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먹지 못하는 사람들
오늘 아침밥 잘 챙겨 드셨나요? 우리는 ‘밥 먹었어?’, ‘밥 잘 챙겨 먹어’, ‘나중에 밥 한번 먹자’ 등 밥을 매개로 한 인사를 나누는 것에 익숙해요. ‘밥심’으로 산다는 말처럼, 한국인에게 먹는 행위는 단순한 행동을 넘어 자연스럽고 중요한 문화입니다. 함께 밥을 먹으며 서로 돈독한 관계를 쌓아가려 하죠.  일상적이며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이 ‘먹는 행위’로부터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있어요. 마르고 날씬한 몸에 대한 선망에서 근육이 있고 탄탄한 몸에 대한 유행까지! 이상적인 몸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계속 변하고 있지만, ‘보기 좋은’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의 분위기는 체중관리에 대한 무언의 압박으로 다가옵니다. 특히 또래와 트렌드의 영향에 민감한 청소년들은 마른 몸을 위해 ‘먹토’(먹고 토하기), ‘씹뱉’(씹고 뱉기)을 하며 ‘개말라’(매우 마른 사람), ‘뼈말라’(뼈가 보일 정도로 앙상한 사람)가 되길 꿈꿉니다. 온라인상에서 이와 관련된 정보를 손쉽게 얻고 공유할 수 있거든요. 그렇게 음식을 먹고, 소화하는 ‘먹는 행위’는 누군가에게 단순한 일상이 아니라 매일매일의 싸움입니다.  많은 사람이 섭식장애를 무리한 다이어트에서 시작된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개인의 정서적·사회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심각한 정신건강 문제입니다. 하지만 섭식장애라는 이름이 붙을 때, 당사자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이야기는 지워지곤 해요. 절식, 폭식, 구토의 증상으로 그려진 납작한 섭식장애만 남죠. 그래서 섭식장애 경험을 직접 겪은 당사자들이 자신의 언어로 말하고,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바로 ‘섭식장애 인식주간’입니다!💪 올해 세 번째 행사 준비가 한창이라고 하는데요. 스피커스가 지난해 다녀온 두 번째 '섭식장애 인식주간' 행사를 정리했습니다. 당사자만이 할 수 있는 솔직한 이야기를 통해 섭식장애를 둘러싼 편견과 낙인을 깰 수 있지 않을까요? 섭식장애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섭식장애는 먹는 행동과 관련해 어려움을 겪으며 개인의 신체적 건강과 심리·사회적 기능을 손상시키는 정신장애를 의미합니다. 섭식장애는 영어로 ‘Eating Disorder’입니다. 음식을 섭취하는 데(Eating) 발생하는 장애(Disorder)를 의미하죠. 과거엔 체중관리가 엄격한 직업군에서 주로 섭식장애가 발생했다고 해요. 하지만 요즘엔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습니다. 섭식장애는 신경성 식욕부진증(거식증), 신경성 폭식증, 폭식장애 및 회피제한적 섭취장애 등을 포함하고 있어요.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8~2022) 식이장애(섭식장애)로 진료받은 환자는 5만1253명에 이릅니다. 2018년과 비교해 2022년 거의 50% 증가한 셈인데요. 진료를 받은 10명 중 8명이 여성이었습니다. 하지만 섭식장애의 규모나 피해 정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정부 단위 조사나 통계는 아직 없습니다. 환자 스스로 치료를 원치 않거나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이 이 병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사회적으로 여전히 섭식장애가 다이어트에 따른 부작용이나 ‘젊은 여성들’의 의지 부족에서 비롯된 질병으로 이해되는 상황에서 자신의 문제를 드러내기는 쉽지 않아요. 그래서 섭식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의 수는 더 클 수도 있다고 해요. 섭식장애 당사자들이 모여 설립한 비영리단체 ‘잠수함토끼콜렉티브’는 지난해 2월 28일부터 3월 5일까지 두 번째 섭식장애 인식주간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인식주간 7일 동안 매일 저녁 7시,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 서울숲점 3층에서 섭식장애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세션이 열렸습니다. 스피커스가 지난해 다녀온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 토크’를 정리해봤어요.  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중학생 때부터 먹고 토했기 때문에 부모님이 일찍 알게 됐어요. 당시에는 섭식장애라는 말도 몰랐고, 제가 사는 부산엔 관련 전문 병원도 없었어요. 가족들은 제가 귀신에 씌였다면서 굿도 했어요.”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 토크 - 전복적 재구성’을 주제로 당사자 8명이 나눈 이야기가 2시간 30분 동안 빼곡하게 채워졌습니다. 올해 섭식장애 인식주간의 주제는 ‘인식적 정의(Epistemic Justice)’입니다. 여기에는 섭식장애 당사자를 피해자 또는 환자라는 정체성으로만 바라보는 것에 대항해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겠다는 선언이 담겨 있어요. 먹는 것과 자신의 몸이 불화해 온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모인 이들은 하나의 원인에서 섭식장애가 시작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진솔(31)씨는 자신의 섭식장애가 다이어트를 통해 마르고 예뻐지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외부의 통제나 강요로부터의 해방, 탈출에서 시작됐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아무도 삶의 주도권을 어떻게 가져올 수 있는지 말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주도권을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내 몸을 이용하는 방법뿐”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삶을 살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고” 싶었다고요. 내 힘으로 어느 것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게 내 몸인 거죠. 그것은 어쩌면 불안을 다스리는 방법이었을지 모릅니다. 아름다워지고 싶고 또 사랑받기 위해 다이어트를 선택하다 섭식장애가 시작되기도 합니다. 곽예인(29)씨는 아이돌 연습생 경험을 빌려 “여성의 외모가 자본이 되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굶기를 선택하는 여성들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섭식장애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질병일지 모르겠어요. 식품 산업, 다이어트 산업이 발전할수록 많이 먹고 또 살을 빼야 합니다. 날씬한 몸이 아름다운 사회에서 여성의 몸은 그렇게 고통받고 있습니다. 다이어트와 섭식장애는 분명 다를 테지만, 다이어트로 가려진 섭식장애도 많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섭식과 체중의 문제는 단순할 수 없습니다. 박채영(31)씨는 “여성들에겐 ‘날씬한 몸이지만, 잘 먹어야 해’, ‘운동을 해도 근육이 크면 안 돼’와 같은 사회의 이중 메시지가 늘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모순 속에 놓이게 된다고 덧붙입니다. 섭식장애를 둘러싼 이야기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언제나 사회 구조를 함께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② 사회의 납작한 이해 “다른 사람들처럼 우리(섭식장애 당사자)는 엄마도 됐다가 딸도 됐다가 또 환자도 됩니다. 직업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죠. 다양한 역할과 정체성 속에서 자기의 삶을 살고 있어요.” 2023년 첫 인식주간 행사를 진행한 뒤, 잠수함콜렉티브 구성원들은 1년 내내 섭식장애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높이기 위한 언론 활동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흥미 위주의 자극적인 보도에 한계를 느꼈다고 해요. 미디어는 섭식장애 당사자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됐을까요? 어쩌면 상상 속 일차원적 섭식장애 환자의 모습을 그리고 그 틀에 서사를 풀어가려 하는지 모르겠어요. 참여한 이들은 미디어에서 섭식장애를 겪는 ‘마른 여성’의 몸을 반복적으로 다루다보니 그 틀에 갇혀 얼마나 ‘환자다운지’를 생각하느라 치료 시기를 놓치는 이들이 있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섭식장애를 앓고 있는 것 치고 건강해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이진솔씨는 “섭식장애를 겪는 이들 중 정상체중인 경우도 많고 겉으로 봤을 때 쉽게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말합니다.  박채영씨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섭식장애에 관한 편견을 걷어내고, 당사자들의 복잡한 현실을 드러낼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해요. 하지만, 질문 대부분이 섭식장애 증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해달라는 것에 국한되었다고요. 예를 들어, 무슨 약을 먹었는지, 하루에 최대 몇 번 토해봤는지 물으며 스스로를 얼마나 가혹하게 대했는지 알고 싶어했다는 거죠. 그렇게 매번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다 인터뷰가 끝나고, 섭식장애는 납작한 몇 가지 이미지로만 소개됩니다. 그래서 인식주간 행사가 열린 거겠죠. 섭식장애에 관한 게으른 시선이 잘못됐다고 이야기하기 위해서요! ③ 회복과 당사자의 목소리 “의료진의 목소리가 가족들이 환자를 환자로 고착화하는 데 한몫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배가 부르다’고 하면 그건 ‘거식증의 목소리’가 됩니다. 이미 밥 한 공기를 먹어 배가 부르다고 말해도 그건 내가 아닌 ‘거식증의 목소리’인 거예요. 어디까지가 증상이고, 또 어디까지를 자아로 존중할 것인지 제대로 된 구별이 없었죠.” 섭식장애에 관한 개인의 경험은 모두 다릅니다. 각자의 회복 여정 또한 다르죠. 개개인이 섭식장애를 앓고, 그 상태가 유지되는 배경은 다양하기 때문에 어느 것이 옳다고 단정하기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각자의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합니다. 절식, 폭식, 구토는 하나의 표현이며 신호일 뿐이니까요.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 신호 뒤에 감춰진 불안과 고통, 삶의 어려움이 해소된다면 자연스럽게 섭식장애 행위와 멀어지지 않을까요?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어쩌면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와 연민 그 자체일지 모릅니다. 이선민(30)씨는 한 달 전 아이를 낳았습니다. 출산 후 지금까지 폭식과 구토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해요. “음식이 아이의 것이 된다는 생각을 하고 나서 열심히 끼니를 챙겨 먹을 수 있게 됐다”고 설명하는 그는 처음으로 ‘먹는 행위’로 욕구를 채우지 않게 됐다고 말합니다. 현재 식사치료 중이라며 서두를 연 질문자가 자신에게 여전히 남아 있는 섭식장애 증상에 주변 사람들의 걱정이 크지만, 스스로는 어느 정도 패턴화된 증상이 익숙하고 지금 상태에 편안함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그는 외부의 기준에는 부족하지만, 이 정도 수준이 스스로가 생각하는 ‘회복’의 상태인데 더 노력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이번 ‘섭식장애 인식주간’ 행사를 기획했으며 본인 스스로 섭식장애 당사자이기도 한 박지니(44)씨는 “회복의 상태는 계속 변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지금이 편안한 상태라면 외부로부터 압박받지 않고 좀 더 편하게 마음을 가져도 좋겠다고요. 참여한 8명의 당사자는 무엇이 회복일지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나의 존재에 대한 질문과 변하고 싶은 방향에 대한 고민, 그렇게 스스로 나아갈 방향을 설정해가는 과정 자체가 회복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아닐까요.  매년 2월 마지막 주, 마이애미 타워부터 나이아가라 폭포에 이르기까지 미국 전역의 세계적인 랜드마크들이 파란색과 녹색 불빛으로 환하게 빛납니다. 섭식장애 인식주간(Eating Disorders Awareness Week)을 기념하기 위해서죠. 이 캠페인은 섭식장애를 겪는 이들과 가족에게 지역사회의 응원과 지지를 보여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인식주간 동안은 섭식장애에 대한 교육과 정보 공유뿐만 아니라 식습관 회복을 돕는 소모임이 활발히 진행됩니다. 섭식장애 인식주간은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등 여러 국가에서 이미 1980~1990년대부터 매년 개최하고 있습니다.  미국 하버드대 T.H. 챈 보건대학원은 2009년부터 ‘섭식장애 예방을 위한 전략적 전문연수 이니셔티브(STRIPED)’를 통해 섭식장애 문제에 대응하고 있어요. 이니셔티브에서 발표한 ‘2018/2019 회계연도 중 섭식장애의 경제적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내 섭식장애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연간 약 647억달러(약 84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손실에는 직접 치료 비용뿐 아니라 비공식적인 돌봄 제공 비용, 사회가 부담하는 비용 등이 포함됩니다. 이에 따라 여러 나라에서는 섭식장애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자 전문가와 기관의 협력을 통한 캠페인과 세미나 등을 다양하게 운영하고 있어요.  섭식장애는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크게 개선되거나 ‘회복’될 수 있다고 해요. 이를 위해서는 섭식장애를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사람마다 섭식장애의 원인이 다르기 때문에 전문가와의 긴밀한 소통이 필요하다고요. 우리나라에서도 섭식장애 관련 정보 제공, 지지집단 조직, 전문가 상담 등의 인프라가 조금씩 구축되고 있으나 아직 충분하지 않습니다. 섭식장애에 대한 사회의 관심과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섭식장애 인식주간을 주최한 ‘잠수함토끼콜렉티브’는 섭식장애 당사자들의 모임입니다. 이름이 굉장히 독특하지 않나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1800년대 초, 산소측정기가 없던 잠수함에서는 위험 감지를 목적으로 토끼를 싣고 다녔다고 해요. 승무원들은 토끼를 잠수함 가장 아래에 앉혀 두었어요. 산소 부족으로 토끼가 이상 반응을 보이면 잠수함은 수면으로 올라와 환기를 시켰죠. 토끼의 ‘민감함’은 잠수함에 탄 모두에게 위험을 알리는 경보장치 역할을 했습니다. ‘잠수함토끼콜렉티브’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정치·경제·문화적 부조리에 영향을 받는 섭식장애 당사자들이 잠수함 속 토끼처럼 사회의 위기에 가장 먼저 반응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섭식장애 당사자들의 경험을 담은 여러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죽는 것보다 살찌는 게 더 무서웠다(2019)>, <삼키기 연습(2021)>, <또, 먹어버렸습니다(2021)>, <살이 찌면 세상에 끝나는 줄 알았다(2021)>, <나는 식이장애 생존자입니다(2022)>, <날 것 극대로의 섭식장애(2022)>, <가끔은 먹는 게 불행해(2022)>, <나의 정의(2023)>, <이것도 제 삶입니다(2023)> 등입니다. 과거 전문가 중심의 서술에서 벗어나 당사자들의 경험을 담은 진솔한 이야기는 섭식장애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공감을 가져옵니다. 하루라도 빨리 질병을 극복하고 ‘정상성’을 되찾아야 한다는 그동안의 논의 속에서 어쩌면 아프고 약한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자리는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점차 당사자의 이야기가 쌓여간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아픔과 돌봄, 취약함에 관한 이해를 학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겠죠. 아픔을 가진 당사자의 위치에서 목격한 사회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으니까요! 참, 지난해 인식주간 행사의 당사자 세션, 또 당사자 가족 세션에 함께한 박채영, 박상옥 두 모녀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2023년에 개봉했어요.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이 그것인데요. 박채영씨와 그녀의 어머니 박상옥씨의 이야기가 담긴 영화에는 섭식장애와의 싸움, 가족 간의 날것의 감정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볼 수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살펴보셔도 좋겠습니다.😊 섭식장애를 경험한 사람들은 섭식장애를 ‘걸리는 것’이 아니라 섭식장애로 ‘미끄러진다’고 표현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병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서서히 쌓여 어떤 순간에 갑작스레 미끄러지는 것과 같기 때문인데요. 전문가들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섭식장애로 미끄러지는 것을 느낀다고 합니다. 하지만 잘 보이지 않아요. 폭식과 구토는 자기혐오라는 악순환의 고리로 이어지기 쉽고, 문제를 드러내기보다 숨기고 혼자 해결하려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자기 몸의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먹는 행위’에 고민이 있다면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것은 어떨까요? 혼자가 아니라 함께 우리 앞의 과제를 해결해 가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세 번째 '섭식장애 인식주간(EDAW 2025)'을 응원하고 싶으시다면 펀딩으로 함께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이 콘텐츠는 뉴스레터 스피커스에 게재되었습니다. 
[인터뷰] 우리가 만들어내는 변화가 궁금해?_섭식장애건강권연대 편
섭식 장애, 익숙하지 않은 단어라 인터넷에 검색을 해봤다. 정신적 질환으로 인해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을 뜻했다. 대표적 질환은 거식증과 폭식증. 거식증은 몸매에 대한 강박으로 제대로 식사하지 못하고, 먹은 것 마저 토해내는 것을 말했다. 폭식증도 있다. 음식 섭취에 대한 자제력을 잃고, 한번에 많이 먹은 뒤 다시 토해내는 것을 말한다. 마른 것이 이쁜 것이라는 인식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그 기준에 맞춰서 사람들을 보지 않았나 싶다. 더 나아가 여성은 이런 몸매를 가져야 해 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건 아닐까. 그리고 이런 시선이 누군가에겐 강박이 되지 않았을까. 누군가 내 몸매에 대해, 내 식사에 대해 평가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에 더욱 건강한 식사가 이뤄지지 않을까 싶다. 자연스럽게 밥 먹는 하루, 누군가에겐 꿈이고 이상일지 모른다. 그런 꿈과 이상을 가진, 섭식장애건강연대의 선민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럼에도 우리는'은 성평등을 주제로 다양한 실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활동으로 2022년 1기 13팀에 이어 올해는 9팀이 참여하고 있다.     섭식장애건강권연대, 시작이 궁금하다 섭식장애 당사자로서 섭식장애를 가진 분들이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었다. 구체적 방법보다는 이 화두가 강하게 있었다. 그러다 인권 운동을 하는 친구들에게 화두를 제안했고, “한번 연대를 만들어봐"라는 이야기를 듣고 시작하게 됐다. 섭식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살아갈 수 있으려면, 의료적 법적 지원도 필요하지만 우선적으로 섭식장애 당사자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이야기 하고, 그들이 오늘 하루를 사는데 고통스럽지 않게 사는 방법에 대해 먼저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관련 활동을 하고 있다. 우선 당사자의 글을 모아서, 섭식 장애가 단순히 굶는 것, 살찌기 싫어서 토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당사자들이 어떻게 그 삶과 식습관을 갖게 됐는지 알리고 싶다.     섭식장애건강권연대, 이름이 궁금하다 우선 섭식장애 단어를 넣은 건, 직설적으로 말하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이 있었다. 은유적으로 말하는 것도 좋겠지만, 오히려 직설적으로 이야기 했을 때 나오는 질문과 이야기들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본 사람들에 따라 다르지만, 더 많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고 판단해서 짓게 됐다. 또 의외로 섭식장애를 모르는 분들도 많아서, 직접적으로 노출 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건강권이라고 하니까 “건강해져야 돼"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런 게 아니라, 섭식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든다는 의미였다. 이렇게 두 단어를 합치니까, 갖추어진 느낌도 나서 좋다고 생각한다.   팀이 만들어진 과정도 궁금하다 문화 예술 기획 쪽에서 오래 종사했다. 섭식 장애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하다가 예전에 참여했던 프로젝트랑 친구가 떠올랐다. 연혜원이라는 친구가 진행했던 몸에 대한 프로젝트였다. 처음으로 섭식장애를 발견한 프로젝트였다. 프로젝트를 진행한 혜원이를 만난 게 첫 시작이다. 혜원이를 만나서 섭식장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연대를 만들어 보면 어때?”라는 제안을 해줬다. 마침 그때가 유명 패션 브랜드에서 데이트 폭력 관련한 캠페인을 했을 때였는데, 그걸 보고 “아, 우리 사회가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한 주권을 말하는 시대가 되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연대를 만들어보자 생각하게 됐고, 혜원이가 ‘여름' 이라는 친구를 소개해줘서 팀을 만들게 됐다. 그렇게 3명이 함께 시작했다.   팀 결성 이후 행보가 쉽진 않았을 것 같다 실제로 자금이 넉넉치 않으니 운영이 힘들었다. 나는 전적으로 하지만, 다른 두 친구는 다른 일과 함께 병행하던 중이었다. 또 스스로도 명확하게 “이걸하자, 이걸해야 돼" 이런 게 명확치 않은 시기였다. 그러다 지원 사업을 하면 다른 두 친구도 적극 참여할 수 있고, 운영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여러 지원사업을 넣었다. 다 떨어졌다. (웃음). 그러다가 빠띠의 ‘그럼에도 우리는 2기' 사업에 다행히 선정되어, 여름이와 저 두 명이서 함께 진행하고 있다.     프로젝트 참여자에게 어떤 기대를 하는지? 사실 진행을 하면서도 예상이 안 됐다. 섭식장애 당사자 분들이 온다는 생각은 했지만, 인식조사를 했을 때 당사자가 아닌 분들도 오고, 섭식 장애를 전혀 모르는 분들도 오셨다. 신기했는데, 그러다보니 예상이 더 안 됐다. 섭식장애건강권연대가 참여하시는 분들에게 줄 수 있는 게 뭘까 고민을 하면, 당사자 분들에게는 “당신이 겪는 고통이 결코 혼자서 겪는 고통과 문제가 아니다.”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당사자가 아니라면, 섭식 장애가 뭔지 고민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각기 다른 상황의 사람들이 얻어 가는 게 있으면 좋겠다. 세미나를 했었을 때, 섭식 장애 당사자분들도 오시고, 그 분들의 애인분들도 많이 오셨다. 여성 인권에 관심 있는 분들이 많이 오셨던 것 같고, 다양한 분들이 오신 것 같아서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어떤 분들이 오셨는지? 워크샵을 진행했는데, 1회차 때 총 다섯 분이 오셨다. 남자 두 분, 여자 세 분. 의외로 남자 분들이 오셔서 놀랐다. 그 남자 분 중 한 분은, 되게 재밌으셨어서 기억에 남는다. 본인과 애인이 섭식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닌데, 본인의 식습관에 대한 고민이 많으신 분이었다. 그 식습관과 환경을 연관지어서 고민을 하셨는데, 그렇게 연관지어서 생각하시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구술생애를 바탕으로 글을 쓰는 작가분도 오셨었다. 중년을 지나고 있는 작가님은 섭식에 대한 책도 쓰시고, 자신의 과거에 대한 고민도 말씀하셨다. 그 분 이야기를 들으며, 섭식 장애가 나이가 든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보통 20~30대에 없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계속 갖고 계신 분들이 분명 있다. 증상 호전이 안 되는 분들도 계시고. 그 분을 보면서, “특정 나이가 지난다고 없어지는 게 아닌데, 저 나이대의 섭식 장애 분들에 대한 콘텐츠가 너무 없구나.” 생각했다. 이런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됐다. 다른 여성분은 10대 학생분이였는데,본인이 갖고 있는 섭식 장애가 불편한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분이셨다. 예전의 나는 그냥 받아들였던 것 같은데, 참 다르구나 생각했고 개인적으로 10대를 쉽게 만날 수 없다보니 이번 만남이 더욱 특별했다. 그 학생의 생각과 받아들이는 방식을 많이 배웠다. 내가 그 학생 나이에 섭식 장애를 얻었는데, 나는 “이럴 수밖에 없다"라며 체념한 반면, 그 학생은 극복해가고 있었다. 그렇게 스스로 찾아보고, 불편을 해결하려는 모습에서 많이 배우고 인상이 많이 남는다.   “혼자서 공부하고, 홈 스쿨링을 하는 친구였어요. 아무래도 또래보다 빨리 많은 걸 접하는 것 같아요. (중략) ‘프로아나'라는 커뮤니티를 알게 되서 참여하고, 섭식장애를 알게 되고, 고쳐봐야겠다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선민)     참여자 중에 남성분들 비중이 높은 것도, 섭식 장애가 여성에 국한 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 같다 섭식 장애가 꼭 몸매와 연관되고, 여성에 국한된 게 아니다라고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사실 먹는다는 건 각자의 고충이 다 있다. 그런 것들이 삶에 투영되다. 예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으면 맵고 짠 걸 먹고,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샐러드와 닭가슴살을 먹는다. 이렇게 남녀, 연령에 구분없이 모두가 먹는다는 행위, 식사 행위를 통해 삶을 투영하고, 조금 더 편안하고 행복하고 잘 먹는 방법을 고민하는 이상 모두의 삶과 직결 된다고 생각한다.     섭식장애건강권연대의 활동이 성평등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앞서 말씀 드렸듯이, 남녀 연령 불문하고 신체 강박이 없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들 살이 쪘네, 다이어트 해야겠네 생각한다. 명절 때 어른들을 만났을 때 “살쪘네? 살 좀 빼라"라는 말은 남녀 모두가 듣는다. 이처럼 모두가 듣고 있고, 모두가 크던 작던 고통 받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거기서 받는 고통의 정도는 다르다. 그 문제가 여성에게 조금 더 카테고리화 되고, 문제로서 적용되는 것 같다. 하지만 모두에게 적용되는 문제인만큼, 섭식장애건강권연대의 활동이 성평등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건강한 식습관에 대한 생각은 개개인 마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 ‘건강함’의 기준이 다를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보편적인 ‘건강함’의 이미지로 타인을 판단 평가하는 것은 굉장히 폭력적인 일이다. 예를 들어 내가 케이크를 좋아해서 많이 먹으면, 미래에 당뇨가 올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당장 내가 오늘 케이크를 조금 먹어서 기분이 너무 좋다면 그건 건강한 식습관이라고 생각한다. 건강하면 좋다는 건 누구나 알지만, 모두가 건강한 식습관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렇게 남에게 건강한 식사를 항시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누군가의 식습관에 대해 평가하고 말하는 건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개인의 식습관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런 평가에서 남녀가 구분이 없기 때문에 섭식장애건강권연대의 활동이 성평등에도 연관된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틀린 몸매와 식사방법은 없다고 생각해요. 질병으로 부터 건강하게 살아가고 싶다면 그런 식습관을 선택하는 거죠. 그거를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선민)   “식이장애 치료를 결심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치료에 대한 두려움과 강박 (빨리 치료가 되어야한다는 생각들)이 강했습니다. 선민님이 섭식장애와 함께 살아가기 프로그램 당시 "치료 받아야하고 교정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너무 스스로를 괴롭힐때까지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어쨌든 우리는 이것과 함께 살아야한다" 라고 말했을 때, 그 말이 엄청난 위로가 되고 제가 겪고 있는 병과 제 상황에 대해서 좀 더 힘을 빼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주는 말이 었어요.”(워크숍 참가자 후기 중)     꿈꾸는 변화 : 앞으로 만들고 싶은 변화의 모습은? 고민이 많다. 뭘 해야 될까. 지금은 오프라인에서 하는 게 당장 힘드니까, 다른 친구들 2명이랑 해서 간단한 SNS 콘텐츠를 준비하고 있다. 또, 섭식 장애 당사자 분들의 글을 모으는 작업을 오랜 기간 해서, 콘텐츠화 하고 아카이빙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또, 워크샵도 1년에 2번 정도 생각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자연스럽게 밥 먹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나서 밥을 먹을 때, “살 쪗네 건강해 졌다 혹은 예뼈졌다.” 라는 말을 듣는 게 아니라 정말 자연스럽게 “안녕하세요"하면서 밥 먹는 그런 모습이 되면 좋겠다. 가끔 이런 순간들을 마주치는 순간이 있다. 그때 마음이 너무 편하다. 살을 찌어서 갔는데, 자연스럽게 인사하고 밥 먹는 그런 모습. 그런 사회가 좋은 사회이고, 만들어보고 싶은 사회다. 그런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   “임산부가 되면 몸매에 대해서 평가에 자유로울 줄 알았는데, 임산부도 6개월 치의 몸매가 있는 거에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세상은 만났을 때 몸매에 대해서 평가하지 않는 세상.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꿈꾼다면.”(선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