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이태원참사]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 우리는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에 대하여

2024.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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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개인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라바튜브입니다.

#2014년 4월 16일

 

나는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식탁 의자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도중, 갑자기 뉴스 속보가 뜨기 시작하더니

바로 세월호 침몰에 관한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저게 무엇인가 싶었다.

왜냐하면 당시 나는 어렸으니까. 하지만 뉴스 속보가 계속 나오고,

사망자 수와 실종자 수, 부상자 수가 점점 늘어나는 걸 보니

“아, 이게 실제구나. 실제로 일어났고, 현재 진행형이구나”라는걸 알아차렸다.

초기만 하더라도 사망자 수와 실종자 수는 많지 않았다.

 

당시 내가 전해들었던 것은 4월 16일 오전 8시 49분 전남 진도군 앞바다인 조류가 거센 맹골수도에서 세월호가 급격하게 변침을 했고, 이로 인해 침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또한, 단원고 학생이 8시 51분에 119에 구조요청 신고를 했고, 배는 침몰하고 있었지만, 선내에서는 “이동하지 말라”는 방송이 연방 흘러나왔다는 것. 그리고 9시 35분 해경함정 123정이 도착했다는 것이었다.

 

“아, 이제 구조가 시작되나 보다.”라고 느꼈던 나는 안심을 했었다.

 

하지만 해경 함정이 도착했었던 9시 35분, 기관부 선원 7명이 승객을 버리고 탈출해 구조됐고, 조타실 선원들도 뒤따라 탈출했다는 것과 침몰전까지 172명이 구조되었다는 것이었다. 정말 믿기지가 않았다.

 

어떻게 선장과 그 밑에 선원들이 승객들을 버리고 탈출할 수 있겠냐 말이다.

 

하지만 그건 실제로 일어났고, 결국 10시 30분경 침몰한 세월호는 이후 단

1명도 구조되지 못했다. 현재까지(2015년 4월) 희생자는 295명, 실종자는 9명이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일부 언론은 ‘전원구조’라는 오보를 냈고, 해경 등 구조당국은 구조작업에 우왕좌왕해 희생자-실종자 가족들의 불신의 대상이 됐다.

 

검찰은 참사 이후, 승객들을 버리고 탈출한 이준석 선장 등 세월호 선원 15명에 대해 살인, 살인미수, 업무상 과실, 선박매몰, 선원법 위반 등의 혐의를 적용해 2014년 5월 15일 구속기소했다.

 

#그렇게 8년이 지난 2022년,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다.

 

4.16 참사가 일어난지 어연 8년, 그 해 4월 16일에 전국민이 4.16 참사 8주기를 추모하며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4.16 참사의 표식인 노란 리본과 추모 글이 담긴 글을 올렸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난 후, 할로윈데이 전전날, 나는 그 당시에 서울시 서대문구에 거주하고 있었고, 구립홍은청소년문화의집에서 서대문구 대표 청소년 축제인 “청청축제” 축제 기획단으로 활동하고 있었고, 할로윈데이 전전날인 10월 29일, 나는 우리 축제 기획단이 준비한 2022 청청축제를 신촌 연세로 차없는 거리에서 개최할려고 일찍부터 가서 준비하고 있었다.

준비를 다한 후, 나는 축제 기획단으로서 부스 하나를 맡고 있어 바빴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2022 청청축제를 무사히 마치고 집에 돌아갈려고 연세대 앞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난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왜냐면 나도 이태원에 갈려고 했었으니깐.

 

하지만 너무 힘든 나머지 그냥 포기하고 집에 가서 뻗었다.

그리고 다음 날, 성당에서 갑자기 “압사 사고로 떠난 분들을 기억하며 기도합시다.“ 라며 기도를 해서 난 무슨 일이 났나 싶었다.

 

성당이 다 끝난 후, 난 집으로 갔고, 핸드폰을 봤다.

 

그랬더니 이렇게 긴급 재난안전문자가 와있었다.

 

”이태원 압사 사고 발생. 인근 주민분들과 시민 여러분들은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처음엔 당연히 오보겠거니 싶었다. 하지만 이때도 똑같이 뉴스 속보가 떴었고, 4.16때와 마찬가지로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고 했었다.

이때 사망자는 총 158명, 하지만 나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이재현 학생을 포함하면 159명이나 사망했었다.

부상자는 더 많았다. 197명이나 됐으니 말이다.

 

당시 코로나19가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다 22년 거리두기와 영업시간 제한,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가 가시화되면서 평소보다 많은 인파가 이태원에 몰리면서, 대형 압사 사고가 일어난 것이었다.

 

심지어, 재난방송 주관 방송사인 KBS가 이태원 참사 속보를 새벽 0시에 처음 보도되자마자, 전 세계의 매스컴들이 숨가쁘게 움직이면서, 같은 시각 KBS 뉴스를 전해 들은 일본 NHK 서울지국도 KBS 보도를 인용해서 이 소식을 일제히 보도하기 시작했고, 비슷한 시각인 후지TV도 정규 방송까지 중단한 채 MBC 뉴스 속보를 인용하여 긴급 보도로 타전했다. KBS와 MBC 등 지상ㅍ하 3사가 이처럼 속보 경쟁에서 전 세계적 특종을 하게 된 것은 뉴스를 쫓는 방송인들의 집년 어린 노력의 결과였다.

 

#압사 사고는 왜 일어났나

압사 사고 이전, 경찰은 인력 부족과 밀집된 인파로 인해 군중 통솔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사건 당일인 10월 29일 18시 17분과 26분 ‘압사’를 언급한 신고 두 건과, 18시 34분 압사 가능성을 제기한 신고 등, 18시에서 사고 직전인 22시 사이 총 79건의 신고가 접수되었다.

18시 34분 걸려온 신고 전화는 이태원의 해밀톤 호텔 앞 골목에 이태원 역에서 나온 인파와 클럽에서 줄을 서는 사람들이 뒤섞여 압사 사고가 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한 녹취록도 몇 건 공개되었다.

 

그 후, 10월 29일 22시 15분경 압사 사고는 해밀톤호텔 서쪽에 있는 내리막 골목길에서 발생하였다. 소방당국은 23시 19분부터 축제 중단을 요청했다고 한다.

 

10월 30일 06시 30분 최성범 서울용산소방서장의 브리핑에 따르면, 인명 구조를 위하여 소방 507명, 구청 800명, 경찰 1100명, 기타 14명, 총 인력 2,421명이 동원되었다고 하고, 또한, 장비는 소방 184대, 구청 10대, 경찰 30대, 기타 9대의 총 233대가 동원되었다. 재난의료지원팀 14팀(서울 7, 경기 7)이 출동하였다. 또한 타 시도 구급대에서는 장비 94대, 인력 222명이 지원되었다.

#사고 대응은 과연 적절했나?

경찰은 10만 명가량 모일 것으로 예상하고 경찰 137명을 현장 배치했다. 그러나 이는 30만 명의 인파에 비해 매우 적은 인원수로 파악되었다.

 

용산구청은 당시 이태원에 많은 인파가 몰릴 것을 우려하는 ‘핼러원데이 치안여건 분석 및 대응방안 보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질서 유지와 인파 통제를 별도로 지시하지 않았다. 사고 발생 4시간 전부터 경찰 측에도 압사 위험에 대한 신고가 쇄도했는데, 첫 신고가 발생한 18시 34분으로부터 5시간 뒤인 23시 40분에 첫 경비 기동대가 현장에 도착했다.

 

사고 이후, 소방과 경찰이 출동했지만 인파가 몰려있어서 100m 거리를 가는데 평소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도착했을 때는 아래에 깔린 피해자들의 팔을 잡고 꺼내려 했으나 워낙 많은 사람이 쌓여 있어서 꿈쩍도 하지 않았고, 구조해도 사람들이 뒤엉킨 탓에 핸드폰과 가방 등 소지품이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아 사상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다.

 

대부분의 지상파 방송 채널은 특보 체제로 변경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사고 발생일 새벽 중앙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여 가용한 자원을 총동원하여 인명 구조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당부하였다. 10월 30일 오전에는 대국민담화를 통해 ”국정 최우선 순위를 본건 사고 수습과 후속 조처에 두겠다“라고 밝혔으며, 이태원 사고현장을 찾아 수습 상황을 둘러보고, 정부서울청사 상황실에 설치된 사고수습본부를 방문해 회의를 주재하였다. 10월 30일부터 11월 5일까지를 국가 애도기간으로 정하라고 지시하였다.

 

오세훈 서울 시장은 네덜란드 출장 중, 사건 보고를 받은 후 귀국길에 올랐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사건 당일 개인 일정으로 충북 지역을 방문하여 취침 상태에서, 23시 32분에 사건에 관련하여 처음으로 문자 메시지를 받았으며, 23시 52분에 전화를 받았으나 취침 중으로 확인하지 못하였다. 22분 후인 30일 00시 14분 사고를 인지하고, 상황 담당관과 전화통화로 상황을 보고 받은 후 서울로 출발하고, 02시 30분 경찰청에서 지휘부 회의를 갖고 대응 방안을 지시하였다.

 

# 참사 이후

위반 건축물 다수 존재

사고 발생지는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 173-7 일대로, 이곳은 이태원 해밀톤호텔 왼쪽 50m 길이의 내리막 골목길이다. 길 위쪽은 폭이 5m 이상이지만 아래쪽에는 3.2m로 좁아지며, 사고는 폭 3.2m 골목에서 일어났다.

 

건축법상 도로는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폭이 4m 이상이어야 하고, 해당 지역 건축물현황도에도 도로 너비는 4m로 나와 있었다.

 

그러나 해밀톤호텔은 도시계획상의 건축한계선이 설정되기 전인 1970년에 준공되어 건물의 대부분(건물 출입구 포함)이 건축한계선을 넘은 상태였다. 게다가 건축한계선이 설정된 후에도 골목 하단부에 건축한계선을 침범하는 분홍색 철제 가벽을 도로에 바로 붙여 10m가량 무단 증축했다. 하지만 해밀톤호텔은 5억여원의 이행강제금을 납부해가며 무단 증축한 부분을 계속 유지해왔다.

 

#반응과 여파

1.정부

사건 발생 지역인 이태원동을 관할하는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10월 30일 새벽 3시 "구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던 모든 시간들이 제게는 행복이었다"라고 했다가 비판을 받고 오후 4시 "참담할 따름"이라고 수정된 입장을 발표했다.

 

10월 30일 아침에 대국민담화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정말 참담하다, 일어나선 안 될 비극과 참사가 발생했다"라는 소감을 밝히며 국가 애도기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또한 31일에는 배우자 김건희와 함께 서울광장 합동분향소를 찾아 헌화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국가애도기간을 11월 5일 24시까지로 정하고, 전 공공기관과 재외공관에서는 조기를 게양, 공무원과 공공기관 근무자들은 애도를 표하는 검정색 리본을 패용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공무원들에게 국가애도기간 동안 검은색 리본을 착용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다른 사건에서도 사용하던 '謹弔(근조)'가 쓰인 검은색 리본을 착용하였다. 그런데 정부는 '글씨 없는 검은색 리본으로 착용하라'는 공문을 다시 보냈고, 왜 글씨 없는 리본으로 바꿔야 하는지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글자 없는 검은 리본 착용, 누가 무슨 이유와 근거로 지시한 것인가?"라고 말했다

 

2.축제와 행사

추모 분위기로 인해 할로윈 행사를 준비하던 곳들의 행사 취소가 잇따랐다.

 

에버랜드와 롯데월드는 10월 2일부터 11월까지 진행하던 할로윈 축제와 연계 프로그램을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SM엔터테인먼트는 'SM타운 원더랜드 2022' 행사를 취소하였다. 또한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 이천점은 30일 오후 3시부터 진행할 가수 홍진영의 미니콘서트를 비롯, 모든 이벤트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이월드와 대구광역시 남구청, 홍대 앞 클럽 에프에프는 예정되어 있던 할로윈 행사를 전면 취소하였다. 롯데엔터테인먼트는 30일 공식 인스타그램에 '자백' 무대인사를 취소한다고 알렸다. 부산원아시아페스티벌은 30일 공지를 통해 "오늘 저녁 7시부터 부산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부산 원아시아페스티벌 K-POP 콘서트가 취소됐다"라고 알렸다.

 

스타벅스, CU, GS25 등의 음식 업계에서도 할로윈 관련 상품의 판매를 중단하였고, KBS와 SBS 등 모든 방송사 역시, 방청객들이 몰리는 군중 밀집 행사 프로그램 기획 및 제작에 대해서 뾰족한 대책을 내놓았다.

 

당시, SBS 예능본부의 곽승영 팀장의 인터뷰에서,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출연자 및 방청객들의 안전을 위해서 SBS 가요대전 등 군중 밀집 행사 프로그램 생중계 제작 시에 의료진과 안전 요원을 의무적으로 배치하겠다"라고 설명하였다.

 

# 정부의 국가 애도 기간 선포 이후

 

본 필자는 사건이 일어났었던 당시, 해당 장소를 방문할려고 했었지만 안했었고, 필자의 형도 방문할려고 했었고, 사촌누나는 직접 방문을 했지만,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인파가 많은 것을 보고 돌아왔다고 했었다. 그래서 부모님과 같이 정말 다행이라고 했었던 기억이 난다.

이후, 필자는 국가 애도 기간이 끝나는 22년 11월 5일, 이태원역에서 현재 필자가 소속된 단체 중 하나인 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이라는 단체와 함께 추모행사(?)에 나섰다. 또한, 인터뷰도 했었다.

 

#2023년 10월 29일

10.29 참사로부터 어느덧 1년, 10.29 참사 1주기를 맞이했던 날이었다.

이때는 이태원역 1번 출구 주변 도로가 아예 통제가 되고 있었다.

바로 10.29 참사 1주기 추모 행사 때문이었다.

 

이 행사에서는 이태원참사특별법 제정 촉구와 관련 내용에 대한 시위가 이루어졌다. 필자도 참석하여 한자리를 빛냈다.

 

이 행사는 이태원역 1번 출구를 출발해 삼각지역, 시청역까지 가는 행진도 같이 진행되었다.

 

# 10.29 참사가 일어난 그날, 그 시간부터 현재 2주기에 이루기까지

다가오는 10월 29일 화요일은 10.29 참사가 발생한지 2주기째이다.

2년 동안 정말 다양한 일들이 있었다.

일단 경찰의 부실대응 논란부터 안전 매뉴얼 무용지물 논란, 해밀톤호텔 불법 증축 논란, 압사 유발자 존재 의혹, 압사 유발자에 관해서 경찰 수사가 이루어지기도 하였지만, 처벌이 가능/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서로 엇갈리게 나오면서 더 혼란을 가중시켰다.

이후, 주점 구조 거부 논란과 남성 시민이 여성 환자 심폐소생술 시도 주저 루머, 사후 시민의식 논란, 서울관광재단 이태원 홍보행사 논란과 일부 구급차 사망자 이송 논란까지. 이 외에도 정부 관련 논란과 특수본(특별수사본부) 관련 논란, 공직자 언행 논란, 정치계 관련 논란, 언론 및 인터넷 관련 논란, 추모 공간 관련 논란과 사후 사건 및 사고, 국정조사에서의 논란까지. 정말 각종 논란들이 2년동안 오갔었다. 현재는 잠잠한 상황이긴 하지만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온 세상이 시끌벅적했었다.

그리고 참사 이후, 1주기가 되기 전, 23년 6월 29일, 국회법 제85조의2제1항에 따라 박광온, 배진교, 용혜인, 강성희 의원 등 183인으로부터 신속처리안건 지정동의의 건이 제출되어, 제407회국회(임시회) 제7차 본회의(2023.06.20.)에서 신속처리안건 지정동의의 건 가결되어, 국회법 제85조의2제2항에 따라 신속처리대상안건으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2023.8.31. 행안위 의결 및 법사위에 회부되었고, 국회법 제85조의2에 따라 2023.11.29. 본회의가 부의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2024년 1월 9일 법률안이 통과되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이 법률안에 대해 취임 이후 9번째 법률안 거부권을 사용했다. 다만 실패에도 불구하고 더민주를 비롯한 야권 측에선 특별법 입안을 계속해서 시도했다. 그러다 2024년 5월 2일, 다시 한 번 특별법안이 가결됐다. 이번 건은 여야가 합의하여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성이 나와 이전과는 다른 모양새로, 국민의힘이 22대 총선의 패배와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한 것에 대한 반동이며, 실제로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 간의 회담을 통해 여야 간 협치와 정치의 복원이 시작됐는데, 이태원 특별법 합의는 구체적 첫 성과라 생각한다“며 환영 의사를 밝히기도 하는 등 급물살을 타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마무리

10.29 참사 이후, 관련 특별법이 가결되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야 합의 하에 가결되었다는게 놀랍기도 하다.

 

이제 곧 있으면 10.29 참사 2주기가 다가오고 있는데, 다들 10.29 참사 추모위원 및 추모 인증샷과 자기 동네에 현수막 걸기 행동에 동참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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