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연구원정] 부유한 나라와 불행한 청년들 : 불안정 노동을 중심으로

2024.10.13

397
11
사회복지대학원에서 복지국가와 사회정책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dhkim20@inha.edu


안녕하세요. 복지국가와 사회정책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 연구자입니다. 다시 인사를 드리게 되어 반갑습니다. 지난 여름, 연구원정 원데이 클래스 과정에서 ‘복지태도(Welfare Attitudes)’ 등의 주제로 5회 연재 글을 공유드렸는데요. 가을부터 정규 부트캠프에도 참가하게 되어, 앞으로 3주 간격으로 5회 연재를 드릴 예정입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고 토론 남겨주셨던 독자님들 덕에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기쁨을 느꼈답니다. 이 글을 빌려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

이번 연구원정 부트캠프 과정에서는, 한국 청년의 ‘불안정 노동(Insecure Work)’ 실태와 ‘우울(Depression)’ 현상을 연결하여 바라보고자 합니다. 끝으로 연구 키워드로서의 '사회적 지지(Social Support)'에 대한 내용도 일부 언급할 텐데요. 오늘은 구체적인 연구 계획에 들어가기 앞서 제가 가진 기초적인 문제의식을 나누고 싶습니다. 

☄️ 놀라운 경제성장의 종말, 불안정 노동시장의 탄생

<기적 만들기’(Making a Miracle, 1993)>.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루카스 교수(Robert Lucas)의 논문 제목입니다. 루카스 교수는 한국의 경제성장이 기존의 경제 이론으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기적에 가까운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2022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에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격상한 유일한 국가로, 이와 같은 전례는 1964년 기구 설립 이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전쟁 휴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한국의 국민총생산(GDP)은 13억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황폐화된, 세계 최빈국인 나라가 70년 뒤 2022년 약 1300배(1조 6643억달러)까지 GDP 성장을 이륙시켰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전후무후한 한국의 가파른 경제성장은 1960년대의 권위주의 정부 주도로 시작되었습니다. 정부가 대기업을 지원하며 수출 중심의 산업화를 구축하였고, 1980년대 말 ‘삼저호황’을 거치며 경제성장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하지만, 90년대 세계 경제가 어려워지며, 수출에 의존하던 한국 대기업이 위기를 맞자 전략을 바꾸게 됩니다. 숙련된 노동을 기계와 로봇으로 대체하는 "자동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입니다. 현재까지 한국의 산업용 로봇은 390만대로, 압도적인 세계 1위의 높은 로봇 밀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대기업은 이러한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 커다란  초기 설비비용이 들자, 핵심 부문을 빼고 외주화하게 됩니다. 이전까지의 "복선형 성장방식"에서는 대기업의 성과가 중소기업, 자영업자와 연결되고, 수출과 내수가 함께 성장하였지만, 1990년대부터 대기업만의 성과로 전환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비정규직과 하청 노동이 증가하며 좋은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상이 시작됩니다.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으로의 노동시장 이중구조화는 2000년대를 걸쳐 가파르게 진행됩니다. 게다가, 2020년 이후 코로나19로 인해 배달 및 운전 등 플랫폼 노동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면서, 한국 사회의 불안정 노동 현상은 보다 복잡하게 심화되었습니다.


⛈️ 청년의 우울을 야기하는 불안정 노동시장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은 가장 최우선적으로 청년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이승윤 외, 2016).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고 새로운 취약한 일자리가 나타나는 노동시장의 변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하는 세대는 사회로의 진출을 시작하는 청년들입니다. 청년들은 이들이 고학력임에도 불구하고 실업, 비정규직, 플랫폼 등 불안정 노동을 전전하거나, NEET(교육도 노동도 하지 않는 청년들)와 히키코모리 등 노동을 떠나는 등(이승윤 외, 2016)의 독특한 현상이 한국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의 문제는 ‘세대’의 문제와 ‘불안정한 삶’의 문제가 중첩적으로 나타나며 부상하고 있습니다(Dörre, 2010; 곽노완, 2013; 이승윤 2016 재인용) 한국 청년들에게 심각한 문제는 집단적인 우울감과 높은 자살율입니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부동의 자살률 1위 국가이며, 우울증 유병률도 매우 높습니다. 2022년 건강건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우울증 환자 중 20-30대가 35만여명으로 전체 환자의 35.9%를 차지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개인의 소인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부의 양극화와 취업난과 같은 사회구조적 요인으로 발생하는 것입니다(김지경 외, 2018; 박채림 외, 2023 재인용).

한국의 청년들은 마치 의자 뺏기 싸움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일자리라는 의자의 수 자체가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노력, 또 노오력만으로 정말 의자를 가질 수 있을까요? 재능과 노력을 통한 성공을 강조하는 ‘능력주의’가 한국 사회의 보편적 이데올로기가 된 것 같습니다. 결국 한국 청년들은 좋은 의자에 앉는 데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불안정해진 노동시장이 아니라 개인의 노력과 능력의 부족이라 채찍질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하여 자신과 타인의 우울을 키우고 있는 것이 아닌지 씁쓸해집니다.


🛠️ 기존의 대안과 새로운 전환

청년의 노동과 정신건강을 둘러싸고 정부는 어떤 노력을 했을까요?  전통적으로 청년은 가장 ‘일할법한 집단’으로 분류되어 다른 세대보다 가장 빈약한 복지정책이 지원되고 있었고, 그마저도 제한적인 일자리와 취업지원 정책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정부와 지자체도 청년 실업과 노동시장 이탈, 그리고 우울 문제에 경각심을 느끼기 시작하며, 청년 정책들을 확대해왔습니다. 일자리와 취업을 강화하기도 하였지만, 이를 넘어 행복한 삶을 지원하기 위한 청년센터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지자체 주도의 마음건강 사업이 확대되었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인 차원에서 여전히 국가의 자원과 관심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청년 대상의 복지정책의 확충도 분명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노동시장의 구조적인 변화 없이 청년들의 문제는 해결될 것 같지 않습니다. 청년세대의 우울은 불안정 노동시장과 여타 다른 요인들이 함께 중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불안정 노동을 줄이는 방식으로 한국 경제체제의 거시적인 패러다임이 변화해야 하며, 사회보장제도 또한 노동시장에서의 문제를 적절히 보완하는 방식으로 정합(整合)되어야 합니다.

🫂 새로운 아이디어,'사회적 지지(Social Support)'

커다란 경제 패러다임과 복지제도를 바꾸는 일은 근본적으로 중요하지만, 얼마나 오래 시간이 소요될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사회가 바뀌기를 기대하는 동안 개인의 삶은 물러설 곳이 없습니다. 어떠한 대안을 비교적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우리는 고민해야 합니다. 저는 청년들의 불안정 노동으로부터 비롯되는 우울을 '사회적 지지' 를 통해 일부 완화할 수 있다고 기대합니다.

'사회적 지지 (Social support)'란가족과 친구 등 사회적 관계와 지역사회 등으로부터 받는 지지를 의미하고, 실제로 도움이 되거나 주관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 것을 포함합니다 (Lin, Dean, & Ensel, 1986; 주유선, 2020 재인용). 또한 물질적 지지와 정서적 지지 등으로 구분되며, 여러 스트레스 상황에서 적응하도록 돕고 좌절을 극복하는 등의 완충재 역할을 합니다(Cohen& Wills, 1985; 주유선, 2020 재인용). 

개인의 사회적 지지 수준은 각각 다를 것이며, 사회적 지지의 충분성에 대한 기준 또한 상이할 수 있습니다. 청년 개인이 느끼는 사회적 지지 보유 수준에 따라, 불안정 노동으로부터 야기되는 우울이 심화되거나 약화될 까요? 만약 그렇다면, 국가, 지자체, 지역사회, 시민단체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적 지지를 높이기 위한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앞으로 크게 세 가지의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연구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첫째, 다른 인구 사회학적 변수를 통제했을 때, 청년의 불안정 노동은 우울과 정적인 관계가 있는가?
둘째, 불안정 노동의 하위 요소 (일자리 불확실, 소득 불충분, 사회적 보호 불안전, etc.) 중 어떠한 요소가 가장 크게 우울에 영향을 미치는가?  
셋째, 청년의 사회적 지지(ex. 사회적 관계 만족도, etc.)는 불안정 노동이 우울에 미치는 영향을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조절하는가?


🔖 마무리하며...

이번 시간은 한국의 수출-대기업-자동화 중심의 경제성장 방식이 불안정 노동시장의 배경이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자 하였습니다. 또, 노동시장의 최전방에 있는 청년들에게 이러한 불안정 노동의 확대는 우울을 야기하고 요인 중 하나라는 점을 논의했고, 이를 조절할 수 있는 '사회적 지지'에 대한 연구질문을 공유하였습니다. 3주 뒤에는 이러한 문제를 둘러싼 학술 생태계와 연구 동향을 설명드리는 글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20241013. KIMDAHYEON,  All rights reserved. 이 글은 향후 작성자의 학술적 연구를 위한 초안으로, 작성자의 허락없이 복사, 인용, 배포, 상업적 이용을 금합니다. 

공유하기

김다현님, 다양한 자료들을 찾아보시고 글을 정리해 나가시느라 정말 고생많으셨습니다. 저도 한 청년으로서 정말 관심이 가는 주제입니다. '사회적 지지'라는 개념도 흥미로운데요, '사회적 지지'를 어떤 방식으로 측정하는지 궁금해 지는데요. 다음번 글도 너무 기대됩니다. 연구를 응원드립니다!

청년 세대의 불안정 노동과 이로 인한 우울의 문제를 짚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한 하나의 자원으로 사회적 지지를 말씀하신 것에 깊은 공감과 응원의 마음을 전합니다. 바쁜 과정 속에서도 늘 연구에 대한 열정과 진지함을 보여주셔서 고맙습니다. 화이팅!!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한 사회적 지지라는 개념이 정말 필요한 부분인거 같습니다. 특히 요즘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누칼협"이나 서로가 서로를 비교하는 문화 속에서 각 개인은 계속적으로 상처를 받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열정이나, 꿈이나 정의나 도덕이라는 말이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 사회에서 청년이 스스로 자립하고 사회에 들어올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지는게 필요하다는게 한편으로 씁쓸하면서도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좋은 글과 생각 감사합니다.

개강한지 얼마 안되어서 정신없으실텐데 고생 많으셨어요! '사회적 지지' 참 따뜻한 단어네요. 정규직이었던 저도 참고 일하다 탈이나 퇴사하게 되었는데, 후배들이 무기계약직이나 육아휴직대체자 등 불안정한 일자리로 일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무력하게 느껴진 때가 있습니다. 그럴때 '사회적 지지'가 따뜻하게 그들을 감싸주었으면 좋겠네요. 앞으로의 연구도 항상 응원합니다!

청년은 노동인구이니 복지의 영역에서 많이 외면되어 있다는 말이 공감되기도 하고, 정말 그러한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사회가 청년인구의 행복과 안녕감을 위해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를 보여주는지에 대한 분석도 유의미한 자료가 될 듯 해요! 사회적 지지를 정부가 어떻게 줄 수 있을까. 아마도 윗 이야기와 연결되기도 합니다:) 이제 이 궁금증을 풀어나갈 예정이시겠죠! 기대합니다!

당장 청년이 느끼는 가장 큰 문제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심리적 안정성은 이런 불안한 사회에서도 내가 해낼 수 있다라는 믿음을 주는, 그 지지를 받는 것이 정말 클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 사회적 지지와 연관지은 것이 정말 획기적이고 숨겨져있던 키워드를 찾은 것 같아요 ! 사회적 지지가 국가적으로는 안정을 줄 순 없을까.. 라는 고민도 함께 듭니다 ㅎㅎ 수고 하셨습니다 !

고생 많으셨습니다!! 청년의 불안정 노동이 우울에 미치는 영향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데, 개인적 차원의 요소인 '사회적 지지'의 역할을 알아보는 다현님의 연구가 기대됩니다! 응원하겠습니다!

@다현 님 항상 거시적인 문제를 다루면서도 당사자의 상황을 놓치지 않는 시각에 놀랍니다. 청년의 입장에서 청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가실지 기대가 됩니다!! 응원하겠습니다😊

우와... 수많은 링크를 보면서 자료조사를 정말 열심히 하셨다는걸 느꼈습니다. 탄탄한 연구가 될것 같아서 기대가 되네요.

제 연구에서도 청년 세대에 대한 연구를 일부 찾아봐야할텐데, 여기서 레퍼런스를 얻어갑니다. 우리의 연구가 청년층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는데 기여하기를 바라요!

'프레카리아트'라 불리는 불안정노동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을 때만 해도 너무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헀었는데, 어느덧 불안정노동이 우리에게 있어서도 너무 가까이 다가왔네요. 이 내용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또 복지국가의 맥락에서 접근해주시는 부분이 많이 인상적이었어요. 복지국가의 다음 패러다임에 대한 근본적인 연구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동시에 글의 정돈된 모양 또한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최근에 중앙대 이승윤 교수님과 서울대 김승섭 교수님이 쿠팡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도 계속해서 수행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관련한 연구에 있어서도 트래킹을 해보시면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이제 우리가 복지국가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때가 아닐까 싶어요. 나이나 학력에 구애받지 말고 도전적으로 이 주제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연구를 해나가시기를 계속 응원할게요! 지지하고 지원하겠습니다-!

제 주변에서도 노동시장 불안정성을 직접적으로 느끼는 이들이 정말 많은데요, 연구가 쌓여갈수록 정책 변화도 함께 나오지 않을까 늘 기대해봅니다. 연구가 사회를 견인해주길 바라며 연구 끝까지 다현님을 응원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