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섹스 잘(?)하고 싶은 남자들> by 남함페 이한
벌거 벗은 남자들 : 새로 쓰는 남성 섹슈얼리티
• 이 프로젝트는 기존 남성 섹슈얼리티의 재탕이 아니라, 새로 쓰는 남성 섹슈얼리티다.
• 편견과 왜곡, 위계와 대상화로 가득한 남성 섹슈얼리티의 실체를 고발하고 비판해야 한다.
• 그 자리를 더 나은 질문과 고민을 통과한 남성 섹슈얼리티의 탐구로 채워야 한다.
• 그러기 위해서는 남성의 내부고발, 실제적인 경험, 고민과 성찰이 필요하다.
* 이 글에는 인터넷 용어 또는 혐오 표현을 직접 인용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나, 차별과 혐오의 재생산이 아닌 비판에 그 목적이 있으며, 가급적 사용을 지양하려 노력하였음을 미리 밝힙니다.
섹스… 드디어 섹스 이야기다. 이전부터 꾸준히 이와 관련한 주제로 글을 쓰고자 벼르고 있었으나 지면의 한계상, 체면과 엄숙주의 등으로 인해 글 써볼 겨를이 없었다. 허나 성교육을 하는 직업 특성상, 또 남함페 활동을 하면서, 언젠가 이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아니 해야만 하지 않을까 늘 마음에 두고 있었다. 사실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남성들이 또 섹스 이야기를 한다는 게 자못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다. 남성이라는 젠더 권력을 지닌 존재의 배부른 소리라는 비판의 여지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프롤로그에서 밝힌 바와 같이, 남성의 섹스 이야기는 이미 너~무 차고 넘쳐 고리타분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실로 남자 중·고등학교에 강의를 가면 복도에서부터 아무런 이유도, 의미도 없이 “섹스~!”를 외치는 남자 청소년 무리를 목격할 수 있다. 본격적으로 성교육을 시작하겠다고 하면 ‘나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어’라는 묘한 웃음을 띤 채 거들먹거리는 이들 역시 한 트럭이다. 허나 안타깝게도 현실에서 남성 청소년의 성 지식수준은 늘 또래 여성에 비해 낮은 편이다. 일례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18년 연구(조영주 외 3인 '청소년 성교육 수요조사 연구')에 따르면 중학생을 대상으로 ‘성에 대한 지식수준’을 살펴본 결과, 여성 청소년이 평균 4.29점일 때, 남자 청소년은 3.16점이었다. 그런 와중에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현실과 동떨어진 여성혐오적이거나 폭력적인 섹스 이야기만 떠돈다. 그 결과는 참혹해서, 한동안 인터넷에는 ‘3분 카레’(빠른 사정 또는 조루에 대한 은유)나 ‘6.9cm’(한국 남성의 성기가 6.9cm라는 조롱)라는 숫자에 과민반응을 보이며 온갖 손가락 모양에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는 남성들의 횡포가 요란했다. 대체 이 엉망진창 와장창의 사태는 어떻게, 왜 만들어진 걸까? 그것을 알기 위해, 남성이 섹스에 대해 가지고 있는 환상과 공포를 진솔히 이야기 나누는 과정이 필요하다. 열광하면서도 또 한편으로 아무도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은 채 겉핥기 식으로 다루어지는 남성들의 섹스 이야기, 오늘 한 번 원 없이 해보자.
"너희들의 첫 섹스는 아마 실패할거야"
간혹 남자 고등학교에서 성교육을 하게 되면 정말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매번 온통 입시 위주의 교육을 받다가 성교육이라고 하니 얼마나 신나고 즐겁겠는가.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이들에게 꼭 필요한 성을 최대한 즐거우면서도 기억에 남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한다. 그 일환으로 성적인 관계 맺음에 대한 교육을 할 때, 들뜬 청소년을 진정시키며 던지는 말이 있다.
“여러분 중 약 90%의 첫 섹스는 실패할 겁니다.”
교실에서 섹스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에 잔뜩 흥분했던 청소년들은 강사가 던진 이 한마디에 갑자기 찬물이라도 맞은 듯 조용해진다. 그럼 이때, 한 마디를 더한다.
“자, 이제 여러분은 첫 섹스가 끝나고 분명 제가 떠오르게 될 거예요.”
첫 섹스에 대한 환상을 깨는 걸로도 모자라서, 그 아름답고 기대했던 순간에 웬 강사의 얼굴이 떠오르게 될 거라니. 청소년들은 폭소를 터뜨리며 자신의 첫 경험에 초를 친 강사에게 야유를 퍼붓거나 불안해하며 자신은 10%일 것이 분명하다고 초조해하고 낄낄거리거나 괴로워한다. 그럼 이제 한결 개운한 표정으로 위 이야기를 한 까닭을 설명한다. 첫 섹스가 실패할 거라는 이야기는 질투 섞인 저주도, 오지랖 넘치는 예언도 아니다. 그것은 유경험자의 회환과 안타까움이 담긴 염려의 말이자 섹스에 대한 환상과 오해를 벗기기 위한 시도다. 실로 나뿐만 아니라 작년 남성 섹슈얼리티 탐구 인터뷰와 주변인들의 많은 공통된 이야기 중 하나가 첫 섹스의 실패였다. 어떤 이는 어떻게 섹스를 시작해야 하는지 몰라 분위기를 깨버렸고 어떤 이는 삽입(결합) 하는 방법을 몰라 쩔쩔맸다. 더 많은 이들이 지나치게 긴장하여 ‘야동’에서 본 것과 다르게 너무 빨리 사정하거나 발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부끄러워하거나 속상해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이들이 동의를 제대로 구하지 못하거나 피임 방법을 잘 몰라서, 마땅한 시간과 장소가 없었다거나 서로 제대로 소통하는 법을 몰라서 등등으로 첫 섹스의 실패를 기억했다. 수많은 남성들이 첫 섹스에 갖고 있는 환상이 무색하게도 말이다.
많은 이들의 첫 섹스에 이렇게 공통적으로 실패 경험이 묻어 있는 건, 당연히 저 이야기를 한 강사 때문이 아니며 그저 남자 청소년만의 문제도 아니다. 가장 큰 원인은 학교를 비롯한 교육과정과 기성세대 전반이 마치 세상에 섹스라곤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터부시하며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20년 발생한 ‘나다움 어린이책’ 사업을 둘러싼 파열음만 봐도 그렇다. 많은 전문가들이 숙고하여 좋은 책으로 꼽았고 해외에서 우수도서로 뽑혔던 책이 한국에서는 보수 개신교 세력의 횡포로 부적절한 음란물 마냥 취급되며 회수됐다. 비단 일부 사례, 과거의 문제가 아니다. 여전히 고등학교에서 피임 교육 한 번 하려면 담당 선생님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당장 지난주에 출강 갔던 학교에서도 콘돔 시연이 문제가 될 여지가 있다며 꺼려 하여 그 과정을 오직 말로 설명해야 했다. 막상 현장에서 만난 학생들은 왜 청소년에게 돌기형이나 초박형 콘돔을 팔지 않는지 물어보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성표현물(이른바 ‘야동’으로 이야기되는 음란물)을 제대로 관리하는 것도 아니라서 당장 거의 대부분의 청소년이 VPN(IP우회 접속으로, 해외 성인 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다) 사용법을 알고 ‘야동’을 놀이문화처럼 여기고 있으니 제대로 된 성적인 관계 맺음이 요원한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섹스는 오르가슴을 위한 프로젝트 사업이 아니다
많은 성표현물에서 여성이 성관계를 맺는 주체가 아닌 오직 남성의 성욕을 위해 대상화되고 폭력적으로 다루어진다는 문제는 이미 다른 곳에서도 이야기되었다. 거기에 더해 성표현물로 배운 섹스의 또 한 가지 문제는 그것이 과정과 소통 없이 오르가슴만을 향한 급행열차처럼 그려진다는 데 있다. 남성의 섹슈얼리티에 관심 가지면서 의아했던 지점 중 하나는 많은 남성이 마치 섹스에 환장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면서도 또 한편으로 어떤 섹스는 두려워하거나 피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대표적으로 기혼 남성의 섹스가 그렇다. ‘의무방어전’,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라는 말은 인터넷 밈이 되었고 샤워하는 아내를 두려워하는 남성은 드라마, 영화에서 유머 코드로 흔히 쓰인다. 한창 섹스 노래를 부르던 이들에게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비단 나이가 들면서 변하는 호르몬과 체력만의 문제는 아니다. 많은 남성이 섹스와 섹스 과정에서 소통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오직 ‘야동’에서만 접하다 보니 섹스가 오직 오르가슴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프로젝트처럼 여겨지게 되고 그 방법도 더 세고 빠르고 오래가는 것이 전부라 생각하게 된다. 즉 섹스에서 마저도 일종의 결과지상주의(?)가 작용하여 도달해야 할 목표에 도달하지 않으면 실패하고 만다는 생각에 젖어들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남성은 늘 섹스에 환장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사회에서 그에 부합하지 못하는 남성의 남성성은 쉽게 의심받으니 아예 섹스 자체를 부담스러워하게 된다. 허나 섹스는 오르가슴을 위한 프로젝트 사업이 아니고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은 더더욱 아니다. 만약 오르가슴이 섹스의 전부라면, 세고 빠르고 오래가는 게 최고의 남성성이라면, 그 어떤 남성도 싸구려 딜도에 비하지 못할 것이다.
섹스를 '잘'하고 싶다면
그러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한 사람으로서 딜도와 경쟁하지 않고 나도 즐겁고 상대도 즐거운 섹스를 하며 살아갈 수는 없을까? 섹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나도 마땅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못 되고 모두에게 통용되는 명료한 답 따위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나와 상대, 그리고 섹스를 둘러싼 우리 사회에 질문을 던지고 소통하는 것이 정력에 좋다는 음식을 먹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만족감과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이 있다. 이를테면 우리는 왜 섹스를 하는가? 단순히 성기에서 느껴지는 쾌감을 위해서라면 자위라는 가성비 좋은 활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섹스를 하는가? 평소 섹스의 만족도는 어떤가? 만약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불법 촬영에 대한 공포? 예상치 못한 임신에 대한 염려? 사회적 낙인이나 앞서 말한 남성성 증명에 대한 불안 때문은 아닌가? 섹스할 때 들이는 공과 시간 같은 기여도(?)는 어떠한가? 5:5로 공평하게 나눠 갖고 있는가? 기울어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섹스의 시작과 끝은 무엇인가? 삽입 섹스만이 섹스의 전부인가? 등등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길고 밤은 짧다.
섹스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는 건, 이게 비단 음담패설이 아닌 관계에 대한, 우리의 삶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페미니즘 운동에서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말로 우리 일상이 정치·사회와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이야기했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페미니스트로 이름을 남긴 나혜석은 “사람들이 평등하지 않은 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자유롭고 평등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라는 말로 우리의 사랑이 사회의 평등과 연관되어 있다는 깨달음을 남겼다. 그러니 이제 우리 차례다. 당신의 건강하고 즐거운 성생활을 위해, 그리고 우리 모두의 평등하고 안전한 일상을 위해 부디 당신의 낮과 밤에 섹스에 관한 이야기가 가득하기를 빈다.
[참고] 본 글은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이 작성하여 미디어 플랫폼 '얼룩소'에 동시 연재되고 있습니다.
얼룩소 4화 원문 주소 : https://alook.so/posts/54t4B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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