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을 대통령이라 부르는 것도 어제로 끝이다
‘김건희를 지키기 위해 나라를 버리는구나.’
지난밤(3일) 비상계엄을 선언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얼굴을 텔레비전으로 보며, 맨 처음 든 생각이다.
부인 김건희 씨에 대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논란은 윤 대통령을 코너로 몰았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남용하며 막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명태균 씨가 개입된 여론조사 조작 의혹까지 터져나오며, 그렇지 않아도 레임덕 수준이던 지지율은 더 곤두박질쳤다.
화면 속 윤 대통령은 국회의 거듭된 탄핵소추안 발의와 예산안 처리 등이 계엄 선포의 이유라고 말했다. “저를 믿어주십시오”라고 호소했지만, 그 말을 믿을 국민이 몇이나 될까. 그저 우리 귀에는 ‘나라를 망치더라도 권력을 지키겠습니다’라는 소리로 들릴 뿐이었다.
거부권으로 막을 수 없는 성난 여론. 아마도 국민 모두를 ‘입틀막’ 할 다음 카드로 선택한 것이 ‘계엄’ 아니었을까.
계엄. 그 두 글자를 들으면 국민들의 머릿속에 곧장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바로 1980년 오월, 광주다. 군복을 입고 군인들이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쏘는 장면. 곤봉으로 시민들을 내리치고, 쓰러진 시민들을 끌고 가는 장면. 그리고 쓰러진 주검 앞에서 가족들이 오열하는 장면….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흘러도 도저히 지워지지 않을 끔찍한 악몽이었다.
지난밤 국회에도 군인들이 나타났다. 군복을 입고 총을 든 계엄군들. 땅에는 장갑차가 나타나고, 하늘에는 헬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국회의원들이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통과를 위해 국회 본청에 모이는 동안, 밖에서는 계엄군과 시민들의 격렬한 대치가 이어졌다.
그들의 손에 들린 것은 다름 아닌 총. 사람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살상 훈련을 받고 ‘작전’을 수행하러 온 군인이다. 윤 대통령은 계엄을 선포하며 ‘반국가세력’ 척결의 목표를 분명히 했다.
계엄군이 만약 눈앞의 시민들을 ‘반국가세력’으로 간주했다면. 그들을 진압하기 위해 더 심한 폭력을 썼다면. 상상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일이지만, 누군가 정신 나간 발포 명령이라도 내렸다면. 1980년 오월 그날처럼.
하지만 그런 두려움을 떨치고 국회 앞으로 달려나온 수만 명의 시민들이 있었다. 기적처럼 모이고, 태산처럼 맞섰다.
온몸을 던져 계엄군의 장갑차 앞을 막고, 무시무시한 총부리 앞에서 도리어 “부끄럽지 않느냐”고 호통을 쳤다.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는 순간에는 다 같이 박수를 치고 만세를 불렀고, 새벽이 올 때까지 구호를 외치며 국회 앞을 지켰다.
오월 광주에는 광장을 지키고 도청을 지킨 시민군이 있었다. 44년이 지난 2024년 12월 3일 여의도의 밤에도, 국회를 지키고 민주주의를 지킨 시민군들이 있었다. 지난밤 대한민국은 그들에게 빚졌다. 세대가 바뀌어도 기억해야 할 존경의 마음을 그들의 이름 앞에 남긴다.
하룻밤 사이 대한민국은 40년도 넘는 세월을 거슬러 뒷걸음질 쳤다. 밤새 텔레비전 앞을 떠나지 못하고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한 국민들이 얼마나 많을까. 뜬눈으로 수십 년 같은 하룻밤을 보낸 사람들은 오늘(4일) 아침이 되자 또 일상을 위한 발걸음을 옮겼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시민들의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묻어 있는 듯했다. 하룻밤 사이 놀람과 분노,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짧은 안도와 긴 불안으로 옮겨갔을 마음들. 착잡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을 안고도 모두 소리 없이 일터로 향했다.
어젯밤의 열정도, 오늘 아침의 냉정도 모두 이 나라를 지키는 힘이다. 정말 나라를 지키는 사람들은 계엄군도 아니고, 권력을 위해 나라를 버리는 무도한 대통령도 아니다.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정의를 지지하고 연대하는 시민들이다.
이제 윤석열을 대통령이라 부르는 것도 끝이어야 한다. 대통령이 아니라 내란사범이다. 그의 이름 뒤에는 하야나 탄핵이 아니라, 체포와 처단이란 단어가 뒤따라야 한다.
“대통령 계엄선포에 적극 지지하며 모든 당원은 대통령 지지선언으로 힘을 모아주십시요.”
지난밤 국민의힘 박중화 서울시의원의 메시지다. 계엄이란 이름으로 자행된 내란 범죄를 찬동하고 찬양한 자들 모두, 역사의 심판이 아니라 법에 의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관련기사 : <박중화 서울시의원, 의원 단톡방에 “계엄 적극 지지”>)
혹자는 말한다. 하룻밤의 해프닝이라고. 그렇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다. 자신의 권력을 위해 ‘계엄’을 활용했던 두 독재자, 박정희와 전두환. 그들이 이 나라에 남긴 정신적 오물을 극복하는 데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렸나. 아직도 그 역사가 제대로 청산되지 않아서, 저 윤석열 같은 괴물이 탄생한 것 아닌가.
어설픈 관용은 필연적으로 비극의 반복을 부를 뿐이다.
어젯밤 한순간에 과거로 퇴행한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시민들의 노력으로 분주한 하루다. 나라 곳곳에서 성명서를 내고, 기자회견을 열고, 집회를 하는 시민들의 행동을, 언론이 일일이 다 전하기도 어려운 정도다. 그리고 차분히 일상을 지키며 서로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의 반짝이는 연결이 지난밤의 어둠을 밀어내고 있다.
하룻밤 독재의 단꿈은 스스로 촛불이 된 시민들에 의해 산산이 깨졌다. 이제 시민의 아침이 밝았다.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