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과학기술을 가치중립적이라고 합니다. 기술 자체로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는 거죠. 또 다르게 말하면 누가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당연히 맞는 말입니다만 여기에는 조금 더 고민해야할 부분이 있습니다.
우선 무슨 기술을 개발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문제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 선택이 과학자나 공학자 개인에게 맡겨진 측면이 많았습니다. 물론 그들도 아무렇게나 선택하는 건 아니었지요. 나름의 필요성이 있을 때 개발이 이루어집니다. 이 때 필요성이란 개인의 희망에 의해서도 좌우되겠지만 더 중요하게는 사회적 경제적 필요성입니다. 산업혁명 시기 자동으로 움직이는 방직기나 방적기를 개발한 것도, 증기기관을 개량한 것도, 전구를 개량한 것도 모두 당시 사회적 경제적 필요에 따른 일이었습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이제 무엇을 개발할 것인가에서 과학자나 공학자 개인의 선택이 가장 중요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과학자나 공학자는 연구소나 대학, 기업에 몸담고 있고, 개인이 아니라 여럿이 팀을 이뤄 연구를 합니다. 그리고 이 연구에는 상당한 비용이 들어갑니다. 최소 너덧 명에서 수백 명이 공동연구를 하고, 필요한 장치 또한 상당히 비쌉니다. 따라서 연구비용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비용은 대부분 정부나 기업에서 나옵니다. 연구팀이 자기들이 어떤 연구를 하겠다는 제안서를 제출하더라도 결국 정부나 기업이 이를 채택해야 연구가 가능해집니다. 이제 무엇을 연구할 지는 정부와 기업이 대부분 선택하게 됩니다.
그런데 기업의 경우 자기네 회사에 도움이 되는 내용을 선택할 것이 당연합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나 휴대폰 그리고 디스플레이 관련 기술에 집중적으로 지원을 할 것이고, 현대자동차는 전기 자동차 배터리, 자율주행 관련 기술에 집중하겠지요.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경우에는 인공지능에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그리고 정부의 경우도 정부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전체적인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 기술을 개발하려고 하겠지요. 가령 우리나라 정부의 경우 인공지능 기술, 반도체 기술, 모빌리티 기술, 유전공학 기술 등 현재 다른 나라와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부문의 연구에 더 많은 예산을 배정합니다. 여기서 고민할 부분이 있습니다. 어떤 부문의 어떤 연구를 지원할 지를 누가 결정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과연 이 결정에 시민사회의 참여가 거의 배제되는 것이 합당한 것인가라는 거죠.
또 하나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대부분의 과학기술 연구는 선진국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당연히 자기네 나라에 필요한 기술을 중심으로 개발이 이루어지겠지요. 그래서 아프리카나 중남미, 남아시아 등 저개발국에 사는 이들이 필요한 기술은 크게 주목받지 못합니다. 이렇게 되면 경제성은 없지만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필요한 기술은 자연스레 외면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과학기술은 중립적이란 말은 어떤 기술을 개발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순간에서부터 틀린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지점이 있습니다. 내가 개발한 과학기술을 사회가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를 이미 예상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어떤 기술이든 연구를 시작할 시점에서 이미 주요한 수용지점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기초과학의 경우 수용 지점이 불분명하기도 하지만 공학에 가까울수록 수용지점은 분명해집니다. 가령 자율주행 기술이라면 자동차나 선박, 비행기 등 모빌리티에 적용하는 것이 당연한 목표입니다. 그런데 이 기술을 수용해서 적용할 수 있는 건 자동차회사나 비행기제조사, 선박제조사 등입니다. 이들의 기업 이익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됩니다. 그런데 자율주행이 본격화되면 다양한 사회적 파급이 생겨납니다. 그 중 가장 피해를 볼 사람들은 운전을 하는 사람들이 되겠죠. 자율주행이 가장 먼저 도입될 영역은 아무래도 사람보다는 화물을 싣는 트럭입니다. 그 중에서도 컨테이너 트럭처럼 항구에서 물류기지를 왕복하는 일정한 노선을 가진 경우가 가장 쉽습니다. 화물운전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을 확률이 가장 높지요. 물론 긍정적인 영향도 있습니다. 인건비 등 운영비 문제로 운행횟수가 적은 농촌 지역 버스의 경우 자율주행이 도입되면 더 자주 운행할 수 있겠죠. 이렇듯 대부분의 기술은 도입되면 정확히는 아니어도 그 영향이 어떠할지 대충 가늠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죠. 스텔스 기술의 경우 전투기나 전함이 상대방의 레이더에 발견되지 않게 끔 하는 것이 연구의 기본적인 목표입니다. 이런 경우 스텔스 기술이 군사용이라는 사실이 아주 명확하지요. 물론 나중에 스텔스 기술의 다른 응용처가 나타날 수 있지만 그걸 기대하고 개발하는 것은 아니지요. 그런데 세계 평화를 위해서 주요 나라들의 군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스텔스 기술을 개발할 수 있을까요? 또 하나 스텔스 기술은 기존에 전투기를 생산할 수 있는 일부 국가에게는 아주 중요한 기술이겠지만 스스로 전투기를 만들 수 없어 타국으로부터 수입해야하거나, 수입하더라도 돈이 없어 몇 대 살 수 없는 나라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입니다. 결국 스텔스 기술과 같은 군사기술은 강대국과 약소국의 국방력 격차를 더욱 크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이 기술이 가치중립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최소한 이 기술을 개발하려는 당사자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애써 기술이 만들 미래의 영향에 대해 무관심할 수는 있지만, 그 무관심 자체가 하나의 입장이라 볼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외에도 과학기술이 가치중립적이지 않은 이유가 더 있겠습니다만, 이정도에서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작성자: 박재용 (전업 작가, ESC 지구환경에너지위원회 부위원장)
과학과 사회가 만나는 곳, 과학과 인간이 만나는 곳에 대한 글을 주로 썼습니다. 지금은 과학과 함께 사회문제에 대한 통계를 바탕으로 한 글을 자주 쓰고 있습니다. 출간된 책으로는 '불평등한 선진국', '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한 통계 이야기', '1.5도 생존을 위한 멈춤', '웰컴 투 사이언스 월드', '과학 VS 과학' 등 20여 종이 있습니다.
출처
본 글은 사단법인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에서 제작한 콘텐츠로, ESC에서 운영 중인 과학기술인 커뮤니티 '숲사이(원문링크) '에 등록된 정보입니다.
ESC: https://www.esckorea.org/
숲사이: https://soopsci.com/
코멘트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