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숙의 새필드] 탄핵 광장의 원형적 기억을 생활 민주주의로 확장할 구체적인 방법론이 필요하다. 영국 셰필드에서 대중문화를 공부한 필자의 소박한 세상 이야기.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나라가 휘청거리고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위기의 순간, 거기 늘 여성이 있었다. 윤석열 탄핵 광장뿐 아니라 그 어떤 역사적 광장에도 여자들이 늘 거기에 존재했다. 오히려 2024년 윤석열 탄핵 광장에 2030 여성이 2030 남성을 압도하고 있다는 호들갑은 마치 과거를 잊은 건망증 환자의 놀라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광장의 역사를 주도해 온 여성의 역사를 지워 버리는 착시 효과마저 가져온다.
광장의 계보, 응원봉의 기원
2002년 6월 13일, 14살 신효순 심미선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졌다. 2002년 월드컵의 환호가 광장을 뒤덮던 때였다. 꽃 한번 피우지 못한 꽃봉오리 같은 나이였다. ‘우리 딸’ 같은 아이들이었다. ‘미선·효순 살인사건 진상규명’ 모임들이 전국 각지에서 결성됐고, 이들은 진상 규명 활동과 정기적인 추모 행사 지속했다. 이 활동과 모임을 주도한 건, 당연한 이야기지만, 여성들, 특히 어머니들이었다. 지금 그 기록은 아무 곳에서도 남아 있지 않다. 다만 몇 개의 논문과 특집 르포로만 그 흔적을 기억할 수 있을 뿐이다.
효순이와 미선의 죽음을 규명하기 위한 여성들의 노력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촛불시위]로, 2008년 이명박 정권에 대항한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집회]의 ‘아마조네스 부대’로 이어졌다. 이들은 촛불을 든 어린 여학생으로 상징되는 ‘촛불 소녀’와 아이와 함께 나온 엄마를 뜻하는 ‘유모차 부대’라는 사회적 상징을 획득했다. 그 후 2016년 5월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2016년 7월 이화여대의 ‘미래 라이프 대학 반대 농성’, 그리고 그해 10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집회’까지 여성은 정치∙사회적 ‘위기의 순간’에 늘 광장의 주인공으로 역사와 함께해 왔다.
2008년 촛불집회는 무엇보다 초기에 ‘소녀’들에 의해 점화되었고, 이어 다양한 여성 집단들의 광장 진출에 의해 지금의 단계로 발전했다. 가령 2016년 박근혜 탄핵 집회 때, 당시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현재 강원도지사)이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2016. 11.17)고 하자 여성들은 꺼지지 않는 발광 LED 촛불과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나오는 기지를 발휘하였다. 이것이 2024년 12.3 내란 사태에서 윤석열을 탄핵하라는 광장을 채운 ‘응원봉 혁명’의 기원이다.
‘빠순이’의 추억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문화는 권위적인 어른 남자의 시선으로 재단되어 왔다. 대선에 두 번이나 도전했던 이회창의 ‘빠순이’ 발언을 떠올려 보자. 이회창의 ‘빠순이’ 발언을 우연한 일회성 해프닝이나 무지의 소산으로 볼 수도 있다. 대중문화에 무지한 나이 든 남성의 실수로 아무런 악의도 편견도 없이 호명되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빠순이’라는 말은 불과 20여 년 전인 21세기 초입 대한민국에서도 여전히 여성은 객체화하고 종속적인 ‘어떤 것’ 취급되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빠순이는 사람을 부르는 말이 아니라 ‘어떤 것(들)’을 부르는 말이다. 설마 ‘빠순이’를 사람을 부르는 인격적 호명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지금도 있는 건 아니겠지? 그 씁쓸하고 어이없는 추억을 불러와 보자.
(학생들이 ‘창이 오빠’라고 연호하자)
“여러분들을 보니 ‘빠순이 부대’가 많은 것 같아요. 나도 지방에 다니면 오빠부대 많아요. 오빠가 아니라 ‘늙빠’지. 늙은 오빠”
이회창, 2002년 5월15일, ‘스승의 날’, 서울 은평구 동명여자정보산업고에서.
한국 사회는 가장 최근까지도 대중문화산업의 ‘호갱’이자 만만한 ‘빠순이’로 여성을 객체화했다. 그녀들은 몰지각한 소비문화에 편승하고, 능력 있는 남성에 기생하는 불완전한 존재로서, 김치녀나 된장녀 같은 멸칭으로 폄하되어 왔다. 이들 여성의 객체화를 주도한 건 남성이라기보다는 남성 중심의 정치권력 시스템, 문화산업의 구조 그리고 아무런 반성도 성찰도 없는 미디어와 언론이었다.
한국에서 여성은, 에드워드 사이드식으로 말하면,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구별에 기반한 대립적 사고방식이자, 여성을 지배하고 재구성하며 억압하기 위한 남성의 제도 및 스타일’이다. 빠순이라는 말은 이 구조 속에서 필연적으로 생산된 말이다. 우연적이거나 개인적이지 않다. ‘빠순이’는 철저하게 구조적이고, 권력적이며, 사회적인 언어다. 그 뒤를 이어 한국 여성을 ‘대표'(?)하는 언어로 시대를 풍미한 된장녀(2001), 김치녀(2010) 등의 언어는 철저하게 여성을 타자화하며 자신의 주체성을 획득하는 한국 남성의 동업조합적 시스템의 언어 전략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열정이 있어야 사랑하고 분노한다
2002년 이회창에게 호명된 ‘빠순이’는 K-컬처의 세계화 흐름 속에서 팬덤 문화를 온몸과 마음으로 체화하며 이제는 ‘오빠들’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와 자기 자신을 이야기하는 탄핵 광장의 주체로 성장했다. 빠순이로서 체험한 그 모든 것들은, 그저 단순하게 문화산업의 ‘호갱’으로 객체화된 소비문화의 톱니바퀴가 아니라 스스로 애정하고 치열하게 응원하고 분노하며 때론 싸우기도 하는 ‘민주 광장의 훈련소’이기도 했다. 그 결과를 광장의 여자들, 2002년 늙은 남자 대선 후보에게 빠순이로 불렸던 그 여자들, 그 여자의 후배들이 당당하게 보여주고 있다.
소녀의 K-팝 팬덤 문화와 기술의 발전 그리고 문화소비와 문화산업의 관계는 다층적이다. 그것은 인간이 여러 가지 환경들 속에서 다면적이고 입체적으로 구성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조건과 환경 속에서 다채롭게 재구성할 수 있는 유동성을 가진다. 이들은 K-팝 팬 활동을 통해 스타들을 ‘우상’ 혹은 ‘나의 오빠’로 여기며 어느 정도는 개인적으로 또 어느 정도는 공동체적으로 또 어느 정도는 주체적으로 또 어느 정도는 객체화된 채로 그 문화와 산업의 구조 속에 개입한다. 이처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역할을 ‘연습’하고 ‘훈련’한 1020 여성이 2008년 촛불 집회를 점화하고, 답보 상태에 빠진 한국 민주 진영에 새로운 전망을 마련하는 주체가 된 것은 우연적이라기보다는 필연적으로까지 보인다.
2008년 촛불집회를 두고 기존 운동권이 가장 놀랐던 건 이들이 가진 조화와 조율 능력이었다. 그런데 그 여성들은 집단적인 정치 운동과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평범한 시민이었다. 이 모습을 경향신문은 2008년 7월 9일 자에 “촛불집회는 사실상 여성들이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촛불 참여자의 70%는 여성이 차지했다. (중략) 1987년 6월 항쟁의 불길을 ‘넥타이 부대’가 키웠듯이 촛불집회는 ‘아마조네스 부대’가 이끌었다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다시 말해, 2008년 광장에서 밤새우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던 여성들은 평소에는 소비문화의 객체이자 주체였으며 온 가족의 안전한 밥상을 걱정하는(이것만큼 개인적이고, 이것만큼 공적인 사명이 또 있을까) 평범한 1040 엄마와 딸들이었다. 2008년 광우병 촛불 집회를 미국산 수입 소에 관한 오정보로 인한 거대한 해프닝으로 취급하는 보수 언론은 국민과의 소통에 실패한 정부의 실패를 먼저 짚는 게 옳은 순서다. 역사적 진실은 다양한 조건과 환경, 그 변인들 속에서 치열하게 구성되는 것이지 몇 가지 단편적인 사실과 조건을 추출해서 마치 시험지 채점하듯 평가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젠더화된 ‘광장’의 껍질을 깨고: 시(詩)에서 산문으로
광장은 역사적으로는 여성과 친하지 않았다. 아테네 유일의 시장이자 광장이었던 ‘아고라’에서 그랬듯 한국에서도 여성은 오랜 시간 광장에서 자기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광장은 젠더화된 공간으로 남았다. 그러나 2002년 촛불 집회로부터 2024년 탄핵 광장까지, 여성도 광장도 진화했다. 이제 탄핵 광장의 여성은 단순히 젠더화된 광장의 껍질을 깨는 것을 넘어 광장의 주체이자 주인공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일년 내내 소풍만 갈 수는 없다. 축제의 불꽃으로 매일 하늘을 채울 수는 없다. 시(詩)를 노래하는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다시 일상을 채우는 산문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윤석열의 “여성가족부 폐지” 선언은 비상계엄보다 덜 미친 짓이었나. 윤석열은 한국 사회의 ‘정치적 돌연변이’가 아니다. 국민의힘이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 입증되지 않은 ‘외부 용병’ 하나 잘못 영입해서 미친 짓을 했다고 그 의미를 축소하는 것은 책임을 면피하려는 수사적 헛소리에 불과하다.
윤석열은 징후적이다. 윤석열은 “여성가족부 폐지” 선언의 광기에서 ‘비상계엄’ 선포의 광기까지 미친 듯한 속도로 달려왔다. 하지만 그 광기는 민주적으로 제어되지 못했다. 그 광기의 동조자들은 여전히 남아 있고, 여전히 뻔뻔하게도 탄핵 반대를 외친다. 보수를 참칭한 극우 집단이 집결하고 있다.
광기의 동조자들이 꿈꾸는 세계가 무엇인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증오와 배제의 정치, 적대적 공생 구조 속에서 아무런 대화와 성찰도 없는 맹목의 혐오가 이제 바로 우리 문 앞에 와 있다는 걸, 아니 이미 문을 열고 우리 속에서 어슬렁거리며 우리의 영혼을 넘보고 있다는 걸 나는 피부로 느낀다. 그리고 어느새 탄핵 반대 여론은 30%에 육박했다(중앙일보, 경향신문 조사 각각 28%).
윤석열 정부 1기 내각에서 여성은 4분의 1 수준이었다. 여성부장관이 9개월 넘게 공석이었지만, 세상은 평화롭고 고요했다. 9개월이 아니라 11개월이 흐른 지금도 여성부장관은 공석이고, 여전히 신영숙 차관이 직무대행인 채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 윤석열 이후를 이야기해야 한다. 돌봄, 육아, 경력단절, 젠더 갈등, 정치적 참여, 경제적 기회, 육아휴직, 공공 영유아원, 외로움, 노인, 청년, 이주노동자 문제 등 여성을 중심으로 놓고 고민해야 할 정책적 과제는 너무 많고, 광대하다.
그 모든 정책의 출발점은 광장이어야 한다. 광장에서 ‘인간 키세스’가 되어 품었던 따뜻한 온기, 가족과 사회와 자녀와 나 자신을 위한 꿈, 그 소망이 온전하게 그 온기를 품고 다시 논의 테이블 위로 이어져야 한다. 행시 사시 패스한 남자들이 얼마나 무능하고 얼마나 비겁한지를 우리는 너무 생생하게, 지금 이 순간에도 지켜보고 있다. 그들에게 우리 운명을 맡길 수 없다. 여성의 목소리, 시민의 목소리가 담길 수 있는 새로운 정책적 ‘브레인스토밍’, 그 거대한 폭풍을 우리 스스로 요구하고 쟁취해야 할 시간, 그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코멘트
1"빠순이에서 광장의 주인공으로, LED 응원봉 들고 민주주의 응원까지!👏 이제 여성은 더 이상 주변부가 아닌 중심. 과거를 잊지 말고, 미래를 주도하자! #응원봉혁명 #광장의여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