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인터뷰] 우리가 만들어내는 변화가 궁금해?_섭식장애건강권연대 편

2023.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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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주도하고 시민이 확산하는 우리 사회 성평등 문화를 만듭니다.

섭식 장애, 익숙하지 않은 단어라 인터넷에 검색을 해봤다. 정신적 질환으로 인해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을 뜻했다. 대표적 질환은 거식증과 폭식증. 거식증은 몸매에 대한 강박으로 제대로 식사하지 못하고, 먹은 것 마저 토해내는 것을 말했다. 폭식증도 있다. 음식 섭취에 대한 자제력을 잃고, 한번에 많이 먹은 뒤 다시 토해내는 것을 말한다.

마른 것이 이쁜 것이라는 인식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그 기준에 맞춰서 사람들을 보지 않았나 싶다. 더 나아가 여성은 이런 몸매를 가져야 해 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건 아닐까. 그리고 이런 시선이 누군가에겐 강박이 되지 않았을까. 누군가 내 몸매에 대해, 내 식사에 대해 평가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에 더욱 건강한 식사가 이뤄지지 않을까 싶다. 자연스럽게 밥 먹는 하루, 누군가에겐 꿈이고 이상일지 모른다. 그런 꿈과 이상을 가진, 섭식장애건강연대의 선민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럼에도 우리는'은 성평등을 주제로 다양한 실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활동으로 2022년 1기 13팀에 이어 올해는 9팀이 참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healthybulimia

 

섭식장애건강권연대, 시작이 궁금하다

섭식장애 당사자로서 섭식장애를 가진 분들이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었다. 구체적 방법보다는 이 화두가 강하게 있었다. 그러다 인권 운동을 하는 친구들에게 화두를 제안했고, “한번 연대를 만들어봐"라는 이야기를 듣고 시작하게 됐다.

섭식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살아갈 수 있으려면, 의료적 법적 지원도 필요하지만 우선적으로 섭식장애 당사자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이야기 하고, 그들이 오늘 하루를 사는데 고통스럽지 않게 사는 방법에 대해 먼저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관련 활동을 하고 있다. 우선 당사자의 글을 모아서, 섭식 장애가 단순히 굶는 것, 살찌기 싫어서 토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당사자들이 어떻게 그 삶과 식습관을 갖게 됐는지 알리고 싶다.

 

사진 출처 : @healthybulimia

 

섭식장애건강권연대, 이름이 궁금하다

우선 섭식장애 단어를 넣은 건, 직설적으로 말하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이 있었다. 은유적으로 말하는 것도 좋겠지만, 오히려 직설적으로 이야기 했을 때 나오는 질문과 이야기들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본 사람들에 따라 다르지만, 더 많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고 판단해서 짓게 됐다. 또 의외로 섭식장애를 모르는 분들도 많아서, 직접적으로 노출 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건강권이라고 하니까 “건강해져야 돼"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런 게 아니라, 섭식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든다는 의미였다. 이렇게 두 단어를 합치니까, 갖추어진 느낌도 나서 좋다고 생각한다.

 

팀이 만들어진 과정도 궁금하다

문화 예술 기획 쪽에서 오래 종사했다. 섭식 장애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하다가 예전에 참여했던 프로젝트랑 친구가 떠올랐다. 연혜원이라는 친구가 진행했던 몸에 대한 프로젝트였다. 처음으로 섭식장애를 발견한 프로젝트였다. 프로젝트를 진행한 혜원이를 만난 게 첫 시작이다.

혜원이를 만나서 섭식장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연대를 만들어 보면 어때?”라는 제안을 해줬다. 마침 그때가 유명 패션 브랜드에서 데이트 폭력 관련한 캠페인을 했을 때였는데, 그걸 보고 “아, 우리 사회가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한 주권을 말하는 시대가 되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연대를 만들어보자 생각하게 됐고, 혜원이가 ‘여름' 이라는 친구를 소개해줘서 팀을 만들게 됐다. 그렇게 3명이 함께 시작했다.

 

팀 결성 이후 행보가 쉽진 않았을 것 같다

실제로 자금이 넉넉치 않으니 운영이 힘들었다. 나는 전적으로 하지만, 다른 두 친구는 다른 일과 함께 병행하던 중이었다. 또 스스로도 명확하게 “이걸하자, 이걸해야 돼" 이런 게 명확치 않은 시기였다.

그러다 지원 사업을 하면 다른 두 친구도 적극 참여할 수 있고, 운영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여러 지원사업을 넣었다. 다 떨어졌다. (웃음). 그러다가 빠띠의 ‘그럼에도 우리는 2기' 사업에 다행히 선정되어, 여름이와 저 두 명이서 함께 진행하고 있다.

 

사진 출처 : @healthybulimia

 

프로젝트 참여자에게 어떤 기대를 하는지?

사실 진행을 하면서도 예상이 안 됐다. 섭식장애 당사자 분들이 온다는 생각은 했지만, 인식조사를 했을 때 당사자가 아닌 분들도 오고, 섭식 장애를 전혀 모르는 분들도 오셨다. 신기했는데, 그러다보니 예상이 더 안 됐다.

섭식장애건강권연대가 참여하시는 분들에게 줄 수 있는 게 뭘까 고민을 하면, 당사자 분들에게는 “당신이 겪는 고통이 결코 혼자서 겪는 고통과 문제가 아니다.”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당사자가 아니라면, 섭식 장애가 뭔지 고민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각기 다른 상황의 사람들이 얻어 가는 게 있으면 좋겠다. 세미나를 했었을 때, 섭식 장애 당사자분들도 오시고, 그 분들의 애인분들도 많이 오셨다. 여성 인권에 관심 있는 분들이 많이 오셨던 것 같고, 다양한 분들이 오신 것 같아서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어떤 분들이 오셨는지?

워크샵을 진행했는데, 1회차 때 총 다섯 분이 오셨다. 남자 두 분, 여자 세 분. 의외로 남자 분들이 오셔서 놀랐다. 그 남자 분 중 한 분은, 되게 재밌으셨어서 기억에 남는다. 본인과 애인이 섭식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닌데, 본인의 식습관에 대한 고민이 많으신 분이었다. 그 식습관과 환경을 연관지어서 고민을 하셨는데, 그렇게 연관지어서 생각하시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구술생애를 바탕으로 글을 쓰는 작가분도 오셨었다. 중년을 지나고 있는 작가님은 섭식에 대한 책도 쓰시고, 자신의 과거에 대한 고민도 말씀하셨다. 그 분 이야기를 들으며, 섭식 장애가 나이가 든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보통 20~30대에 없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계속 갖고 계신 분들이 분명 있다. 증상 호전이 안 되는 분들도 계시고. 그 분을 보면서, “특정 나이가 지난다고 없어지는 게 아닌데, 저 나이대의 섭식 장애 분들에 대한 콘텐츠가 너무 없구나.” 생각했다. 이런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됐다.

다른 여성분은 10대 학생분이였는데,본인이 갖고 있는 섭식 장애가 불편한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분이셨다. 예전의 나는 그냥 받아들였던 것 같은데, 참 다르구나 생각했고 개인적으로 10대를 쉽게 만날 수 없다보니 이번 만남이 더욱 특별했다.

그 학생의 생각과 받아들이는 방식을 많이 배웠다. 내가 그 학생 나이에 섭식 장애를 얻었는데, 나는 “이럴 수밖에 없다"라며 체념한 반면, 그 학생은 극복해가고 있었다. 그렇게 스스로 찾아보고, 불편을 해결하려는 모습에서 많이 배우고 인상이 많이 남는다.

 

“혼자서 공부하고, 홈 스쿨링을 하는 친구였어요. 아무래도 또래보다 빨리 많은 걸 접하는 것 같아요. (중략) ‘프로아나'라는 커뮤니티를 알게 되서 참여하고, 섭식장애를 알게 되고, 고쳐봐야겠다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선민)

 

사진 출처 : @healthybulimia

 

참여자 중에 남성분들 비중이 높은 것도, 섭식 장애가 여성에 국한 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 같다

섭식 장애가 꼭 몸매와 연관되고, 여성에 국한된 게 아니다라고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사실 먹는다는 건 각자의 고충이 다 있다. 그런 것들이 삶에 투영되다. 예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으면 맵고 짠 걸 먹고,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샐러드와 닭가슴살을 먹는다. 이렇게 남녀, 연령에 구분없이 모두가 먹는다는 행위, 식사 행위를 통해 삶을 투영하고, 조금 더 편안하고 행복하고 잘 먹는 방법을 고민하는 이상 모두의 삶과 직결 된다고 생각한다.

 

사진 출처 : @parti

 

섭식장애건강권연대의 활동이 성평등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앞서 말씀 드렸듯이, 남녀 연령 불문하고 신체 강박이 없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들 살이 쪘네, 다이어트 해야겠네 생각한다. 명절 때 어른들을 만났을 때 “살쪘네? 살 좀 빼라"라는 말은 남녀 모두가 듣는다. 이처럼 모두가 듣고 있고, 모두가 크던 작던 고통 받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거기서 받는 고통의 정도는 다르다. 그 문제가 여성에게 조금 더 카테고리화 되고, 문제로서 적용되는 것 같다. 하지만 모두에게 적용되는 문제인만큼, 섭식장애건강권연대의 활동이 성평등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건강한 식습관에 대한 생각은 개개인 마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 ‘건강함’의 기준이 다를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보편적인 ‘건강함’의 이미지로 타인을 판단 평가하는 것은 굉장히 폭력적인 일이다. 예를 들어 내가 케이크를 좋아해서 많이 먹으면, 미래에 당뇨가 올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당장 내가 오늘 케이크를 조금 먹어서 기분이 너무 좋다면 그건 건강한 식습관이라고 생각한다. 건강하면 좋다는 건 누구나 알지만, 모두가 건강한 식습관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렇게 남에게 건강한 식사를 항시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누군가의 식습관에 대해 평가하고 말하는 건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개인의 식습관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런 평가에서 남녀가 구분이 없기 때문에 섭식장애건강권연대의 활동이 성평등에도 연관된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틀린 몸매와 식사방법은 없다고 생각해요. 질병으로 부터 건강하게 살아가고 싶다면 그런 식습관을 선택하는 거죠. 그거를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선민)

 

“식이장애 치료를 결심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치료에 대한 두려움과 강박 (빨리 치료가 되어야한다는 생각들)이 강했습니다. 선민님이 섭식장애와 함께 살아가기 프로그램 당시 "치료 받아야하고 교정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너무 스스로를 괴롭힐때까지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어쨌든 우리는 이것과 함께 살아야한다" 라고 말했을 때, 그 말이 엄청난 위로가 되고 제가 겪고 있는 병과 제 상황에 대해서 좀 더 힘을 빼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주는 말이 었어요.”(워크숍 참가자 후기 중)

 

사진 출처 : @parti

 

꿈꾸는 변화 : 앞으로 만들고 싶은 변화의 모습은?

고민이 많다. 뭘 해야 될까. 지금은 오프라인에서 하는 게 당장 힘드니까, 다른 친구들 2명이랑 해서 간단한 SNS 콘텐츠를 준비하고 있다. 또, 섭식 장애 당사자 분들의 글을 모으는 작업을 오랜 기간 해서, 콘텐츠화 하고 아카이빙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또, 워크샵도 1년에 2번 정도 생각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자연스럽게 밥 먹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나서 밥을 먹을 때, “살 쪗네 건강해 졌다 혹은 예뼈졌다.” 라는 말을 듣는 게 아니라 정말 자연스럽게 “안녕하세요"하면서 밥 먹는 그런 모습이 되면 좋겠다. 가끔 이런 순간들을 마주치는 순간이 있다. 그때 마음이 너무 편하다. 살을 찌어서 갔는데, 자연스럽게 인사하고 밥 먹는 그런 모습. 그런 사회가 좋은 사회이고, 만들어보고 싶은 사회다. 그런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

 

“임산부가 되면 몸매에 대해서 평가에 자유로울 줄 알았는데, 임산부도 6개월 치의 몸매가 있는 거에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세상은 만났을 때 몸매에 대해서 평가하지 않는 세상.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꿈꾼다면.”(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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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몸은 없다!" 문장이 인상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사회에서 몸에 강요되는, 서로에게 강요하는 많은 제약들이 생각납니다. 제가 제게도 그런 압박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인터뷰를 읽기 전엔 패션업계에서 모델과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섭식장애가 발생하는 과정에 대해서 들었던 얘기들이 생각났는데요. 읽으면서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좁은 틀에 갇혀있었다고 느껴졌네요. 인간의 몸에 대한 특정한 이상향을 가지고 있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면 우리 모두가 섭식장애를 겪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앞으로의 활동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