하나씩 쌓여 세상을 바꾸는 것이 정의다. 그리고 공익제보자들이 고통에 놓이지 않고 제자리를 찾는 일 역시 ‘정의’다.
그런 의미에서 셜록이 우촌초 제보자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보도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우촌초 제보자들이 학교로 돌아갈 때까지, 우촌초가 투명하게 운영될 때까지, 죗값을 치러야 하는 자들이 빠짐없이 그 대가를 치를 때까지 멈추지 않고 보도할 것이다. 광장에서 응원봉을 들고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자고 외치던 시민들의 목소리가, 학교 안으로, 공장 안으로, 마을 안으로, 사회 곳곳의 정의를 위한 파동이 되길 바란다.
무엇보다 생계를 위협받는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이어온 최은석, 이양기, 유현주, 박선유 공익제보자에게 존경의 마음을 표한다.
약 1년간 우촌초 제보자들의 이야기를 보도를 할 수 있도록 따뜻한 응원을 보내준 ‘셜록의 친구’ 왓슨(유료독자)에게 감사드린다. 왓슨이 없었다면, ‘이상한 학교의 회장님’ 보도는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