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억대 손실에도 뒷짐만… ‘검은물’ 담합 손놓은 기관들
감사원이 29일 ‘검은물’ 담합 사태 관련 감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번에 감사원의 지적을 받은 기관은 4곳. 한국농어촌공사, 평택시, 충북개발공사, 경상북도개발공사(손해 비용 순)다. 이들 기관은 ‘검은물’ 담합 업체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라는 조달청의 안내에도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 이로 인한 추정 손해 비용은 약 4억 2698만 원이다. 지난해 7월 경기 시흥시 주민들의 공익감사청구 이후 13개월 만에 나온 결과. 하지만 감사원은 후속조치로 각 기관에 ‘주의’ 조치를 내리는 데 그쳤다. 이로써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제기한 형사고발 사건의 수사 결과가 더 중요해졌다. 사건의 시작은 시흥 은계지구였다. 경기 시흥시 은계지구에서는 2018년 4월부터 수돗물에 검은색 이물질이 나온다는 민원이 제기됐다. 입주 5개월 만에 일어난 일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 조사 결과, 검출된 이물질은 상수도관 내부에 코팅된 플라스틱 계열의 물질(액상에폭시 등)로 드러났다. 문제의 상수도관을 납품한 회사는 이미 4년 전,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의 제재를 받은 업체였다. 공정위는 2020년 3월, 13개의 상수도관 업체가 사전에 담합해 서로 합의된 기준에 따라 이윤을 배분한 사실을 밝혀냈다. 업체들의 ‘검은 담합’으로 인해 검증되지 않은 상수도관이 각지에 공급된 것이다. 실제 담합 업체들은 공정위 조사 과정에서 “물품(상수도관) 품질에 차이가 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문제의 상수도관 업체들이 사전에 납품기관에 부정한 청탁을 한 정황도 포착됐다. 담합 업체 중 한 곳의 관계자는 공정위 조사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영업추진업체들은 수요기관을 통해 누가 입찰 참여사로 결정되었는지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거나, 적어도 자신들은 입찰 참여자에 포함되도록 수요기관에 영업을 하는 것입니다.”(공정위 의결서 2019입담1496 발췌) ‘검은물’ 피해로 고통받은 시흥시 주민들은 지난해 7월 감사원에 공익감사청구를 접수했다. 담합 업체에 대한 마땅한 조치를 취하거나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LH 등 공공기관 ▲조달청 ▲시흥시 등 지자체 ▲공정거래위원회를 대상으로 조사를 요청했다. 감사원은 공익감사청구에 대해 일부 감사실시를 결정했다. 감사원이 감사를 결정한 사항은 ‘한국농어촌공사 등 6개 기관이 조달청으로부터 안내 공문을 받고도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경위’였다. 감사원은 이번 감사에서 그중 4개 기관(한국농어촌공사, 평택시, 충북개발공사, 경상북도개발공사)에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문제를 확인했다. 조달청이 각 기관에 안내를 통보한 시점(2020년 9월)에 이미 소멸시효가 지났거나, 이미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기관은 감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4개 기관이 소송을 제기하지 않아 발생한 추정 손해 비용은 총 4억 2698만 원. 한국농어촌공사 약 3억 4167만 원, 평택시 약 4733만 원, 충북개발공사 약 3080만 원, 경상북도개발공사 약 717만 원이다. 감사원은 해당 기관들이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사유에 대해 “(각 기관별) 소송 담당자가 소송제기 업무를 소홀히 하거나 인사이동 시 사무인계·인수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관리자도 소송제기 업무의 지도·감독을 철저하지 않은 데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감사원은 문제가 된 4개 기관 소속 담당자 6명에게 각각 주의 조치만 내렸다. “(각 기관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라는 조달청의 안내 공문을 받고도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될 때까지 업무를 소홀히 하여 손해보전에 필요한 채권을 확보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소송제기 업무 등을 철저히 하고 관련자들에게는 주의를 촉구하시기 바랍니다.”(감사보고서 중) 공익감사청구 대표자인 서성민 변호사는 2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번 감사 결과에 대한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2020년 3년 (공정위 발표 이후) 대대적인 언론보도를 통해 각 지자체와 공공기관이 상수도관 업체들의 입찰 담합 사실 및 불량 상수도관 납품 가능성을 인지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시민들의 수돗물 이물질 민원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지 않은 것은 위법 부당한 사무 처리입니다.감사원이 이 부분에 대해 철저히 조사해줄 것을 바랐지만, 미흡한 조사와 아쉬운 결과를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아직 길은 열려 있다. 셜록과 서성민 변호사가 직접 형사고발에 나섰기 때문. 셜록은 서 변호사와 함께 지난해 9월 LH 등 기관의 임직원 및 공무원들과, 불량 상수도관 납품업체 임직원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관련기사 : <[액션] ‘검은물’에 숨은 검은 의혹… 셜록이 검찰에 고발>) 사건을 담당한 강남경찰서는 올해 6월 28일 임직원 및 공무원들에 대해 각하 처분을 하며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방검찰청(검사 선현숙)은 지난달 12일 강남경찰서에 재수사를 요청했다. 서 변호사는 “서울중앙지검과 강남경찰서의 수사에 대응하면서 앞으로 그 결과를 지켜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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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벽돌을 쌓으며 - 일본군'위안부'피해자 손해배상청구 소송
*이 글은 피스모모의 대안언론 '더슬래시 Theslash.online' 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1> 서울고등법원(2심)은 2023년 11월 23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및 그 유족인 원고들이 일본국을 상대로 제기한 2차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일본 정부가 주장한 국가면제를 배척한 후, 일본국의 불법성과 책임을 인정하여 원고들의 청구를 인용(원고 승소)하였습니다. 여기서 ‘국가면제’란, 다소 생소할 수 있는 개념인데, 쉽게 말해 ‘국내 법원이 외국 국가에 대한 소송에 관하여 재판할 수 없다’는 원칙을 말합니다. 일본 정부는 위 법리 뒤에 숨어 우리 법원의 재판절차에 일체 응하지 않았습니다. 1심 법원이었던 서울중앙지방법원도 일본 정부의 주장대로 국가면제가 적용되어야 한다면서 원고들 청구를 기각했습니다(원고 패소) 그런 상황에서 서울고등법원은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위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들 청구를 인정하는 역사적인 판결을 하였습니다. 일본군 ‘위안부’피해자들은 위 판결을 통해 일본국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상 80여년 만에 온전한 시민권을 취득한 것입니다.   <2> 이번 승소판결은 세 가지 측면에서 국제인권법의 발전 과정에 있어 기념비적 판결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먼저 일본 정부가 그동안 ‘연행의 강제성’을 부인함으로써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전략을 가져왔는데, 서울고등법원은 일본 육군에서 당시 작성한 공문서들을 증거로 채택하여 일본 정부의 각 기관이 일본군의 위안부 동원에 체계적으로 개입하였으며, 일본군이 위안소의 운영을 통제하고 감독한 사실을 인정하였습니다. 국내법원을 통해 일본제국과 일본군의 책임이 명백히 인정된 것입니다. 또한, 법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개인별 ‘강제연행 과정’과 ‘위안부 생활’, ‘국내로 돌아와 한평생 겪어야 했던 여러 고통’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짚어나가면서 피해자들이 이로 인해 회복하기 어려운 육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었음을 명확히 확인하였습니다. 끝으로, 법원은 국가면제라는 법리를 배제함으로써 전쟁범죄와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해 그 누구도 면죄부를 누리를 수 없음을 국제법적으로 확인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3> 1심과 2심의 판단이 엇갈린 가장 큰 이유는 국가면제 법리의 적용여부에 있었습니다. 이제까지 다른 나라의 법원들은 국가면제를 무조건적으로 적용해 보편적 인권침해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일이 적지 않았습니다. 국제사법재판소(ICJ) 역시 2012년 ‘무력 충돌 과정에서 발생한 타국의 주권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를 적용하는 것’이 현재의 국제관습법이라고 판단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서울고등법원은 ‘법정지국 영토(당시 조선의 영토를 말합니다)에서 그 국민에게 발생한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그 행위가 주권적 행위인지 여부를 묻지 않고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는 국제관습법이 현재 존재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아울러, 서울고등법원은 국가면제에 관한 국제관습법은 항구적이고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동태적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하면서, 2012년 ICJ 결정 이후, 국가면제 적용을 부정한 최근의 사례들을 제시하며 국가면제와 관련된 국제법 체계가 이미 개인의 재판청구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이행되고 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국가 중심의 국제법 질서가 인권 중심의, 개인의 재판청구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이행되고 있음을 천명한 것입니다.   <4> 이번 판결은 세계적으로도 국가면제를 극복한 몇 안 되는 사례입니다. 위 승소판결이 있기까지 여러 법원과 각국의 입법례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인권 중심, 개인의 재판청구권 중심의 판결례를 쌓여가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고등법원 판결 역시 그러한 흐름 속에서 전향적인 판단을 하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ICJ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포로로 끌려가 강제노동을 해야 했던 이탈리아인 ‘페리니’의 손해배상청구 소송과 관련하여, 독일 측 국가면제 주장을 받아들여 국가면제를 배척한 이탈리아 대법원의 판단을 부정하였습니다. ICJ는 당시 국가면제 적용의 근거로 든 사례로 총 8개 국가의 법원 판결이었는데, 이 중 브라질(1심) 법원 판결을 포함하여 6개국의 법원이 국가면제를 적용하였고, 국가면제를 배척한 것은 2개국(이탈리아, 그리스)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을 주된 이유로 국가면제 적용 사례가 더 많다고 판단했습니다.   <5> 몇 년 지난 후 국가면제의 적용을 인정했던 브라질(1심) 법원의 판결은 2021년, 2022년 브라질 최고재판소에 의해 취소되었습니다. 1심에서 인정된 독일 측의 국가면제 주장을 배척한 것인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1차 소송에 대해 국가면제를 배척하고 원고들 승소 판결을 선고한 서울중앙지방법원(2차 소송의 서울중앙지법 재판부와는 다른 재판부에서 판단하였습니다) 사례를 인용하여 국가면제를 배척한 후,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폭격으로 침몰한 민간선박에 탔던 피해자의 유족들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를 인정하였습니다. 위 브라질 판결이 선고된 직후, 우크라이나 대법원도 2014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과 전투 중 사망한 피해자의 유족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국가면제 법리를 배척하여 러시아 정부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런데 위 브라질 최고재판소 판결과 우크라이나 대법원의 판결은 다시 2차 소송의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 판결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국가면제를 배척하는 또 하나의 실행사례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서울고등법원 판결선고 후, 중국인 ‘위안부’ 피해자 18명의 유족은 2024년 4월 21일 위 판결을 참고하여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이번 서울고등법원 판결이 또다시 영향을 준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온 판결들은 인권 중심의 국제법, 국제인권법이 각국 법원의 판례를 통해 도약하고 진일보하고 있는 상황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6> 일본국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됐다고 해서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과와 배상금 지급은 아직까지 요원하기만 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번 서울고등법원 판결은 금전 지급과 상관없이 국가 폭력이나 인권 침해에 대해서는 무력 분쟁 상황인지 여부와 상관없이 그 책임에 면죄부를 줄 수 없고, 뒤로 숨을 수 없다는 것을 천명한 사건입니다. 우리는 이번 판결을 통해 새롭게 벽돌을 하나 쌓은 것입니다.   <7> 포르투갈의 마르셀루 대통령은 2024년 4월 24일, ‘1534년부터 1822년까지 브라질에 대해 식민지 자원 약탈, 원주민 학살, 노예 매매 등 식민 지배로 저지른 범죄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지금까지 쌓여온 하나하나의 벽돌이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과 같이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간다면, 지금의 한일 관계 뿐 아니라 최근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사태, 가자지구 분쟁에도 변화와 평화의 물결을 만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합니다.      /양성우법부법인 지향이라는 작은 로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또, 민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대리인단, 민변 10.29 이태원참사 대응 TF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성의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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