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안전한 노동을 바라는 캠페이너들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겨울은 많은 것이 움츠러드는 계절입니다. 마음도 몸도 말이죠.
돈은 벌고 싶지만 일은 하고 싶지 않은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누군가는 노동을 형벌에 빗대어 말했다고 하죠. 왜 매맞는 일은 우선과 나중이 있을 뿐 일까요. 이직이나 신규채용에도 찬바람이 불고, 숨만 쉬어도 늘어나는 지출에 아득한 연말입니다. 아늑한 구석에서 컨텐츠를 찾아 헤매던 중 친구의 추천으로 드라마 하나를 보게되었습니다. <언내추럴>이라는 일본 드라마인데요,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는 부검의가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제목에서도 나타나듯이 이 작품은 ‘부자연스러운 죽음’의 인과와 맥락을 부검을 통해 밝혀내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강조합니다. 범죄 피해가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나, 진실의 힘 같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이야기라 다른 사람에게도 추천할 만한 작품이에요.
세상에는 다양한 삶 만큼 다양한 죽음이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 태어나고 죽습니다. 알고 있지만 항상 외면하는 진실이지요. 이 드라마에 나오는 등장인물이 다음과 같은 대사를 합니다.
“죽는 것엔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없습니다. 어쩌다 목숨을 잃지요. 그리고 우리는 어쩌다 살고 있는 겁니다. 어쩌다 살고 있으니까 죽음을 불길하게 여겨선 안 돼요.”
유독 마음에 남는 말이었습니다. 아프지만 직면해야하고, 불편하더라도 기억해야 하는 것이 죽음의 존재니까요.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추모 공간을 혐오시설로 취급하거나 죽음을 터부시하는 일이 흔하지요.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채 쉽게 망자를 오해하거나 비난하는 모습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죽음은 누구에게나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일이기에 누구나 존중받아야 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어쩌다보니 사는 우리들이 먼저 떠난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제대로 애도하는 일일 겁니다.
사람들이 좀 더 죽음을 존중했으면 합니다. 죽음을 무겁게 여기지 않는 것은 곧 생명을 가볍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 다치거나 죽는 일이 벌어졌을 때 그 규모를 숫자로 판단합니다. 숫자는 목숨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어버립니다. 상대적으로 큰 숫자 옆에 있을 때는 특히 더 가벼워지죠. 예를 들어 산업재해 현황을 보면, 조금씩 감소추세이긴 하나 매년 1천 명 가까운 삶이 산업재해로 마감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프는 상황이 나아지고 있는 것처럼 그려져있습니다. 하지만 저 안에 내가 들어있다고 생각하면 숫자가 참 부조리하게 느껴집니다. 나의 삶과 모든 희망이 끝나고 거대한 숫자에 편입되어 잊혀진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공허해지죠.
9월말 기준 산재 사망자 495명…중대재해감축 로드맵 시행 후 51명 줄어
사실 정말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특정 업종이나 직무에 사고발생율이 높기 때문에 문제 해결을 고민하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죽거나 다쳤을 때 같은 문제가 다시 일어나지 않게 대처하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고율이라는 수치를 누르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일하다 죽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는 거죠. 어려운 일일까요? 하지만 마땅하고 당연한 목표가 아닌가 싶습니다. 안전한 사회를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관심을 가지고 안전 문제를 바라보면 좋겠어요. 뻔한 말이지만, 나의 일이 될 수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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