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집'이라는 권력

2023.07.17

542
10
활동이란 무엇인가 고민하는 활동가

‘집’에는 두 종류가 있다. ‘내 집’과 ‘남의 집’. ‘집’을 꿈꾸는 사람 대부분은 나의 집을 그린다. ‘나의 집’은 유목으로부터, 금리 변동으로부터 자유롭다. ‘나의 집’은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영원한 이상이다. 대부분의 삶은 남의 집에서 시작된다. 세입자로서 좋은 집 소유자, 도덕적인 공인중개사를 만나기를 간절히 빌며 일상의 근간을 행운에 맡긴다. 집은 곧 권력이다. 

2023년 상반기, 희대의 전세사기 피해로 네 명의 희생자가 삶을 포기했다. 인천, 서울 지역에서 발생한 전세사기로 보증금을 잃고 집을 빼앗기게 되는 상황 속에서 문제가 해결될 희망이 보이지 않아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이들의 삶을 비극으로 몰아넣은 사기꾼 가해자는 ‘빌라왕‘과 ’빌라의 신‘이라는 이름으로 조명됐다. 열 명이 채 안 되는 소수의 사기 가해자들은 혼자서 수 십 채, 수 백 채에 달하는 집을 소유했다. 신축 빌라를 중심으로 펼쳐진 대대적인 전세 사기극은 공인중개사, 금융 당국, 정부의 전세 대란 유발 정책 속에서 기가막히게 짜였다. 

전세사기극의 피해, 이제 시작일 뿐

한 개인이 수도권 내 수천 채의 집을 소유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물리적 조건에 대한 물음이 아니다. 그 ’발상‘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에 대한 물음이다. 어떤 목적과 목표를 두고 이런 플랜이 시작됐을까. 처음에는 아마 어마어마한 자본을 만들기 위해 사업을 구상했을 수도 있다. 초기 투자자본 없이 큰돈을 쥐기 위해 살펴봤을 때 부동산시장에서 가능성을 엿봤을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주택 대출규제 완화와 문재인 정권의 임대차 3법 도입 등 주거정책이 시행될 때면 부동산 시장에는 큰 물결이 친다. 정책의 의도가 어쨌든, 한국 사회의 부동산 시장에 큰 파동을 일으키고, 그 피해와 타격은 세입자들에게 전가된다. 전세라는 기형적인 제도는 갭투자자들을 위한 영역으로서 투자 완화의 입김을 철저히 거부하고 오로지 시장 변화를 바라본다. 

’집‘이 아무리 투기의 영역이라고 해도, 마음먹은 몇몇의 개인이 무자본으로 수천 채의 집을 소유한 사례는 한국 사회의 집 투기 구조가 극도로 비정상임을 증명한다. 여기에는 시나리오를 짜고 플랜대로 움직인 사기꾼과 공인중개사들뿐만 아니라 이 구조에 편승하여 거대한 이익을 창출하는 금융당국도 포함된다. 대출상품을 있는 대로 팔아치우고 전세금 회수를 못하면 경매로 팔아넘기니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기 때문이다. 

겨우 살아거나 몽땅 잃거나

집은 더이상 개인의 삶의 터전과 같은 안전한 권리가 아니다. 집은 소유자가 세입자에게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이 되었다. 국가 정책도, 자본 시장 논리도 거주의 권리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주변 함께 활동하는 청년들 중 서울에 자취하는 청년들은 기본 1~2년에 한 번씩 집을 옮겨 다닌다. 관리비가 기준도 없이 너무 많이 올라서, 반지하 집이 장마로 침수되서, 한 칸짜리 방에서 삶이 유지가 안되서 등 이유도 다양하다. 이제는 이사다니는 풍경이 너무도 흔하고 자연스러워서 정착이나 뿌리내리기 같은 삶을 상상하기도 어렵다. 권리의 가치는 지하로 떨어져 침수되는 와중에 집의 권력은 더욱 공고해져만 간다. 

 이번의 심각한 전세사기 사태는 부동산 시장의 비정상성, 그 어긋난 균형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가혹하게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집은 권력이 아닌 권리가 되어야 한다. 집 계약은 (어찌됐든) 새로운 시작이며 전환점이다. 그 속에서 집은 새로운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일상의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 부디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피해 구제와 함께 일상으로의 복귀를 바란다. 거대한 구조 속 안타깝게 목숨을 끊은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공유하기

이슈

주거 안정

구독자 223명
삶의 기본 조건이라는 측면에서 주거권은 최우선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비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시장에만 맡겨둔 현 상황이 부적절하다는 점에서 지적해주신 부분에 동감하게 됩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벌어진 부동산 투기와 전세 사기 등 비상식적인 일들을 보면서 어느 누구도 안전하지 않은 세상이 됐다는 걸 느낍니다. 집이 권력이 되는 세상에 살고 싶진 않은데 이미 그런 세상에 도달해버린 것 같아요. 의식주처럼 삶의 기본이 되는 요소들을 '권력'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일이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한창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는 이야기가 유행했는데요. 사람의 목숨까지 뺏어갈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어느 사회에서 기괴하게 돈을 버는 방법이야 많지만, 이런 발상이 어떻게 가능했을지 구조를 잘 살펴봐야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삶의 공간과 열심히 사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 집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돈벌이 수단밖에 되지 않는 것이 처절한 차이로 느껴집니다. 살아갈 권리보다 사는(구매) 권리만 지켜지는 현실이 안타까워요.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집은 권력이 아니라 권리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에 매우 공감합니다…!!

안정적인 주거가 확보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서 삶이 크게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세 사기는 단순히 누군가의 전세자금을 넘어서 삶의 안정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는 일이라고 느껴져요. 집을 단순한 상품, 가치, 재산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돈으로 다른 사람의 삶을 빼앗지 않는다'는 최소한의 윤리가 지켜지는 사회가 됐으면 해요.
모두가 '내 집' 정도는 가질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ㅠ
"’집‘이 아무리 투기의 영역이라고 해도, 마음먹은 몇몇의 개인이 무자본으로 수천 채의 집을 소유한 사례는 한국 사회의 집 투기 구조가 극도로 비정상임을 증명한다." "집은 더이상 개인의 삶의 터전과 같은 안전한 권리가 아니다. 집은 소유자가 세입자에게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이 되었다."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집은 권력이 아닌 권리가 되어야 한다. 집 계약은 (어찌됐든) 새로운 시작이며 전환점이다. 그 속에서 집은 새로운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일상의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 공감하게 되네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집은 '편안하게 쉴 곳'이기보다는 자산 증식의 수단이 되고, 그 자산 증식의 수단이라는 말이 합법적 차원을 넘어, 세입자의 사회적 삶을 끝장내는 사기와 강탈의 대상/영역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건설자본주의 사회의 '신'과 '왕'이 강탈을 하고, 지탄의 대상이 되고,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을 보면 여전히 근대사회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전근대 사회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겨우 살아가거나 몽땅 잃거나,, 정말 공감됩니다. 집은 살아가는 공간인데 누군가에겐 이게 투기가 되고, 그로 인해 삶을 송두리째 흔들리고 빼앗기는 사람들이 있는 게 참 이상합니다. 삶을 위한 필수 요소로서의 집과 상품으로서의 집을 분리해야하지 않나 생각도 듭니다.
집을 자산으로만 보는 시각이 조금이라도 사그라 들어야 문제 해결이 시작될 것 같은데요. 집에 대한 욕구는 당연하지만. 집을 부의 축적이라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에 대한 토론은 없는 것 같습니다. 경제적 자유가 충분히 보장되는 것이 자본주의이긴 하지만. 지금의 자본주의에선 그 경제적 자유를 공고히 할수록 많은 사람들의 기회가 없어지는 결과를 빗기도 합니다. 주거 문제처럼 말이죠. 그런 자각이 조금씩 든다면... 근데, 너무 어려운 일이겠죠? 우울한 주제이지만, 첫번째 단락의 내용은 정말 마음에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