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ghtsCon(이하 ‘라이츠콘')은 디지털 시대의 인권에 대한 국제 컨퍼런스로, 지난 2011년부터 Access Now의 주관으로 5개 대륙을 돌며 매년 개최되고 있습니다. 올해는 코스타리카에서 6월 5일부터 8일까지 4일 간 진행되었고, 600개가 넘는 세션에서 174개국의 8100명 이상의 참가자들이 모여 성황리에 열렸다고 하는데요. 디지털 기술로 민주주의의 미래를 만드는 비영리 플랫폼 협동조합인 사회적협동조합 빠띠의 크루들도 일부 세션에 참여하여 각 세부 주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실제 활동으로 이어갈 수 있는 지점을 모색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라이츠콘에 다녀온 빠띠의 크루 제이, 미키, 리디아의 여정과 함께, 디지털 시대에서 더 나은 민주주의를 만들어 가는 빠띠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데이터 거버넌스 - 집단적이고, 민주적이고, 정의롭게
라이츠콘이 활짝 문을 연 6월 6일, ‘Collective, democratic, and just: towards a new global agenda on data governance policy and practice (집단적이고, 민주적이고, 정의롭게: 데이터 거버넌스 정책과 실천에 관한 새로운 글로벌 아젠다를 향하여)’ 라는 주제의 라운드테이블 세션이 진행되었습니다. 본 세션에는 주제에 관심있는 다양한 국적의 참가자들이 각자가 머무르고 있는 지역에서 온라인으로 입장했으며, 주요 패널들과 함께 데이터 거버넌스에 관한 이야기를 약 1시간 나누었습니다. 세션의 요지는 지금까지 데이터 거버넌스의 법, 정책, 프레임워크는 개별적인 데이터 피해에 초점을 맞춰왔다면, 앞으로는 데이터의 관계적인 특성과 공공의 가치, 그리고 집단적인 피해를 더욱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나아가 G20을 활용하거나 국제적인 차원에서 데이터 거버넌스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어떤 과제가 놓여있는지도 함께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빠띠는 시민의 참여와 기여로 공익데이터를 만들고, 다시 개방하여 더 많은 시민에게 공유하는 여러 실험을 해왔는데요. 2021년에는 대구 공익데이터 실험실을 통해 대구 시민 활동가가 데이터로 도시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그리고 올해에는 그린워싱, 청년 주거 등의 이슈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시민 공익데이터 실험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시민이 주도하는 열린 데이터 생태계를 만들어 더 나은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한 데이터X도 새롭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데이터 거버넌스에 대해 국제사회의 다른 활동가와 전문가들은 최근 어떤 의견을 제시하고 있고, 함께 나아갈 방향은 어떠한지 조금 더 심도있게 살펴보고자 이번 세션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본 세션은 Connected by Data의 Jeni Tennison이 이끌고, 인도의 Aapti Institute 공동 창립자 Astha Kapoor, Research ICT Africa의 디렉터 Alison Gillwald, Datasphere Initiative 의 공동 창립자 Carolina Rossini가 주요 패널로 참여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세계 각지에서 데이터 거버넌스를 연구하고, 데이터의 더 나은 가치 실현을 위해 고민하고 행동하는 전문가였습니다.
모두를 위한 데이터 거버넌스를 향하여
데이터 거버넌스란 데이터의 수집, 사용, 폐기의 전 과정에서 어떠한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도록 적용되는 결정 권한과 책임의 프로세스를 의미합니다. 세션에서는 데이터 거버넌스에서 개인데이터와 비개인데이터를 구분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비개인데이터’란 개인데이터가 아닌 데이터로, 어떤 사람과 관련되지 않은 데이터 및 나중에 익명화된 데이터를 의미합니다.) Alison Gillwald는 기존의 데이터 규제 정책이 프라이버시 침해와 같이 개인의 개별 피해에 중점을 두고 있고, 데이터 거버넌스 상에서 발생하는 불평등 문제는 잘 다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개인 정보가 무조건적으로 보호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코로나19를 대응하던 시기처럼 공동체 전체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개인 데이터도 제공해야 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규제의 개념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데이터에 접근하는 단계부터 배제되어 있는 사람들은 실제 의사결정에 활용되는 데이터셋에서도 제외되기 때문에, 잘못된 데이터 거버넌스로 인해 이들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데이터를 컨트롤하는 주체의 권력을 조정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뒤이어 Astha Kapoor는 지금껏 개인데이터는 보호되어야 하고 비개인데이터는 공유되어야 한다는 이분법적인 생각이 계속 대두되어 왔는데, 데이터 거버넌스에 접근할 때는 데이터의 사용처나 유형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기준으로 접근해야한다고 답했습니다. Carolina Rossini 또한 어떤 데이터가 사회에 해악을 일으킬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파악하고 구분하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의견을 더했습니다.
자연스레 ‘데이터 거버넌스를 어떤 식으로 구현해보면 좋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사람들이 함께 자본을 공유하고 집단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협동조합의 방식을 데이터에도 적용해보자는 ‘데이터 협동조합’에 대한 의견이 제시되었습니다. 다만 유형자산의 경우 소유나 피해가 명확하게 보이는 반면, 무형자산에 가까운 데이터의 경우 사람들이 정확하게 어디에서 어떤 피해를 입고 있는지, 심지어는 피해를 입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는 경우가 워낙 많다보니, 정확한 정보를 토대로 한 원활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기에는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에 관해 규제하는 방식보다는 데이터 협동조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인센티브와 가치를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나아가 데이터를 컨트롤하고 관리할 주체가 적절한 인원으로 구성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으므로, 데이터 거버넌스가 하향식(Top-down)이 아닌 상향식(Bottom-up)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상향식을 채택하더라도 다양한 계층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구성되어야 한다는 점도 함께 강조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G20 등 국제 무대에서 시도해볼 수 있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각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데이터 관련 법안을 만들고 있는데, 기후 변화나 이주민 문제, 팬데믹 등 국제적으로 함께 해결해나가야 할 의제들도 있기 때문에 데이터 거버넌스에 대한 논의가 국제적으로 더욱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습니다. 자원이 부족한 국가일수록 디지털과 데이터 정보 개방이 주는 이점이 많기 때문에 데이터 거버넌스가 공공재로 실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동시에, 글로벌 협력과 디지털 데이터 주권 분쟁이 더 큰 논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말도 함께 언급되었습니다. 따라서 다자 간 포럼보다는 오히려 양자 간 협정 등의 소규모로 이루어질 수 있는 데이터 협력이 더 많을 수 있다고 하는데요. 무엇보다 이러한 논의들이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음을 G20의 외교관이나 정책 입안자들이 인지할 수 있도록 해서 협력으로 이어지게 해야한다는 점에 대해 세션의 모든 참여자에게 당부하며 라운드테이블은 마무리되었습니다.
시민의 주도로 데이터를 모으고, 만들고, 활용하기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되던 2020년 초, 사회적협동조합 빠띠의 데이터팀은 코로나맵 서비스를 제공하던 팀들에게 연락한 후 함께 힘을 모아 코로나19 공공데이터 공공대응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정부에 직접적으로 코로나19 관련 데이터를 공공 데이터로 공개해달라고 요청하고 받아들여져, 공적 마스크 재고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앱이 만들어졌습니다. 기술을 가진 시민과 자원을 제공하는 정부의 데이터 관련 민관협력이 판데믹 상황에서 시민들의 혼란을 줄이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키가 된 것이죠. 세션에서 이야기 한 데이터 거버넌스가 협력적으로 잘 작동한 사례로도 생각이 되었습니다. (자세한 과정은 코드포코리아 위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후 코로나19 공공데이터 공공대응은 ‘코드포코리아'가 되어 한국 사회를 위해 기술을 활용하려는 시민 개발자(시빅해커) 네트워크로 나아가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빠띠는 더 넓은 범위의 시민들이 주도적으로 문제를 설정하고 데이터를 활용해 해결하는 ‘공익데이터 실험실’을 운영해 오고 있는데요. 공익데이터란 정부에서 공개하는 공공데이터를 넘어서서 공공의 자금이 들여 만들어진 후 공개된 데이터, 그리고 민간에서 만들었더라도 공공을 위해 제공되는 데이터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또한 지금 우리 사회는 데이터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고,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부 정책, 기업 행동, 의사결정이 대부분 우리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활용하여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데이터 주체로서 권리를 행사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빠띠는 공익데이터 실험실을 통해 우리 시민 스스로 데이터를 해석하고 활용할 수 있는 리터러시(Literacy)를 갖출 수 있도록 하고, 정부 및 기업과도 협력하여 더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활동을 이루고자 해왔던 것입니다.
?2020년 공익데이터 실험실 가을 스프린트 자세히 보기
?2023년 공익데이터 실험실 1기 결과 공론장 후기 : 그린워싱을 넘어, 함께 그린 공론장
빠띠는 앞으로도 더 많은 공익데이터 활동을 해 나가려 합니다. 모두를 위한 데이터가 될 수 있도록, 시민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양질의 데이터가 더 많아질 수 있도록, 공익데이터 실험실의 지속적인 운영과 함께 데이터의 사회적 가치를 제고할 수 있는 데이터 거버넌스도 구축해나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세션에 참석한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던 것처럼, 더 민주적인 데이터 거버넌스를 만들기 위한 국제적인 논의에도 적극적으로 함께하고, 더 많은 사람들과의 연대를 통해 협력을 이루며 모두를 위한 데이터를 향한 여정을 지속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데이터의 주체인 우리가 시민으로서 마땅히 주어진 데이터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더 많이 모이고 끊임없이 이야기한다면, ‘모두를 위한 데이터’가 머지 않아 보일 수 있지 않을까요?
코멘트
5데이터는 그간 기술적 차원에서나 의미를 갖는 개념으로 이해되어 왔지만, 최근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데이터를 조망하는 경우가 굉장히 늘어난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데이터의 민주성 제고와 민주적 데이터의 생산 및 운용을 위해 노력해온 빠띠의 활동들이 참 대단하다 느껴집니다. 항상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