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영화 'P짱은 내 친구'로 보는 동물권 교육

2023.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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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가 일으키는 것들로 사랑을 잃지 않는 세상

*대체텍스트 있음


 영화 <P짱은 내 친구(School Days with a Pig)>를 아시나요? 2008년에 개봉했음에도 교육계에서는 여전히 자주 언급되는 영화입니다.

 포스터
영화 <P짱은 내 친구> 개봉 당시 포스터. 상단에는 돼지의 사진이, 하단에는 6학년 2반 구성원들의 사진이 있다.


 <P짱은 내 친구>는 일본의 한 초등학교 6학년 2반 교실에서 새어 나오는 목소리로 시작합니다. 학생들은 1년을 함께 보낸 ‘P짱’을 죽여야 하는가에 대해 열띠게 토론 중 입니다. P짱은 이 반에서 키우던 돼지입니다. 담임인 신입 교사 ‘호시’는 학생들이 직접 돼지를 키우고 잡아먹는 과정을 겪음으로 음식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 주고자 수업을 기획했습니다. 학생들은 장마철이 되면 비를 뚫고 달려가 P짱의 집을 고쳐주었습니다. 경찰이 탈출한 P짱을 그물로 잡아끌자 온몸을 던져 막아내며, 한 마음으로 이 돼지 친구를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졸업 전 P짱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할 때는 정반대의 생각으로 나뉘었어요. 육가공센터에 보내자는 학생과 이어 키워줄 사람을 구하자는 학생. 두 의견을 가진 학생들의 토론에서 동물권 교육에 대한 논쟁점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P짱은 무엇을 위해 사는 거야? 잡아먹히기 위해 사는 거야?”

 2020년 11월 경남어류양식협회가 집회에서 살아있는 물살이를 바닥에 던지는 퍼포먼스를 해 논란이 되었습니다. 당시 경찰의 동물보호법 위반 고소에 검찰은 ‘식용 목적으로 키워졌기 때문에 위반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현재 동물보호법의 ‘동물’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신경 체계가 발달한 척추동물로 정의하며 어류도 포함한다. 하지만 식용 목적인 경우는 동물보호법 대상에서 제외된다.) 2021년 5-6월 SBS 뉴스는 온라인 기사를 통해 '활어를 내던진 행위'가 동물학대인지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동물학대라는 답은 53%, 아니라는 답은 47%로 팽팽한 접전이 일어났습니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 동물권에 대한 여론이 합의되지 않은 시기임을 알 수 있는 사례입니다.

 인간은 목적에 따라 가치를 판단하여 동물을 반려동물과 식용동물로 나누고 있습니다. 가축화는 동물을 인간에게 더 유용하게 개량하기 위해 시작되었어요. 인간이 한 동물의 번식과 먹이 공급을 통제하여 용도에 맞춰 선택적으로 번식시키는 과정입니다.(<총균쇠> 중) 사육이 동물은 물론, 인간 생태계에서도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라는 뜻과 같습니다. 동물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여전히 모순적입니다. 어떤 동물은 인간의 가족 구성원이 되지만 어떤 동물은 고기, 물건, 오락거리가 되지요. 6학년 2반 학생들은 돼지와의 생활을 통해 매 순간 생명력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P짱’이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었어요. 생명에 대한 감수성은 종을 차별하지 않고 생겨나는 소중한 인권 의식입니다. 이에 대한 학습 없이 활동을 진행한 것은 학생에게 트라우마 또는 편견이 생길 수도 있는 위험한 교수법이었습니다. 

“생명의 길이는 누가 정하나요?”

(- 아무도 정할 수 없는 거야.)

“그런데 우리 모두 P짱의 생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 한 세대가 전염병에 걸려 그 공간에 함께 살던 사람들 모두를 생매장하여 죽이다.
  • 태어난 아가를 엄마로부터 빼앗아 작고 더러운 방에 감금하다.

 이 끔찍한 범죄를 묘사하는 듯한 문장들을 읽고 어떤 감정이 드셨나요? ‘닭’ 대신 ‘사람’으로, ‘송아지’ 대신 ‘아가’로 바꿔 적은 문장입니다. 인간을 농장동물로 다시 대체하여 읽어봅니다. 이번에는 어떤 감정이 드시나요? 

 종차별주의란 어떤 종에 속한 개체가 다른 종 개체보다 더 우위에 있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속한 종의 이익만 우선시하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이는 물‘고기’나 ‘젖’소처럼 우리가 동물을 부르는 언어에서도 쉽게 드러납니다. 모든 동물권 교육은 종차별주의에 유의하여 기획되어야 합니다. 어린이 대상 교육에서는 어느 주제든 다른 종에 공감을 요구하는 내용이 많은 편입니다. 환경 이슈에 ‘북극곰을 살리자’는 슬로건이 아직도 쓰일 만큼 어린이 세대는 동물의 쾌고감수능력을 비교적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하는 편입니다.

 영화 속 “체육 시간도 아니고 돼지랑 뛰어놀다가 다쳐야 하나요?”라고 항의하는 학부모들과 전학생 ‘하나’의 반응 차이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품으로 뛰어든 P짱을 안아 그의 심장박동을 느낀 이후, 하나는 P짱과 진심어린 관계를 맺기 시작합니다. 물을 뿌리며 괴롭히는 친구에게 P짱 대신 복수를 해주거나 답답한 집(사육장)을 탈출시켜 주기 위해 애쓰기도 했습니다. 지금 어린이, 청소년 세대가 주로 학습하는 동물권 교육은 동물에게 공감하는 활동에서 끝이 나곤 합니다. 동물원의 한계성 또는 동물에게 물리적 폭력을 가하는 학대만을 설명하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초기 인식 교육만 시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또한 매우 중요하나 공장식 축산이나 생츄어리 등에 대한 심화 개념은 알려주지 않습니다. 심지어 학습자료에서 언급하는 ‘동물’은 모든 종을 뜻하지 않았습니다. 어린이의 발달과 교육 과정에 생태감수성은 필수적인 가치입니다. 생태활동가 김산하 박사 말씀처럼 ‘생태감수성은 생명, 삶에 대한 이해, 정서의 총체’이기 때문입니다. P짱과 놀고 있는 학생들 뒤로 체육 선생님이 지나갑니다. 웃으며 “P짱이 먹음직스럽게 잘 컸구나”라고 말하지요. 학생들의 표정이 굳고 잠시 고요해집니다. 이 순간 느꼈을 당혹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감정인지 학생 스스로 알고 있었다면 그들만의 방식대로 회복하고 대응할 수 있었을 겁니다. 

 졸업 후 P짱의 거처를 위한 학생들의 토론에 정답이란 없었겠지요. 하지만 결론이 절실한 시간이었습니다. 그 결론에는 한 생명에 대한 책임이 달려있고, 그걸 알고 있는 학생들은 이 시간을 매우 힘겨워했습니다. 결국 이 혼란을 마지막으로 정리한 사람은 호시였습니다. 교사 또한 교육으로부터 배우는 사람이기에 호시에게도 어려운 결정이었을 겁니다. 이 영화는 오사카에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영화 장면 속 상처 받은 학생들의 표정이 달리 보입니다. 역시나 생태감수성이 부재한 호시의 수업이 매우 아쉬웠습니다.  

“죽이는 거랑 먹는 건 달라. 죽이는 건 생명을 뺏는 거고 먹는 건 생명을 이어받는 거야.”

 토론 중 한 학생이 이런 말을 합니다. 

 “다른 동물은 먹으면서 P짱만 불쌍하고 다른 동물들은 아무렇지 않다는 건 이상하지 않아?”

 먹이사슬을 보면 육식동물의 종은 아주 많습니다. 하지만 자연이 허락하는 것보다 더 과하게 먹기 위해 다른 종을 사육, 유전자 변이까지 하는 개체는 인간뿐입니다. 지구에 사는 비인간 육상동물 중 67%가 사람이 먹기 위해 키우는 가축이라지요. (방목지와 사료용 작물 재배지는 전 세계 농경지의 77%를 차지한다.) 지구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동물 절반 이상이 ‘인간’이라는 한 종을 위해 자라고 있습니다.

 팬데믹 직후 도시는 사람의 발길이 끊겨 고요해졌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심했던 그때 도시에 야생동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과 비인간 동물이 길항적 관계가 되었다는 걸 알 수 있던 단편적 사례였습니다. 사실 지금껏 단 한 번도 인간과 야생동물이 함께 살아가지 않은 날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야생동물이 나타나면 ‘무법자’ 등으로 표현하며 살생하거나 쫓아냅니다. 인간 외의 생명을 불허하고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게 만들어야만 우리가 원하는 일상의 조건이 만들어지는 듯 보입니다. 어느 동물들은 죽어서야만 인간과 만날 수 있습니다. ‘치느님’, ‘우울할 땐 고기 앞으로’ 등 쉽게 유머로 접근되기도 합니다. 인간은 자신 외의 생명을 주변부화합니다. 살면서 살아있는 돼지와 한 번도 연결되어 보지 못한 사람에게 ‘돼지’란 그저 식탁에서만 볼 수 있는 먹거리일 뿐입니다. 동물과 직접 관계하고 마주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꼭 가축동물이거나 시골에 가야만 볼 수 있는 동물일 필요는 없을 거예요. 

 영화 속 호시가 강조한 것처럼 인간의 재생산 활동에 ‘식食’은 매우 중요합니다. 때문에 수업 목표를 실행하기 위한 교재로 ‘돼지’를 택했습니다. 그가 의도한 대로 학생 ‘신야’는 “생선 살이 단단하다는 건 열심히 살아서 그런 거니 더 잘 먹어야 한다”며 편식하던 습관도 고쳤습니다. 하지만 호시는 학생들이 동물과의 교감으로 '육식'이라는 행위 자체를 힘들어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특히나 동물권 교육 중에는 육식을 비난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과한 육식에 집착하며 특정 종을 먹이사슬 밖으로 빼내 사육하는 것이 아닌, 인간도 먹이 피라미드에 속한 종임을 인정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생태계를 파악하는 것은 모든 생명에게 중요한 과제입니다. 인간이 비인간동물의 재생산을 착취하여 고장 난 자연 생태계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 그로 인해 가속화된 기후위기를 배울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인간 생태계를 파괴하는 사회구조까지 알 수 있게 되지요. 동물권 교육은 동물과의 연결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와의 유기적인 연대 또한 회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주제입니다. 호시의 새로운 수업 기획을 위해 우리에게 어떤 공론의 과정이 필요할까요? 


+ 동물권행동 카라는 현직 교사들이 연구진으로 참여한 학습지도안을 매년 무료 배포 중이다. 동물권 교육의 커리큘럼과 활동지가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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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글 읽고나서 꼭 보고 싶은 영화가 되었어요!! 좋은 영화 소개와 좋은 글 감사합니다!
동물권에 대한 글을 많이 못읽어봤었는데요. 이렇게 보니 새로운 관점이 열리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단어나 용어 사용 하나에도 다른 종에 대한 경시가 들어가있었네요.
동물권 관련해서 이야이가 나올 때 자주 등장하는 영화입니다.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종종 이야기는 들었었어요. 나중에 영화를 읽고 와서 저도 함께 토론해 참여해보고 싶네요.
많은 분들이 깊이 생각해보고 나름대로의 답을 제시해야 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2008년에 이 영화를 접했을 때와 지금 다시 접할 때의 느낌이 상당히 다르네요. 그동안 이 이슈가 더 가까이 느껴지게 된 것 같습니다. 제 생활도 많이 바뀌었구요, 주변에서 공감해주는 친구들도 더 늘어난 것 같고요. 느리지만 이렇게 함께 발전해가는 건가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