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예고드린대로 ‘탈성장의 전략과 구체적인 사례들’을 살펴보려 하였으나, 성장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에 대한 공감대가 더 많이 형성되어야 탈성장 논의도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에 성장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좀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글은 김병권님의 생태경제학 입문서인 <기후를 위한 경제학>를 주로 참고하였습니다.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서 성장이 불가능한 5가지 이유들을 살펴보겠습니다.
1. 이미 제로성장 시대에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 산업혁명이 시작된 시기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0.6%에 불과했지만, 20세기 초반에는 2.2%로 비약했고, 1950년대부터는 무려 3.7%(1950~2010)라는 엄청난 성장률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선진국부터 성장률이 점점 낮아지기 시작해서 미국은 현재 1~2%, 일본은 21세기 들어와서 20년째 0~1% 사이로 거의 제로성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유럽 역시 1인당 국민소득 성장률이 2000년대 들어와서 1% 수준으로 감소했습니다.
한국과 중국이 엄청난 경제성장률을 보였으나, 중국은 점점 떨어지고 있고, 한국은 이제 2%대를 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출처: 『기후를 위한 경제학』
『기후를 위한 경제학』에서는 “당장 경제규모를 늘리지 않고 ‘제로성장’을 시작한다고 해도 이전 연도에 온실가스를 배출한 만큼은 계속 배출할테니 글로벌 온실가스 1년 배출량인 500억톤이 기존의 누적량에 어김없이 보태진다.”고 지적합니다.
2. 기후위기가 심각해질수록 경제성장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 『기후를 위한 경제학』에서 “다보스포럼 보고서는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이 파리협약 기준을 넘어서 2.0~2.6도로 진입할 경우 2050년까지 경제 손실이 GDP의 평균 10퍼센트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을 소개하고 있고, 또한 “코로나19 재앙이 2020년 세계 경제성장률을 -3.3퍼센트 추락시켰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미래에 극단적인 기후재난이 경제성장률을 수시로 붕괴시킬 개연성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또한 WEF(세계경제포럼)는 올해 1월 회계·컨설팅 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와 공동작성한 보고서에서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이상(약 5경)이 기후위기에 노출돼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매년 발생하는 기후재난만으로도 경제적 피해가 적지 않습니다. Christian Aid의 ‘세계 10대 기후재난 보고서’에서 2019~2020년은 약 150조, 2020~2021년은 약 200조로 피해규모가 계속 늘어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2017년 태풍 ‘하비’와 ‘어마’만으로 피해규모를 약 300조원으로 추산했을 정도로 앞으로는 단일 재난으로도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2022년 국토의 1/3이 잠기는 대홍수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파키스탄의 경우 인명·재산 피해 규모가 57조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집계되기도 했습니다.
이 외에도 점점 심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폭염, 가뭄, 산불, 홍수, 한파, 태풍, 해수면 상승 등은 그 자체로도 피해가 크지만, 식량위기나 기후난민 등의 사회적 피해로 이어져 피해규모가 연쇄적으로 상승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3. 현재의 무한성장 추구의 경제성장 목표는 그 자체로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 여전히 많은 국제기구나 정부들이 앞으로도 매년 2~3%씩 성장할 것으로 가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2015년 기준으로 전 지구의 GDP가 약 80조 달러이고 세계경제는 약 연 3%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3%의 성장은 24년마다 경제규모가 두 배가 된다는 뜻이며, 이 성장률이 계속 된다면 2050년에 세계경제는 약 세 배, 2100년에는 열 배가 넘을 것입니다.(도넛경제학, 286) 이는 경제의 생물리학적 한계를 무시하는 발상입니다. 이렇게 큰 폭으로 늘어나는 이유는, 성장률이 ‘복리’로 계산되기 때문입니다. 한동안은 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폭발적으로 상승하는 것이 복리의 특징입니다.
*출처: 『디그로쓰』
지난 첫 번째 글에서도 살펴봤지만, 이미 인류는 앞으로 1.7개의 지구가 더 있어야 할 정도로 지구생태용량을 초과했으며, 지구의 지속가능한 한계인 물질 사용 한계치인 50억톤을 훌쩍 뛰어넘어 90억톤의 물질발자국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즉 지금과 같은 경제성장 목표와 전망은 불가능합니다.
4. 이미 지구가 물리적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 현재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경제는 ‘물질적 성장’을 고려하지 않고, ‘화폐적 성장’에만 매몰되어 있습니다. 물리적 한계를 고려하지 않고 지구의 자원을 이용해 화석연료를 어마어마하게 태워 만든 에너지를 통해 상품을 생산하고 폐기했기 때문에 이제 한계가 멀지 않았습니다. 이미 지난 글에서 살펴보았듯이 지난 50년 동안 글로벌 물질발자국, 글로벌 GDP, 글로벌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모두 비례해서 올라가고 있습니다.
*출처: 『적을수록 풍요롭다』
*출처: Graph by author from Noaa(atmospheric CO2)and IMF (global GDP) data https://degrowth.info/en/blog/...
또한 요한 록스트룀 등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26명의 석학들은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9개의 “행성 생명유지 시스템 (planetary life support systems)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인간이 하나 이상의 지구위험한계선을 침범할 경우 기하급수적인 환경 변화가 일어나게 되어 대륙 또는 전체 지구가 영향을 받게 되며, 이로 인해 재앙적인 결과가 일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연구해 보니 9가지 시스템 중 이미 4개가 한계선을 넘었고, 그 중 두 가지는 고위험한계선을 넘은 상황입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
최신 연구에 따르면, 기존의 잠재적 티핑포인트 목록을 9가지에서 16가지로 세부화했는데, 그 중 그린란드 빙상 붕괴, 남극 서부 빙상 붕괴, 광범위한 영구동토층 해빙, 래브라도해의 대류붕괴, 열대 산호초 소멸 등 5가지는 이미 티핑포인트를 통과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어 더욱 우려가 되는 상황입니다.
참고로 "임계점 혹은 변곡점으로 번역되는 티핑 포인트는 기온이 상승하면서 지구 곳곳의 생태계가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는 지점(온도)"을 말합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
5. 계속 경제성장을 추구하면 부채, 불평등, 금융 위기를 낳기 때문입니다.
- 자유방임주의라 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 이후, ‘각국 정부는 성과를 부유층에게 유리하게 재분배함으로써 국내·국가 간 불평등을 확대’했습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GDP가 3배 성장했음에도 40년간 평균임금의 구매력이 전혀 늘지 않았’습니다. ‘경제학자 줄리엣 쇼어는 이 기간의 소비증가와, 개인 부채와, 평균 유급노동시간의 매우 가파른 증가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각국 경제는 성장을 위해 빚을 진 다음에는 이 빚을 갚기 위해 성장해야만 하는 처지’가 되는데, ‘전 세계 부채는 2018년 1/4분기에 24경 7,000조 달러라는 기록적 수치에 이르렀고, 이 수치는 매년 11.1% 증가’하고 있습니다. ‘최빈국들의 부채 상환액은 2010년 이후 곱절로 늘어’났습니다.
글로벌 금융 위기는 성장 가속화의 토대가 얼마나 취약한지 잘 드러내 보였는데, ‘금융 위기 이전에 더 큰 GDP 성장을 보인 국가일수록 위기 중에 더 큰 피해와 쇠퇴를 겪었’습니다.
즉 성장을 추구하면 할수록 부채가 늘고, 이로 인한 불평등 심화, 결국에는 금융 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참고 자료
『기후를 위한 경제학』 : 김병권 지음, 착한책가게, 2023
- 지구 한계 안에서 좋은 삶을 모색하는 생태경제학 입문
『디그로쓰』 : 요르고스 칼리스, 수전 폴슨, 자코모 달리사, 페데리코 데마리아 지음, 우석영, 장석준 옮김, 산현재, 2021
『도넛 경제학』 : 케이트 레이워스 지음, 홍기반 옮김, 학고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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