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7일 오전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등산로에서 30대 남성이 30대 여성을 금속 재질 너클로 폭행하고, 성폭행한 범죄가 발생했습니다. 피해자 여성은 의식 불명 상태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19일 사망했습니다.
소셜미디어와 관악구 홈페이지에는 이번 사건을 두고 관악구의 최인호 구의원 이름이 연이어 나오고 있습니다. 최 구의원이 내세운 ‘여성안심귀갓길 전면 폐기’ 정책 때문입니다. 최 구의원에 대한 이야기는 비단 정책 하나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최 구의원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최인호 구의원이 업적으로 내세운 ‘여성안심귀갓길 전면 폐기’
먼저 논란이 되고 있는 여성안심귀갓길 전면 폐기 정책부터 살펴보시죠. 최인호 구의원은 작년 12월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를 통해 ‘여성안심귀갓길 전면 폐기’를 본인의 업적으로 내세웠습니다. 해당 영상에서 최 구의원이 했던 발언 중 일부는 아래와 같습니다.
‘여성안심귀갓길’이라는 문구를 적어 놓는다고 해서 실질적인 치안이 강화되느냐 절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 문구를 본다고 해서 여성들이 안심이 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여성안심귀갓길 사업은 남성들은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하는 현실에 놓여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안심귀갓길을 폐지하고 구민들에게 모두 시안을 강화하고 안전을 보호할 수 있는 안심 골목길 사업으로 대체돼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최 구의원은 이런 발언과 함께 여성안심귀갓길 폐기를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더 나아가 “제가 의정 활동을 하면서 여성가족과에 있는 페미니즘 사업 같은 경우에는 전체적으로 손 볼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고요.
최 구의원의 발언은 실현됐을까요? 2023년 관악구 예산을 살펴보니 여성안심귀갓길 관련 예산이 포함됨 ‘함께 든든한 여성안심마을 조성’ 예산은 약 5,665만 원이 삭감됐습니다. 비율로 환산하면 전년도 대비 47.3% 감소였습니다. ‘전면 폐기’는 아니어도 절반 가까이 ‘대폭 축소’된 겁니다.
관악구에서 벌어진 사건에도 ‘잘못 없다’ 주장
최인호 구의원이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 여성안심귀갓길 예산 삭감 후 관악구에선 아이들도 자주 다니는 생태공원에서 여성 대상 성폭행 살인 범죄가 발생했습니다. 자연스레 시민들도 최 의원에게 책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관악구 의회의 시민 참여마당에는 최 구의원의 사퇴를 촉구하는 게시글이 지속해서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최 구의원은 어떤 입장일까요? 애석하게도 최 구의원은 자신의 발언, 행동, 결정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 모양새입니다. 최 구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범죄가 발생한 해당 지역구 의원은 아니지만 여성안심귀갓길 예산을 전액 삭감하고, 안심골목길 예산을 증액했다는 사실로 여초사이트에 좌표가 찍혀 악성 댓글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안타까운 상황 속에서도 이때다 싶어 광인처럼 날뛰는 성특권파시즘 세력과 타협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라며 자신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잘못됐다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아마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다양한 생각을 하고 계실 것 같습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오늘 할 얘기의 핵심은 이제부터입니다. 최 구의원이 내세운 정책이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 최 구의원과 같은 정치인이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를 더 살펴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같이 시계를 조금 뒤로 돌려보려 보시죠.
2019년 보고서 속 ‘최 모 학생’과 2023년 ‘최인호 구의원’
시계를 2019년으로 되돌리고, 잠깐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4년 전 저는 당시 다니던 직장에서 언론 보도 비평 보고서를 쓰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헌고등학교에서 일부 학생이 ‘페미니즘 사상독재’, ‘정치적 사상독재’를 당했다고 주장한 사건과 이를 다룬 언론 보도 비평 보고서 ‘‘인헌고 정치편향 교육 논란’…언론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를 작성했습니다.
4년 뒤 저는 최인호 구의원의 이름을 마주하고 눈을 의심했습니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디에서 이 이름을 봤는지 기억해냈습니다. 2019년에 작성했던 보고서 속 ‘최 모 학생’이 2023년 ‘최인호 구의원’이었기 때문입니다.
최 구의원은 인헌고 재학 중 본인이 활동하던 동아리가 폐지되자 ‘페미니즘 사상독재’를 당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이 주장은 ‘정치적 사상독재’로 이어졌습니다. 당시에 어떤 일이 있었길래 이런 주장이 나왔는지 궁금하시죠? 간략하게 정리해보겠습니다.
- 최 구의원을 비롯한 학생들이 ‘왈리’라는 이름의 동아리를 만들었습니다. 성평화를 주장하는 이 동아리는 페이스북 등을 통해 활동했습니다.
- 동아리의 활동 내용이 알려지자 학교 내에서 문제제기가 이어졌습니다. 동아리의 활동이 ‘성평화’라는 이름으로 여성혐오 담론을 확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이후 동아리의 지도교사는 문제를 확인하고 지도교사에서 물러났고, 교육부의 지침에 따라 지도교사가 없는 동아리 왈리는 해체됐습니다.
왈리의 구성원이었던 최 구의원은 인헌고 학생수호연합을 조직하고 대변인으로 활동하며 동아리 해체를 ‘페미니즘 사상독재’라고 규정했습니다. 이후 학교 운동회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두고 ‘정치적 사상독재’까지 주장을 확장했습니다.(운동회에서 벌어진 사건과 관련된 자세한 맥락은 2019년에 정리한 보고서를 참고해주세요)
여성혐오 동아리원이 여성혐오 정책 창시자가 됐다
여기서부턴 제 개인적인 생각들을 정리해보려 합니다. 저는 최인호 구의원의 여성안심귀갓길 폐기 정책이 고등학생 시절 이미 완성됐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최 구의원이 회장으로 활동했던 왈리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같이 보시죠.
성폭력? 잘못된거 나도 알아. 누가 모른대? 없어지면 정말 좋겠지. 나도 동의해. 그런데 성범죄가 없어지는 사회가 올 수 있을까? 응, 올 수 있지. 네가 XX 깊게 잠든 꿈속에서.
성범죄의 피해자가 대부분 여자인거? 인정해. 그리고 그 '사실'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거야. 여자가 성범죄를 당해야 마땅하다는게 아니라 그냥 성범죄라는 것 자체가 여성 피해자가 많을 수 밖에 없다고. 이건 바꿀 수 없는 '사실'이야. 그냥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렇게 생겨먹은거지. XX 더럽고 역겹고 추악하지? 맞아! 인간은 그런 존재야.
여성들이 가지는 공포감? 어느정도 공감해. 나도 가끔 밤에 밖을 지나다닐때 등골이 오싹해질 때가 있더라고. 그런데 우리나라 치안율 세계 1위다. 객관적으로 봤을때 우리나라만큼 안전한 나라가 없다고. 아무리 안전한 나라라고 해도 여성 대상 범죄가 없는게 아니니까 무서울 수 있지. 인정해. 그런데 그 공포심이 우리 사회와 비추어 봤을때 어디까지가 실제하는 것이고, 어디까지가 피해망상인지는 확실히 해야한단 말이지. 우리나라 정말 객관적으로 봤을때 범죄로부터 안전한 나라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왜 여성안심귀갓길 폐기 정책이 왜 4년 전에 완성됐다고 이야기했는지 이해가 되셨나요? 4년 전 여성혐오 동아리를 만들었던 최인호 학생이 4년 뒤 여성혐오 정책을 펼치는 최인호 구의원이 된 셈이죠.
여성혐오 담론을 또다시 마주하는 씁쓸함
저는 최인호 구의원의 여성안심귀갓길 폐기 정책이 명백한 여성혐오 정책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최 구의원이 내세운 여성안심귀갓길 폐기 정책의 필요성은 논리가 없습니다. 최 구의원이 과거부터 해왔던 주장대로라면 여성은 성범죄의 주된 피해자이고, 그렇다면 당연히 주된 피해자를 우선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안심귀갓길’은 범죄 예방 효용성이 입증된다면 아주 적절한 정책입니다.
최 구의원은 별다른 근거도 없이 여성안심귀갓길이 치안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실제 통계는 달랐습니다. MBC의 팩트체크 꼭지 ‘알고보니’의 보도 ‘여성안심귀갓길, 문구만 써놔 효과 없다?’를 보면 여성안심귀갓길과 유사하고, 일부는 여성안심귀갓길로 지정된 범죄예방 환경조성사업을 분석한 결과 “사업 시행 이후 이들 지역의 살인, 강도, 절도 등 5대 범죄는 해마다 큰폭으로 감소해 서울 전체보다 감소폭이 훨씬 컸”다는 게 드러났습니다. 물론 인과관계는 더 확인이 필요하지만 적어도 최 구의원의 주장이 틀렸다는 근거자료가 있는 겁니다.
최 구의원의 이름과 여성혐오 담론을 다시 마주하게 돼서 씁쓸합니다. 2019년에 보고서를 쓰면서 노골적인 여성혐오 담론을 마주하고, 분석하고, 정리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2023년에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2019년에 최 구의원의 활동을 전교조 비난 등 자신들의 정치활동에 이용했던 정당과 무책임하게 전달하기 바빴던 일부 언론이 만든 결과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어쩌면 여성혐오 담론 확산 문제에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던 저에게도 책임이 있을 겁니다.
가장 뼈아픈 사실은 노골적으로 여성혐오를 내세운 인물이 한국 정치에 발을 들였고, 정책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게 현실이 됐다는 점입니다. 이 과정에서 정당의 공천, 의회의 논의 등 여러 절차가 있었음에도 여성혐오 정치인과 정책을 걸러내지 못했습니다. 이번 사건이 여성혐오가 한국 사회와 정치권에 발을 들여 일으킨 문제의 대표사례로 기록되고 끝나길 바랍니다.
코멘트
6여성안심귀갓길사업과 안심골목길사업은 내용은 같습니다. 여성가족과에서 안전관리과로 주체만 다를뿐
왈리 계정에 올라온 글을 읽으니, 공감 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이 굉장히 공감하는 척하며 쓴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런 생각을 굳게 가진 사람들이 정말로 일부일 거라고 믿고 싶지만... 글쎄요.. 최근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가까운 곳에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