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파킨슨병 산재 소송, 끝내 이겼다… 잔인했던 ‘7년’ [그녀의 우산 10화]
법원은 신호영(48, 가명) 씨의 손을 들어줬다. 어느새 머리가 희끗해진 그는 7년 만에 대법원으로부터 최종 ‘산재 인정’을 받았다. “(근로복지)공단이 너무 야속했지. 내가 거짓말하는 것도 아닌데, 그걸 못 믿어서 대법원까지 간 거잖아.”(어머니 김정혜 씨, 가명) 근로복지공단은 피해자의 호소를 외면했다. 호영 씨의 산재 신청을 불승인한 근로복지공단. 그에 불복한 호영 씨가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1심 재판부는 산재를 인정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항소했다.(관련기사 : <법원은 산재 인정, 공단은 불복 항소… “죽어야 끝날 일인가”>) 이어진 2심에서도 재판부는 산재를 인정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결국 대법원까지 재판을 끌고 갔다. 그렇게 이어진 싸움이 7년이었다. 대법원에서 지난달 28일 별도의 심리 없이 근로복지공단의 상소를 기각하면서 지난한 싸움이 끝났다. 호영 씨는 2002년 3월부터 2년간 LED 제품 생산 라인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다. 하루 11시간씩 100℃가 넘는 고온으로 제품 열 테스트를 수행하거나, 화학물질이 가득한 용액에 웨이퍼를 넣고 빼는 작업 등을 했다. 심지어 하루 11시간에서 13시간씩 일했다. 주말에도 예외는 없었고, 주로 야간조로 투입됐다. 그에게 주어진 건 방진복과 얇은 마스크였다. 작업장에는 열을 식히는 장치나 국소배기장치도 없었다. 업무 효율을 높인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건강에 적신호가 들어온 건 2007년 6월이었다. 조금씩 뻣뻣하게 굳어가던 몸. 호영 씨는 2009년 파킨슨병을 진단받았다. 치료약이 없는 불치병. 50대 전후로 발병한다는 병이 33살에 나타났다. 1심 판결은 지난해 6월 나왔다.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신청서를 제출한 지 6년 만에 나온 첫 번째 판결. 당시에도 거동이 어려웠던 그에게 산재 인정과 요양급여, 간병급여 등이 시급히 필요했다. 근로복지공단도 1심 재판부의 판단을 받아들여 ‘항소를 포기하겠다’고 법무부에 밝혔다. 그러나 법무부는 ‘소송을 계속하라’고 지휘했다. 근로복지공단이 ‘항소 포기’ 의사를 밝히면 법무부가 받아들이는 게 관례였다. 2021년과 2022년에는 법무부가 항소 이행을 지시한 사례가 없었다. 하지만 2023년은 달랐다. 이수진 당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에 따르면, 그해에만 호영 씨를 포함해 ‘반대 사례’가 4건이나 있었다.(관련기사 : <파킨슨병 산재 또 승소… ‘법정고문’은 7년으로 족하다>) “그때 내가 회사 못 나오게(퇴사하지 못하게) 했어. 끝내 다니다가 이 병을 얻은 거잖아. 그게 참… 너무 후회가 되더라고.” 호영 씨에게 사과를 한 건 회사도, 근로복지공단도 아니었다. 나날이 악화되는 아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던 어머니 김정혜(72, 가명) 씨였다. 어느새 일흔이 넘은 노모는 인생의 ‘황금기’를 병상에서 보내는 아들을 간호했다. 지우지 못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아들이 힘들다고 이직을 고민할 때 다른 일 해 보라고 권하지 않았던 과거는 발목을 잡았다. 아들과 보내는 시간은 점차 늘어났다. 이제는 옆으로 넘어져도 호영 씨 힘으로 일어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고, 마음 편하게 잠든 것도 까마득한 과거의 일이다. 대법원 판결을 통해 산재가 인정된 지금은 한시름 덜지 않았을까. 반가운 마음으로 호영 씨에게 전화 인터뷰를 요청했다. “죄송해요. 컨디션이 안 좋아서 11시 30분쯤에 전화해도 될까요.” 전화하기로 예정된 9시 30분을 조금 넘긴 시간. 호영 씨가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법정 공방이 길어지면서 호영 씨의 몸 상태도 나날이 악화됐다. 증상을 완화시켜준다는 약도 7년이라는 시간 앞에 속절없었다. 오전 11시 30분이 돼서야 전화를 할 수 있었다. 호영 씨는 짧게 안부 인사만 나누고 핸드폰을 정혜 씨에게 넘겼다. 그를 대변하는 건 늘 어머니의 몫이었다. “참 기분이 묘했죠. 끝을 봐야겠다는 마음이었는데, 지나고 보니까 ‘언젠가 되긴 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대법원 선고가 있던 지난달 28일. 호영 씨 가족들은 오전부터 결과가 나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1심, 2심 재판부가 그랬던 것처럼 ‘산재 인정’ 결과를 받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점심시간을 조금 넘기자 결과가 확인됐다. 심리불속행 기각. 재판부가 심리하지 않고 근로복지공단의 기각하겠다고 결정했다. “이제 한시름 덜겠구나 생각했거든. 그런데 아직 멀었더라고. ‘더 큰 산’을 넘어야 되더라고요.” 호영 씨의 가족이 다시 울상을 지은 건 산재 인정 이후의 절차 때문이었다. 근로복지공단은 호영 씨의 산재가 승인됐다며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향후 보상 절차에 대한 안내였다. 그 서류들을 준비하는 것도 역시나 일흔 넘은 노모의 일이었다. “(산재 행정소송 이후가) 절차적으로 복잡해요. 그런데 공단에서는 이거 신청해야 된다거나, 어떤 서류 필요하니 제출해라, 이런 안내도 거의 안 해줘요. 산재 인정받고 잘 모르는 분들은 신청도 못 하고 지나치는 경우도 있어요. 따로 안 챙겨주거든요.”(이종란 노무사) 불친절한 행정 서비스에 정혜 씨는 분통이 터졌다. 주치의한테 소견서를 받아야 했다. 호영 씨는 요양급여뿐만 아니라 장애급여, 간병급여 등이 필요했다. 이것들을 하나 신청할 때마다 의사 소견이 필요했다. 정혜 씨는 지난 17일 주치의로부터 소견서 작성을 해줄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왔다. 이종란 노무사는 “산재 피해자에게 소견서 작성을 거부하는 주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무슨 방법이 있겠죠. 8년 동안도 (산재 행정소송) 해봤는데, 계속 해봐야지.” 지난 시간은 정혜 씨의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는 “포기하지 않아야 바뀐다”고 설명했다. 정혜 씨는 지난해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인터뷰를 하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간병의 어려움과 근로복지공단의 부당한 항소 철회를 호소하는 글을 전하기도 했다. 아들의 산재 승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은 주저하지 않고 나섰다. 근로복지공단에 더는 시간을 끌지 말아달라고 외쳤지만, 끝장을 본 뒤에야 ‘산재 인정’ 결과를 받을 수 있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근로자의 업무상의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그 현실의 문턱은 높다. 지난 10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 중 박정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파주시을)은 호영 씨 사례를 언급하며, 근로복지공단에 태도 변화를 요구했다. 박 의원은 “사회 변화에 따라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이 늘어나고, 의학·과학의 연관성만 따지면 산재 노동자는 고통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며, “법원의 (산재 인정) 기준이 달라졌기 때문에 (근로복지)공단도 그 기준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정혜 씨는 피 말리는 소송전을 이어가는 또 다른 산재 피해자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지금 당장은 캄캄한 터널을 걷는 기분일 텐데, 언젠가는 ‘드디어 빠져 나왔다’라고 말하는 순간이 올 거예요. 그런 기대와 용기를 가지고 승리할 때까지, 끝까지 싸워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그리고 (근로복지)공단은 산재 피해자들한테 복지가 될 수 있도록 다시 한번 생각해야 돼요. 그렇게 잔인하게 하지 말고 복지를 위해 일했으면 좋겠어요.” 여전히 해야 할 ‘숙제’가 남은 정혜 씨는 다음을 기약했다. 모든 절차들을 마치면 반가운 소식을 안고 연락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기자도 그때 다시 축하를 전하겠다고 답했다. “계속 관심 가져줘서 고마워요. 앞으로도 아픈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 많이 해주십시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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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때문에 19살 간이 녹았다? 당신들이 틀린 이유 [열아홉, 간이 녹았다 3화]
고등학교 3학년 김선우(가명) 씨는 반도체 공장으로 나갔다. 학교의 ‘1호 취업생’이었다. 반도체 후공정 업체인 스태츠칩팩코리아. 일터에는 화학물질이 가득했다. 그는 얇은 덴탈마스크와 방진복을 착용한 채 하루 9시간, 많게는 11시간 30분씩 작업장에 머물렀다. 24시간 가동되는 기계에 맞춰 생체리듬을 바꾸다 보면 밤낮이 바뀌기도 했다. 취업 14개월 만인 2021년 12월, 간이 녹아내렸다. 혼수상태에 빠졌다. 주치의는 ‘마지막 인사’를 하라며 가족들을 불렀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던 위독했던 상황. 겨우 만 열아홉이었다. 기적적으로 뇌사자의 간을 이식받았다. 몸 밖으로 나온 선우 씨의 간은 형체조차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오랜 잠에서 깨어났지만 더 큰 문제들이 남아 있었다. 선우 씨는 2022년 9월 산재를 신청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산재 ‘불승인’ 판정을 내렸다. “당시 김선우 씨의 음주 습관으로 인한 상병이 아닌지 합리적인 의심이 가능한 상황입니다.”(스태츠칩팩코리아 측 의견서) 회사는 선우 씨의 음주 습관을 지적했다. 이들이 근거로 제시한 건 ‘특수건강검진표’. 결과지에는 “절주 또는 금주가 필요하다”는 소견이 적혀 있었다. “제가 양산부산대병원에서 상담을 받았는데요. 교수님이 ‘20대 초반이 술을 아무리 들이부어도 이 정도로 간이 상하지 않는다고, 절대 안 상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근데 회사가 그 얘기(음주습관 지적)를 하니까 너무 어이가 없더라고요.” 유해인자에 노출되는 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은 정기적으로 ‘특수건강진단’을 받는다. 선우 씨도 2021년 4월 특수건강검진을 받았다. 그때만 해도 간 기능 검사, 빈혈 수치 등에서 이상 소견은 없었다. 다만, 음주력에 ‘주의’가 표기됐다. ‘일주일 1잔 하루 4잔’이라는 수치 때문. ‘주의’가 필요하다는 선우 씨의 음주 습관은 ‘1주 1회, 1회 소주 기준 0.5병’ 수준이었다.(관련기사 : <간이 녹아 사라진 ‘반도체 소년’… 회사는 “술 때문에”>) “결과지를 보면 혈청 지티피(ALT), 혈청 지오티(GOT), 감마지티피(γ-GTP) 모두 정상이어서 음주력은 있지만, 이로 인한 간에 영향은 없는 상태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감마지피티는 음주로 인한 간 영향 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혈액검사 지표로, 이 수치가 정상이라는 것은 음주로 인한 간 영향은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활동하는 송홍석 신천연합병원 내과 진료부장은, 선우 씨의 진료기록을 검토한 뒤 “알코올성 간질환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당시 간 기능 검사가 정상으로 나왔기 때문. 이어 “음주가 원인이었으면 (진료기록상) ‘알코올성 간 질환’이라고 명시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간을 녹일 수 있는 또 다른 원인에는 독성간염이 있다. 이는 한약, 양약, 건강기능식품 등과 같은 약제를 복용하다가 발생하는 간 기능 손상을 말한다. 동아대학교병원 입원기록에 따르면, 선우 씨는 과도하게 약물을 복용한 이력도 없었다. “어린 나이에 급성간염이 일어날 만한 특별한 이유가 없는 점, 회사에 근무하고 1년이 지나 상기 질환이 발생한 시간적 선후 관계를 고려할 때 피재자(김선우)의 급성 간염을 동반한 독성 간 질환은 작업장에서 노출된 미상의 세척 용제에 의한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됨.” 선우 씨 주치의는 사업장을 의심했다. 입사 및 업무 중 특수검진을 할 때 특이사항 없이 건강했던 점, 가족력도 없고, 바이러스 간염 검사 결과가 음성이라는 점 등을 들어 외부 요인이 작용했을 거라고 추측했다. “라인에 있을 때는 서 있거나 의자에 앉아 있기도 하거든요. 선우가 (2021년) 5월 말부터 의자에 앉아서 조는 걸 자주 봤어요. 제가 자주 깨워주기도 했는데, 그 뒤로 코피도 되게 자주 흘렸던 것 같고요.” 동료 이창민(가명) 씨는 선우 씨가 사경을 헤매고 있던 2022년 1월, 선우 씨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씨는 동일한 공정, 바로 옆 라인에서 근무했다. 선우 씨는 집에 돌아가면 쓰러지듯 잠들면서도, 내내 피로를 호소했다. 선우 씨는 반도체칩에 전자기판을 부착하는 칩 어태치(Chip Attach) 공정에 있었다. 4조 3교대 근무 형태. 6일 근무하고 이틀 쉬는 식이었다. 6일 중 하루 이상 연장 근무는 필수였다. 한 주에 약 51시간 30분을 일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한도인 ‘주 52시간’을 넘지 않게끔 맞춰진 시간이다. “역한 냄새. 약물이랑 아세톤 냄새가 나죠. 주유소보다는 조금 약한데, 맡으면 불쾌한 냄새예요. 퀴퀴한 냄새라고 해야 되나.” 선우 씨에게 주어진 건 방진복과 얇은 덴탈마스크, 천코팅장갑, 비닐장갑이었다. 입술 모양이 다 보이는 얇은 마스크를 뚫고 독한 냄새가 들어왔다. 기계에 묻은 화학물질을 씻어내다 보면 비닐 장갑이 찢어져 손이 젖기도 했다. 환경부가 운영하는 화학물질종합정보시스템에는 사업장에서 다루는 화학물질 정보가 공개돼 있다. 스태츠칩팩코리아에서 다루는 화학물질은 혼합물질을 포함해 모두 365가지. 이를 단일물질로 구분하면 111개에 달한다. 여기에는 구리, 주석, 은 등 간 독성을 유발하는 물질 26개도 포함된다. 회사는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반도체 공정 중 유해성이 낮은 후공정을 담당하고 있는 업체”라고 설명했다. 그 근거로 “작업환경측정 결과 측정대상 물질 유해인자 ‘불검출 또는 검출한계 미만’” 결과를 받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작업환경측정 제도의 한계가 있다. 사업장에서 다루는 모든 화학물질을 대상으로 이뤄지지 않고, 일부 요인만을 대상으로 실시한다는 점. ‘작업환경측정 대상 유해인자’로 정해진 물질에 한해 노출 수준을 파악할 수 있다. 스태츠칩팩코리아에서 검사 대상이 된 화학물질은 111개 중 46개. 간 독성을 유발하는 물질 26개 중에서는 15개만 측정 대상이 됐다. 또한, 복합적으로 유해인자에 노출된 경우 신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의학적으로’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선우 씨는 4조 3교대로 근무했다. 야간작업은 국제노동기구(ILO)와 국제암연구소(IARC)가 지정한 2급 발암물질이다. 동시에 다량의 화학물질을 다루는 작업장에 노출돼 있었다. 야간작업, 또는 각각의 유해인자에 대한 개별 인과관계를 연구한 결과는 존재한다. 반면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 자료는 부족하다. 그 때문에 업무상질병 여부를 판단할 때, 복합적인 유해인자가 질병에 미칠 영향을 보다 넓게 해석해야 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례도 있다. “유해인자 노출기준은 해당 유해인자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경우를 전제로 하는 것인데, 여러 유해인자에 복합적으로 노출되거나 평균 근로시간 이상으로 장시간 근무하는 경우나, 작업강도가 높거나 주·야간 교대근무를 하는 등 작업환경의 유해요소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 등에는 유해요소들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질병 발생의 위험이 커질 수 있다.”(대법원 2017년 11월 14일 선고, 2016두1066) 근로복지공단이 ‘불승인’ 결정을 통보한 것은 지난 5월. 산재 신청으로부터 약 1년 8개월이 지난 때였다. ▲직업환경연구원 조사 결과, 독성 간염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물질의 노출이 없었다 ▲작업환경측정 결과에서 측정대상 물질 유해인자 불검출 또는 검출한계 미만이었다 ▲사업장 측 진술상, 동일공정 근무자 중 유사 증상 발병자 또는 검진 결과 이상소견자는 발생한 적 없다는 점들을 고려한 판단이었다. 다만 판정위원 중 한 사람은 “작업 중 간독성 물질은 일부 있”었다면서도, “독성이나 노출량을 고려할 때 상병을 유발할 수준은 아닐 것”으로 판단하기도 했다. “(사업장) 조사하는 날 (연구원) 태도를 보고 마음의 준비는 했어요. 회사 설명만 듣고 ‘그렇군요’ 하고 넘어가고, 그걸 또 곧이곧대로 믿고. (저한테는) 물어보지도 않고. 그래도 (판정위원) 만장일치로 불승인이 나올 거라고 예상하진 못해서 충격 먹었어요. 전원(불승인)은 말이 안 되죠.”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은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는 데 있다. 대법원은 이를 고려해, ‘현재의 의학 수준에서 인과관계를 규명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직업 관련성을 쉽게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바 있다. “근로자에게 발병한 질병이 이른바 ‘희귀질환’ 또는 첨단산업 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유형의 질환에 해당하고 그에 관한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대법원 2017년 8월 29일 선고, 2015두3867) 선우 씨는 녹아버린 간 때문에 그 원인을 명확히 알아낼 길이 사라졌다. 대신 평생토록 약값과 치료비가 따라다닌다. 그는 2022년 5월 회사를 퇴직해야 했다. 가족들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떠넘겼다는 죄책감에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3년간 든 치료비와 약값만 약 2억 원. 평생 얼마나 더 들지는 알 수 없다. 앞서 선우 씨가 산재를 신청한 이유에는, 가족에게 짐 지운 돈 걱정을 줄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선우 씨는 지난 8월 행정법원에 소장을 접수했다.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 처분에 취소를 구하겠다는 취지다.  “기다리는 시간이 제일 힘들어요. 결과가 빨리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 과정에서 희망고문이 제일 힘들죠. 그래도 최대한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서 이겨내 보려고 노력은 하고 있어요, 아직은….” 생사의 고비를 넘기자 산재 승인의 벽을 넘어야 했다. 무엇이 선우 씨의 간을 녹게 했는지 누구보다 알고 싶은 사람은, 바로 선우 씨 자신이다. 음주 습관이나 가족력, 약물 과복용은 원인은 아니었다. 작업장에 대한 의심은 있지만, 복합요인에 대한 연구는 미흡하다. 산재 불인정의 근거로 제시된 역학조사 결과나 작업측정보고서 역시 한계가 지적된다. 그는 지난해 12월 한 번 더 고비를 넘겼다. 당시 주치의는 재이식을 고려해야 할 정도로 위중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간 이식을 한 지 3년도 채 되지 않은 시기. 다행히 약물로 위기는 넘겼다. 다만 앞으로 몇 번의 위기를 더 넘겨야 할지, 또 몇 번의 재이식을 받아야 할지, 아니 재이식을 받을 수는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오래전부터 법원(판례)에서는 산재보상보험법에서 말하는 업무와 질병 간의 상당인과관계는 ‘의학적’ 인과관계가 아니고, 사회통념상 합리적인 수준에서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규범적’ 인과관계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혀왔다. 그럼에도 (근로복지)공단은 협소한 의학적 판단기준으로 산재불승인을 남발하여온 것이다.”(이종란 노무사, 2024년 7월 ‘산재 노동자 권리 보장을 위한 산재보험 개선 과제 토론회’ 자료집 중)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스태츠칩팩코리아의 반론을 듣고자 지난 8월 19일부터 약 30차례 전화 연결을 시도했다. 지난 8월 30일 기자는 인사팀 관계자, 안전팀 관계자, 임원급 관계자와 번갈아 소통했다. 이들은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 판단에 이견이 없다”, “당시 사내 공지로 헌혈 활동을 권하는 등 선우 씨를 도우려고 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보도로 인해) 회사에 피해가 발생하면 법적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안전팀 관계자는 약 40분간 안전관리 방침에 대해 설명했지만, 이후 비보도를 요청했다. 스태츠칩팩코리아는 셜록의 보도 이후, 지난달 11일 내용증명을 보냈다. 앞선 보도에서 “허위사실을 포함하여 당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내용이다. 이들은 “선우 씨에게 음주 때문에 질병이 발생한 것이라는 발언을 한 적이 없고, 본건 직원이 손에 노출되었다고 주장하는 용액도 역학조사 당시 ‘물’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작업환경측정 및 역학조사 결과 안전하다는 판정을 받은 점, 매월 직원들을 상대로 안전교육을 실시하는 점, 사내 유사한 병명이 발생한 적도 없는 점”을 강조했다. 끝으로 “당사의 명예를 침해하는 위법한 보도 행위를 즉각 중지하고, 본건 기사를 삭제할 것”을 요청했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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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병 산재’ 기어코 대법원까지 끌고간 대한민국[그녀의 우산 9화]
끝내 대법원까지 간다. 16년간의 투병. 이제 온몸이 굳어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신호영(가명, 48) 씨의 사정은 얼마나 고려됐을까. 두 차례 패소 판결에도 근로복지공단(이하 공단)은 뜻을 꺾지 않았다. 공단은 지난 13일 법원에 상고했다. 결국 사건을 대법원까지 끌고 가겠다는 것. 신 씨의 파킨슨병에 대해 ‘일터에서 생긴 병’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법원은 앞서 두 차례 공단이 신 씨에게 내린 요양불승인처분을 취소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소송을 시작한 지 4년째, 산재 승인을 신청한 지는 7년째다. 희망은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면 금세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신 씨에게 이번 여름도 그랬다. 그는 과거 LED 개발과 생산 업무를 하다가 파킨슨병을 얻어 16년간 투병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두 번째 승소 판결은 지난달 25일 있었다. 거듭되는 법원의 전향적인 판단. 여기에 마음 편히 웃지 못하는 사람은 있었다. 다름 아닌 신 씨의 모친 김정혜(가명, 72) 씨였다. “대법원까지 안 갈까요? 나는 잘 모르겠어요. 한 번 데인 적이 있으니까….” ‘한 번 데인 적’이 있다는 건, 공단이 1심 패소 이후 사건을 고등법원까지 끌고 간 일을 말한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이번에도 공단은 상고 기한인 2주일에 거의 맞춰 13일 만에 상고장을 제출했다. 사건을 대법원까지 끌고 갔다. 공단이 2019년 ‘산재 불승인’ 판정을 내린 것까지 포함하면 세 차례 산재를 인정하지 않은 셈. 사건을 담당한 문은영 변호사는 지난 14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항소든 상고든 무조건 하는 게 아니라, 이유가 명확하게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원고(신 씨)가 1심, 2심을 다 이겼는데, (공단이) 대법원에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예측하기가 어렵네요.” 공단 측 입장이 궁금했다. 지난 14일 문자메시지로 받은 답변. “유기화합물과 파킨슨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고, 특히 LED제조업, 반도체 등에서 파킨슨병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한 선례가 거의 없기 때문에 규범적 법리적 추가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판단됨.” 공단은 계속해서 이러한 주장을 펼쳐왔다. 하지만 법원은 ‘발병원인이 뚜렷하게 규명되지 않은 질병 전반에 대해 상당인과관계를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즉, 명확한 인과관계가 아직 밝혀지지 못했어도 상당성이 있다면 산재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긴 세월 재판에 정신적으로 너무 아프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디고 있습니다. 제 몸도 병이 많이 진행되어 저의 의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 상태입니다. 어머니가 저를 간병하고 계신데, 연세가 많으시다보니 어머니도 한계점에 이르신 것 같습니다. 실 같은 가느다란 희망의 끈을 붙잡고 버티고 있는 저의 삶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이 글을 올립니다.” 신호영 씨는 지난 13일 ‘반도체 노동자의 인권과 건강지킴이 반올림’의 보도자료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더 이상 산재 소송을 지연시키지 말아달라는 호소. 산재 신청 → 공단의 불승인 결정 → 신 씨, 행정소송 제기 → 1심 신 씨 승소 → 공단 항소 → 2심 신 씨 승소 → 공단 상고까지, 이미 7년의 세월이 흘렀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1조는 ‘근로자를 위한 신속한 보상’이라는 법의 목적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공단은 거듭 항소와 상고를 결정하며 시간을 끌고 있다. 이번에 공단이 밝힌 입장 가운데 주목해야 할 대목이 있다. 바로 “법무부의 지휘를 받아” 상고를 제기했다는 부분이다. 1심 패소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결정했던 배경에도 ‘법무부의 지휘’가 있었다. 지난해 10월 공단 관계자는 항소 결정의 배경에 대해 “행정소송의 최종 결정 권한을 지닌 법무부로부터 ‘의학적 판단을 다시 받아보자’며 항소를 제기해보라는 권고가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관련기사 : <법원은 산재 인정, 공단은 불복 항소… “죽어야 끝날 일인가”>) “고객의 눈높이에 맞게 공정, 적시, 감동 서비스를 제공하여 더 넓고, 더 두터운, 더 누리고, 더 나은 미래를 함께 나누는 일하는 모든 사람의 행복파트너가 되도록 전 임직원과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근로복지공단 홈페이지에서는 공단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2017년 시작된 산재 싸움. 그리고 2020년부터 이미 4년간 진행돼온 산재 소송. 공단의 상고 결정은 과연 신 씨를 위해, “일하는 모든 사람의 행복파트너”로서 “공정, 적시, 감동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한 일이었을까. 하루하루 지날수록 신 씨의 건강 상태는 그만큼 악화되고 있다. 그가 처음 소송에 나설 때만 해도 거동이 조금 불편했을 뿐, 소통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수십 년간 같이 살아온 어머니조차 그의 말을 알아듣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대법원까지 간 산재 소송.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언제 나올지는 알 수 없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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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병 산재 또 승소… ‘법정고문’은 7년으로 족하다 [그녀의 우산 8화]
파킨슨병 진단을 숙명으로 인정하기엔 서른세 살은 너무 젊었다. 뇌신경계 파괴로 몸이 굳어가는 와중에 생각은 자꾸 20대 첫 직장 시절로 돌아갔다. 신호영(가명, 48세) 씨는 그때 그 공장에서 LED 제품을 만들었다.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어렴풋이 생각했다. ‘혀마저 굳어가는 내 병은 그 공장에서 얻은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아닐까….’ 법원은 그 추측이 맞다고 다시 한 번 판단했다. 서울고등법원 행정7부(구회근 재판장)는 지난 7월 25일, 근로복지공단(이하 공단)이 신호영 씨에게 내린 요양불승인처분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산재가 아니라는 근로복지공단의 결정을 뒤집은 또 한 번의 판결. 산재 신청 이후 7년 만이다. LED 생산 공장에 취업한 지 22년, 파킨슨병 진단받은 지 15년 만의 일이다. 신호영 씨는 어느덧 50대를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누구보다 이 소식을 기다렸을 호영 씨에게 7월 31일 전화를 걸었다. 앉는 것도 힘들어 거의 누워 생활한다는 신 씨 대신 그의 모친 김정혜(가명, 72세) 씨가 전화를 받았다. “이번에도 공단이 상고 안 할까요? 나는 잘 모르겠어요. 한 번 데인 적이 있으니까….” 근로복지공단이 다시 상고를 결정한다는 건, 사건이 대법원까지 간다는 의미다. 큰 기대가 없다는 다소 힘 빠지는 반응. 가만 들여다보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번 2심 재판부의 판결은 환영할 만한 것이지만 사실 완전히 새로운 건 아니다. 근로복지공단은 “신 씨의 발병 원인과 업무는 상당한 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1심 재판부 역시 신호영 씨의 손을 들어줬다. 1심 판결의 핵심 요지를 보자. “비록 의학적으로는 현재까지 이 사건 상병(파킨슨병)의 명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 원고가 이 사건 각 사업장에서 근무할 당시에 다수의 유기용제 및 유기화합물에 직간접적-복합적으로 노출된 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 내지 촉진되었다고 봄이 합리적이다.” (서울행정법원 2020구단51146 일부) 이 판결이 나온 때는 2023년 6월 7일, 싸움은 이때 끝나야 마땅했다. 판결 당시 이미 신 씨의 투병 생활은 16년째로, 거동이 어려운 상태였다. 그와 가족에게 산재 인정과 요양급여는 시급한 문제였다. 다른 하나는 근로복지공단도 1심 판결을 받아들여 ‘항소를 포기하겠다’고 법무부에 밝혔었다는 점이다. 법정 다툼을 멈추고 신 씨의 산업재해를 인정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법무부가 ‘항소를 진행하라’고 지휘했다. 당시 법무부 장관은 현 국민의힘 대표인 한동훈이었다. 공단이 ‘항소 포기’를 밝히면 법무부도 이를 받아들이는 게 관례였다. 2021년과 2022년, 공단의 ‘항소 포기’ 의견에 법무부가 항소 이행을 지시한 사례는 없다. 하지만 이수진 당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에 따르면, 2023년에만 신 씨를 포함해 ‘반대 사례’가 네 건이나 나왔다. 어쨌든 공단은 자기 의지와 반대로 항소를 했다. 그것도 항소 기한 마감 날 늦은 오후에 말이다. 아들 신 씨를 간병하는 모친 김정혜 씨는 당시 기분을 이렇게 표현했다. “항소도 마감 날짜에, 마감 시간에 딱 맞춰가지고 했는데, 얼마나 잔인합니까. 안쓰러운 사람들한테 (기계적으로) 항소한다는 건 진짜 피해자들을 죽이는 일이죠! (이름이 근로’복지’공단이라면서) 무슨 이런 ‘복지’가 있어요!” (김정혜 씨 인터뷰 2023. 10. 17.) 의지도 의미도 없는 항소. 공단 측은 항소이유서도 4개월 후인 10월 23일에야 접수했다. 신 씨의 안타까운 시간만 속절없이 흘렀다. 김정혜 씨는 “근로복지공단이 불쌍한 산재 피해자를 도와주지 못할망정 왜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지난해 10월 인터뷰에서 말했다. 당시 기준으로도, 산재 판정을 기다린 지 이미 6년째. 간병인을 들일 여력이 안 돼 일흔 넘은 노모가 간병을 도맡고 있었다. 신 씨가 공단에 산재를 신청한 때는 2017년. 공단의 불승인 결정 → 행정소송 제기 → 1심 승소까지 6년이나 걸렸다. 이번 2심 판결까지 따지면 7년 세월이다.(관련기사 : 법원은 산재 인정, 공단은 불복 항소… “죽어야 끝날 일인가”) 공단이 2심 판결마저 불복해 대법원으로 사건을 끌고 가면? 해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투병 중인 신 씨와 가족에겐 최악의 시나리오다. “몸이 성한 사람도 10년 가까이 재판을 하면 힘든데, 몸 아프고 생계도 막막한 사람들은 재판이 길어지면 어떻겠어요? 환자도 힘들고, 돌보는 나도 힘에 부치죠.” 김정혜 씨가 2심 승소에도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이유다. 기자는 신호영 씨에게 심정을 직접 듣고 싶었으나 그의 건강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작년 10월에 만났을 때도 신 씨는 인터뷰 도중에 잠들기도 했다. 요즘은 하루의 대부분을 잠으로 보내고, 혀마저 굳어가고 있다. 앉아 있는 것도 어려워 옆으로 고꾸라지는 일도 잦다. 넘어진 아들을 일으켜 세우는 건 모친 김정혜 씨의 몫이다. “옆으로 넘어져도 혼자 못 일어나요. 그러다 질식해 죽을 수도 있으니까, 제가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죠.” 법원의 1·2심 판결은 신 씨에게만이 아니라 반도체, 디스플레이, 2차전지 등 세계 1위권의 첨단산업을 보유한 한국사회에 주는 의미가 크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활동가인 이종란 노무사의 말을 보자. “산재는 보통 피해자가 상병과 작업장의 인과관계를 증명해야 되는데, 어떤 유해물질이 있는 작업환경에서 일했는지 노동자들은 잘 모르거든요. 그런 맥락에서 이번 판결은 첨단산업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헌법상의 의무를 다한 판결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이종란 노무사 전화 인터뷰 2024년 7월 31일) 이어 이 노무사는 그는 “첨단산업 분야에서 직업병 관련 연구가 없거나 부족한 경우가 많고, 그 발전 속도가 빨라 취급 물질이 빈번하게 바뀌고 있다”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작업환경에 대한 조사와 안전관리 매뉴얼이 신설되는 등 조사부터 예방책까지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노무사의 평가대로 최근 법원의 판결은 산업발전 상황을 따라가는 모양새다. 대법원은 이미 판례로 첨단산업분야의 산재 판정 방향을 잡아놨다.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과 기능 등 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근로자에게 발병한 질병이 이른바 ‘희귀질환’ 또는 첨단산업 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유형의 질환에 해당하고 그에 관한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대법원 2017년 8월 29일 선고 2015두3867) 공은 다시 근로복지공단으로 넘어갔다. 신 씨 모친 김정혜 씨는 이런 당부를 했다. “이번에는 소송이 끝이 나서 겨우 버티고 있는 지금 상황이 나아지면 좋겠습니다. 그냥 딱 ‘남들처럼만 살고 싶다’는 상상을 해요. 돈 걱정 없이 치료에 전념하는 거, 간병인 몇 시간이라도 불러서 마음 편히 있는 거, 고등학교 올라간 손주 학원도 보내고 싶고, 며느리도 좀 숨 돌렸으면 좋겠고…” 산재 다툼만 7년. 이 싸움은 이쯤에서 끝날까 아니면 더 연장될까. 근로복지공단은 아직 상고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 또 잔뜩 희망고문을 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상고를 신청할 수도 있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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