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희망 대신 차별 배우는 현장실습”… 교육부장관 고발 [열아홉, 간이 녹았다 5화]
“스태츠칩팩코리아라는 반도체 후공정업체의 청년 노동자는 취업 1년 만에 간이 녹아 없어져서 간 이식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 화학물질 가득한 작업장, 고된 3교대 근무가 가져온 산재입니다.”(‘학습권 침해, 죽음의 현장실습’ 교육부장관을 고발한다! 기자회견문 일부) 11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 20명의 교사와 특성화고 졸업생, 유가족, 시민단체 대표 등이 모였다. 현장실습 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시민들이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이주호 교육부 장관을 고발했다. 이들은 교육부 장관에게 직무유기, 직권남용, 업무상 배임 혐의를 물었다.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호해야 할 책임을 방기했고 ▲참여 의무 없는 현장실습으로 직업계고 학생들의 학습권을 방해하고 ▲결국 학생들에게 학습권, 건강권을 상실하게 했다는 주장이다. 과거 국가인권위원회와 국제노동기구도 현장실습 제도에 우려를 표명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7년 5월 노동부와 교육부에 ‘파견형 현장실습 우선 중단’을 정책권고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지난 2월  ‘현장실습 제도’를 ILO 협약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박은경 직업교육바로세우기현장실습폐지공동행동 공동대표는 현장실습 제도의 실상에 주목했다. 그는 “대중의 관심에 따라 현장실습제 대책을 마련할 뿐, 관심이 사그라들면 다시 현장실습 규제를 풀어 불법과 사고는 반복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2005년 11월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엘리베이터 점검 작업을 하던 현장실습은 안전 장비도 없이 작업하다 4층에서 지하 1층으로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2007년 3월 삼성전자 기흥반도체 공장에 취업했다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故) 황유미 씨 역시 직업계 고등학교 학생이었다. 이후에도 사고는 계속됐다. 2011년 광주 기아자동차 공장 뇌출혈 사고, 2012년 울산 신항만 공사 작업선 전복 사망사고, 2014년 울산 금영ETS 공장 지붕 붕괴 사망사고, CJ제일제당 진천공장 사망사건, 2016년 성남 토다이 사망사건,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2017년 전주 LG유플러스 고객센터 사망사건, 제주 생수업체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5월에는 전주페이퍼 공장에서 일하던 현장실습생이 설비실에서 숨을 거둔 채 발견됐다. 유족들은 ‘황화수소 중독’을 의심했지만, 지금까지도 정확한 사망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관련기사 : <“마이스터고 붐” 밀어붙이는 정부… ‘다음 선우’ 없을까>) 교육부 장관 고발에는 사망한 현장실습생 유가족도 함께했다. 고(故) 김동준 군 어머니 강석경 씨는 기자회견을 위해 대전에서 서울까지 왔다. 강 씨는 “사고 후 회사는 동준이 개인의 잘못과 불우한 가정사에 의한 개인적인 죽음으로 몰아갔다”며, “다행히 (직장 내에서 자행된) 괴롭힘이 밝혀졌고 산업재해 인정도 받았다”고 말했다. 김동준 군은 2014년 CJ제일제당 진천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했다. 그는 괴롭힘과 중노동으로 회사 기숙사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강 씨는 하루아침에 아들을 잃었다. 동준 군은 게임 프로그래머를 꿈꾸며 마이스터고등학교에 진학했다. 3학년 2학기, 꿈과 전혀 관련이 없는 육가공 공장에서 소시지를 포장했다. 열여덟의 나이에 사회에 나간 동준 군에게 선임들은 기합을 주었다. 머리 박기를 시키고, 쓰러지면 발로 머리를 밟았다. 업무 역시 살인적이었다. 잔업으로 밤 12시, 새벽 1시까지 야근을 하기 일쑤였고, 회식에 억지로 끌려다니다가 빠지면 기합을 받는 식이었다. 사망사고가 있기 전 김 군은 이러한 글을 남기기도 했다. “너무 두렵습니다. 내일 난 제정신으로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요?” 이을재 직업교육바로세우기현장실습폐지공동행동 총무기획팀장은 “애완동물과를 전공한 학생이 통신사 전화상담센터에서 일을 하고, 원예과 학생이 선물제조공장에 가서 물건을 나누는 게 현장실습의 현실”이라며, 전공과 무관하게 학생들에 대한 ‘강제노동 착취’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동준이가 경험한 현장실습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적응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 현장에 투입됐습니다. 둘째, 기본적인 노동조건이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셋째, 모두가 꺼리는 일이 최약자인 그들에게 할당됐습니다. 명백히 현장실습은 교육이 아니고 가장 최악의 노동이었습니다.”(김동준 군 어머니 강석경 씨 발언 일부) 경북기계공고 졸업생 이학선 씨 역시 현장실습 나간 공장에서 처음 ‘현실’을 배웠다. 그는 상사의 괴롭힘으로 힘들어하던 동료에게 회사와 한번 이야기 나눠보라고 위로했다. 그때 형은 “회사가 과장이랑 말단 중에 누구 편을 들 것 같냐”고 답했다. 이 씨가 마주한 현실은 그런 곳이었다. “직업계고 자체도 진짜 웃깁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선생님들은 너희 대학 못 간다고 했습니다. 효력도 없는 서약서를 (고등학교) 입학 면접 때 썼다면서요. 심지어는 취업한 친구들이 수험표 받겠다고 수능 원서 접수하려는 것도 막았습니다.” 이 씨는 교사가 학생들을 ‘현장실습장’으로 내모는 경험을 했다. 일단 일터에 “욱여넣는 식”이었다. 그것도 안전이 보장되지도, 꿈과 연결되지도 않은 노동 현장이었다. 그는 “인생을 비정규직으로 시작하고 희망 대신 차별부터 배우는 곳이 현장실습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들에게 희망 대신 체념을 가르치지 말아달라”고 강조했다. 고발에 참여한 고(故) 이민호 군 아버지 이상영 씨도 이날 마이크를 잡았다. 민호 군은 2017년 11월 제주 생수 공장에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적재기 프레스에 눌려 사망했다. 이상영 씨는 직업계 고등학교 학부모를 향해 말했다. 이 씨는 “직업계 고등학교 보내더라도 대학을 보내야 한다. 빚을 져서라도 보내야 자식의 목숨을 지킬 수 있다”고 호소했다. 고발에 동참한 고(故) 홍수연 양 아버지 홍순성 씨도 한마디 덧붙였다. 수연 양은 2017년 1월 전북 전주시에 위치한 저수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실습 나간 콜센터에서 격무에 시달리다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수연 양의 이야기는 영화 <다음 소희>(2023)의 모티브가 됐다. 홍순성 씨는 “현장실습 제도의 문제가 영화화되기도 했지만 그때만 ‘반짝’이고 만다”며, “여전히 불법이 만연한 현장에 ‘수연이’ 같은 아이들이 더 나올 확률이 높다”며 우려를 표했다. 이들은 약 50분 가량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건물로 향했다. 총 583명이 함께 나선 고발장을 접수했다. “도망쳐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 했습니다. 삶에 직면하라는 말입니다. 내 앞의 문제를 피하지 않고 마주하라는 겁니다. 현장실습은 악습입니다. 학생들한테 일자리 문제를 떠넘기고 열악한 노동을 강요하는 나쁜 관행입니다.그걸 참고 받아들이는 게 이제껏 우리한테 주어진 역할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는 게 교육이었습니다. 더 이상 참고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하라는 교육을 거부하겠습니다.”(경북기계공고 졸업생 이학선 씨 발언 일부)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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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없는 대통령의 말… “정치적 무책임 몸에 뱄다”
윤석열 대통령은 7일 대통령실에서 약 140분간 대국민 담화와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회견을 앞두고 회견 시간이나 분야·개수 등 제한 없이 모든 사안에 대해 답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윤 대통령은 국정 브리핑에 앞서 머리 숙여 사과했다. 이어진 기자회견 자리에서는 26개의 질문을 받았다. 대통령실이 강조했던 것처럼 앞선 기자회견과 비교했을 때 더 오랜 시간, 더 많은 질문을 받은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반전 없는 맹탕 회견’, ‘자충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2022년 6월 53%를 기록했던 지지율은 임기 절반 만에 17%(8일 기준)까지 하락했다. 지난 2년 반 대통령은 어떤 말을 했을까. 또 그의 말은 우리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 6일 예술사회학 연구자인 이라영 문화평론가(이하 ‘이라영 작가’)를 만났다.  그는 <말을 부수는 말>,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 <타락한 저항> 등의 저서를 집필했다. 그는 ‘권력의 말’을 해체하고 정확한 언어로 현실을 문제를 꼬집는 데 주목했다. “용산으로 대통령실 옮길 때 그랬잖아요. 제왕적 대통령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서 이전한다고. 그런 핑계를 댔는데 이후에 거부권을 얼마나 남발했어요? 군사독재 이후로 이보다 더 제왕적 대통령이 있었나 싶을 정도인데.”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대통령실 이전을 공식화했다.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기겠다는 계획이었다. 당시 윤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 강화”를 앞세웠다. 그러나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통령 직무수행 부정 평가 이유에서 ‘소통 미흡’은 3순위 안에 번번이 들었다. “이번 정부 들어서 소수자의 목소리는 완전히 묵살됐어요. 특히 참사 유가족들의 목소리요. 참사에 대한 정부의 무책임한 대응과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있어서 정치가 실종됐다는 거죠.” 이라영 작가는 참사를 대하는 태도만 봐도 권력의 성격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묵살(默殺)의 ‘살(殺)’이 살인(殺人)의 ‘살(殺)’과 같다”며, “묵살은 정말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권력의 행위이기도 한데, 이를 참사 유가족에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참사를 대하는 태도에 관한 지적은 처음 나온 게 아니다. 지난달 25일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를 마주하는 질문들’ 포럼에 참석한 최성용 성공회대 연구원(국제문화연구학과 박사 수료)은 이렇게 말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애도를 두고 ‘정치 편향적이다’라면서 분향소를 철거하거나 강제로 이전시킬 수 없죠. 우리가 어떤 리본을 하나 다는 것도 눈치를 봐야 되고, 리본 문구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고. 이거는 애도가 아니죠. 권력 행위죠.” 그는 “참사 대신 사고라 명명하고, 희생자의 영정 사진과 위패가 없는 합동분향소가 설치됐다, 정부의 애도는 다분히 형식적이었고 그 내용이 텅 비어 있었다”며, “참사 피해자의 존재를 없애고 침묵시켰다”고 비판했다. 2022년 10월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서 158명이 사망했다. 경찰 특별수사본부는 참사 74일 만에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경찰, 지자체, 소방 등 각 기관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이들의 부정확한 상황판단과 전파 지연, 협조 부실, 구호 조치 지연 등이 참사 원인이라고 밝혔다. 책임자들은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됐으나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만 유죄를 받았다.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관련자들은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권력자들이 ‘법적인 문제는 없다’는 말을 남용하면서 정치적 무책임이 몸에 밴 것 같아요. 우리 사회에는 그냥 거대한 사법기관만 (남아) 있는 거죠. 사회 정의는 법적인 유무죄 안에 갇히는 게 아니잖아요. 근데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되면서, 윤리라는 세계가 없어져버렸어요.”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으면 참사가 발생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진실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묻히고 만다. 이라영 작가는 “이러한 권력의 무책임으로 결국 시민들이 희생된다”며, 사회의 고통을 방치하는 권력자들에게 “정치적 책임의 회복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의 성격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는 또 있다. 지난달 1일 국군의 날에 열린 대규모 퍼레이드다. 그는 2년 연속 국군의 날 시가행진을 진행했다. 군은 이날 다양한 군 장비와 병력 등을 선보였다. “국군의 날이라고 퍼레이드를 하면서 정작 억울하게 죽은 군인에 대해서는 덮으려고 하고 밝히지도 않아요. 군 사기를 걱정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죠. 정부는 군 사기를 걱정하지 않아요. 권력의 안위를 걱정하는 거죠.” 윤 대통령은 ‘힘에 의한 평화’를 주장했다. 그는 ‘선제 타격’, ‘압도적 전쟁 준비’, ‘확전 각오’ 등 전시 상황에 강력하게 대응할 것을 강조했다. 이라영 작가는 이러한 권력이 결국 국민들에게 ‘집단적 불안’을 조장해 사회 부정의를 가렸다고 꼬집었다. “사회를 전시 분위기로 몰고 가면서 차별을 더 강화하고 있어요. ‘지금 전쟁 나게 생겼는데,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어디 있어?’ 하면서 (다른 문제들을) 사소화시키는 거죠.” 권력자의 외면과 차별로 결국 ‘사과’가 사라진 세계가 도래했다. 사과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단계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참사나 사고가 발생해도 누구도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법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 여기에서 이상한 ‘말’이 탄생한다. “권력자들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인정할 수는 없는데 사과를 해야 하는 자리에 섰어요. 그때 ‘죄송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유감입니다’ 이렇게 말해요. 사과하기 싫으니까 에둘러서. 이게 그냥 공직자들의 언어가 돼버린 것 같아요.” 유감(遺憾)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 이라영 작가는 권력자가 타인의 마음을 ‘섭섭’하게 만들어놓고, 자신이 도리어 유감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사회에서 문해력에 문제가 있는 건 다름 아닌 ‘권력 집단’이라고 말했다. “언어는 그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쓰면 그냥 그 사회에 그냥 굳어지는 거잖아요. 그러면 점점 사람들이 ‘유감입니다’를 사과의 언어로 이해하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정말 우리 사회의 언어를 망치고, 문해력을 교란시키는 주범이 누구인가 하면 결국 ‘권력집단’이에요.” 교육부는 2022년 개정 교육과정에서 ‘성 소수자’ 용어를 삭제하고,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서 ‘노동자’를 ‘근로자’로 변경했다. 이에 당시 인권위는 “우리 사회의 인권 담론을 후퇴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동자는 노동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말이라면, 근로자는 조금 더 사용자의 입장에서 수동성이 부각됩니다. 이를 굳이 바꾸려고 하는 이유가 뭐겠어요. 노동자의 주체성, 독립성을 약화시키려고 하는 거죠.” 말을 바꾼다는 건 단순히 글자를 바꾸는 게 아니다.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권력자들은 이를 활용해 차별을 강화하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반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권력 집단의 말은 보수적이다. 그들이 활용했던 말과 언어를 지속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반면 사회적 소수자, 피해자 등은 자신의 상황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를 끊임없이 찾는다. 기존의 문화에서는 너무 평범한 말이라고 해도, 차별이나 비하의 의미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저는 권력의 위치가 잘 드러나지 않는 표현들을 경계해요. 예를 들면 젠더 ‘갈등’이라는 말을 하려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젠더들의 관계가 모두 평등해야 성립할 수 있어요.그런데 ‘젠더 권력’, ‘젠더 폭력’, ‘젠더 차별’ 이렇게 사용하는 게 더 정확한 상황에서, 뭉뚱그려 ‘젠더 갈등’ 이렇게 이야기해요. 그러면 말에 권력의 위치가 드러나지 않거든요. 지역 ‘갈등’도 그렇고요. 저는 권력이 행하는 차별과 폭력을 순화해주고 싶지 않아요.”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내세우며,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라고 표명했다. 이라영 작가는 이러한 정부 아래 ‘여성혐오 범죄’가 어떻게 인정될 수 있겠냐고 탄식했다. 구조적 성차별 없다고 했으니 여성혐오는 검증될 수도, 인정될 수도 없다. 따라서 ‘여성혐오 범죄’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잇달아 발생하는 교제폭력, 교제살인, 여성혐오 폭행 사건 등은 모두 개인화된다. 즉, 별난 가해자가 저지른 기행으로 둔갑되는 것이다. 국민 대다수 역시 윤석열 대통령의 행보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 17%라는 지지율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윤석열 정부는 민심을 얻지 못했다. 탄핵론에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여기에도 이라영 작가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천 개입 정황이 이렇게 나와도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 같은 분위기가 형성 안 되잖아요. 왜냐하면 별다른 대안이 없어 보이니까요. 이쪽을 끌어내리면 또 누구를 앉힐까. 잘 모르겠어요. 이게 사람들을 되게 절망적이고 무력한 시민으로 만드는 것 같아요.” 이라영 작가는 “정치가 고통을 외면하는 세상”에 돌파구는 결국 연대라고 강조했다. 한 사람의 목소리는 쉽게 묻힐 수 있어도, 여럿이라면 권력에 견줄 ‘힘’을 만들 수 있다. “인간이 품은 모방 욕구는 아름다움을 복제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무엇을 복제할 것인가. 권력화된 아름다움인가 분배하는 아름다움인가. 아름다움과 선함에 대한 동경이 나 이외의 타자와 동등하게 연결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연결될 수는 없을까.” – <말을 부수는 말>(이라영, 한겨레출판, 2022) 중에서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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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스터고 붐” 밀어붙이는 정부… ‘다음 선우’ 없을까 [열아홉, 간이 녹았다 4화]
인천공항에서 차로 약 15분 떨어진 인천국제공항 물류단지. 잿빛 건물 틈으로 대형 화물차들이 바삐 움직였다. 5차로를 사이에 두고도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공장들. 바로 그곳에 스태츠칩팩코리아가 있었다. 오후 2시를 넘기자 공장 정문에 택시 세 대가 멈춰 섰다. 스무 살 남짓한 젊은 노동자들이 여럿 내렸다. 이들은 부리나케 달려가 개찰구를 통과했다. 안쪽에도 사람들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대부분 앳된 얼굴이었다. 김선우(가명, 23) 씨도 평화로워 보이는 이곳에서 근무했다. 그는 2020년 10월 스태츠칩팩코리아에 입사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학교의 ‘1호’ 취업생이었다.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몸에 이상이 생겼다. 간이 녹아내렸다.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이식 수술을 받았다. 당시 그의 나이 만 열아홉이었다.(관련기사 : <반도체 공장 취업한 고교생, 1년 만에 간이 녹았다>) “얘가 그냥 인문계(고등학교)를 갔으면… 대학을 갔으면… 이런 일이 없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계속 드는 거예요.” 엄마 이하영(가명) 씨는 선우 씨가 아픈 게 꼭 엄마인 자기 탓 같았다. 마이스터고등학교에 진학한다던 선우 씨를 말리지 못한 것도, 울산 집에서 멀리 떨어진 인천에서 일한다는 선우 씨를 붙잡지 못한 것도, 안색이 좋지 않았을 때 병원으로 바로 가지 못한 것도. 선우 씨는 2022년 9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신청서’를 제출했다. 산재를 신청한 것. ‘일’을 하다가 아프게 됐단 걸 인정받기 위해서였다.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가 인정되면 앞으로 들 치료비 걱정도 덜 수 있었다. 근로복지공단은 1년 8개월 만에 산재 ‘불승인’ 결정을 통보했다. 그는 지난 8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에서 산재 승인을 다시 다퉈보겠다는 취지였다. “솔직히 알리고 싶기도 한데, 학교에서도 안 들을 것 같아서요. 취업 담당 선생님 말고는 안 알렸어요. (…) 다른 분들은 뭐 없죠. 졸업하면 끝인데.” 선우 씨는 취업 담당 교사 외에는, 아파서 퇴사했다는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그는 “학교가 취업률을 더 신경 쓸 것 같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학교에서는 여전히 후배들을 거기(스태츠칩팩코리아)에 보내는 것 같더라고요.” 선우 씨가 졸업한 고등학교 홈페이지에는 졸업생 취업 현황이 공개돼 있다. 최근 5년간 90% 이상의 취업률을 자랑했다. 10월 집계된 취업 현황에 따르면 올해 스태츠칩팩코리아에 취업한 3학년 학생은 8명이다. 지난해에는 6명이 취업하고, 2명이 현장실습을 나간 것으로 기록돼 있다. 회사는 전국 수많은 직업계 고등학교, 대학교와 산학협력 업무협약을 맺고 있다. 2021년에는 “전국 특성화고등학교 출신 학생 500명 이상 채용”을 홍보했다. 선우 씨는 마이스터고등학교를 다녔다. 정식 명칭은 ‘산업수요 맞춤형 고등학교’로, 직업훈련을 통한 전문기술인 양성을 목표로 했다. 직업계고 학생들은 일반적으로 3학년 2학기가 되면 학교와 협약을 맺은 업체에 ‘현장실습’을 나간다. 선우 씨도 2020년 10월 ‘실습생’으로 스태츠칩팩코리아에 출근했다. 학교에서 교사의 소개로 구한 일자리. 검증된 회사라는 믿음이 있었다. “학교에서는 이제 취업률 올리니까 그냥 아무 곳에 나가서, 선생님들은 이제 일일이 확인하지 않거든요. 근데 저희는 이제 중요하잖아요. 저희는 3년이 걸린 거니까. 그래서 학교에서는 이제 선별해서 갖다줬다고는 하는데 저희가 알아보면 아, 이거는 아닌 거 같은데, 싶은 회사가 많은 거죠.”(면접참여자 H, 김혜진 외 2인, <직업계고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노동환경 및 노동세계 진입 실태> 중) 현장실습생들이 죽거나 다치거나 병을 얻었다는 소식은 흔한 뉴스가 됐다. 올해만 해도, 지난 5월 전주페이퍼 공장에서 일하던 현장실습생이 설비실에서 숨을 거둔 채 발견됐다. 유족들은 ‘황화수소 중독’을 의심했지만, 지금까지도 정확한 사망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삼성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현장실습생 출신 이승환 씨 이야기도 화제가 됐다. 그는 2021년 10월 현장실습생 신분으로 ‘케이엠텍’에서 일했다. 케이엠텍은 삼성의 1차 하청 업체로 갤럭시 휴대전화 등을 조립하는 곳이다. 그는 이듬해 1월 영진전문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정식으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업무를 이어갔다. 그리고 지난해 9월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그의 나이 스물한 살이었다. 승환 씨는 이후 7차례 항암 치료를 받았다. 올해 3월에는 조혈모세포 이식수술도 받았다. 통증으로 잠 못 드는 날이 늘었고, 이식 후 염증반응으로 온몸이 까맣게 변하기도 했다. 그는 올해 4월 산재를 신청했다. 산재보험법상, 업무와 질병간의 인과관계는 피해노동자 측에서 입증해야 한다. 케이엠텍은 회사 내부 자료를 승환 씨에게 주려고 하지 않았다. 선우 씨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그 역시 산재 신청을 하기에 앞서 회사에 작업환경 관련 정보를 요청했다. 스태츠칩팩코리아는 자료를 주지 않고,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내부 자료를 요청하라고 답했다.(관련기사 : <간이 녹아 사라진 ‘반도체 소년’… 회사는 “술 때문에”>) 현장실습생 F : “학교에서 이렇게 제대로 된 교육은 딱히 잘 못 받았던 것 같아요.”현장실습생 D : “얘기해줬을 수도 있는데 기억 안 나요.”현장실습생 C : “딱히 얘기해 준 게 없는 것 같아요.”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등 3단체, <특성화고 학생의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과 노동세계진입연구> 중) 현장실습을 앞둔 학생들을 상대로 한 노동안전 교육은 여전히 미흡하다. 일터에 가서도 마찬가지다. 현장실습생 B : “바닥 미끄러우니 유리 조심하고, 뜨거운 거 조심하고… 그 정도밖에 없어요.”현장실습생 A : “그냥 몸에 안 좋다는 것만. 그래서 토시랑 마스크 끼라고. 그거 할 때는 꼭 마스크 끼라고 하죠.”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등 3단체, <특성화고 학생의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과 노동세계진입연구> 중) 사회는 실습생에게 친절하지 않다. 선우 씨에게 그랬던 것처럼, “위험하니까 조심하세요”라고 경고할 뿐이다. “사회생활이 다 그렇지, 뭐. (…) 아니, 그 새끼들 공장 나갔던 것들이 다 처돌아와. 몇 달 더 버티라니까. 아유, 우리 반이 바닥 찍을 것 같아. 니는 괜찮지? 사고 안 쳤지? 소희야, 버텨야 된다이?”(영화 <다음 소희> 대사 중) 일터에서 부당한 일을 겪어도 퇴사는 쉽지 않다. 직업계고 3학년 학생은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에 거의 의무적으로 참여한다. 법률상 의무는 없지만 관행처럼 굳어졌다. 심지어 현장실습 중 돌아오는 학생에게 징계를 내리는 경우도 있다. “당장 저희 학교만 해도, 업체에서 불합리한 일을 겪은 학생들을 보호해주기는커녕, 반성문을 쓰게 하고 징계를 주었습니다. 심지어 그 학생의 실습 기회는 가장 마지막에 주어졌습니다.”(김종하, 2017 인권논문 수상집 <특성화고 현장실습의 현실과 개선방향> 중) “선생님들은 현장실습 보냈다고 끝이라고 생각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알아서 버티라고만 하고. 무책임해요. (실습 중에 학교로) 돌아오면 욕하고. (…) 선생님들이 안 좋아했어요. 실적이 떨어지니까.(면접참여자 D)”(김혜진 외 2인, <직업계고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노동환경 및 노동세계 진입 실태> 중) 왜 현장실습생들은 안전하지 않은 일터로 나갈 수밖에 없을까. 현장실습제도는 산업체 인력 공급을 목적으로 시작됐다. 박정희 정부는 1973년 직업계고 학생들에 대해 재학 중 현장실습을 의무적으로 이수하도록 강제했다. 이후 여러 정권을 거치며 실습 기간은 2개월에서 1년까지 늘어났다. 실습생의 인권침해 문제와 중대재해 사고가 발생하자, 2006년에 이르러 처음으로 제도에 제약이 생겼다. 수업 일수와 취업 보장이라는 조건을 충족해야 실습을 나갈 수 있게 된 것. 규제는 2년이 지나지 않아 풀렸다. 이명박 정부는 청년 취업난을 해소하기 위해 ‘고졸시대’의 포문을 열고자 했다. 그는 현장 중심 직업교육을 강조하며, 특성화고 취업률 목표를 60%로 잡았다. 취업률은 학교 평가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때부터 학교의 취업률 경쟁은 시작됐다. 감사원은 2015년 고등학교 직업교육 활성화 분야에 관해 이렇게 지적했다. “일부 특성화고등학교에서 취업률을 높이고자 전공과 무관하거나 현장실습이 제한된 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거나 현장실습 협약과 배치되는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등 현장실습 제도 도입 취지에 맞지 않게 운영되고 있었습니다.”(<감사결과보고서-산업인력 양성 교육실책 추진 실태(2015)> 중) 사건·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2011년 광주 기아자동차 공장 뇌출혈 사고 이후, 2012년 울산 금영ETS 공장 지붕 붕괴 사망사고, 2014년 울산 신항만 공사 작업선 전복 사망사고, CJ제일제당 진천공장 사망사건, 2016년 성남 토다이 사망사건,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2017년 전주 LG유플러스 고객센터 사망사건, 제주 생수업체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교육부는 2018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시도교육청 평가 기준에서 ‘직업계고 취업률’을 폐지한다는 대안이었다. 이어 조기취업 형태의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이 폐지되고, 학습 중심의 현장실습만 허용됐다. 취업 시기 역시 3학년 2학기가 종료된 겨울방학부터 가능했다. 다만, ‘현장실습 선도기업’인 경우, 3학년 2학기 수업 중 3분의 2 이상을 이수하면 취업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장실습 선도기업’은 현장실습을 운영하는 기업 중 교육청 심의를 통해 우수한 실습 여건을 갖추었다고 인정받은 기업이다. 이후에도 사건·사고는 이어졌다. 2021년 여수 요트 선착장 실습생 사망사고, 2024년 전주 페이퍼 사망사고로 현장실습생들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선도기업’이라는 꼼수로 여전히 ‘값싼 노동력’이 투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지난 2월 ‘현장실습 제도’를 ILO 협약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한국에서 도제 제도나 직업훈련 참여 최저 연령은 16세인 것으로 보이며 현장실습생은 노동에 진입할 수 있는 최소 연령을 초과하고 있다”며 “실습생에 대한 안전과 훈련 감독 부재의 상황도 우려된다”고 밝혔다. 현장실습에 대한 문제제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8월 중등직업교육 발전 방안을 내놓았다. ‘제2의 마이스터고 붐’을 조성하겠다며, 첨단산업 중심 마이스터고를 육성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첨단산업은 정말 많은 유해화학물질이 집약적으로 사용되는 산업입니다. 새로운 공정과 새로운 물질이 끊임없이 사용되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이윤추구 논리가 안전보다 늘 우선돼 왔습니다. (…) 10대의 몸은 성인의 몸보다 유해물질에 민감합니다. 따라서 10대 후반부터 반도체 공장에서 일을 하는 것을 정부가 적극 육성하는 게 걱정될 수밖에 없죠.”(이종란 노무사, 2024. 10. 23.) 이종란 노무사는 고 황유미 씨 사례를 언급했다. 그는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2007년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근무한 지 2년도 채 되지 않아 발병한 것이다. 유미 씨는 산재를 신청한 지 7년 만에 인정받았다. 이를 계기로 삼성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에 대한 집단역학조사가 실시됐다. 이때 반도체 산업노동자들이 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게 밝혀지기도 했다. 김선우 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반도체 후공정 업체 스태츠칩팩코리아에 입사했다. 그는 입사 1년 2개월 만에 급성 간염을 동반한 독성 간질환으로 간 이식을 받았다. 산재 신청 결과는 불승인. 행정소송에서 이길 수 있을지, 그때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는 알 수 없다.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현장실습생으로 열아홉의 나이에 공장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2014년 CJ 현장실습생 김동준 군 사망사건을 소재로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을 쓴 은유 작가는 책에 이렇게 썼다. “청소년 노동이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환경과 문화에서는 누구의 노동도 안전하지 못하다.” 오늘도 다음 소희, 다음 동준, 다음 선우가 공장으로 출근한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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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은 ‘재벌 연봉킹’ 될 때, 20년 롯데맨은 천막으로 [회사에 괴물이 산다 14화]
서울 명동 롯데백화점 본점 앞.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갔다. 지하철역에서도 나오고, 횡단보도를 건너오기도 했다.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들려오는 언어들도 제각각이었다. 한국어, 중국어, 영어, 몽골어, 이탈리아어…. 깃발 든 이를 따라가는 관광객들을 쳐다보고, 주변 사람들이 어느 나라 사람일지 짐작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시간은 더디 갔다. 어느새 날이 저물고 거리에 어둠이 내려앉으면서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도 점점 줄어들었다. 더 무료해졌다. 주변 건물들에 내걸린 LED 광고판과 조명 불빛들로 여전히 거리 위는 화려했지만, 밀려오는 쓸쓸함은 어쩔 수 없었다. 거리에 몇 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 있는 일은 생각보다 더 곤욕스러웠다. 이 번잡스러운 곳에 천막을 치고, 한겨울부터 한여름까지 반년 넘게 밤을 지새우는 건 어떤 느낌이었을까. 2024년 가을의 선선한 날씨로는, 2년 전 어깨를 움츠리게 하는 추위도, 숨을 턱 막히게 하는 더위도 짐작하기 어려웠다. 의자나 계단에서 몇 시간 앉아 있는 것과, 쌩쌩 달리는 차 소리가 들리는 거리 위 천막에서 잠을 자는 건 비교조차 가능하지 않았다. 그곳이 꼭 외로운 섬 같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2년 2월 16일, 한낮의 태양도 살을 에는 추위를 녹이지 못했다. 쓸쓸하게 천막을 지키던 이성훈(당시 51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 회사에서 내용증명이란 게 왔어. 연차휴가 써서 유감이래. 당신, 그 천막농성이라는 거 그만하면 안 돼? 회사에 미운털 박혀서 지방에라도 가면 어떡해.” 아내의 간절한 목소리를 들으니 이성훈도 흔들렸다. ‘내가 괜히 노조를 한다고 했나. 계란으로 바위를 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는 백화점 명품관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쓸쓸하게 바라만 봤다.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23일이 지나가고 있었다. 자신이 한겨울 길바닥에서 농성을 하게 될 줄이야. 24년 전 입사 때는 생각도 못했다. 롯데백화점은 그의 첫 직장. 무역학을 복수전공한 그는 대학을 졸업하던 1998년 ‘유통맨’을 꿈꾸며 롯데, 신세계, LG, 유통 3사에 원서를 냈다. 롯데쇼핑(주) 백화점사업부에서 합격통지를 받은 뒤로는, 최종 합격한 LG도, 면접을 앞둔 신세계도 가지 않았다. ‘업계 1위’ 회사에서 능력을 펼쳐 임원까지 올라가보고 싶다는 포부를 품었다. 스물여덟 살 때였다. “Always with you : 언제나 고객과 함께” 백화점에 출근해서 이 슬로건을 볼 때마다 자부심이 차올랐다. ‘언제나’ 그와 ‘함께’할 롯데백화점에 걸맞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썼다. 해외지점으로 발령 날 때를 대비해, 점심시간에 근처 어학원에 가서 영어회화를 익힐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롯데카드 채권관리를 시작으로 지원업무 기획, 남성의류, 스포츠의류, 화장품 및 잡화 영업관리, 마케팅 기획, 상품권 판매 등, 여러 지점을 오가며 다양한 부서에서 일했다. 야근에 주말도 없이 일해도, 상부의 매출 목표 달성 압박에도 힘든 줄 모르고 일했다. 그 노력을 인정받아 입사 8년 만인 2006년 과장으로 승진했다.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일하던 2013년엔 사내 유공 표창도 받았다. 하루하루 정성 들여 살면 백화점의 화려함만큼 그의 노동도 빛이 날 줄 알았다. “롯데는 일본식 기업이니까 연공서열을 중시하긴 해도 (한번 채용한 직원과) 끝까지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직원을 쉽게 자르지 않는 문화가 있으니 회사는 나를 버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죠. 책도 많이 읽고 새로운 시도들도 했죠." 그의 바람과 달리, 다(多)점포 전략으로 업계 1위를 유지해오던 롯데백화점은 온라인 쇼핑과의 경쟁에서 점점 밀리면서 직원들을 압박하는 정책들을 펼친다. 승진에 누락돼 동일직급에 오래 머물면 기본급 인상에서 제외되고, 성과급, 상여금 등도 제대로 못 받게 됐다. 사원-대리-과장-부장으로 위로 올라갈수록 자리가 적어지니 승진 누락자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회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2021년부터는, 인사고과 하위 10%는 기본급까지 삭감하는 ‘신(新)연봉제’를 실시하겠다고 예고했다. 신연봉제는 동료 간 경쟁을 극단적으로 부추길 수밖에 없었다. “누가 옆 직원을 가르치고 협력을 하겠습니까? 옆 직원이 성과가 좋으면 나는 안 좋게 평가받을 수밖에 없는데요. 팀워크를 방해하는 인사평가 시스템인 거죠.” 회사는 직원들에게 신연봉제 도입에 동의하는지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대부분 ‘동의’를 선택했다. 각자 사번을 입력하고 회사 시스템에 로그인해서 응답하는 방식. 사실상 ‘공개투표’라 여겨졌다. 직원들은 혹시 모를 불이익을 걱정해 동의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신연봉제 시행에 대해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다’고 생각했다. 직원들을 보호해줄 울타리가 필요했다. 한국노총 소속 노동조합이 있었지만 “회사 방침에 대해서 반대 의견을 내지 않고 순순히 따르기만 하는” 노조에 한계를 느끼던 참이었다. 친하게 지내던 입사 4년 선배인 최영철이 그에게 새 노조를 만들자는 제안을 해왔다. 흔쾌히 응했다. “노조 만들려면 100명은 있어야 하는 줄 알았는데 두 명만 있어도 되더라고요. 형님(최영철)이 ‘다 만들어놨으니 너는 사인만 해’라고 해서 같이 노동청에 가서 설립신고서를 냈죠.” 그렇게 2020년 12월, 민주노총 서비스일반노조 롯데백화점지회가 생겨났다. 최영철이 지회장, 이성훈이 수석부지회장을 맡았다. 내부 전산망에 노조 설립 소식을 올리자 조금씩 가입 문의도 들어왔다. 하지만 실제로 노조에 가입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조합원이 되면 회사에서 불이익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직원들 사이에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중에 지회 사무국장을 맡은 한 조합원이 그랬다. 노조에 가입하고 얼마 뒤, 집이 인천인데도 부산으로 발령을 받았고 3년이 넘도록 못 돌아오고 있기도 하다. 노조 결성 후, 이성훈은 수원점에서 노원점으로 발령이 났다. 품질평가사로 직무도 바뀌었다. 낯선 업무였지만 최선을 다했다. 2021년 식품안전평가에서 91.5점을 받았다. 전체 35개 점포 중 중상위권에 드는 점수였다. 그런데도 그해 인사고과는 하위 10%에 머물렀다. 이선규 서비스일반노조 위원장은 민주노총 소속 노동조합이 있는 롯데그룹 계열사들의 노사관계가 원만하지 않음을 지적했다. “롯데 재벌은 ‘무노조 경영’으로 유명한 삼성 저리 가라 할 정도입니다. 소위 민주노조가 들어서면, 어떻게든 그 노조를 박살내려고 합니다. 롯데면세점지회 같은 경우는 조합원이 450명쯤 됐는데, 지금은 두 명 남았습니다. 회사의 부당노동행위를 법원에서도 인정해, 대표이사가 징역형(집행유예)까지 받았습니다.”(이선규) 소수 노조인 롯데백화점지회가 활동하기는 쉽지 않았다. 교섭권도 없으니 사측과 변변한 대화 한번 못했다. 신연봉제의 시행도 막지 못했다. 하위 고과를 받으면 기본급이 3% 삭감되고, 깎인 연봉을 기준으로 다음해 연봉이 책정되기 때문에 연봉이 오르기 힘든 구조가 됐다. 또한 3번 누적으로 하위 평가를 받으면 기본급 삭감에 더해 수당에 해당하는 업적가급까지 전액 삭감된다. 승진 누락자가 하위 고과까지 받으면 연봉은 더 깎였다. “신연봉제 전에는 기본급은 건들지 않았습니다. 업적가급도 전액 삭감은 아니었고요. 아무리 자본주의가 누군가를 평가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라고 해도, 너무 과도하다 이겁니다.” 한번 저성과자로 평가받으면 주요 보직을 주지 않아 다음해에도 인사평가 등급이 오르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될 여지가 컸다. 특히 회사에 청춘을 바친, 연차가 높은 직원들이 그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이성훈도 계속된 승진 누락으로 마음에 상처를 받아온 터였다. 2006년 서른여섯 살에 과장이 된 뒤로 번번이 승진심사에서 떨어지면서, 자책하는 날이 많았다. “TV에 나오는 ‘만년과장’이 내가 될 줄은 몰랐어요. 언젠가는 승진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안 되니까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죠. 일은 일대로 하는데도 승진이 안 되니까 ‘나한테 문제가 있는 건가’ 싶고….” 과장 직급부터는 본사에서 승진 대상자를 승인하는 시스템이었다. 보통 지점에서 명단을 올리면 그대로 통과가 되는 편인데, 이성훈은 번번이 미끄러졌다. 후배들이 줄줄이 먼저 승진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이성훈은 팀장이 못 됐는데도 사람들이 예의 차린다고 ‘팀장’이라 부르는 소리를 들을 때면, 스스로가 초라하기만 했다. 그런데다 연봉까지 깎이니 가장 노릇을 못하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이성훈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롯데백화점은 2021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받고 권고사직도 실시했다. 고(高)연차 직원들에겐 승진보다 사직이 더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신연봉제로 연봉이 깎일 게 두려워서, 미리 퇴직금을 정산하는 직원들도 있었다. 반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2019년 연봉은 181억 7800만 원으로, 재벌 총수들 중에서도 ‘1위’였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경기가 가라앉았던 2020년에도 149억 8000만 원의 연봉을 받았다. 여전히 초고액 연봉을 받는 경영진과 달리, 경영 실패의 후과는 직원들이 감당하고 있었다. 이성훈은 노조를 통해 그 점을 문제 삼고 싶었다. 기존 노동조합은 기능직이나 무기계약직은 가입 대상이 아니었다. 이성훈은 백화점 문화센터‧MVG(VIP라운지)‧상품권‧사은데스크 등에서 근무하는 ‘사내 전문직’들의 처우 개선과 관련해서도 회사와 논의하고 싶었다. 사실상 무기계약직인 사내 전문직들은 임금이 정규직들의 60% 선에 머물러 있었다. “사내 전문직은 원래 정규직이 하던 일인데 회사가 계약직 일자리로 바꾼 겁니다. 이들이 얼마나 소외감을 느끼겠습니까? 또 (정규직 전환에 대한) 비전이 없는 사람이 얼마나 일에 열정을 쏟겠습니까? 전문직이 일반직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제도적 사다리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조를 설립하고 약 1년 동안 사내 게시판에 글도 쓰고 1인시위도 했지만 회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좀 더 강도 높은 행동이 필요했다. 최영철과 이성훈은 천막농성을 결심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타임오프(노조 전임자의 노조활동에 대한 근로시간 면제)를 인정받지 못해 근무시간 중에 노조활동을 할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1년 동안 쓸 수 있는 연차를 다 끌어 모아, 2022년 1월 25일부터 휴가를 냈다. 상관들도 별 이견 없이 휴가를 승인했다. 그날부터 롯데백화점 본점 명품관 옆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했다. “기본급 삭감‧업적가급 수당 전액 삭감 가능한 신연봉제 철폐”, “직원 갈라 치는 정규직‧무기계약직 차별 반대” 구호를 내걸었다. 롯데백화점 창사 이래 첫 천막농성이자, 그룹 전체로 봐도 1987년 롯데호텔 농성 이후 처음 하는 천막농성이었다. “처음에는 천막에서 (최영철과) 둘이 같이 잤어요. 난생 처음 농성을 하는 건데 혼자 하면 외롭고 두렵잖아요. 며칠 하니까 피로가 누적돼 쉬어야겠더라고요. (낮에는 같이 천막을 지키고) 밤에는 한 명씩 번갈아가면서 남았죠. 거기가 중심가잖아요. 밤새도록 자동차 소리가 들려서 잠을 못 자겠더라고요. 그게 많이 힘들었습니다.” 항상 지켜보는 것 같은 보안요원들의 눈빛과, 천막 쪽으로 향한 CCTV 카메라가 부담스러웠다. 회사의 신고로, 구청에서 ‘사유지를 무단 점유했으니 원상복구하지 않으면 철거하겠다’는 경고장을 붙여놓고 가기도 했다. 언제 철거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누구 한 사람은 항상 천막을 지켜야 했다. 실제로 백화점 주변에 달아둔 현수막이 여러 장 사라지기도 했다. “뭐든지 다 처음이었어요. 노동조합도 처음, 천막농성도 처음. 두려운 거죠. 천막에 혼자 누워 있으면 이걸 내가 어떻게 해야 되나, 막막해서 자꾸 눈물이 났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널뛰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농성 소식이 언론에 작게라도 나오는 날이면, 작게라도 성과를 내고 있다는 자긍심이 차올라 웃었다. 반면 농성을 시작해도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는 회사를 보면서는 끝도 없는 무력감에 빠져들었다. “일도 안 하면서 노조는 무슨 노조냐?”“천막농성? 그거 다 자기들만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 거다.” 회사 게시판에 농성 소식을 올리면 응원의 댓글들도 달렸지만, 그들의 진심을 호도하는 글들이 올라와 그들을 괴롭히기도 했다. 우울감이 그들을 휘감았다. 잠 못 드는 밤이 계속 됐다. ☞ 다음 이야기 <백화점 명품관 앞 ‘천막’ 생활… 막막해서 눈물이 났다>로 이어집니다. 취재 신정임 르포작가 jjung9110@naver.com사진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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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때문에 19살 간이 녹았다? 당신들이 틀린 이유 [열아홉, 간이 녹았다 3화]
고등학교 3학년 김선우(가명) 씨는 반도체 공장으로 나갔다. 학교의 ‘1호 취업생’이었다. 반도체 후공정 업체인 스태츠칩팩코리아. 일터에는 화학물질이 가득했다. 그는 얇은 덴탈마스크와 방진복을 착용한 채 하루 9시간, 많게는 11시간 30분씩 작업장에 머물렀다. 24시간 가동되는 기계에 맞춰 생체리듬을 바꾸다 보면 밤낮이 바뀌기도 했다. 취업 14개월 만인 2021년 12월, 간이 녹아내렸다. 혼수상태에 빠졌다. 주치의는 ‘마지막 인사’를 하라며 가족들을 불렀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던 위독했던 상황. 겨우 만 열아홉이었다. 기적적으로 뇌사자의 간을 이식받았다. 몸 밖으로 나온 선우 씨의 간은 형체조차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오랜 잠에서 깨어났지만 더 큰 문제들이 남아 있었다. 선우 씨는 2022년 9월 산재를 신청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산재 ‘불승인’ 판정을 내렸다. “당시 김선우 씨의 음주 습관으로 인한 상병이 아닌지 합리적인 의심이 가능한 상황입니다.”(스태츠칩팩코리아 측 의견서) 회사는 선우 씨의 음주 습관을 지적했다. 이들이 근거로 제시한 건 ‘특수건강검진표’. 결과지에는 “절주 또는 금주가 필요하다”는 소견이 적혀 있었다. “제가 양산부산대병원에서 상담을 받았는데요. 교수님이 ‘20대 초반이 술을 아무리 들이부어도 이 정도로 간이 상하지 않는다고, 절대 안 상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근데 회사가 그 얘기(음주습관 지적)를 하니까 너무 어이가 없더라고요.” 유해인자에 노출되는 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은 정기적으로 ‘특수건강진단’을 받는다. 선우 씨도 2021년 4월 특수건강검진을 받았다. 그때만 해도 간 기능 검사, 빈혈 수치 등에서 이상 소견은 없었다. 다만, 음주력에 ‘주의’가 표기됐다. ‘일주일 1잔 하루 4잔’이라는 수치 때문. ‘주의’가 필요하다는 선우 씨의 음주 습관은 ‘1주 1회, 1회 소주 기준 0.5병’ 수준이었다.(관련기사 : <간이 녹아 사라진 ‘반도체 소년’… 회사는 “술 때문에”>) “결과지를 보면 혈청 지티피(ALT), 혈청 지오티(GOT), 감마지티피(γ-GTP) 모두 정상이어서 음주력은 있지만, 이로 인한 간에 영향은 없는 상태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감마지피티는 음주로 인한 간 영향 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혈액검사 지표로, 이 수치가 정상이라는 것은 음주로 인한 간 영향은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활동하는 송홍석 신천연합병원 내과 진료부장은, 선우 씨의 진료기록을 검토한 뒤 “알코올성 간질환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당시 간 기능 검사가 정상으로 나왔기 때문. 이어 “음주가 원인이었으면 (진료기록상) ‘알코올성 간 질환’이라고 명시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간을 녹일 수 있는 또 다른 원인에는 독성간염이 있다. 이는 한약, 양약, 건강기능식품 등과 같은 약제를 복용하다가 발생하는 간 기능 손상을 말한다. 동아대학교병원 입원기록에 따르면, 선우 씨는 과도하게 약물을 복용한 이력도 없었다. “어린 나이에 급성간염이 일어날 만한 특별한 이유가 없는 점, 회사에 근무하고 1년이 지나 상기 질환이 발생한 시간적 선후 관계를 고려할 때 피재자(김선우)의 급성 간염을 동반한 독성 간 질환은 작업장에서 노출된 미상의 세척 용제에 의한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됨.” 선우 씨 주치의는 사업장을 의심했다. 입사 및 업무 중 특수검진을 할 때 특이사항 없이 건강했던 점, 가족력도 없고, 바이러스 간염 검사 결과가 음성이라는 점 등을 들어 외부 요인이 작용했을 거라고 추측했다. “라인에 있을 때는 서 있거나 의자에 앉아 있기도 하거든요. 선우가 (2021년) 5월 말부터 의자에 앉아서 조는 걸 자주 봤어요. 제가 자주 깨워주기도 했는데, 그 뒤로 코피도 되게 자주 흘렸던 것 같고요.” 동료 이창민(가명) 씨는 선우 씨가 사경을 헤매고 있던 2022년 1월, 선우 씨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씨는 동일한 공정, 바로 옆 라인에서 근무했다. 선우 씨는 집에 돌아가면 쓰러지듯 잠들면서도, 내내 피로를 호소했다. 선우 씨는 반도체칩에 전자기판을 부착하는 칩 어태치(Chip Attach) 공정에 있었다. 4조 3교대 근무 형태. 6일 근무하고 이틀 쉬는 식이었다. 6일 중 하루 이상 연장 근무는 필수였다. 한 주에 약 51시간 30분을 일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한도인 ‘주 52시간’을 넘지 않게끔 맞춰진 시간이다. “역한 냄새. 약물이랑 아세톤 냄새가 나죠. 주유소보다는 조금 약한데, 맡으면 불쾌한 냄새예요. 퀴퀴한 냄새라고 해야 되나.” 선우 씨에게 주어진 건 방진복과 얇은 덴탈마스크, 천코팅장갑, 비닐장갑이었다. 입술 모양이 다 보이는 얇은 마스크를 뚫고 독한 냄새가 들어왔다. 기계에 묻은 화학물질을 씻어내다 보면 비닐 장갑이 찢어져 손이 젖기도 했다. 환경부가 운영하는 화학물질종합정보시스템에는 사업장에서 다루는 화학물질 정보가 공개돼 있다. 스태츠칩팩코리아에서 다루는 화학물질은 혼합물질을 포함해 모두 365가지. 이를 단일물질로 구분하면 111개에 달한다. 여기에는 구리, 주석, 은 등 간 독성을 유발하는 물질 26개도 포함된다. 회사는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반도체 공정 중 유해성이 낮은 후공정을 담당하고 있는 업체”라고 설명했다. 그 근거로 “작업환경측정 결과 측정대상 물질 유해인자 ‘불검출 또는 검출한계 미만’” 결과를 받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작업환경측정 제도의 한계가 있다. 사업장에서 다루는 모든 화학물질을 대상으로 이뤄지지 않고, 일부 요인만을 대상으로 실시한다는 점. ‘작업환경측정 대상 유해인자’로 정해진 물질에 한해 노출 수준을 파악할 수 있다. 스태츠칩팩코리아에서 검사 대상이 된 화학물질은 111개 중 46개. 간 독성을 유발하는 물질 26개 중에서는 15개만 측정 대상이 됐다. 또한, 복합적으로 유해인자에 노출된 경우 신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의학적으로’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선우 씨는 4조 3교대로 근무했다. 야간작업은 국제노동기구(ILO)와 국제암연구소(IARC)가 지정한 2급 발암물질이다. 동시에 다량의 화학물질을 다루는 작업장에 노출돼 있었다. 야간작업, 또는 각각의 유해인자에 대한 개별 인과관계를 연구한 결과는 존재한다. 반면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 자료는 부족하다. 그 때문에 업무상질병 여부를 판단할 때, 복합적인 유해인자가 질병에 미칠 영향을 보다 넓게 해석해야 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례도 있다. “유해인자 노출기준은 해당 유해인자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경우를 전제로 하는 것인데, 여러 유해인자에 복합적으로 노출되거나 평균 근로시간 이상으로 장시간 근무하는 경우나, 작업강도가 높거나 주·야간 교대근무를 하는 등 작업환경의 유해요소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 등에는 유해요소들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질병 발생의 위험이 커질 수 있다.”(대법원 2017년 11월 14일 선고, 2016두1066) 근로복지공단이 ‘불승인’ 결정을 통보한 것은 지난 5월. 산재 신청으로부터 약 1년 8개월이 지난 때였다. ▲직업환경연구원 조사 결과, 독성 간염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물질의 노출이 없었다 ▲작업환경측정 결과에서 측정대상 물질 유해인자 불검출 또는 검출한계 미만이었다 ▲사업장 측 진술상, 동일공정 근무자 중 유사 증상 발병자 또는 검진 결과 이상소견자는 발생한 적 없다는 점들을 고려한 판단이었다. 다만 판정위원 중 한 사람은 “작업 중 간독성 물질은 일부 있”었다면서도, “독성이나 노출량을 고려할 때 상병을 유발할 수준은 아닐 것”으로 판단하기도 했다. “(사업장) 조사하는 날 (연구원) 태도를 보고 마음의 준비는 했어요. 회사 설명만 듣고 ‘그렇군요’ 하고 넘어가고, 그걸 또 곧이곧대로 믿고. (저한테는) 물어보지도 않고. 그래도 (판정위원) 만장일치로 불승인이 나올 거라고 예상하진 못해서 충격 먹었어요. 전원(불승인)은 말이 안 되죠.”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은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는 데 있다. 대법원은 이를 고려해, ‘현재의 의학 수준에서 인과관계를 규명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직업 관련성을 쉽게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바 있다. “근로자에게 발병한 질병이 이른바 ‘희귀질환’ 또는 첨단산업 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유형의 질환에 해당하고 그에 관한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대법원 2017년 8월 29일 선고, 2015두3867) 선우 씨는 녹아버린 간 때문에 그 원인을 명확히 알아낼 길이 사라졌다. 대신 평생토록 약값과 치료비가 따라다닌다. 그는 2022년 5월 회사를 퇴직해야 했다. 가족들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떠넘겼다는 죄책감에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3년간 든 치료비와 약값만 약 2억 원. 평생 얼마나 더 들지는 알 수 없다. 앞서 선우 씨가 산재를 신청한 이유에는, 가족에게 짐 지운 돈 걱정을 줄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선우 씨는 지난 8월 행정법원에 소장을 접수했다.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 처분에 취소를 구하겠다는 취지다.  “기다리는 시간이 제일 힘들어요. 결과가 빨리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 과정에서 희망고문이 제일 힘들죠. 그래도 최대한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서 이겨내 보려고 노력은 하고 있어요, 아직은….” 생사의 고비를 넘기자 산재 승인의 벽을 넘어야 했다. 무엇이 선우 씨의 간을 녹게 했는지 누구보다 알고 싶은 사람은, 바로 선우 씨 자신이다. 음주 습관이나 가족력, 약물 과복용은 원인은 아니었다. 작업장에 대한 의심은 있지만, 복합요인에 대한 연구는 미흡하다. 산재 불인정의 근거로 제시된 역학조사 결과나 작업측정보고서 역시 한계가 지적된다. 그는 지난해 12월 한 번 더 고비를 넘겼다. 당시 주치의는 재이식을 고려해야 할 정도로 위중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간 이식을 한 지 3년도 채 되지 않은 시기. 다행히 약물로 위기는 넘겼다. 다만 앞으로 몇 번의 위기를 더 넘겨야 할지, 또 몇 번의 재이식을 받아야 할지, 아니 재이식을 받을 수는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오래전부터 법원(판례)에서는 산재보상보험법에서 말하는 업무와 질병 간의 상당인과관계는 ‘의학적’ 인과관계가 아니고, 사회통념상 합리적인 수준에서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규범적’ 인과관계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혀왔다. 그럼에도 (근로복지)공단은 협소한 의학적 판단기준으로 산재불승인을 남발하여온 것이다.”(이종란 노무사, 2024년 7월 ‘산재 노동자 권리 보장을 위한 산재보험 개선 과제 토론회’ 자료집 중)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스태츠칩팩코리아의 반론을 듣고자 지난 8월 19일부터 약 30차례 전화 연결을 시도했다. 지난 8월 30일 기자는 인사팀 관계자, 안전팀 관계자, 임원급 관계자와 번갈아 소통했다. 이들은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 판단에 이견이 없다”, “당시 사내 공지로 헌혈 활동을 권하는 등 선우 씨를 도우려고 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보도로 인해) 회사에 피해가 발생하면 법적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안전팀 관계자는 약 40분간 안전관리 방침에 대해 설명했지만, 이후 비보도를 요청했다. 스태츠칩팩코리아는 셜록의 보도 이후, 지난달 11일 내용증명을 보냈다. 앞선 보도에서 “허위사실을 포함하여 당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내용이다. 이들은 “선우 씨에게 음주 때문에 질병이 발생한 것이라는 발언을 한 적이 없고, 본건 직원이 손에 노출되었다고 주장하는 용액도 역학조사 당시 ‘물’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작업환경측정 및 역학조사 결과 안전하다는 판정을 받은 점, 매월 직원들을 상대로 안전교육을 실시하는 점, 사내 유사한 병명이 발생한 적도 없는 점”을 강조했다. 끝으로 “당사의 명예를 침해하는 위법한 보도 행위를 즉각 중지하고, 본건 기사를 삭제할 것”을 요청했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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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2시에 “벌써 퇴근했냐”… 회사가 동생을 살해했다 [회사에 괴물이 산다 12화]
한 세계가 사라졌다. 가족을 끔찍하게 아끼던 막내이자, 고양이 루시와 루니의 다정한 집사. 언니를 잘 따르던 착한 동생. 누구와도 잘 지내던 둥글둥글한 사람. 예쁜 걸 모으고 꾸미는 걸 좋아하던 사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꿈꾸며 모든 순간 성실했고, 무엇이든 열심이던 그런 사람. 민순이라는 귀한 세계가 어느 날 사라졌다. 고작 서른여섯의 나이였다. “내 앞날이 너무 깜깜해서 그냥 세상에서 사라져버리고 싶다.” 민순 씨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였다. 어느 날 갑자기 민순이라는 세상이 통째로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왜 사라져야만 했는지 물음으로써, 그 세계의 무게를 잊지 않음으로써, 사라진 세계는 여기 남아 있다. 장향미(45) 씨는 그날을 기억한다. 2017년 12월의 첫 주말, 이른 아침이었다. 동생은 그날도 야근을 하고 아침에 들어왔다. 야근은 거의 매일 있었고, 밤샘 근무를 하고 아침 일찍 집에 오는 일도 적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동생은 꽤 지쳐 보였다. 그런 동생이 울기 시작했다. “떼굴떼굴 구르면서 펑펑”.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향미 씨는 동생을 진정시켜봤지만, 터진 울음은 멈출 줄을 몰랐다.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들다고, 상사 때문에 괴롭다고 동생은 대성통곡했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매일 야근을 하는 걸 보고 일이 많은 줄은, 그래서 힘든 줄은 알고 있었다. 향미 씨는 회사라는 데가 원래 그런 곳이라고 생각했다. 향미 씨 자신도 유명 게임업체에서 일하고 있었고, 그즈음 그 회사에서 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향미 씨와 부모님은 동생에게 퇴사하면 좋겠다는 얘기를 자주 하고는 했다. 그래도 동생이 이렇게 괴로워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착하디 착한 동생이 그렇게 우는 걸 보니 향미 씨는 화가 나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날 바로 관할 노동지청에 회사를 신고하고 근로감독을 요청했다. 노동부에서 연락이 온 건 일주일 뒤였다. 그 사이 동생은 과중한 업무와 상사의 비상식적인 업무 질책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탈진해가고 있었다. 향미 씨가 받은 답변은, 올해 근로감독 일정은 모두 끝났으니 내년 2월에 다른 신고업체와 ‘묶어서’ 근로감독을 나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근로감독을 요청해도 안 하겠다는데, 그런 노동부에 더 할 말이 없었다. 향미 씨는 몇 개월 전 회사 앞에서 팸플릿을 받은 게 생각났다. 향미 씨 회사의 과로사 문제를 고발했던 시민단체에서 나눠준 홍보물이었다. 내년까지 근로감독을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어 시민단체에 연락을 취했다. 시민단체 활동가는 동생의 출퇴근 기록과, 같이 고발할 수 있는 동료들을 모아보는 게 좋겠다고 조언을 줬다. 동생은 곤란해했다. 동료를 모으기도 어려울 것 같고, 출퇴근 기록도 없다고 했다. 향미 씨는 그게 좀 이상했다. “출입카드가 있잖아요. 그걸 찍고 들어가는데, 그 기록을 어디에서도 볼 수가 없게 돼 있대요. 취업규칙도 없고요.” 회사를 고발하는 일에 나설 수 있는 직원이 얼마나 될까. 동생은 같이 고발할 동료들을 모으는 건 좀 힘들겠다면서도, 자기 혼자서라도 회사를 고발할 거라는 얘기를 했다. 크리스마스 연휴,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동생은 부모님의 걱정에도 회사를 고발하려는 이유를 말했다. “(동생) 자신은 여태껏 그렇게 회사를 다녔지만, 자기 후배들, 지금 입사한 20대 초반의 신입들은 이제 이런 거 그만했으면 좋겠다, 그 마음으로 신고하고 싶다고 얘기를 했어요. 엄마가 훌륭하다, 열심히 해보라고 얘기를 했고요.” 2018년 새해가 밝은 지 사흘째 되는 날. 동생이 세상을 떠났다. 경찰이 왔다. 집에서 사망했기 때문에, 조사가 끝나면 장례를 치를 수 있다고 했다. 경찰의 조사라는 게, 자살인지 타살인지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가족들과 불화가 있었는지 물었고, 남자친구가 있는지, 금전적으로 문제가 있는지를 물었다. 향미 씨는 경찰에게 동생이 회사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다고 했는데, 경찰은 그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정신이 멍했다. 이틀 전 동생과 말다툼을 했는데, 그게 동생과의 마지막이었다. 향미 씨는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장례식장에 시민단체 활동가가 달려왔다.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와 변호사, 노무사도 ‘웹디자이너 과로자살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라는 이름으로 함께 왔다. 회사 사람들도 빈소를 찾아왔다. 가장 먼저 인사팀에서 왔다. 인사팀 직원들은 일손을 돕겠다며 빈소를 떠나지 않았고, 빈소에서 오고 가는 말들을 주의 깊게 들었다. 회사 대표도 조문을 왔다. 유족들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목인사만 하고 바로 떠났다. 동생의 상사였던 본부장과 팀장도 조문을 왔다. 두 사람이 동생을 괴롭힌 상사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인터뷰 도중 향미 씨는 두 사람 얘기를 하면서 떨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팀 사람들 있는 데서 물어봤어요. 일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고. 본부장이, 우리 직원들은 자발적으로 일을 하지 누가 시켜서 하는 건 아니라는 식으로 답을 했어요. 오히려, 제 동생하고 면담을 했는데 집에 일이 있어서 힘들어했던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출퇴근 시간을 기록하지 않느냐고 물어봤더니, 옆에서 듣고 있던 인사팀 직원이 대신 대답을 했어요. 우리 회사는 자율적인 업무를 존중하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을 기록하지 않는다고요.” 향미 씨는 빈소에 온 동료들, 동생과 잘 지내던 사람들의 연락처를 모두 받아뒀다.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동료들을 만나고 다녔다. 동생이 왜 죽어야 했는지 알아야 했다. 그래야 숨이 쉬어질 것 같았다. 서른 명 정도 만났고, 대부분 이미 퇴사한 사람들이었다. 동료들은 ‘회사 다니면서 우울감을 느꼈다’고 말했고, ‘아침에 일어날 때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향미 씨는 동생의 죽음이 “동생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과로와 괴롭힘, 압박과 무기력, 우울과 탈진. 동생의 죽음은 문제의 종합선물세트 같았다. ‘과로죽음’이었다. 과로로 인한 죽음에는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인한 과로사뿐 아니라, 과로자살도 포함된다. 동생은 2015년 5월, 한 유명 온라인 교육업체 디자인팀에 입사했다. 전에도 IT업체 디자이너로 일을 해왔던 터라 이곳이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었다. 당시 업계 1위로 창업 6년 만에 매출 4000억을 달성했고, 직원 수가 불과 10명에서 1200명으로 엄청나게 성장하던 곳이었다. 회사를 설명하는 ‘신화와 기적’이라는 수식어 뒤에는 직원들의 “뼈를 갈아 넣는” 희생이 있었고, 그만큼 노동강도가 높기로 악명이 높았다. 동생은 첫 출근을 앞두고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입사 4일째 새벽 4시에 퇴근을 했고, 그때부터 매일 야근이었다. 근로계약서 자체가 야근을 기반으로 작성됐다. 계약 연장근로만 매달 69시간에 야간근로 29시간. 주 5일 근무로 계산하면, 매일 3시간씩 더 일하고 매일 1시간씩 야근을 해야 하는 계약이었다. 실제로는 주말에도, 퇴근 후에도 일했다. 계약서에 적힌 시간을 항상 초과했다. 포괄임금제(근로시간과 상관없이 일정액의 수당이 포함된 월 급여를 지급하는 임금계약)라 시간외근로 수당도 없었다. 힘들 것 같다고 예상은 했지만 버티기가 어려울 정도로 일이 많았다. 모두가 그렇게 하고 있는데, 말도 안 된다는 얘기를 꺼낼 수가 없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만 ‘미친 사람’이 되니까.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전할 때마다 향미 씨의 입에서는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야근이 엄청 심했어요. 새벽에 들어오고, 아예 밤을 새우고 안 들어온 날도 있었고요. 퇴근해서도 업무 연락이 왔어요. 밤 12시에, 벌써 퇴근했냐고, 아침까지 확인하라고…. 이것도 해라, 저것도 해라, 하도 그러니까 ‘(나보고 회사를) 나가라는 건가?’ 그렇게 느낄 만큼 일을 많이 줬던 것 같아요.” 동생의 업무는 웹디자인. 기획이 생기면 디자인이 따라다녔다. 프로젝트가 없어지거나 기획이 바뀔 때마다 디자인도 함께 바뀌었고, 그 기획이라는 것도 수시로 바뀌었다.기획회의 때마다 디자인 시안을 ‘플랜A’부터 ‘플랜D’까지 만들었다. ‘까일(반려당할) 걸’ 알지만 아무렇게나 만들 수는 없었다. 밤을 새워 완성도를 높여 시안을 제출한다고 끝이 아니다. 그 과정은 본부장이나 대표의 마음에 들 때까지 계속됐다.동생은 통상적인 디자이너 업무만 한 게 아니었다. 웹기획부터 상품 디자인 프로젝트, 팀관리 업무까지 수행했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 자존감을 갉아먹는 일이 됐다. 업무시간이랄 게 따로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기획에 따라 ‘초치기’로 일이 생겼다 엎어졌고, 일은 ‘컨펌(confirm, 승인)’을 받아야 끝이 났다. ‘자율출퇴근’이라는 말은 그럴 듯 해 보이지만, 컨펌을 받지 못하면 퇴근할 수 없다. 상사가 원하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결과물은 몇 번이나 까이고, 디자이너는 질책을 받는다. 동생이 ‘이런 거’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했던 ‘무한 대기와 컨펌 까이기’는 장시간 노동을 넘어 끝이 없는 무한노동이었다. 일이 아니라 벌을 받는 것 같아 “너덜너덜해지는 기분”이었다. 밤새 일하고 무한정 컨펌을 기다리느라, 동생의 시간은 동생의 것이 아니었다. 미국의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은 그의 저서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에서 말했다. 노동시간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다는 것은 일상이 자기파괴적으로 변하고, 인간이 정신적으로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의미라고. 친구들과 주고받은 메시지에 동생은 “완전 죽을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했다. “회사 일 말고 뭘 할 수가 없어요. 일이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친구들도 이해를 잘 못했죠. 점점 고립되는 상황이었고, (일이) 자기 생활을 다 잠식해간다고 했어요. 집에 오면 방에 틀어박혀서 잠만 잤어요. 누구랑 말할 기운도 없어 보였어요.특히 월요일이 오는 걸 되게 불안해했어요. 일요일에는 저녁도 안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도 잠을 못 잤어요. 입사하고 살이 엄청 많이 빠졌는데, 점심시간에 밥 안 먹고 자리에 혼자 앉아 있었대요. 스트레스가 심했던 것 같아요.” 주말 역시 회사의 것이었다. 온라인 교육업체인 회사는 수강생들의 시험 일정이 있는 주말이면, 수험생에게 홍보물을 나눠주는 응원이벤트에 참여하도록 했다. 말은 ‘자발적’이라지만, 인사평가에 20%나 반영이 되는 ‘업무’였다. 야근하고 새벽에 들어온 날도 예외는 없었다. 그런 와중에 팀장은 업무와 상관없는 책을 읽어오라고 하고, 채식을 하는 동생에게 고기를 먹으라고 강요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요구를 했다. 동생이 상사에게 어떤 말들을 들어왔고 어떤 요구를 받았는지, 괴롭힘은 업무일지에도 잘 드러났다. 업무일지가 아니라 반성문에 가까웠다. “머릿속에 온통 브랜드 생각뿐입니다. 지치지 않고 제대로 된 아웃풋(성과)을 내겠습니다.”"엉망으로 작업을 진행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다시는 이런 결과가 없도록 더욱노력하겠습니다.”“오늘 또 한 번 배우고 부끄러운 하루였습니다. 앞으로는 하나라도 발전된 아웃풋을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동생은 성실한 사람이었다. 시키는 일을 다 했고, 무슨 일이든 허투루 하지 않았다. 누가 봐도 책임감이 강했고 스스로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 된다’고 말했다. 자신이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은 것도, 또 ‘아픈 사람’인 것도, 더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라고 했다. 상사의 지시에 동생은 늘 “넵넵. 알겠습니다.”로 답했고, 살인적인 업무량과 업무지시를 가장한 괴롭힘에도 “웃으면서 어떻게든” 일을 해왔다. 그러나 “아무리 야근을 해도” 일은 줄지 않았다. 쉬고 싶었다. 완치 진단을 받은 우울증이 도졌다. 공황장애까지 나타나 두 번이나 휴직 신청을 했지만 거절당했다. 2017년 9월, 이번에도 휴직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퇴사하겠다고 하자, 그제야 한 달간 쉴 수 있게 됐다. “소모품처럼 쓰이는 것” 같다던 동생은 휴직 내내 방에만 있었다. 이전 회사에서는 쉬는 날이면 여행을 다니고 전시회에 가는 걸 좋아하던 동생이었다. 휴직기간 동안 동생이 회사 때문에 못했던 걸 했으면 했는데, 동생은 아무것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향미 씨가 집에만 있는 동생을 데리고 ‘호캉스’(호텔+바캉스,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며 보내는 휴가)를 하루 다녀온 게 전부였다. 동생이 좋아하는 디자이너가 만든 호텔이었고, 동생은 오랜만에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다. 한 달을 쉬고 오자 일은 몇 배로 더 늘었다. 브랜딩 업무에, SNS에 올라가는 카드뉴스만 일주일에 서너 개. 상사는 ‘새롭게 발전하는 모습이 보고 싶다’며 카드뉴스를 매일 바꾸라고 요구했다. 팀에서 하는 업무들을 사실상 동생 혼자 맡아 했고, 몰아치는 업무에 동생은 “머리가 터질 것” 같다고 했다. 동료들은, 동생이 맡은 업무가 적어도 서너 명이 해야 할 분량의 일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우울증과 공황장애는 더 심해졌다. 시간이 없어 병원에 가기도 어려웠다. 예약하고도 제때 못 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동생은 병원에 가지 못했고, 폭음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가족들이 걱정할까, 동생은 집 앞 편의점에서 몰래 술을 마시고 들어오기도 했다. 술로 괴로움을 잊으려 했다는 걸, 폭음이 우울증의 한 증상이라는 걸, 과로 때문에 우울해질 수도 있다는 걸, 그리고 그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는 걸, 향미 씨는 그때는 알지 못했다고 했다. 겪어보지 않으면 누구라도 알지 못할 일이었다. 술로, 약으로 달래가며 일해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벌을 받는 것 같은 ‘무한노동’은 여전했고, 본부장에게 “이렇게 할 거면 왜 시간을 줘야 하냐?”는 말을 들어야 했다. 처음으로 괴로움을 호소하던 날, 동생은 그게 그렇게 억울했다며 울음을 터트렸다. 그게 동생 죽음의 ‘방아쇠’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던 향미 씨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본부장이 잠 좀 자라고, 그래야 맑은 정신으로 일하지 않겠냐고 했대요. 거기서 폭발한 거예요. 저는 마음에도 급소가 있는 것 같아요. 급소를 맞았다면 즉사할 수 있다고 봐요. 급소가 아니더라도 상처를 계속 입으면 과다출혈로 죽기도 하잖아요.동생이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자살하는 사람들도 죽는 거 두려워한다고. 그런데 그것보다 내일 아침이 오는 게 더 두렵기 때문에 죽는 거라고요. 저는 동생이 정말 죽을 생각은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그저 자기를 고통스럽게 하는 이 상황을 멈추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까.동생은 부모님이나 저를 정말 아끼고 사랑했고요, 우울증을 치료하려고 정말 노력했던 것도 저는 알거든요. 살고 싶은 의지가 더 강한 애였어요.” 동생은 세상을 떠났다. 출퇴근 기록이 찍힌 교통카드 내역을 언니의 이메일로 보내놓고서. 그것은 무엇이 동생을 죽음으로 내몰았는지 비밀의 문을 여는 열쇠이자, 꼭 진실을 밝혀달라는 동생의 간절한 부탁이었다. 언니의 긴 싸움이 시작됐다. ☞ 다음 이야기 <처벌하지 않는 살인… 이 죽음은 끝날 것 같지 않았다>으로 이어집니다.취재 정윤영 르포작가 freakss@naver.com사진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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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촌초 제보자 복직 꿈 커진다… 재단 ‘최종 패소’[이상한 학교의 회장님 11화]
“내가 교육청에 가서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선생님들 복직시킬 겁니다.” 이양기 전 우촌초(서울 성북구 돈암동 소재) 교감의 목소리에 여러 감정이 섞여 있었다. 기대와 의지, 그리고 여전한 경계심과 신중함. 해고된 우촌초 공익제보자들이 학교로 돌아갈 가능성이 열렸다. 지난달 28일 학교법인 일광학원 이사회 ‘임원취임승인취소’ 행정소송 2심이 선고됐다. 일광학원의 패소였다. 서울시교육청은 2020년 8월, 우촌초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일광학원 임원 모두의 취임 승인을 취소했다. 2006년 11월부터 2020년 1월까지 무려 13년 이상 이사회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광학원 이사회는 회의가 실제로 열리지 않았음에도 회의록을 허위 작성했고, 이사가 아닌 사람이 회의록에 대리 서명하는 방식으로 방만하게 운영돼왔다. 서울시교육청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이사회 임원의 선임도, 그들이 내린 결정도 전부 무효라고 봤다. 일광학원은 서울시교육청의 임원 취임승인 취소 결정에 불복해 즉시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이 싸움은 4년 넘게 이어졌다. 일광학원은 지난 10일 ‘상고 포기서’를 제출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2019년 우촌초 최은석 교장, 이양기 교감, 유현주, 박선유 등 6명의 교직원은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를 서울시교육청에 제보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74)이 스마트스쿨 사업의 예산을 약 24억 원으로 부풀리고, 미리 섭외한 업체가 입찰에서 선정되도록 사업에 부당 개입한 정황을 적발했다. 이 외에도 학교장 업무방해, 학교 예산 횡령 등 각종 비리가 밝혀졌다. 이규태 회장은 일광공영(현 아이지지와이코퍼레이션)을 설립한 ‘1세대’ 무기중개상이다. 그는 2015년 방산비리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이 회장은 우촌초 교직원에게 스마트스쿨 비리를 ‘옥중 지시’한 의혹을 받는다.(관련기사 : <“무릎 꿇고 빌게 될 것” 회장님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사실 이 회장은 학교에 어떤 일이든 지시할 권한이 없다. 이 회장은 우촌초 인수자이자, 우촌초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일광학원의 ‘전’ 이사장. 2015년 회계 부정으로 이미 임원취임 승인이 취소된 상태였다. 이후 일광학원 이사회는 이 회장의 지인으로 채워졌다. 스마트스쿨 비리 폭로 이후, 일광학원 이사회는 공익제보자들에게 ‘보복성 징계’를 내려 전원 해고했다. 학교에 돌아간 제보자는 이양기 전 교감이 유일하다. 나머지 공익제보자들은 5년째 복직을 기다리고 있다. 유일하게 복직한 이양기(58) 전 교감의 복직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일광학원에서 해임된 후, 국민권익위원회는 신분보장조치 결정을 내렸다. 그러자 일광학원은 ‘면직’ 카드를 꺼냈다. 다시 교원소청위원회에서 면직 취소 결정을 내렸으나, 일광학원은 행정소송으로 맞섰다. 2022년 6월 이양기 전 교감이 대법원 승소 판결을 받기까지, 2년 8개월이 걸렸다. 복직한 뒤에도 괴롭힘은 계속됐다. 학교 측은 과학전담교사를 맡은 이 전 교감에게 교무실 책상을 주지 않았다. 과학실에서 다른 교사가 수업을 하거나 방과후교실로 쓰이는 시간이 되면, 그는 늘 혼자 운동장을 돌았다. 누군가 그를 감시하고, “이양기 과학교사의 동향 추가 보고”라는 제목의 문서를 만들기도 했다.(관련기사 : <2년 반 만에 복직한 학교… 그 교사의 책상은 없었다>) “교무실에 책상을 마련해달라고 했더니, 자리가 없어서 안 된다는 거죠. 학교 입장에서는 최대한 다른 선생님들하고 접촉을 줄여야 하고, 제가 오가는 게 보이면 불편하기도 하니까, 그냥 (과학실이 있는) 별관에만 머물도록 근무 공간도 정해준 거죠.” 이 전 교감은 복직 이후 겪은 스트레스 때문에 수면장애가 생겼다. 설상가상 대상포진까지 발병했다. 결국 지난해 10월부터 두 달간 병가를 냈다. 지난 1월 병가를 마치고 복귀한 이 전 교감에게 학교 측은 징계 통지서를 내밀었다. 2023년 7월 작성된 ‘경고장’을 6개월이나 지나 통지한 것. 그는 ‘뒤늦은’ 징계 통지서를 근거로 사학수당 지급에서 제외됐다. 최은석 전 우촌초 교장(55)은 지난해부터 기간제 교사 일을 시작했다. 가족들은 서울에 남겨두고 일자리를 찾아 광주로 떠났다. 최근 경기 부천시로 학교를 다시 옮겼다. 최 전 교장은 교장직을 맡을 때부터 언젠가 평교사로 돌아갈 생각을 했지만 ‘이런 방식’이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행정실장 직무대리였던 유현주 씨(46)의 상황도 녹록지 않았다. 징계를 받아 ‘해임’된 유 씨는 다른 학교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이 회장이) 학교에 찾아와서, (공익제보는) 없었던 걸로 넘어가 줄 테니까 (스마트스쿨 사업) 하라고 해서, 제가 안 하겠다고 했어요. 그때부터 저를 해고하고 학교 못 나오게 하고, 그다음부터 고소・고발을 하고….” 공익제보 이후, 이 회장과 일광학원은 유 씨에게 10건 이상의 보복성 고소・고발과 소송을 퍼부었다. 유 씨는 경찰서로, 검찰청으로, 법원으로 정신없이 불려다녀야 했다.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 어려울 정도. 유 씨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 5년째 정신과 약을 복용 중이다. “제 40대 인생은 이 회장과 싸우면서 의미 없이 없어져버리는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 와서 포기할 수도 없고. 무조건 싸워야 하고, 무조건 직진인데, 정말 살 수 있게, 이기고 싶어요.” 심지어 유 씨는 집을 빼앗길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2021년 일광학원은 유 씨가 허위 공익신고를 했다며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고, 유 씨의 집에 대해 가압류를 신청했다. 소송은 약 3년 만에 유 씨의 승소로 끝났다. 조만간 가압류 취소 신청서를 접수해 집 소유권을 되찾을 예정이다. 유 씨는 얼마 전 식당 서빙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고소・고발 사건이 대부분 혐의 없음 또는 불기소 처분을 받으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하지만 아직도 2건의 재판이 진행 중이다. 행정실에서 함께 근무했던 박선유 씨(46)도 보복성 징계 탓에 다른 학교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처지다. 수사기관에 불려 다니고,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할 일이 많아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기 어려웠다. 박 씨는 지난해 8월부터 택배 물류센터와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박 씨는 올해 초 업무상 배임・횡령 혐의로 일광학원에 고소당했다. 학교에 7200만 원의 손해를 끼쳤다는 내용이었다. 경찰은 지난 6월 불송치 결정했으나, 일광학원은 다시 이의신청을 했다. 결국 지난달 검찰의 불기소처분으로 사건은 마무리됐다. 4년 만에 일광학원 측의 패소로 끝난 임원취임승인취소 행정소송. 서울시교육청은 일광학원 이사회 전체에 대한 임시이사 파견을 검토 중이다. 사학분쟁조정위원회를 열고 임시이사 선임을 결정하기까지 한두 달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임시이사들은 2~4년간 학교법인 이사회를 운영하며 학교 정상화를 추진하게 된다. 임시이사가 파견되면 공익제보자들이 복직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기존 이사회 임원 전원의 승인이 취소되면서 그들이 내린 결정도 없던 일이 됐다. 공익제보자들이 받은 보복성 징계 역시 무효화될 가능성이 크다. 공익제보자들은 행정소송 판결 소식에 ‘축배’를 들었다. 지난 4일 최은석, 이양기, 박선유 제보자를 만났다. 한층 밝아진 표정이었다. 하지만 복직에 대한 기대를 애써 감추려는 것처럼, 분위기는 비교적 차분했다. “신랑이 언제 복직하냐고 묻는 거예요. 내년 3월 신학기까지 복직 못하면 저도 학교로 돌아갈 마음은 접으려고요.” 기대가 크면 그만큼 실망도 크기 때문일까. 박선유 씨는 언제 복직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 지쳐 있었다. “앞으로 임시이사 선임이 정말 중요합니다. 복직 절차도 계속 알아보고 있어요. 하루빨리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왔으면 합니다.” 이양기 전 교감은 공익제보자들 복직에 마지막 힘을 쏟겠다고 다짐했다. 아직 복직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법인 정상화 절차를 잘 지켜봐야 한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두 가지. 이규태 회장을 포함한 12명은 스마트스쿨 비리 혐의로 2021년 12월 기소됐다. 1심 재판만 약 2년 9개월째 진행 중이다. 누구에게 어떤 잘못이 있는지 낱낱이 밝혀지고, 그에 합당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남은 하나는 공익제보자들이 학교로 돌아가는 일. 5년 동안 공익제보자들은 그날만을 기다렸다. 이양기 전 교감은 동료들의 복직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언젠가 좋은 시절이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셜록은 지난 1월 이 회장과 일광학원 측 반론을 듣기 위해 우편∙전화∙문자 메시지∙방문 등 23차례나 접촉했지만 아무 답변도 받지 못했다. 이 회장은 내내 무대응으로 일관하다가, 보도가 시작되니 지난 4월 기자를 고소했다. 사유는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등’이다. 고소 사건은 지난달 ‘불송치(혐의없음)’결정으로 마무리됐다.(관련기사 : <이규태 회장은 셜록의 입을 막지 못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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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 녹아 사라진 ‘반도체 소년’… 회사는 “술 때문에” [열아홉, 간이 녹았다 2화]
지난 5월 김선우(가명, 23) 씨는 한 통의 우편을 받았다. 발신자는 근로복지공단 경인지역본부. 앞서 제출한 ‘요양급여신청서’에 대한 회신이었다. 약 20개월 만에 돌아온 대답은 ‘불승인’이었다. 고등학생 때 반도체 공장에 취업하고, 1년 만에 간이 다 녹아버려 이식 수술을 받은 청년. 선우 씨의 기막힌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남들처럼 대학을 가고 싶지는 않았어요. 차라리 돈을 빨리 벌고 싶었어요.” 선우 씨는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고심했다. 통학 거리, 학업 분위기, 대학 진학률은 등은 고민거리가 아니었다. 그가 염두에 둔 건 오직 하나. ‘취업률’이었다. 빨리 돈을 벌어서 가계에 보탬이 되고 싶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마이스터고등학교였다. 정식 명칭은 ‘산업수요 맞춤형 고등학교’로, 직업훈련을 통한 전문기술인 양성을 목표로 한다. 마이스터(Meister)는 ‘장인’이란 뜻. 학교에서 ‘장인’을 육성해 고졸 채용을 확대하겠다는 취지다.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마이스터고는 높은 취업률을 자랑했다. 선우 씨가 입학하기 직전인 2017년에는 졸업자 119명 중 109명이 취업했다. 취업률 91.6%. 돈을 빨리 벌고 싶었던 선우 씨에게는 매력적인 수치였다. 그는 ‘고졸 장인’의 길을 택했다.그는 바람대로 경제활동을 일찍이 시작했다. 전교생 중 가장 먼저 회사로 출근한 ‘1호 취업생’. 그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해 10월에 반도체 후공정 업체 ‘스태츠칩팩코리아’에 입사했다.임직원만 3038명(잡코리아 2023년 12월 기준)에 달하는 대기업. NICE평가정보가 제공하는 기업신용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기타 반도체소자 제조업’ 분야 매출로 우리나라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큰 회사였다.선우 씨는 1년 계약직으로 들어갔다. 4일간 교육을 받았다. 고가의 장비를 조심히 다뤄야 한다는 주의도 빼놓지 않았다.근무 형태는 새벽, 주간, 야간 4조 3교대. 6일 근무하고 이틀 쉬는 식이었다. 6일 중 하루 이상 연장근무는 필수였다. 그런 날은 작업장에 11시간 30분이나 머물렀다. 식사시간은 50분. 구내식당에서 빠르게 끼니를 때우고 라인으로 돌아오기도 빠듯했다. 이후에는 연장근무 전 30분 휴식을 취하는 게 전부였다.근로시간은 주 51시간 30분.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한도인 ‘주 52시간’를 넘지 않게끔 맞춰진 시간이다. 24시간 가동되는 공장에 사람의 생체리듬을 맞춰 일했다. 연장근무를 하는 날이면 집에 돌아와 씻지도 못하고 뻗기 일쑤였다. 선우 씨가 맡은 건 칩 어태치(Chip Attach) 공정. 반도체칩에 전자기판을 연결하고 부착하는 등의 일이다. 이때 다량의 화학물질을 다루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솔더 페이스트(solder paste)였다. 여기에는 간독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구리, 주석, 은 등이 포함된다. 그 때문에 작업장에는 늘 퀴퀴한 냄새와 타는 냄새, 아세톤 냄새로 가득했다. 선우 씨는 방진복과 얇은 덴탈마스크, 천코팅 장갑, 비닐장갑을 착용했다. 마스크는 입 모양이 다 보일 정도로 얇아 냄새를 막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심지어 방진복이 화학물질로 오염되면 집에 가져가 세탁하는 것도 개인의 몫이었다. “블레이드라는 날카로운 날에 용액을 바르고 세척하는 작업을 해야 되거든요. 그런데 회사에서 주는 게 천장갑, 비닐장갑이니까 비닐 찢기고 (용액에) 손도 젖고 했죠.” 화학물질 가득한 작업장과 불규칙한 노동시간. 선우 씨는 취업한 지 약 1년 2개월 만에 몸이 망가졌다. 간이 완전히 녹아내렸다. 의료진마저 선우 씨가 살 수 있을 거라 장담하지 못했다. 가족들은 선우 씨와 ‘마지막 인사’까지 나눴다. 다행히 선우 씨는 2022년 1월 간 이식 수술을 받았고,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의 나이는 만 열아홉 살이었다. (관련기사: <반도체 공장 취업한 고교생, 1년 만에 간이 녹았다>)당시 병원은 급성간염을 동반한 독성간질환, 상세 불명의 무형성빈혈, 무과립구증을 진단했다. 적출된 간은 광범위한 출혈성 괴사 상태로, “완전히 녹아내려 형체가 없었다”. 손상 원인을 파악할 수조차 없는 수준.생사의 고비를 넘기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선우 씨는 회사 복귀 또는 퇴사라는 극단적인 갈림길 앞에 섰다. 몸이 좋지 않았던 선우 씨는 회사로 돌아갈 수 없었다. 스태츠칩팩코리아는 기자에게 “사직을 권고한 바 없다”고 해명했으나, 선우 씨 아버지가 기억하는 당시 상황은 달랐다.선우 씨가 죽음의 문턱에서 ‘병원 뺑뺑이’를 도는 동안 아버지는 회사에 병가 휴직을 신청했다. 사측으로부터 “6개월간 병가 휴직을 인정해주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기억했다. 덕분에 선우 씨는 2022년 1월 1일부터 병가 상태로 치료를 받았다. 그로부터 약 4개월이 지난 그해 5월, “회사로 복귀하라”는 통보를 들었다.당시 선우 씨는 상처 부위가 제대로 아물지 않아 재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버지는 회사에 의사 소견서 등을 보냈으나, “다른 방법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버지는 “회사가 무단결근 누적을 이유로 퇴사 처리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산재를 신청하면서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무단결근에서 병가로 기록을 정정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완치라는 건 없고, 평생 면역억제제 먹으면서 살아야 돼요. 심지어 앞으로 재이식(수술)이 한 번이 될지, 두 번, 세 번이 될지 모르는 상황이니까 계속 걱정이 되죠. 경제활동도 차차 해야 되는데….”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격이었다. 2023년 12월 28일 선우 씨에게 정말 고비가 찾아왔다. 몸이 이식받은 간을 거부하며 공격하고 있다는 것. 선우 씨의 면역체계는, 이식받은 ‘타인의 간’을 외부에서 들어온 위험요소로 인식하고 공격했다. 면역억제제를 사용해 공격 정도를 낮추면 간 수치가 나빠졌다.간 이식 수술을 받은 지 3년도 채 안 된 시점이었다. 재이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위기가 닥칠 거라곤 생각 못했다.선우 씨는 평생 3년마다 간을 새로 이식받으며 살아야 할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혼란스러워했다. 다행히 한 달간 입원 끝에 적절한 약물 배합을 찾아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불안은 늘 곁을 맴돌았다.지난 3년간 든 약값과 치료비만 2억 원.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돈이 들지는 미지수다. 선우 씨가 언제 다시 직장을 구할 수 있을지, 그 또한 불투명하다.선우 씨는 2022년 9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신청서’를 제출했다. 약값 부담이라도 덜자는 심산이었다. 이때 근로계약서, 급여명세서, 출근부 등 기초적인 자료와 작업환경과 유해요인 관련자료 등을 회사에 요청했다. 하지만 사측은 모두 제공을 거부했다. 공단을 통해 받으라는 답변.‘녹아버린 간’도 문제였다. 어떤 요인이 간에 치명적으로 작용했는지 의학적으로 더 따져볼 길이 사라진 셈이었다.선우 씨는 자기 자신이 어떤 화학물질을 다루는지도 잘 알지 못했다. 그가 사업장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정보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발간하는 반도체 작업환경 연구보고서 등과, 자신이 직접 몸으로 겪은 ‘경험’뿐이었다. 유해인자에 노출되는 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특수건강진단’을 받는다. 선우 씨도 2021년 4월 특수건강진단을 받았다.특수건강진단표에 기재된 취급물질로는 간 독성 및 손상을 유발하는 주석, 구리, 이소프로필알콜(IPA) 등 화학물질이 적혀 있었다. 여기에 “급성 간염을 동반한 독성 간 질환은 작업장에서 노출된 미상의 세척 용제에 의한 가능성이 높다”는 주치의 평가 소견서를 덧붙였다. “제가 사용하던 용액에 ‘신체에 접촉하지 마세요’가 적혀 있었어요. 근데 회사는 인체에 무해하다고 주장하니까….” 선우 씨와 주치의는 그의 간 손상 원인이 ‘일 때문’이라 의심했지만, 회사는 다른 것을 의심했다. 바로 ‘술’이었다. 회사는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공식’ 의견서에 이렇게 적었다. “김선우 씨의 음주 습관으로 인한 상병이 아닌지 합리적인 의심이 가능한 상황입니다.” 회사는 선우 씨의 특수건강진단 결과 ‘절주 또는 금주가 필요하다’는 의사 소견이 있었음을 근거로 들었다. 건강했던 20대 청년이 불과 1년 만에 간이 다 녹아버릴 정도가 되려면 술을 얼마나 많이 마셔야 할까. 선우 씨의 특수건강진단표에는 ‘일주일 1잔, 하루 4잔’이라고 적혀 있다. 당시 선우 씨는 빈혈 수치, 간장질환 수치 등은 모두 정상이었다. 발병 이후 초진 기록에도, 선우 씨의 음주 습관은 ‘주 1회 소주 1~2병’이라고 적혀 있다. “제가 산재 (신청) 준비하면서 대학병원에 상담을 받았어요. 교수님이 말씀하시기를 20대 초반이 술을 아무리 들이부어도 간이 이 정도로 상하지 않는다고. 외부 (원인의) 개입이 있는 게 아닌 이상 절대 (이렇게까지) 상하지 않는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니까 회사가 하는 말이 너무 황당한 거예요.” 회사 관계자들은 선우 씨와 엄마 하영 씨 눈앞에서도 ‘술 때문’이란 주장을 입에 올렸다. 지난해 11월 직업환경연구원이 현장조사를 나갔을 때, 그때도 회사 관계자들로부터 “술을 많이 마셔서 아픈 거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 선우 씨 가슴속의 상처를 후비는 말이었다. 그날 선우 씨는 연구원 2명과 회사 관계자들과 함께 작업장에 들어갔다. 하영 씨는 ‘영업상 기밀 보안’을 이유로 공장 내부에 들어갈 수 없었다. 선우 씨는 분위기에 압도됐다. 연구원들은 회사 관계자들에게만 질문할 뿐, 선우 씨에게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선우 씨에게 그날은 마치 “회사의 변명을 듣기 위한 자리”인 것 같았다. “회사 관계자가 ‘용액이 손에 직접 닿을 일이 없다’고 말하면, 연구원이 ‘그렇군요’ 하고 넘어가는 식이에요. 제가 직접 겪은 건데, 저한테는 물어보지도 않고요. 실제로는 비닐장갑이 찢어지면 손에 직접 닿아서 젖고 하거든요. 그때 느꼈어요. (이 조사는) 내 말을 들으려고 온 게 아니고, 그냥 업무 하나를 처리하러 온 거구나.” 선우 씨는 그날 직감했다. ‘산재 승인이 안 되겠구나.’ 선우 씨는 그 뒤에 직업환경연구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현장 조사에서 하지 못한 말들을 적었다.산재 신청 이후 약 1년 8개월의 기다림 끝에 결과가 나왔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5월 ‘불승인’을 통보했다.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우선 “급성 간염을 동반한 독성 간질환은 확인되고, 개인적인 발병요인도 확인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하지만 위원 7인 중 6인은 “독성 간염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물질의 노출이 없어 업무 관련성은 낮다”고 봤고, 1인은 “작업 중 간독성 물질이 일부 있으나, 독성이나 노출량을 고려할 때 상병을 유발할 수준은 아니다”라고 판단해 전원 불승인 결정을 내렸다. “소송으로 (산재 승인을) 다투려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회사가 아니면 다른 원인이 없잖아요.” 선우 씨는 지난 8월 산재 불승인 결과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에 몇 년이 걸릴지, 어떤 판결이 나올지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다. 다만, 소송이 진행되는 그 긴 시간 동안 선우 씨와 가족들이 더 지치고 힘들어질 거란 사실만은 분명하다.하지만 그 불확실한 미래에 한 번 더 희망을 걸었다. 열아홉 나이에 녹아버린 간. 그의 간을 사라지게 한 원인을 찾는 일도, 그의 남은 인생도 아직은 포기할 수 없기에.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스태츠칩팩코리아의 반론을 듣고자 지난달 19일부터 약 30차례 전화 연결을 시도했다. 지난달 30일 기자는 인사팀 관계자, 안전팀 관계자, 임원급 관계자와 번갈아 소통했다. 이들은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 판단에 이견이 없다”, “절차에 따랐고 오히려 선우 씨를 도우려고 했다”고 입장을 밝혔다.덧붙여 “(셜록 보도로 인해) 회사에 피해가 발생하면 법적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그리고 지난 2일 안전팀 관계자는 기자에게 메시지를 보내 “(김선우 씨에게) 사직을 권고한 사실이 없음을 확인했다”며, “회사는 ‘김선우 씨에게 헌혈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사내에 공지해 도움을 줬다”고 강조했다.산재에 관한 사측의 의견은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문건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스태츠칩팩코리아는 보험가입자의견서에 “해당 작업은 회사 창립 후 수십 년간 이어온 공정이며 그동안 동일 상병 혹은 유사 상병이 발생된 적 없다”고 주장했다.이어 “김선우 씨의 음주 습관으로 인한 상병이 아닌지 합리적 의심이 가능한 상황”이며, 작업환경측정결과와 역학조사 결과 기록을 보면 유해인자에 대해 “불검출 또는 검출한계 미만”임이 확인된다고 밝혔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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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A 초등학교, 97.4%의 다문화 학생
목차 들어가며 이주배경아동 이주배경아동? 다문화아동 아니야? 어떤 아이들이 이주배경아동이야? 불가피한 이주 확대 한국의 인구 공백을 메우는 이주민 이주배경학생의 증가와 다원화 이주민다방문지역 소재 학교 증가 적극적인 정부 대응의 필요성 유럽의 국가적 문제 : 이민 2세대·3세대의 불평등 호소 한국 정부 : 임시방편의 이민 정책 마치며 :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다문화 존중 방법 들어가며 작년 여름, 물과 불, 마치 F와 T 커플의 사랑을 보여줬던 영화 <엘리멘탈>이 한국에서 큰 흥행을 이끌었습니다. 영화의 피터 손 감독님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온 이민 2세대였는데요. “어릴 적 나는 나의 부모가 이민자라는 것을 몰랐다. 너무 순진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다른 문화권에서 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서 우리 가족이 아웃사이더라는 것을 알았다.” - 씨네 21 인터뷰, 피터 손 이민자로 살아가며 느꼈던 다양성과 공존의 가치를 담은 영화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저 또한 한국에서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학교에 한 명씩은 꼭 이주배경학생을 만날 수 있었는데요. 다문화사회로 점차 접어들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이주배경아동·청소년들이 한국에서 어떤 경험을 쌓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이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이에 오늘은 정부가 이주민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이주배경아동·청소년의 현황은 어떤지, 한국은 어떤 미래를 마주하고 있는지에 대한 제 고민을 담아보았습니다. 1. 이주배경아동 1) 이주배경아동? 다문화아동 아니야? ‘이주배경’이라는 단어가 익숙하신가요? 익숙지 않은 분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당연합니다. ‘이주배경’이라는 단어는 이전부터 곳곳에서 쓰였지만, 교육부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겠다고 밝힌 건 2023년 10월이었거든요. 교육부는 2024년부터 다문화라는 명칭 대신 이주배경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다만 현장에서의 혼란이 있을 수 있어 여전히 ‘이주배경’과 ‘다문화’라는 용어를 병용하고 있습니다. 단어 ‘다문화’를 더 깊이 생각해 봅시다. 다문화(多文化)는 “한 사회 안에 여러 민족이나 여러 국가의 문화가 혼재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국가나 사회를 지칭할 때, 다문화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에게 ‘다문화’라는 특징을 부여하는 것은 부정확해 보이기도 하네요. 그 사람이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보긴 어려우니까요. ‘다문화 가정’이라는 말에는 “우리와 다른 민족·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가정”이라는 뜻이 담겨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우리와 다른’인데요. 다문화 가정이라고 이름 붙임으로써 타자성을 강조하게 되는 것이지요.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에서도 이주를 하나의 특성으로 간주하며 ‘children in the context of international migra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2) 어떤 아이들이 이주배경 아이들일까?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에 따르면 이주배경청소년이란 “부모 혹은 본인이 이주의 경험을 지닌 9세에서 24세 이하의 연령에 속한 사람”을 뜻합니다. 결국 ‘이주배경’ 아동 혹은 청소년들은 이주의 경험을 1번 이상 겪은 아동 혹은 청소년인 것입니다. ‘이주의 경험’이 있다는 1개의 특징으로 범주화한 것이기에, 이주배경학생이 “-한 학생”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이주를 언제 왔는지, 어디에서 이주를 왔는지, 부모님도 이주의 경험이 있는지, 이주를 온 장소가 어딘지 … 등등. ‘어떤’ 이주의 경험이 있는지에 따라, 겪고 있는 상황과 필요한 지원도 다르겠지요. 그 때문에 많은 집단에서는 대 개국적과 자녀의 출생 국가에 따라 이주배경청소년을 세분화하기도 합니다. 이주배경청소년을 이주배경청소년을 지원하는 무지개청소년센터,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에서는 국제결혼가정자녀(다문화청소년, 중도입국청소년), 외국인가정자녀(무국적자, 난민 포함), 북한이탈배경청소년(남한출생, 제3국출생 포함) 등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류마저도 부처마다 천차만별인데요. 그야말로 ‘다양한 이주의 경험’이기 때문에 사실상 분류가 무의미하기도 합니다. 예를 한 번 들어볼까요? 결혼이민지와 한국인 사이에 자녀가 태어난 상황을 생각해 봅시다. 자녀는 결혼이민자 본국에서 성장합니다. 이후 부모는 서로 이혼하게 되고, 결혼이민자는 다시 한국인과 재혼하게 되어 자녀가 한국으로 입국하게 됩니다.  이때 자녀가 겪을 수 있는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로 중도입국했기에 한국어능력이 부족합니다. 두 번째로 한국의 학교 시스템의 어려움을 겪습니다. 공교육에 진입하는 과정도 어려울 수 있죠. 세 번째로 새로운 가족에 적응이 어렵습니다. 네 번째로 한국문화 자체도 낯설어 정체성 혼란이 일어나거나 많은 스트레스가 발생합니다. 결국 국제결혼가정 자녀이지만 중도입국자녀로서 살아가는 위 상황에서는 다층적인 어려움이 혼재됩니다. 2. 불가피한 이주 확대 1) 한국의 인구 공백을 메우는 이주민 최근 핫한 예능 <언니네 산지직송>에서 제 눈에 훅! 들어온 장면이 있었는데요. 바로 어업에 종사하고 있는 이주노동자입니다. 농업이나 어업에서 농장주나 선장은 한국인이지만, 그 외의 사람들이 대부분 이주노동자로 구성된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오히려 한국인들로만 구성된 일자리를 보는 게 더 드문 일인 것이죠. 1차 산업에서의 노동 인구 고령화와 노동 기피 현상으로 인해, 이미 오래 전부터, 농촌과 어촌의 일자리가 부족한 상태입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10년 전부터 이미 이주노동자 고용제도를 실시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계절근로자 제도’는 파종기, 수확기 등 계절성이 있어 단기간·집중적으로 일손이 필요한 농어업 분야에서 합법적으로 외국인을 고용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장호원에서 복숭아 농사를 짓고 있는 제 삼촌께서도 계절근로자 제도를 이용하여 이주노동자 1명을 고용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이주노동자 고용제도는 ‘고용허가제’입니다. 인력을 구하지 못한 300인 미만의 제조업 등의 한국기업에 외국인근로자를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제도입니다. 계절근로자 제도는 최대 8개월 근무할 수 있지만, 고용허가제의 경우 재고용까지 한다면 4년 10개월간 근무할 수 있습니다. 최근 정부는 2024년 이주노동자 고용 허가 규모를 16만 5천 명까지 늘리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2023년보다 37.5% 늘어난 규모인데요. 일자리의 빈 곳이 많으며 현장에서의 수요가 많아짐에 따라 내린 결론임을 설명했습니다. 지방의 인구 소멸 또한 이주민들을 해결책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법무부는 지난 2022년 10월부터 ‘지역특화형 비자’를 신설하였는데요. 이는 지방의 인구 감소 지역 거주와 취업을 조건으로 외국인에게 비자를 발급해 주는 것입니다. 배우자 및 미성년자녀와 함께 들어와 살 수 있지만, 2년 동안 거주지가 제한됩니다. 2년 이후에는 이주가 가능하지만, 동일 광역자치단체의 인구 감소 지역으로만 이주가 가능합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정부가 노동력 부족 문제와 지방 인구 소멸 문제를 ‘이주민’을 통해 해결하고자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는 이주민이 ‘중요’한 것에서 더 나아가 ‘필요’한 것이죠. 한국에서 이주민들의 확대는 불가피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대책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2) 이주배경학생의 증가와 다원화 2024년 1월 기준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244만 명이 넘습니다. 이주민들의 증가는 이주배경학생의 증가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최근 10년간 이주배경학생 수는 매년 1만 명 이상 증가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육부에 따르면 이주배경학생 수는 2019년 13만 7천 명에서 점차 증가하여 2023년 18만 1천 명을 초과했습니다. 전체 학생 수는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2023년 521만 명에 달했는데요. 때문에 2023년 기준 전체 학생 대비 이주배경학생의 비율은 3.47%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위 그래프는 유형별 다문화학생의 비율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최근 두드러지는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로 전체 이주배경학생 중 국내 출생 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이 감소하였습니다. 2018년 기준 국내 출생 이주배경학생은 82.1%이지만, 2018년을 기점으로 80% 이하로 감소하였고 2023년에는 71.7%까지 하락했습니다.  두 번째는 외국인가정 이주배경학생의 비율 증가입니다. 중도입국 이주배경학생은 2013년 8.8%에서 2023년 6.0%로 적은 감소를 했지만, 외국인가정 이주배경학생은 2013년 9.0%에서 2023년엔 그의 두 배가 훌쩍 넘는 22.3%까지 상승하였습니다. 위의 그래프에서도 볼 수 있듯이, 국내출생 이주배경학생들이 여전히 높은 비율을 갖고 있지만 10년 전에 비해 다원화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3) 이주민다방문지역 소재 학교 증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밀집’이라는 말이 이주민/외국인과 함께 쓰일 경우, 혐오를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한 바 있습니다. 이에 필자는 ‘이주민 다방문 지역’으로 표기합니다. 다만 통계자료 이용 시에는 해당 통계에서 사용된 명칭을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서울에서도 대림동은 H-2 비자, 다시 말해 동포 비자를 받은 이주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경기도에서도 평택과 같은 곳은 제조업 회사가 많은 곳으로,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합니다.  이처럼 이주노동자들은 제조업이 밀집해 있는 곳에 있게 되고, 계절 근로자는 농어업이 발달한 곳에 거주합니다. 결혼이민자들의 경우에도 대다수 청년 인구가 부족한 지역에 거주합니다. 또 정부에서는 지역특화형 비자를 부여하여 특정 인구 소멸 지역에 이주민이 거주하도록 하고 있죠. 이와 같은 상황에 더해, 같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이주민 밀집 지역은 총 57곳으로 시 25개(43.9%), 군 18개(31.6%), 구 14개(24.6%)입니다. 이는 전체 시·군·구의 약 25.7%에 해당하며, 최초 조사 시점(2006년) 대비 약 2,850% 증가하였습니다. 교육부에서는 ‘전교생 100명 이상, 이주배경학생 재학 비율이 30% 이상’인 경우를 밀집학교로 분류하고 있는데, 2018년~2023년 사이 전체 학교 수가 1.57% 증가한 데 비해 이주배경학생 밀집학교의 수는 278.26%로 높은 증가율을 나타냈습니다. 하지만 이주민다방문지역의 학교는 이주배경학생들을 위한 교육이 마련되지 않고 있는데요. 중도입국 이주배경청소년이 증가하고 있지만, ‘’어학 능력 부족’, ‘한국어  교육 능력 부족’, ‘다문화교육 설계의 어려움’ 등 교사의 다문화교육 역량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이주배경학생의 낙인효과나 차별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이주배경학생 중심 교육으로 인한 비이주배경학생 역차별이 있기도 합니다. 이주배경학부모를 위한 교육 지원 역시 필요하나, 실제 지원은 되고 있지 않습니다. 특히 이주배경학생의 비율이 높은 지방의 경우, 지역 사회에서의 교육 연계가 더더욱이 부족한 현실입니다. 3. 적극적인 정부 대응의 필요성 1) 유럽의 국가적 문제 : 이민 2세대·3세대의 불평등 호소 한국보다 먼저, 이주민들과의 공존하고자 했던 나라들이 있습니다. 프랑스는 19세기 후반부터 많은 이주민이 유입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프랑스 산업화에 따라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그 자리를 많은 이주민들이 메꾸게 됩니다.  독일도 마찬가지인데요. 한국에서 독일로 광부나 간호사로 파견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1950년대 후반부터 많은 노동자가 유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영국 또한 제2차세계대전 이후 그들의 옛 식민지에서 적극적으로 노동자를 끌어들였지요. 그리고 시간이 훌쩍 흘러, 이주민들은 그 나라들에 터를 잡고, 자녀가 태어나고, 또다시 그들의 자녀가 태어납니다. 2023년 7월, 작년 이맘때쯤 프랑스 전역에서 격렬한 시위가 이어졌습니다. 이 시위는 알제리계 이민자 소년 ‘나엘’이 경찰에 의해 사망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교통 검문을 받던 나엘이 차를 탄 채로 출발하려 하자, 경찰은 나엘을 향해 총을 쐈고 결국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경찰은 나엘이 경찰을 향해 차를 몰았다고 주장했지만, 현장 영상이 퍼지자, 과잉 진압으로 사망함이 드러났죠. 사람들은 이것이 단순히 과잉 진압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합니다. 프랑스의 이민자 차별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프랑스는 19세기 후반부터 적극적으로 이민자를 유입합니다. 유엔에 따르면 2020년 프랑스 전체 인구의 13%가 이민자들인데요. 혹자는 프랑스의 성장에 이민자들이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합니다. 이민자들의 값싼 노동력과 이민 가정의 높은 출생률, 이민자 출신 문화계 인재들 등. 부족한 일자리와 인구 감소 문제에 해결책으로서의 역할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나엘’의 사망 사건처럼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특히 경제적인 차별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요. 실제로 이민자 청년들의 평균 실업률은 프랑스 전체 평균 실업률에 비해 두 배가 넘었으며, 사회적인 차별과 학업 실패 등으로 부모 세대의 가난을 대물림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민자가 프랑스 문화에 통합되어야 한다’는 프랑스의 이민 원칙은, 선주민과 이주민 사이의 충돌을 만들었습니다. 이주민이라는 정체성이 있는 1세대와는 달리, 이민 2세대와 3세대들은 그곳에서 나고 자란 ‘국민’이라는 의식이 강합니다. 프랑스에서 태어났고 프랑스에서 학교를 다녔으며, 주변 친구들이 모두 프랑스인이며 프랑스어를 쓰는 2세대와 3세대들은, 부모세대부터 이어져 온 차별에 반발합니다. 이들의 불만은 점차 유럽의 사회 문제로 자리 잡았고, 많은 국가가 이주민과 선주민의 대립을 줄이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2) 한국 정부, 임시방편의 이민 정책 지역특화형 비자 혹은 외국인 고용허가 제도를 살펴본다면, 정부는 이주민을 ‘노동력 대체제’ 혹은 ‘인구소멸 방지 대책’으로 도구화하여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부는 2023년에 발표한 ‘제4차 외국인정책 기본계획’에서 ‘국민과 이민자가 함께 도약하는 미래지향적 글로벌 선도국가’를 비전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통합]과 [인권]의 정책은 과거에 비해 후순위로 밀렸지만 [경제]의 정책은 이번 정부에 급부상했습니다. 국익에 도움이 되는 이민자와 우리 경제에 필요한 이민자 유치와 육성이 그에 해당하는 내용인데요. 한국이 당착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이주민을 바라본다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문제가 파생될 수 있습니다. 정부가 제시한 대부분의 정책들에서도 ‘우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체류기간을 늘려준다’ 혹은 ‘우리가 필요하기에 정주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식의 접근을 볼 수 있습니다. [경제] 분야에만 집중한다면 이주배경청소년 혹은 결혼이민자와 같은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기 어려운 이주민들의 상황이 악화할 수 있습니다. ‘제 7차 청소년정책 기본계획’에도 이주배경청소년에 대한 부분은 극히 일부분이며, 다문화와 관련된 교사 연수 참여 실적도 저조한 상황이죠. 현재 다문화가정 자녀의 대학 이상 취학률은 40.5%로 한국 전체 평균인 71.5%에 비해 월등히 낮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 우리는 유럽의 선례들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2021년 전국 다문화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다문화가구 자녀의 평균 연령은 10.7세입니다. 이는 아직 한국에서 유럽의 사례 같은 이민 2세대와의 갈등이 가시화되지 않은 시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선 자료에서도 알 수 있듯이, 중도입국 이주배경학생이 많아지고 청소년기 자녀 수가 크게 증가하였으므로, 한국에서도 이주민들의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마치며 :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다문화 존중 방법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다문화 교육 방법은 무엇인가요? “한국에서는 젓가락과 숟가락을 사용하지만, 미국에서는 포크와 숟가락을 사용한다. 한국에서는 한복을 입지만, 일본에서는 기모노를 입는다.” 이것은 다문화 교육이 아닌, 국제이해교육입니다. 다양한 국가의 문화를 가르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교육이 바로 진정한 다문화 존중 방법이겠죠. 오랜 이민의 역사를 가진 호주에는 이백 개 이상 국가 출신의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다문화 사회 국가입니다. ‘다채로운 국가, 호주에서는 함께 살아가기 위해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을 진행할까’,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호주에서는 학생의 다양성을 고려하기 위해, 선생님들의 다양성에 대한 계획장애 학생의 요구 충족, 영재 학생들의 요구 충족, 영어가 제2 언어 또는 사투리인 학생들의 요구 충족, 그리고 관할권과 자료로 구분하여 제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신의 문화→가족의 문화→친구의 문화→지역 사회의 문화) 보자마자 눈에 딱 들어온 단어는 ‘자신의 문화’였는데요. 레벨1부터 레벨 6까지, 자신의 문화에서 가족의 문화 그리고 친구의 문화, 마지막으로 지역 사회의 문화까지 내 세계를 확장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결국 다시 말해, 다문화라는 것이 인종 다양성만을 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친구네 집 문화와 우리네 집 문화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배우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다문화 교육의 첫 걸음입니다.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고, 당장 옆에 있는 내 이웃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는 게 어떨까요? 한 명, 한 명이 존중받고 다채로운 세상이 되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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