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고서 외적인 문제들 (7가지)
최종보고서를 읽으면서 보고서로만은 드러나지 않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음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보고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국 보고서 외적인 부분들을 살펴보아야 여러 맥락들을 통해 보고서의 내용 자체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따라서 보고서를 둘러싼 몇 가지 중요한 요소들을 중심으로 살펴보았습니다.
1. 국제원자력기구(IAEA; 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는 어떤 곳인가?
서울대 최무영 교수는, IAEA의 영문 단체명을 보면 ‘국제원자력기구’라는 번역은 맞지 않고, ‘국제 원자력 에너지 알선 단체(agency)’가 맞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IAEA의 헌장 제 2조에 보면, 아래처럼 나와 있는데요.
“세계의 평화, 건강 및 번영에 원자력 에너지의 기여가 촉진 및 확산되도록 노력한다. IAEA는 IAEA가 제공한, 국가가 IAEA에 요구한, IAEA의 감독 하에, 그리고 통제 하에 제공된 원조가 더이상 군사적 목적에 이용되지 않도록 보장해야 한다.”
이처럼 IAEA라는 기구는 군사적 목적만 아니라면 원자력 에너지가 확산되도록 노력하는 기구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기구 성격상 원전사고가 미치는 인체의 영향이나 생태적 영향을 판단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어쩌면 애초에 그런 점들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한 기대가 아니었다 싶습니다. 보고서도 그런 관점에서 작성되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대한민국 외교부 소개자료)
2. 선수에게 심판을 맡기기?
2013년 후쿠시마 현장조사를 다녀온 IAEA 보고서에 오염수 '해양 방류'가 필요하다는 실무진의 의견이 처음 언급되었고, 2015년 후쿠시마 원전과 관련한 종합보고서에서는 이들의 의견을 인용하면서 "해양 방류를 포함해 다양한 대안을 고려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결론 맺고 있습니다. 이미 오래 전 해양 방류에 대한 긍정적 입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해양 방류를 권고한 기구가 방류된 오염수를 검증하는 아이러니 입니다.
또한 10년 동안 IAEA의 사무총장을 지낸 아마노 유키야 직전 IAEA 사무총장은 이미 지난 2014년 3월 17일에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오염수 일부를 바다로 버리는 방안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VOA. 2014.3.17)
현 라파엘 마리아노 그로시 사무총장도 이미 지난 2020년 2월, 후쿠시마 제1원전을 시찰할 당시 오염수의 해양방류에 대해 "기술적 관점에서 볼 때 국제 관행에 부합한다"면서 "해양방류는 전 세계 원전에서 비상사태가 아닐 때도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프레시안 2020.02.27.)
즉 이는 선수에게 심판까지 맡긴 꼴이기에 이미 최종보고서가 나오기 전부터 결론은 정해져 있었던 것 아니냐는 우려들이 있었고, 이번에 그것이 현실이 되었음을 확인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일본은 IAEA에서 세 번째로 많은 분담금을 내고 있기도 합니다.
3. ‘다핵종제거설비’(ALPS, Advanced Liquid Processing System)라는 용어의 문제
단어 그대로 직역하면 ‘고도의(상급의, 뛰어난) 액체 처리 시스템’인데, ‘다핵종제거설비’라고 하니 마치 여러 핵물질이 제거된다는 의미로 들립니다. 하지만 서울대 최무영 교수는 ‘다핵종제거설비’라는 일본에서 온 말을 그대로 사용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언어는 프레임을 만들고 사고를 지배합니다. IAEA를 ‘국제원자력기구’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하지 않듯이, ALPS도 ‘다핵종제거설비’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4. 반복된 거짓말, 도쿄전력의 문제
도쿄전력은 이전에 여러 번의 심각한 거짓말을 했던 전력이 있습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로 원자로 노심이 녹아내렸는데(멜트 다운), 계속 숨기다가 결국 5년 만에 실토했습니다. 이런 엄청난 사태를 5년 동안이나 숨기다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2019년 다핵종제거설비 흡착필터 25개가 모두 파손되었는데 숨겼었고, 2021년에도 다핵종제거설비 흡착필터 25곳 가운데 24개가 모두 파손되었는데도 숨겼습니다.
현재 오염수 방류 문제의 핵심 중 하나가 ALPS라는 기계로 오염수를 정화시켜 방류한다는 것인데, 정화의 핵심인 필터가 대부분 손상되었는데 이를 두 번이나 숨겼다는 사실은 현재도 미래에도 도쿄전력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가 없음을 너무 잘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쿄전력은 자국민들도 속였습니다. 지난 2015년 후쿠시마 어민들에게 보낸 답변서에 “어업자, 국민의 이해를 얻을 수 없는 해양방류는 절대로 하지 않겠습니다.”, “관계자의 이해 없이는 어떠한 처리도 하지 않고, 다핵종제거설비로 처리한 물은 발전소 부지 내의 탱크에 저장합니다.”라고 했지만, 결국 거짓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5. 전문가(과학자 포함)의 문제, 과학적 보고서의 허점
“과학자들은 6차 보고서가 작성되는 과정에서 과학자들이 작성했던 초안의 핵심 내용 중에서 기업들과 상류층, 기득권의 문제와 책임을 강조한 내용들이 빠지게 되었다고 분노했다. ‘과학적인 결론’에 정치적 이해관계를 개입시켜 기후위기의 진정한 위험을 희석시키고 기업의 이익과 정치 엘리트들의 책임을 은폐했다는 것이다.” (기후를 위한 경제학, 김병권)
기후과학자들의 경우 인간이 기후변화의 주원인이라고 보는 비율이 97%인 반면, 경제 지질학자들(화석연료 채취산업의 상업적 이용을 옹호하는 지질 연구에 종사하는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47%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나오미 클라인)
즉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완전히 객관적, 중립적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전문가의 말이라고 하더라도 그 전문가가 서 있는 위치나 그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등을 함께 고려하여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생각해 볼 점이 있습니다. 현재 원자력계에서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전문가는 극소수인데,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가 대표적입니다. 그는 많은 방송에 출연하여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를 지적하고 비판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최근 한국연안어업인중앙연합회로부터 오염수 방류 관련 국민 불안을 부추겨 어업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고발당했습니다. 그럼에도 서교수는 굽히지 않고 활동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YTN. 2023.06.05)
여기서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질문이 있습니다. 다수의 전문가들이 찬성하면 그것이 더 진실에 가까울까요? 아니면 그 반대일까요? 많은 경우에서는 다수의 의견이 진실에 가깝겠지만, 만약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평생 업으로 해왔던 일들이 사양산업이 되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면 어떨까요?
6. WTO(세계무역기구) 제소 승소 판결, 다시 뒤집힐 위험성
한국의 일본산 수산물 금지에 대해 일본이 WTO에 제소했고, 1심에서는 기준치 이하로 안전한데 왜 검사조차 안하고 수입을 막느냐는 논리로 일본이 승소했습니다. 하지만 2심에서는 수산물 자체뿐 아니라 그 수산물을 둘러싼 생태와 환경을 고려했고, 한국이 인접국임을 들어 한국이 승소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2심에서 1심을 뒤집은 경우는 처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오염수 방류를 한국이 허용하게 되면, WTO 제소에서 승소한 논리가 깨지게 됩니다. 따라서 일본이 수산물 수입 재개를 요구했을 때 반대할 명분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송기호 국제통상법 전문 변호사는 오염수 방류 다음 단계로 일본은 반드시 한국에 수산물 금지 조치를 해제하라는 압박을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미 일본의 압박이 시작되었습니다.
7. 과학, 과학적이라는 의미는?
물리학 박사 이종필 건대 교수는 경향신문 기고글에서 ‘과학적’이란 것이 무엇인지 설명합니다.
“과학은 결과라기보다 과정이며 방법론이다. 보편성이 담보되려면 나 이외의 다른 누구라도 나와 똑같은 조건에서 똑같은 과정을 따랐을 때 똑같은 결과를 얻어야만 한다. 이를 흔히 재현 가능성이라 부른다. 따라서 과학활동의 기본은 ‘레시피의 투명한 공개’라고 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자기만의 레시피를 공공연하게 떠벌리기를 좋아한다. 그래야만 다른 사람들을 통해 자기가 얻은 결과의 보편성을 증명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일본의 오염수 방류는, 특정 시료만 채취하고, 일본 장비를 투입하고, 친원전 단체가 검증에 참여하고, 과정이 불투명하고, 제3자 재현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일방적’이고 ‘비과학적’이라고 평가합니다. (경향신문 2023.06.15.)
현재 일본이 벌이고 있는 오염수 방류는 국제사회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저버림은 물론 국제협약도 위반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런던협약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과거에 아이러니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1993년 10월, 러시아는 약 1천톤의 방사능 물질을 동해 인근 바다에 버리려다 일본에게 발각이 됩니다. 1천톤이면 일본이 방류하려는 방사능 양보다 1/1400밖에 되지 않는 양입니다. 일본이 러시아 선박을 쫓아가 강하게 항의했고, 결국 수산물 금지까지 하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폐기물 투지를 규제하는 해양오염 방지조약인 ‘런던협약(1972)’이 더 강화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바로 그 협약을 지금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습니다. 지금 일본 행태는 정말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다’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 한국, 일본 국민들의 의견
한국이든 일본이든 국민들의 의견을 잘 수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요미우리신문과 한국일보가 5월 26일∼28일, 18세 이상 한국인 1000명과 일본인 101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공동 여론조사 결과, 오염수 해양 방류에 대해 한국 국민은 84%가 반대(찬성 12%), 일본 국민은 찬성 60%(반대 30%)인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한국일보, 2023.06.15)
주목할 점은 어린 아이를 양육할 연령대인 30~39세의 반대(94.4%)가 가장 거셌다는 점과, 모든 세대 응답자 중 반감이 가장 덜했던 60세 이상에서도 73.3%가 반대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최근 윤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 조사에서 긍정 38.4%, 부정이 53%로 나왔는데, 오염수 방류 반대 국민이 84%인 점을 생각하면 윤대통령 지지자들 중에서도 일부는 방류에 반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 2023.07.05.)
이후 일본 민영방송 JNN이 7월 1일과 2일, 전국 18세 이상의 일본 시민 12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찬성 45%, 반대 40%로 전보다 반대여론이 더 높아진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KBS, 2023.07.03)
일본 내에서도 방류 반대 여론이 찬성 의견과 비슷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시민사회의 움직임도 중요한데요, 한국의 약 6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일본 방사성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공동행동>은 문제해결을 위해 아래 3가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1)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투기 결사 반대한다!
(2) 윤석열 정부는 해양투기를 단호하게 반대하고 국제해양법 재판소에 제소하라!
(3)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를 포기하고 자국 내에 보관하라!
● 글을 맺으며
최종보고서를 다 읽고 나니 다른 분들에게는 절대 읽으라고 권하고 싶지 않네요. ㅎㅎ
정부의 대응과 지금까지의 맥락, 그리고 보고서 외적 요소들을 모두 고려할 때 저는 이번 최종보고서는 일본의 입장에 서있는 편향된 보고서라고 판단합니다.
어떤 정책이나 결정에는 크고 작은 반대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결정을 하더라도 공론장을 통해 토론이나 충분히 설명하고 납득시키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나서도 여전히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그렇게 하고 있지는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이렇게나 많은 국민들이 반대하고 있다면, 설령 국민들의 판단이 과학적이지 못하더라도 납득할 만한 과정은 거쳐야 하는 것 아닐까요?
이해할 수 없는 많은 말들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더 이상 국민들이 혼란스러워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라도 시급히 대응책을 찾고 실행하여 많은 국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하는 정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전 글) 후쿠시마 오염수 IAEA 최종보고서, 제가 한 번 읽어봤습니다. (1편)
https://campaigns.do/discussio...
코멘트
5덕분에 왜 반대해야하는지 좀 더 명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