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이태원 참사] 나의 첫 번째 핼러윈

2024.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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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 자란 동네 용산에서 굴러다니는 중입니다.
미구엘 분장을 하고 찍은 사진

나의 첫 번째 핼러윈 (23.10.28.)

이른 저녁, 친구들과 함께 이태원을 찾았다. 우리는 상가 건물 지하에 있는 작은 연습실을 빌려 짐을 풀었다. 그러고는 각자 챙겨 온 소품을 바닥에 늘어놓은 채 분장을 시작했다. 재민과 인영은 호박 모양의 종이 가면을 조립해 뒤집어썼고, 지오는 '프리다칼로'처럼 양 눈썹을 한 줄로 이어 두껍게 그렸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성용은 커다란 쇼핑백에서 마법사 모자와 반짝이는 재질의 망토를 꺼내 걸쳤다. 그리고 나는 빨간색 후드 집업으로 갈아입어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에 나오는 '미구엘'을 흉내냈는데, 동규가 빌려준 통기타까지 둘러매자 꽤 그럴듯한 모습이 되었다. 조금은 들뜬 기분으로 거울을 보며 사진을 찍기도 잠시, 막상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아 한참을 망설였다.

이태원의 분위기는 다소 어수선했다. 해밀톤 호텔 앞 교차로에서는 교통을 관리하는 호루라기 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거리 곳곳에 배치된 경찰은 행인보다 그 숫자가 많아 보였고, 주요 길목마다 설치된 철제 펜스는 우측 통행을 강제했다. 간혹 걸음을 늦추다가는 서둘러 움직여 달라는 핀잔을 들었으니, 사람들과 눈을 맞추거나 대화를 나누기란 몹시 어려웠다. 그 광경을 두고 한 친구는 이렇게 평했다. 꼭 선생님 앞에서 노는 느낌이라고. 또한, 그 일대 전봇대에는 전부 흰색 국화가 걸려 있어 별수 없이 움츠러들기도 했다. 혹시 내가 너무 눈치 없이 구는 걸까. 속으로 그런 의심이 들었지만, 예년처럼 코스프레를 하고 온 무리를 발견하며 얼마간 안도할 수 있었다. 

사실, 일주기를 앞두고 나는 제법 비장하게 약속했다. 올해 핼러윈은 이태원에서 즐길 거라고, 코스튬을 통해 내가 가진 생각을 표현할 거라고. 처음에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오기가 앞섰다. 그런데 마을 미디어 용산FM과 함께 기록단 활동을 운영하고 나서는 호기심과 책임감 또한 더해졌다. 녹취록을 읽다 보면, 내심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재밌길래. 나도 한 번 그 세계를 경험하고 싶었던 한편, 인터뷰이 각자의 이야기가 그날 이태원에 머문 사람들을 비추는 증언처럼 다가오기도 했다. 그러니까, 일 년 뒤 같은 자리에서 핼러윈을 즐기는 것으로나마 당신들과 연결되고 싶었다. 나아가 참사 이후를 살아가는 모두가 여기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랐다.


축제의 방식으로 애도를 상상하기

'미구엘' 분장을 선택한 까닭은 오롯이 보영의 이야기를 통해서였다. 이태원에 거주하는 보영은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방식으로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를 떠올렸다. <코코>는 멕시코 명절인 '죽은 자들의 날'을 배경으로 한다. 이 기간 동안 죽은 자들은 산 자들의 세계에 방문하고, 산 자들은 죽은 자들과 같이 어울리며 축제를 벌인다. 언뜻 핼러윈과 닮았지만, 죽은 자들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환대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다르다. 마찬가지로, 엄숙하기보다 흥겹게 일주기를 보내고 싶은 게 보영의 마음이었다. 게다가 <코코>는 '기억'의 중요성을 각별하게 다룬다. 산 자들 사이에서 완전히 잊힐 때, 죽은 자는 죽은 자들의 세계에서마저 영영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용기를 내서 압사가 발생한 골목까지 다다르자, 희생자들을 기리는 물결이 계속되고 있었다. 우리는 그 근방에 머물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미리 제작한 도장을 찍어주었다. 핼러윈을 나타내는 호박 랜턴 이미지 아래 'REMEMBER ME REMEMBER ITAEWON'이라는 글귀를 각인한 도장이었다. 그러고 보면, 전날 급하게 이런 뜻을 개인 SNS 계정에 공유했더니, 흔쾌히 호응해 준 친구들이 있었다. 태린과 윤호는 그렇게 동행했고, 민경과 윤석과 시연도 일부러 시간을 내서 힘을 보탰다. 뿐만 아니라, 새훈은 따로 사람들 얼굴에 그림을 그려 주고 다녔다. 기록단에 참여한 나연과 다예의 경우, 그 현장을 담겠다며 목에 카메라를 걸고 내내 플래시를 터뜨리느라 분주했다.

그리고 우리는 주현을 만났다. 참사 생존자이기도 한 주현은 똑같이 <코코>를 염두에 두었다. 머리에 메리골드를 본뜬 꽃장식을 더했고, 팔에는 검정색 가죽장갑으로 멋을 냈다. 두 볼에 비즈까지 붙인 주현을 보는 순간 나는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그토록 노련하고 화려한 모습과 비교해 나의 '미구엘'은 얼마나 초라하던지. 이러나 저러나, 우리는 반갑게 인사하고는 해밀톤 호텔 뒤쪽으로 행진했다. 내가 칠 줄 모르는 기타를 어설프게 튕기는 동안 주현은 보라색 리본과 팔찌를 주변에 건넸다. 그러자 사람들은 화답하듯 손을 뻗는가 하면, 이미 받았다고 자신의 팔목을 자랑스럽게 흔들어 보였다. 저마다 환하게 미소를 머금은 채로, 구태여 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핼러윈을 앞두고 개인 SNS 계정에 공유한 포스터

"Remember me, though I..."

난생처음 핼러윈을 즐기며 나는 지난 인터뷰들을 상기했다. 낯을 가리는 승연씨는 코스튬을 통해 자유로워졌는데, 나 역시 홀린듯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거는 자신을 발견했다. 민희씨와 원기씨의 경험담도 비로소 와닿았다. 이태원에는 새로운 풍경들이 가득했다. 각양각색의 차림 속에서 샤인씨처럼 드랙을 한 사람도 있었다. 외국인들과 "해피 핼러윈"을 주고받을 적에는 모하메드씨를 떠올렸다. 시끌벅적한 클럽과 라운지 바를 지나칠 적에는 문득 DJ seesea와 범조씨가 궁금했다. 이 시각, 다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나는 어느새 다음을 기약하고 있었다. DJ H씨의 제안처럼, 더 많은 친구들을 불러 모아 같이 놀자 호들갑을 떨고 싶어졌다. 

시간은 이내 자정을 넘겼다. 우리는 기념으로 네 컷 사진을 남기고 다음 행선지를 고민했다. 그리고 그때 보영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사실, 보영은 올해 핼러윈에 반드시 가겠다고 다짐해 왔다. 그런데 일주기가 다가올수록 점점 복잡한 심경이 밀려들었다. 통제된 도로 위에서 그 현장을 목격했던 공포가 여전했을 뿐더러, 썰렁한 이태원을 마주할까 봐 지레 속상했다. 아쉬운 대로 그날 탔던 차에 올라타 오밤중 한 바퀴 돌고 있다고 알렸다. "지금 어디에요?" 운명인지 우연인지 꽤 가까운 위치에 있어 우리는 자칫 엇갈리지 않도록 조바심을 내며 뛰었다. 그리고 저 멀리서 신호 대기 중인 차량 한 대의 조수석 창문이 열리고 있었다. 그 틈으로 활짝 웃는 보영이 보였다.

벅찬 마음으로 술집으로 향한 우리는 가볍게 떠들다 진지해지기를 반복했다. 럭비공처럼 튀는 수다는 곧 내년 핼러윈 계획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때는 어떤 옷 입지?" "좌판 깔고 뭐라도 해야 하나?" "미리 모여서 분장 같이 할까?" 서서히 취기가 올라 가게 문밖을 나서니, 새벽녘 하늘에 별들이 은하수처럼 걸려 있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아까 전의 골목으로 돌아갔다. 희생자들을 위해 절을 올린 뒤, 한쪽 벽면에 붙은 포스트잇을 하나씩 읽어 내려갔다. 마침 바로 앞 편의점에 사장님이 근무하고 계셔 나는 가만히 생각에 잠긴 주현에게도 그 사실을 전했다. 그렇게 둘은 <코코> 분장을 하고서 사장님께 안부를 물었고, 그것을 끝으로 각자 택시를 잡아 유령처럼 헤어졌다.

이것은 나의 첫 번째 핼러윈, 일주기를 하루 앞둔 23년 10월 28일의 이야기다. 나는 그만큼 연결된 감각으로 참사를 기억한다. 물론, 아직 마음이 허락하지 않거나 사회적인 시선을 의식해 놀기를 주저하고 있을 수도 있다. 기록단 활동에 <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이라는 제목을 붙였지만, 아무렴 놀지 못하더라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이 글을 쓴 주된 목적도 이태원의 핼러윈을 대신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 참사 이후를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을 뿐 도무지 놀기 힘든 당신을 책망하지 않기를 바란다. 한편, 이태원 일대를 나란히 걷는 동안 주현과 나는 누가 먼저 할 것 없이 <코코>의 OST를 콧노래로 흥얼거렸다. 그 가사를 아래 옮겨 적는다. 잘 놀고 왔다.

"Remember me, though I have to say goodbye (나를 기억해줘, 내가 작별 인사를 해야 하지만) / Remember me, don't let it make you cry (나를 기억해줘, 울지마) / For even if I'm far away, I hold you in my heart (내가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마음에 널 품고 있어) / I sing a secret song to you each night we are apart (우리가 떨어져 있는 매일 밤마다 나는 너에게 비밀스러운 노래를 불러) / Remember me, though I have to travel far (나를 기억해줘, 내가 멀리 여행을 가야 하지만 ) / Remember me, each time you hear a sad guitar (나를 기억해줘, 네가 슬픈 기타 소리를 들을 때마다) / Know that I'm with you the only way that I can be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너와 함께 있음을 알아줘) / Until you're in my arms again (네가 다시 나의 품에 안길 때까지) / Remember me (나를 기억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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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먹먹하게 읽었습니다. 글쓴님이 1주기 당시 행동하셨던 것처럼,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막아서고 금지하고 억압만 할 것이 아니라, 추모하고 더 많이 이야기나누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더 많은 좋은 목소리들을 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축제의 모습으로 애도를 함께한다는 게 참 인상적입니다. 애도도 축제도 '함께' 무언가를 만들고 의식적인 행위를 하고 기억한다는 점에서 닮아있네요.
영화 <<코코>> 다시 보고 싶어집니다.