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갭투자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합시다!

2022.08.05

2,479
3
중국철학 연구자. 일어/중국어 교육 및 번역. => 돈 되는 일은 다 함

투자(投資)와 투기(投機)의 차이는 뭘까? 한자만 보자면, 투(投)는 던진다는 뜻이고, 자(資)는 자본, 기(機)는 기회를 뜻한다. 자본을 던지면 투자고 기회를 던지면 투기인 것일까?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자. 

투자(投資) [명사] 

  1 이익을 얻기 위하여 어떤 일이나 사업에 자본을 대거나 시간이나 정성을 쏟음.

  2 『경제』 이익을 얻기 위하여 주권, 채권 따위를 구입하는 데 자금을 돌리는 일.

투기(投機) [명사] 

  1 기회를 틈타 큰 이익을 보려고 함. 또는 그 일.

  2 시세 변동을 예상하여 차익을 얻기 위하여 하는 매매 거래.

시간이나 정성을 쏟아서 이익을 보면 투자고, 기회를 틈 타 이익을 보면 투기인 것일까? 도무지 감이 안 온다. 그래서 이 말들이 만들어진 일본의 설명을 보려고 하였다. 이와나미 출판에서 만든 『국어사전』을 찾아보자.

투자(投資, 토-시) [명사, 자동사]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사업 등에 자금을 내는 것. 비유적으로, 장래의 이익을 위해 다액의 금전을 투입하는 것.

투기(投機, 토-키)

  1 불확실하지만 맞기만 하면 이익이 큰 일을 노리고 하는 행위

  2 시가의 단기간 변동 수익만을 노리고 행하는 매매거래

두 나라의 설명을 종합해보면, 기간이 좀 길면 투자고, 기간이 짧으면 투기가 된다 정도로 해석해도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결국 투자와 투기는 기간의 차이가 있을 뿐,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 되는 걸까? 


갭투자란? + 전세사기 막는 '이건 꼭 해야해!'

[사진출처: (카카오페이블로그)]

자, 나는 왜 이렇게 긴 이야기를 꺼냈을까? 갭투자라는 말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갭투자란 부동산을 구매할 때 전세 세입자를 먼저 구해 전세금을 받은 후, 부동산 가격에서 전세금을 뺀 나머지 차액만 자기 돈을 내거나, 대출을 받아 지불하여 부동산을 구매하는 것을 말한다. 혹시 나이가 있는 분이라면 ‘전세 끼고 산다’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부동산, 특히 주택 가격이 오르면서 전세값이 같이 올라 부동산 매매가와 전세가 사이의 차이가 적어지자 ‘전세 끼고 사는 것’이 갭투자라는 이름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것이다. 신혼부부들도 신혼부부대출을 받아서 갭투자를 하고 이것을 자랑하며 책을 내기도 하고, 박 아무개라는 사람은 300채 넘는 집을 갭투자로 구매하고는 자기 이름의 영문 머릿글자를 딴 회사를 만든 후, 갭투자를 하라고 강연을 하고 다니기도 한다.

저렇게 집을 사들이다가 어느 순간 집값이 떨어지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전세금을 돌려줄 수 없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집을 사들인 사람이 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수많은 세입자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 2018년 3월에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서 갭투자를 하다가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게 되자 아파트 48채가 한꺼번에 경매로 나오는 일이 있었다. (한경.2018.03.09.) 2020년 11월에는 대구에서 갭투자를 하다가 전세 보증금 50억 원을 들고 달아난 사람이 화제가 되었다. (중앙일보.2020.11.21.) 2021년 5월에는 서울시 화곡동에서 세 모녀가 갭투자로 500채를 사들이고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은 사건이 있었다. (MBC.2021.05.29.

어떤 이들은 투자가 자본주의의 꽃이라고도 말하지만, 나는 감히 이를 도박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자본주의가 허락한 도박이라고 말하고 싶다. 도박이란 무엇인가? 노동을 해서 돈을 벌지 않고, 돈을 걸고 이익을 얻으려는 행위가 모두 도박이다. 차라리 복권에 10억을 썼다면, 카지노에서 10억을 썼다면 자기 혼자 망하고 그만이다. 이제 막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중소기업에 투자를 하다 망하면 마음은 쓰라리겠지만 누군가의 시작을 위해 희생했다는 자기 위로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갭투자라는 도박은 부동산이 카드고 화투이며 마작이다. 그 중에서도 대부분은 빌라나 오피스텔 같이, 이제 막 새롭게 사회생활을 하며 독립한 청년들이나 큰 부를 손에 잡아보지 못하고 평생 묵묵히 생계를 위해 살아온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남의 인생을 저당 잡고 도박을 하는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책을 내고 강연을 하면서, 가난은 죄라고, 똑똑하지 못해서 가난한 것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정장 입은 강도들이 너무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돌아다닌다. 

갭투자라는 요물을 잡기 위해 나름대로 정부도 노력을 하긴 하였다. 여러 채를 보유한 사람에게는 전세 대출을 안 해준다던지, 시가 9억 원이 넘는 집에 대해서는 대출을 안 해준다던지. 이러한 정책들이 나름대로 효과를 보긴 한 것 같지만 그래도 갭투자 자체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어떤 이에게는 집이 과시와 수입이지만, 어떤 이들에게 집은 빌려서 쓰고 있는 생필품이다. 2020년 기준, 한국의 자가보유율은 60.6%다. 자기 집에 사는 가구는 57.9%다. (대한민국 정책 브리핑) 39.4%는 자기 집이 없다. 한국에 100 가족이 산다고 치면, 서른 아홉 가족은 자기 집이 없다는 소리다.

2020년 기준, 주택을 소유한 사람은 1,469만 7천 명이다. 이 중 한 채만 소유한 사람은 1,237만 7천 명이다. 2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183만 명(12.5%), 3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29만 7천 명(2.0%), 4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7만 6천 명(0.5%), 5채 이상 가지고 있는 사람은 11만 7천 명(0.8%)이다. 2천 가구는 51채 이상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이에게는 집이 과시와 수익의 수단이겠지만, 전국의 39% 가족에게는 빌려서 쓰는 생필품이다. 그 생필품으로 장난을 치는 이들을 엄하게 규제하길 바란다. 혹자는 시장의 규칙을 운운하며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죽을 때까지 작게라도 자기 집 한 칸을 마련하지 못하고 평생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남의 집 살이를 할 때, 누군가는 그것으로 투자라는 이름의 투기를 하면서, 빌라 여러 채를 손 안에 넣고 만지작 거리며 스톱을 할까 고를 할까 고민하고 있다면 그것을 올바른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이 만든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인간이다. 인간은 자신의 인생을 자기 힘으로 견뎌나갈 수 있는 힘을 가진 현명한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권력자들이 만든 지극히 불합리한 제도를 자연의 불가항력인 것처럼 인정하는 것은 비굴하고 무식한 노예의 사상이고 인간과 인간 사회의 발전을 막는 위험한 사상이다.

나는 갭투자를 비롯한 부동산 투기 세력의 억제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위정자(爲政者)들의 의향에 따라서는 당장 내일부터도 가능한 것이 사실인 것이다. 우리는 보았지 않았는가? 금융실명제가 실시되던 그 날을. 혹 이 일에 몇 년이 걸린다 하여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고, 필경 보람이 있는 일이다. 어떤 이는 갭투자는 소수의 나쁜 ‘일부’가 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너무나 명백하게 유해한 ‘일부’라면 우리는 이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한쪽에는 너무 큰 피해를 보는 ‘일부’가 존재하니까. 


마지막으로 조선 숙종 3년(1677) 12월, 윤휴(尹鑴)의 상소문을 인용하고자 한다. 기존의 군적에서 잘못 올라가 있는 것들을 전부 말소하고 신분과 지역에 상관 없이 1년에 군포 1필을 내게 하는 호포법의 시행을 주장하며 한 말이다.

윤휴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윤휴 초상.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죽은 사람과 어린 아이의 살가죽을 벗겨내고 골수를 빠개버리는 괴로운 정치로 인해 머리를 쥐어싸고 가슴을 두드리는 근심과 병, 펑펑 노는 선비와 운 좋은 백성이 의무를 피하고 자기가 편한 길로 가고자 하여 생기는 원망, 이 둘 중 무엇이 더 큰 것입니까? 집이 있고 건강한 몸이 있으면 세금을 내고 특산품을 내는 것과 이미 죽은 자나 어린 아이에게 부역을 나가게 하는 것, 둘 중 무엇이 더 나은 것입니까? 신은 모르겠습니다. 호포법의 시행이 명분 없는 것입니까, 호포법 반대가 명분 없는 것입니까? 호포법의 시행이 백성의 원망이 되겠습니까, 호포법의 반대가 백성의 원망이 되겠습니까? 민심의 향배나 천명의 거취는 이제 약하고 힘없는 백성의 평안과 불안에 달린 것이 아니라, 운 좋은 백성과 부자들의 편리와 불편에 달린 것이 되는 것입니까?

白骨、兒弱剝膚搥髓之厲政, 疾首叩胸之愁毒, 孰與遊士、倖民避役自便者之怨咨也? 有戶有身者, 有庸有調, 又孰與旣骨、黃口之出役乎? 臣不知。此爲無名乎。彼爲無名乎。此爲民怨乎? 彼爲民怨乎? 民心向背、天命去就, 將不在於小民之安不安, 而乃在於倖民豪右之便不便乎?

공유하기

이슈

경제위기

구독자 36명

집이 경제적 자유를 위한 수단으로 바뀐지는 오래된 것 같습니다. 그 방법 중 하나로 갭투자가 있는 것이구요. 갭투자가 없으면 주택공급(건설이 아닌)이 안된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계신데, 주택 가격이 낮아지면 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물리고 물린 사람들이 괴롭기 때문에 정부에서도 선뜻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 같구요. 

근로소득 외에 주택을 통한 소득을 원하는 사람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오히려 몇채 이상의 갭투자 상한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순간 집이라는 것이 거주의 목적보다는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어요. 목적이 변질된거죠. 그렇기에 계속되는 문제가 나타난다고 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빌라왕, 빌라황제들의 자본주의가 허락한 도박에 전세금이 거의 전재산에 가까운 사람들이 전재산을 잃는 상황이 속출하고 있네요. 참.. 이게 사람 사는 사회인가 싶습니다.


링크 영상에서처럼 정부가 이제서야 이런저런 대책을 내놓고 액션을 취하는데, 국회에서 법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대책은 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집 문제, 고민 안하고 살고 싶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