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10일의 대화] 우리에게는 아직 먼 이야기, 디지털 노동 (철인왕)

2023.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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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철학을 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10일의 대화를 부산에서 오랜 친구들과 함께 진행한 미타라고 합니다 ?
대화 모임을 진행한 저희 다섯 명은 모두 부산의 모 대학 철학과에서 만나 함께 놀고 공부하는 친구들이에요. 
지역의 인문학 전공자라는 특수성 - 어차피 이래도 저래도 취업은 안된다는 배경 - 때문에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주제와는 멀~리 떨어지는 것 같아 진행자로서 조바심을 느끼기도 했는데요. 
모임 내용을 정리하다보니 이런 대화 내용조차도 어떤 함의점이 있지 않나 싶어서,
약간은 부끄러운 마음으로 그리고 신선한 느낌으로 저희 모임을 회고해보려고 합니다. 



  ✋이렇게 모임을 진행했습니다 : 
      진행 일시와 장소 | 23. 7. 3. 월요일 11시~13시, 부산의 한 카페
      함께한 사람들 | 로크, 비트겐슈타인, 퐁티, 니체, 미타 (5인) 

우리는 이렇게 만났습니다 : 저희는 평소에도 다양한 주제로 함께 노가리를 까는(?) 친구들이에요. 자유를 사랑하는 로크, 분석적인 비트겐슈타인, 회의주의자 니체, 다양성에 열려있는 퐁티, 그냥 미타... 이렇게 다섯이 술자리에 모이면 어떤 이야기도 재미있게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로크와 미타는 사회경제관이 달라서, 평소 경제 시스템과 노동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고는 했었는데요. 작년에 우연히 '경제적 자유란 진정한 자유인가?'를 주제로 열띤 논쟁을 하다가 노동의 미래도 함께 고민하게 되었어요. 거기에 더해 로크는 최근 졸업하고 잠깐 쿠팡에서 일용직 노동을 하게 되면서 느낀 바를 공유하고자 했고,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니체의 이야기도 궁금했습니다. 비트겐슈타인과 퐁티는 맛있는 커피에 회유되어 당일 오전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 

1.  미래에 어떤 일을 하고 싶나요? 

  • 평생 월급 노동자로 살고 싶지는 않다. 파이어족처럼 빨리 은퇴하고 싶다.
  • 결국에 돈을 벌기 위해서는 창업이 답이라는 생각을 한다. 직장과 창업을 병행하다가 후자가 안정되면 일을 그만둘 것 같다.
비트겐슈타인: "저도 이제 일하면서 6시까지는 노동하고 밤에는 바 하나 차려서 하면서 안정될 때까지는 투잡을 하지 않을까요. 
 …. 어느 정도 안전성도 추구하면서 불로소득을 꿈꿀 것 같아요."
니체: "근데 진짜 영혼까지 끌어서 대출했는데 낮에 하는 일로 갚을 수가 없어, 그럼 어떡해?"
비트겐슈타인: "그때부터 이제 노동으로부터의 억압 평생 완전한 억압"
로크 : "그러면 이게 절대 망하면 안 되겠네. 솔직히 망하면 안 돼.

2. 디지털 기술은 기회일까, 위기일까?

  • 솔직히 철학과 입장에서는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기술이 있든 없든 우리 일자리는 없다. 
  • AI 시대에도 인간만이 노동에 책임을 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이 잘못되었을 때 결국에 책임을 질 수 있는 건 인간이니까, 책임을 보증하는 일자리가 생기지 않을까?
  • 개인한테는 위기인데 전체로 봤을 때는 기회일 수 있을 것 같다. 
  • 결국 대체가 쉬운 인력들은 빨리 대체될 것이고, 대체 불가능한 진짜 최소수인 사람들은 살아남을 것이다. 내가 어디에 속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 같다.

3. 디지털 기술 시대의 노동에 대해 우려하는 것이 있나요?

  • 생성형 AI로 인해서 글을 쓰는 노동에 대한 가치가 떨어질 것 같아서 우려된다. AI가 글을 쓰는 데 일부 참여할 수 있다고 해도, 결국 세부적인 것들은 인간이 쓰는 건데 노동 수당을 책정할 때 AI의 기여를 더 크게 평가한다면 인간 작가의 글쓰기는 보조적인 것으로 전락해버리는 거니까. 
  • 인간 노동의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고 하는데, 오히려 AI 대중화가 되면 인간이 하는 노동이 프리미엄화 되어서 사회 일부 계층만 누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법률 서비스도 AI가 많이 대체한다면, 법률 대중화에 기여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인간 법률 서비스 비용이 매우 비싸져서 소수 기득권 유지에 쓰일 수도 있지 않을까?
  • 일자리 대체 수준은 아니지만 저작권 문제가 많이 발생할 것이다. 

4. 디지털 시대의 좋은 노동이란 무엇일까요? 각자가 생각하는 좋은 노동은 무엇인가요? 

  • 솔직히 돈이 제일 중요하다. 돈과 명예. 디지털 시대라고 해서 좋은 노동의 정의나 가치가 크게 달라지는지는 모르겠다. 어떤 일을 하든 자신이 선택할 수 있으면 좋은 거고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거면 안좋은 것 아닌가. 
  • 재택근무, 리모트 워커라는 것들이 말이 좋지 사적 영역까지 공적 영역이 완전히 침범, 아니, 침범을 넘어서 이제는 일체화되려는 거 아닌가 싶다. 물론 당사자들이야 당장 힘들게 출근 안해도 돼서 좋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조금 더 구조적으로 보면 공적 영역이 사적 영역과 일치되는 건 무서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5. 디지털 시대에 노동 시장으로 진입해야 하는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 솔직히 선제적으로 막 준비해야 할 것 같지는 않다. 우리 세대는 다들 최신 기술에 대해 거부감이 딱히 없지 않은가. 스마트폰이 처음 나올 때도 엄청 거대한 변화가 올 거라고 했지만 결국에 다들 점점 적응하는 식으로 수용하게 되었다. 앞으로도 계속 내가 있는 직장에서 배워야 할 기술을 배우고, 안배워야 할 것은 냅두고 그런 식으로 유연하게 적응하면서 살지 않을까.
  • 새롭게 올 기술을 잘 활용하는 사람들 중에 누군가는 그걸로 부자가 될 거고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모두가 반드시 그래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 철학이나 규범, 관념이 기술에게 길을 제시할 수 있을 것 처럼 이야기하지만 사실 기술사를 돌아보면, 기술은 그 내적 논리로 계속 확장하는 거고 규범이나 철학은 그걸 따라가서 사후적으로 설명을 덧붙일 수 있을 뿐이다. 이만큼 발전 속도가 빠른 시대에 어떤 '좋은' 기술 활용의 관념을 정하고 선언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을까?
  • 기존 노동 시장에서 계속 반복되던 문제와 다를 바 없는 문제들이 다른 기술 사회에서 다른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이 현상이 정말 해결될 수 있는 건지도 생각 해 볼 필요가 있다. 기술 발전이 되면 그 기술로 장애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 만큼이나 데이터 라벨링같은 비인격적인 노동을 하는 사람도 생겨나는 것이고... 모두가 대체되지 않는 사회를 이야기하기에는 이미 먼 길을 온 것을 인정하고 가야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러다이트 운동을 하고 있는 것 같다. 


  ☺️ 대화가 끝나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디지털 노동 전환이라는 주제는, 수도권의 평균적인 노동 환경조차 갖추지 못한 일자리가 다수인 지역에서는 아직까지 먼 이야기 같습니다. 일단 디지털이든 뭐든-이라고 말하면 무례할 수 있겠지만요,- 좋은 노동 전에 노동을 할 직장에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니까요. 친구들의 이야기를 멀찍이 듣던 저는 두 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첫째, 디지털 노동에 대한 고민은 우리에게는 '그들만의 고민' 같다는 생각. 디지털 기술에 대한 접근성이 높은 산업들이 수도권에 몰려있는 한, 많은 지역 청년들에게 디지털 전환은 반가움도 두려움도 주지 않는 것 같아요. 둘째, 하지만 이러한 전환에 대한 무감각이 언젠가 우리를 우리도 알지 못하는 틈에 쓸어 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 기술 발전과 그 열매의 확산이 수도권에서 점점 일어나며 적응을 해나가는 동안, 우리는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하다가 한 순간에 도태 - 라는 표현은 정말 싫어하지만요, -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도래하는 기술 사회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더 쉽게, 넓게 확산되어서, 이를 대비하든, 무시하든 간에, 많은 이들이 기술을 가까이 인식할 수 있는 설명들이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모임 진행 사진 :

 

 p.s 비트겐슈타인은 모임 진행 동안 디지털 기술에 대해 대체될 수 없는 노동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요, 
모임을 끝내고 이야기하던 중, 저희 대화를 녹음하고 그대로 녹취록으로 풀어주는 '클로바 노트' 라는 앱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입장이 바뀌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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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참여 해보고 싶네요

"수도권의 평균적인 노동 환경조차 갖추지 못한 일자리가 다수인 지역에서는 아직까지 먼 이야기라는"...우리가 더 나눠야 할 이야기를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디지털 기반의 원격근무가 가능한 일자리, 직종이 늘어나면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생기지 않을까 상상해봤는데, 이건 서울러의 좁은 생각일까요? 다른 분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