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이태원참사] 2년 전 10월 29일을 기억하고 행동하기

2024.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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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듣고 말해요

 2년 전 생일날엔 유독 밤에 연락이 많이 왔다. 그 때까지만 해도 뭔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2022년 10월 29일, 생일이지만 기분이 나지 않아서 다음 날 있을 영어 시험을 핑계로 집에 있었던 날, 그래도 시험 전 날인데 모의고사라도 한 번 풀어봐야지 하면서 책상 앞에 앉아는 있지만 정작 눈은 랩탑 모니터 속 넷플릭스를 향해 있던 그 때. 연달아 울려대는 휴대폰 진동에 그제서야 이 황당한 일들을 알게 되었다. 

생일이니까 다들 내가 당연히 놀러 나갈 줄 알았던 것 같다. 또 이태원에서 약속잡는 걸 좋아했으니까 혹시나 참사 당일 현장에 있지는 않았을까 걱정했던 것이다. 그렇게 상황 파악을 하고 밤새 기사를 확인했다. 그러면서도 실감을 잘 못했던 것 같다. 이 사건이 얼마나 말이 안 되고 참담한 일인지. 

참사 다음 날 시험장에 유독 빈자리가 많았는데, 문제 푸는 내내 그 자리들이 신경쓰였다. 혹시 저 자리에 앉았어야 할 이가 어제 이태원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거면 어떡하지. 시험 끝나고 우르르 나가는 사람들 뒤통수를 보는데 마음이 너무 이상했다. 대학 졸업을 앞두거나, 취업준비를 하거나, 국가자격증을 따려고 하는 사람들이 주로 보는 시험이라 이 곳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20대, 많아봤자 30대였다. 그렇게 쏟아지는 사람들 중에서 혹시 누군가 어제 가족이나 친구를 잃었다면 어떡하나, 어제 나처럼 기사를 보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우진 않았을까, 그렇게 허망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온 기억이 난다. 

그 날 입은 옷도, 날씨도 다 기억 날 정도로 2년 전 그 날이 기억나는 게 신기하단 생각을 하면서 마치 세월호 때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날, 맨투맨 티를 입고 나왔다가 너무 더워서 어깨 위에 걸쳐놓고 걸어다녔던 날, 낮에 중학교 동창 시형이네 아줌마가 하시는 문방구에 갔었다. 아줌마랑 뉴스 속보를 보면서 사람들 다 구조됐다던데 하는 얘기도 나눴었다. 근데 얼마 지나지 않아 오보라는 기사가 떴고, 이후 말도 안 되는 팽목항 영상들을 보게 된 것이다.

이 사건도 세월호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트라우마처럼 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크게 온 감정은 무력감. 이만치 큰 사건이 일어났는데 원인 파악도 안되고,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제대로 된 애도도 이뤄지지 않는 걸 보면서 이런 일은 또 일어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놀러갔다 죽었다.’ 기성 세대로서 어린 친구들을 지켜주지는 못할 망정 온갖 교묘한 말로 여론을 호도하고 본질을 흐리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정녕 이 사회의 주류라면 내가 이 곳에서 의미 있게 살 수 있을까. 


이태원참사 추모 표지판
올 해 여름 ,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을 지나가면서 촬영한 이태원참사 추모 표지판. 참사와 관련된 문구들이 더 잘 보이게 써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2년 전 이태원에서 유명을 달리한 이가 하루하루 고되게 살다 그 날 하루 겨우 숨 돌리려 이태원을 찾았던 거라면? 그게 죄인가? 아니, 이태원의 밤을 즐기고 사랑하는 것이 죄인가? 쏟아지는 인파로 늘 북적이는 할로윈 이태원인데 왜 그 해에만 유독 통제가 안 되었을까? 왜 공적 통제가 그 즈음에만 허술했던 걸까? 다양한 변수들을 찾고 추려서 원인을 알아야내야만 하지 않을까? 그걸 끝까지 파헤쳐야 하지 않을까? 세상을 떠난 사람들과 남은 이들을 위해서? 눈물 분노 응징의 3단계를 거치는 것 말고 어떤 것들을 할 수 있을까? 

적어도 혼자 밥벌이 하며 살아가고 있다면 이 사회에 조금의 책임감을 가지는 게 성인 된 도리라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돌아가는 일들을 보면 이런 작은 양심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오지랖이라거나 현생 살라거나 하는 무책임하고 힘빠지는 말들만 돌아왔다. 그런 말을 하는 인간들과는 당최 상종을 하고 싶어지지 않고, 그래서 이런 얘길 아예 꺼내지 말아야겠다 생각했다. 근데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겠지. 이 땅을 영영 떠날 게 아니라면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여길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야하지 않나, 그게 남은 이들의 책무가 아닐까 싶어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엄마는 참사 이후 내 생일만 되면 기분이 이상하다고 했다. 분명 그 날 나도 이태원에 있을 수 있었다. 아마 그 즈음 지치지 않았다면 분명 밤에 놀러 나갔을거다. 올 해 10월 29일에도 많은 이들로부터 축하를 받을텐데 벌써부터 여러 복잡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이런 막연히 미안하고 무력한 마음을 갖는 것 외에 뭐라도 해보고 싶어졌다. 

우연한 기회에 이태원 참사를 주제로 한 모임에 나가게 됐다.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모르지만 모두 이태원 참사에 대한 깊은 애도의 마음으로 모인 사람들.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지만 왠지 마음의 빗장을 풀고 편안히 있어도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머릿수 하나 정도 보태는 소심한 마음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뭔갈 해볼 수 있을까도 싶다. 뭐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뭐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더 이상 혼자 하는 고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조금은 든든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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